# 83
도수의 존재감
도수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은 ‘투시력’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가 정규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라크리마에서 수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던 건 타고난 수술 감각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기저에는 환자의 환부(患部)만 봐도 어떤 방식으로 수술할지 그려지는 천재성이 있었다.
아니, 단순히 ‘천재적’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투시력보다도 더 초월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라크리마에서 김광석이 물었을 때, 그는 외과 수술을 운동화 끈 묶는 것에 비유했다. 마치 풀린 운동화 끈 묶듯,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문제의 근원을 찾아서 제거하고 다양한 수술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대에서 배우는 공부를 독학으로 마친 후 국시까지 치르고 의사가 된 그는 라크리마에서처럼 쉽게 머릿속에 떠오른 수술법을 확신하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천재적이고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다 한들 수십, 수백 년간의 연구를 통해 개발된 현대의학을 무시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사라락.
도수는 책장을 넘겼다.
지금 그가 의국에 앉아 보고 있는 책은 ‘담낭절제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다음은 결장, 충수, 직장 절제술을 공부해야 했다.
담낭의 암이 ‘대장’이라고 통칭하는 결장, 충수, 직장까지 골고루 퍼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수술 사례들을 찾아보다 보면 도수는 다른 사람보다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환부만 보고도 수술법을 떠올리는 그였으니, 남들은 해내지 못하는 범주까지 생각해 내는 것이다.
그 순간.
의국 문을 열고 들어온 강미소가 채 커버로 눈길을 던지며 물었다.
“김 교수님 사모님 수술이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요.”
“예?”
강미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담낭암 수술이니 당연히 간담췌 외과에서 지원을 받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도수가 말했다.
“지원은 없을 겁니다. 우리 선에서 해결해야 해요. 조근현 교수님과 강 선생이 들어와야겠습니다.”
“아…….”
강미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간담췌 외과에서 지원을 못 해주겠다고 한 거예요?”
“아직이지만, 아마도.”
“왜죠?”
“우리 센터가 독립적이라 우리 쪽으로 들어온 환자를 직접 수술한다고 하면 그쪽에서도 손을 못 대요.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지원 요청을 해도 거절할 명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 간담췌 외과에 맡기시는 게… 사실 그쪽 분야잖아요.”
“김광석 교수님이 직접 부탁하신 겁니다.”
“김 교수님 마음이야 이해가 가지만 센터장님한테도 똑같이 부담일 텐데. 잘 아시는 분이잖아요.”
“간담췌 외과에선 수술을 단념할 거예요.”
“…하긴.”
강미소도 씨티 사진을 봤다. 담낭암 자체도 예후가 나쁜 편인데 다른 장기로의 침윤까지. 만약 그녀였어도 칼을 대긴 늦었다고 판단했을 터였다.
하지만 도수는 달랐다.
“어차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수술을 성공시키기 어렵습니다. 완치시키려면 암 세포를 모두 도려내야 하는데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파악하지 못할 거예요.”
암이 많이 진행됐을 경우 수술을 포기하는 대다수의 이유가 절제 범위가 너무 커질 것 같아서다. 생존에 중요한 장기는 아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일정 선까지만 절제할 수 있는데, 임숙영의 경우에는 너무 많은 부분을 절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미소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센터장님은요?”
“방법을 찾아야죠.”
도수는 그렇게 일단락 지었다.
사실 그 전까지 암 수술의 경우 투시력으로 정확히 구분해서 암이 퍼진 부분만 아슬아슬하게 도려냈다. 딱 생존할 수 있는 만큼만 남겨놓고.
허나 이번에는 그마저도 힘들었다. 암이 퍼진 부위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죽은 심장도 살렸다. 방법이 있을 거야.’
도수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매달렸다.
다른 환자였다면 그 역시 수술을 망설였겠지만, 임숙영을 수술 한번 해보지 못하고 보내는 건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조용한 암살자처럼 그녀에게 다가와 죽음을 안겨주려는 담낭암. 도수는 결코 병마(病魔)의 뜻대로 그녀의 목숨을 내어줄 수 없었다.
***
한편, 도수와 몇 차례 수술을 해온 마취과 전문의 정현진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줄과 백인가, 충동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그에게 다가온 마취과 과장이 물었다.
“뭔데 그래?”
차기 마취과 과장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제자이기에 그의 관심은 지대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응시한 정현진이 대답했다.
“뭐긴요. 이도수 센터장 일이죠.”
“레지던트 보내. 피곤해진다.”
“…….”
정현진은 마취과 과장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대답도 안 했다. 그를 마주보던 마취과 과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 왜?”
“큰 수술이에요.”
“언젠 작았냐? 알아서 잘하겠지.”
“대충 말씀하시는 거죠?”
“차기 마취과 과장 후보가 매번 손 맞추는 다른 과 과장이며 교수들한테 찍혀서 좋을 게 뭐 있어? 이도수 센터장도 이해해 줄 거야.”
“교수님은 아시잖아요. 이도수 센터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마취과는 외과와 더불어 수술에 가장 근접한 과 중 하나였다. 오히려 수술방에 들어간 경험만으로 치면 웬만한 외과의도 마취과를 따라오지 못할 터였다.
그런 마취과를 이끄는 수장인 마취과 과장은 이도수의 수술 실력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그런 감정이 제자의 미래보다 중요치는 않았다.
“그럼 내가 들어가는 걸로 하자.”
“그럴 거였음 과장님한테 부탁드렸겠죠. 마취과의 다크호스인 제가 들어가고 싶으니 문제입니다.”
“그래, 큰 문제다.”
“안 되겠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정현진이 말을 이었다.
“저, 들어갑니다.”
“기어코 일을 내는구나.”
“교수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의사는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된다. 특히 마취과는 더더욱.”
“그래서 내가 들어간다니까. 넌 틀렸어. 환자를 생각하는 데에 사심이 들어갔잖아?”
“욕심나는 데 어떻게 해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수술 아닙니까? 다 끝났다고 하는데 이도수 센터장은 한번 부활시켜 보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그 열정, 부럽다.”
마취과 과장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자에게 이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마취과의로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수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자를 일별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수술이 될 테니 수술 준비 잘하고. 난 과장 회의 간다.”
“부탁드려요, 교수님.”
정현진이 씨익 웃었다.
이번 수술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이상, 마취과 과장이 얼마나 다른 과장들한테 시달릴지는 안 봐도 불 보듯 빤했다.
***
잠시 후.
회의실에 모인 과장들을 둘러본 병원장이 입을 열었다.
“김광석 교수 아내가 담낭암이라고?”
“예.”
간담췌외과 과장이 말을 이었다.
“벌써 대장까지 암세포가 퍼진 상태입니다. 한데 이도수 센터장은 이 수술을 하겠다는군요.”
비꼰 그가 양옆을 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신경외과 과장이 힘을 실어주었다.
“힘든 수술이죠?”
“뇌사 환자를 수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병원장님. 정말 이대로 두고 보실 겁니까? 간담췌외과에서 이런 의견을 낼 정도면 수술은 하나 마나일 겁니다. 아무리 이도수 선생이더라도요.”
‘센터장’이 아닌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것만 봐도 그가 도수에게 가진 반감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장은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흠…….”
간담췌외과 과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동안 저희는 이도수 센터장의 직권을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닙니다. 이건 이도수 센터장뿐만 아니라 병원의 위신이 걸린 일이에요. 암이 이 정도까지 진행된 환자를 수술했다는 게 알려지면 나머지 과에선 뭘 했냐는 비난이 나올 겁니다.”
“김 교수가 보호자 자격으로 부탁했다고 들었는데.”
“이성을 잃은 거겠죠. 아내 일이지 않습니까?”
“…….”
병원장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사장이 침묵하고 있었다.
신경외과 과장이 재차 입을 뗐다.
“이사장님, 그리고 병원장님. 이번 수술을 하게 두면 안 됩니다. 마취과와 병원 측에서 협조하지 않고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이도수 센터장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김광석 교수도 결국 이 수술이 섣부른 선택이었다는 걸 인정할 겁니다.”
병원장은 어떤 말도 첨언하지 않고 이사장을 응시했다. 아직 결과가 나온 일도 아닌 데다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니었기에 한발 뺀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입을 연 건 이사장이 아닌 마취과 과장이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과장들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마취과 과장은 꿋꿋이 의견을 개진했다.
“이도수 센터장은 이미 여러 번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아로대병원에서도, 우리 병원에서도요. 이런 써전한테 결정을 번복하라고 강요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모두가 눈을 부라렸지만.
또 한 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로 내과 과장이었다.
“이도수 센터장은 신경외과, 내과에서도 찾지 못한 촌충을 찾아내 환자를 치료한 적도 있습니다. 나이나 경력을 떠나 그의 의학적 해박함은 우리 중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단 뜻입니다.”
“아니…….”
신경외과 과장이 토를 달고.
간담췌외과 과장이 덧붙였다.
“두 분은 이도수 센터장과 공통 분야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우린 다릅니다. 현대의 의학적 상식은 이도수 선생이 제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얕고 허술하지 않아요. 아실 만한 분들이…….”
그 순간.
잠자코 기다리던 이사장의 입이 열렸다.
“그만.”
간담췌외과 과장이 아니라 병원장이라도 입을 닫을 수밖에 없는 인물의 개입.
이사장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두 쪽 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네. 그렇다면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해 보자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걸 막는 게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
“하지만…….”
“지금껏 도전이 없었다면 의학도 아무런 발전이 없었겠지. 안 그런가?”
“환자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신경외과 과장이 토를 달자 이사장이 되물었다.
“자네들 말에 의하면 어차피 환자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네.”
“…….”
“이도수 센터장은 생체 실험을 하겠다는 게 아니야. 외과적 치료를 해보겠다는 것뿐.”
그에 간담췌외과 과장이 이견을 냈다.
“이도수 센터장도, 김광석 교수도 환자의 지인이거나 가족입니다. 이성적인 판단보단 감정적인 판단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환자를 수술하는 건 우리 병원 방침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건 동의하네.”
고개를 끄덕인 이사장이 덧붙였다.
“하지만 이도수 센터장과 김광석 교수는 중증외상센터 소속이야.”
“중증외상센터도 우리 병원 소속 아닙니까?”
신경외과 과장의 말에 이사장이 대답했다.
“소속은 맞지만 내 직권으로 운영되는 곳이지.”
“그렇다 하더라도 원내 질서를 허물 순 없습니다.”
“주위를 돌아봐.”
“……?”
신경외과 과장이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이사장이 말했다.
“이도수 센터장은 과장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과장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네. 왜 그런지 아나?”
“…….”
“우리 병원 소속이지만 내 직권에 의해 운영되는 단체의 수장이기 때문이야. 이건 레지던트한테 센터장 직책을 주면서 부를 때 이미 결정된 사안이네.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병원은 재단의 자산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중증외상센터는 내 사비로 운영되고 있는 곳일세. 아, 얼마 전 오성그룹 임옥순 여사가 개인적인 기부금을 냈으니 그것도 뺄 수 없겠군.”
“……!”
과장들이 눈을 치켜떴다.
중증외상센터가 이사장 사비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임옥순 여사에게 따로 기부금을 받았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일이었던 것이다.
빙그레 미소 지은 이사장이 물었다.
“자네들에게 묻고 싶군. 진정으로 수술을 반대한 이유가 오직 환자의 안위 때문인지, 아니면 이도수 센터장에 대한 사감 때문인지.”
“이, 이사장님……!”
신경외과 과장이 모욕감에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말했다.
“전 이 병원에서 평생 근무했습니다. 이런 제가 재능 있는 후학의 앞길을 막을 리가요.”
“물론 그렇진 않겠지. 그리 소심한 인물이었다면 지금껏 천하대병원 과장 자리를 지키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
신경외과 과장은 구겨진 얼굴로 입을 닫았다.
상황을 간단히 정리한 이사장이 내과 과장과 마취과 과장을 일별하며 말을 이었다.
“마취과에서도 수술을 동의한 것 같으니, 수술을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구만.”
“그렇습니다. 저희 쪽은 이미 정현진 선생이 수술에 들어가기로 한 상태입니다.”
마취과 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사장이 모두를 보며 결론을 냈다.
“그럼 이 건은 이도수 센터장이 수술에 성공하길 기도하자고.”
“알겠습니다.”
병원장까지 대답하자.
더 이상 반대표를 내는 인물은 없었다.
그들을 응시하던 이사장은 내심 미소를 머금었다.
‘내 생각보단… 네 편을 많이 만들어뒀구나.’
만약 마취과 과장이며 내과 과장이 도수의 수술에 동의해 주지 않았다면 이사장 입장에서도 쉽게 결론을 끌어내지 못했을 터였다.
절반은 이사장이 힘을 실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오롯이 도수의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리고 이제, 그 실력을 확인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