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뒤바뀐 입장
벌떡.
상체를 일으킨 도수가 물었다.
“뭐라고요?”
“김광석 교수님 사모님이…….”
“그분이 왜?”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검사를 해봐야…….”
도수는 그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연구실을 박차고 나섰다.
평소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단순히 아는 사람이 실려 와서가 아니라, 행복한 꿈을 꾸던 중 깨어난 여파가 흘러든 것이다.
불길했다.
너무 상반된 꿈과 지금 상황이.
타타탓.
달려 나가자 스트레쳐카에 실려 온 임숙영의 얼굴이 보였다. 그 옆에 있는 김해리는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었고, 김광석은 안색이 창백했다.
“정신 차려봐.”
그가 말하자.
임숙영이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윗배가 너무 아팠어요.”
“말을 하지, 왜…….”
애타는 목소리를 들은 임숙영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수험생이고 당신은 바쁜데 어떻게 말해요?”
얼굴이 노랗게 뜬 것이 황달기가 있었다.
‘설마…….’
황달과 극심한 복통이 동반되는 질환들을 떠올린 김광석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일단 검사를 해보자.”
해리가 엄마에게 매달려서 물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 괜찮아.”
그들에게 다가간 도수는 말없이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아프다는 복부.
그 복부 속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낭암.’
그랬다.
임숙영은 종양이 있었다.
‘어디로 갔지?’
근처 장기를 훑자, 간과 대장에도 침윤된 종양이 보였다.
아직 전이된 흔적은 없다.
‘침윤’은 인접 장기로 직접 암이 파고들어 가는 것. ‘전이’는 혈관이나 림프절을 통해 멀리 떨어진 장기까지 퍼져가는 걸 의미했다.
이미 침윤이 진행됐다면 근치적 수술은 힘들다는 뜻.
즉, 완치가 힘들다는 것이다.
‘젠장.’
선뜻 믿기지가 않았다.
투시력이 틀리길 바랐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미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철렁 내려앉은 심장과 달리 도수는 머릿속으로 여러 수술법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그사이 김광석이 다른 의료진들에게 지시했다.
“씨티 찍어줘. 빨리.”
“알겠습니다.”
이시원이 대답하자.
아내에게 고개를 돌린 김광석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
“복통인데요, 뭐… 당신이나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은 하고 있었지만.
아내의 증상을 확인한 김광석은 직감하고 있었다. 아내의 질환이 가볍지 않을 수도 있음을.
어디까지나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해 봤기 때문에 발동하는 촉이다.
이런 촉이, 지금만큼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
“…그래.”
그는 그렇게 대답하곤 이시원에게 눈짓했다.
이시원이 임숙영을 데리고 씨티를 찍으러 간 뒤.
김해리를 가볍게 안은 김광석이 말했다.
“괜찮다.”
“아빠, 엄마가… 엄청 괴로워하셨어요. 정말 너무 괴로워했는데……. 큰 병은 아니겠죠?”
“아닐 거야.”
김광석이 덧붙였다.
“그렇게 믿자꾸나.”
“네…….”
“…….”
도수는 일부러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부녀 역시 정신이 얼마나 없으면 도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때.
해리를 안아주던 김광석이 도수를 보았다. 그렇게 마주친 눈빛 속에.
도수는 볼 수 있었다.
‘죄책감…….’
김광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간간이 집에 얼굴만 비췄어도 아내가 아프단 사실을 미리 눈치챘을 것이다. 참고 참다가 병원까지 실려 온 아내를 보며,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자 의사로서 좌절했다.
“잠깐.”
해리를 떼어놓은 김광석이 도수에게 다가섰다.
“도수야.”
그는 도수를 ‘센터장’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도수 역시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예.”
“만약…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큰 수술이 필요하면’이란 말이 입에 담기지 않는 것이다.
해서 도수가 선수를 쳤다.
“제가 할게요.”
“…그래.”
김광석이 말을 이었다.
“부탁한다. 아내 일이라,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일 것 같구나.”
“네.”
사실, 김광석의 부탁은 원칙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지인이 아플 경우 관계가 있는 의사는 직접 수술에 들어가지 않는 게 원칙이었으니까.
꼭 직계가족이 아니라도 친분이 있는 누군가의 몸에 칼을 대는 건 쉽지 않았다.
수술실에서 냉철함을 잃은 써전은 1년 차 간호사보다 못하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광석이 도수에게 부탁한 건 써전으로서 그의 실력과 자질에 대해 원칙 이상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김광석이 덧붙였다.
“혹시라도… 수술이 필요하게 되면 과장님께는 내가 잘 얘기하겠다.”
천하대병원에는 엄연히 간담췌 분야의 권위자인 외과과장이 있는 상황이다. 그에게 도수한테 수술을 맡기겠다고 하는 건 자칫 ‘당신의 실력을 못 믿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었다.
조금 더 파고들면 도수가 이 수술을 맡을 경우 외과의 미움을 살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도수는 선선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저벅, 저벅…….
그는 김광석을 지나쳐 해리에게 갔다.
해리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빠. 엄마… 괜찮겠지?”
“괜찮으실 거야.”
잠시 꿈 생각을 하던 도수가 말을 이었다.
“집 안에 실력 있는 의사가 둘이야. 걱정 마라.”
“응…….”
의사를 꿈꾸는 해리도, 이미 한 분야에 권위자인 김광석도 지금은 보호자일 뿐이었다.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를 응시하던 도수는 가볍게 몸을 밀착시키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해리가 품에 안겨왔다.
“오빠… 우리 엄마, 꼭 치료해 줘.”
“아줌마는 건강하실 거야.”
도수는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물어왔다면 분명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을 텐데. 그 역시 사람인지라 해리에게만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수밖에 없었다.
***
CT결과는 도수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김광석은 그가 예측했던 질환 중 가장 생각하기 끔찍했던 질환을 떠올려야 했다.
“담낭암입니다.”
“…….”
두 사람은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고 절망적이었지만 도수는 이미 투시력을 통해 알아채고 있던 상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해리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암담했다.
물론 김광석은 하늘이 무너진 표정으로 입을 벙긋거렸다.
“…확실한가? 검사가 잘못된 게 아니냔 말이야.”
“보시다시피… 확실합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외과교수 성재호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이, 김광석에게 다시 한번 절망감을 선사했다.
“그래, 틀릴 리 없겠지.”
그는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는 게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안 좋군.”
이미 다른 장기로의 침윤이 진행된 상황.
안 그래도 예후가 좋지 않은 담낭암에 침윤까지.
가히 절망적이었다.
“그렇습니다.”
성재호의 말을 들은 김광석은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이다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허허… 그래도 외과의사란 놈이 자기 아내 건강도 못 챙기고……. 장기가 다 썩어갈 때까지…….”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볼을 타고 뜨거운 무언가 흘러내렸다. 그걸 시작으로, 수도꼭지를 튼 듯 계속해 눈물이 떨어졌다.
“내가 무슨 꼴을…….”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는 김광석.
도수가 어깨를 잡으며 송재호에게 물었다.
“외과에선 완치가 가능하겠습니까?”
“…….”
잠시 망설이던 성재호가 대답했다.
“센터장님께서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근치적 절제가 한계입니다. 저희 과 과장님한테 여쭤봐야겠지만, 아마 그렇습니다.”
“아마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나?”
김광석은 이성의 끈을 늦추고 따지듯 물었다. 진단을 번복해 달라고 아우성이라도 치듯이.
그러나 성재호는 고개를 숙이며 그의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렸다.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는 간단했다.
그가 말한 ‘아마’는 예의상일 뿐, 확신이라는 뜻이다.
담낭암이 근처 장기까지 침윤된 이 경우, 결코 희망적인 예후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로 그때.
도수가 말했다.
“그럼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뭘 말씀하시는 건지.”
“수술이요.”
“아, 그건 과장님께…….”
“성 선생님이 전달해 주십시오.”
“전달이요?”
성재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과장에게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전달해 달라니. 이건 통보하겠다는 뜻이다. 아무리 같은 과장급이라도, 응급외상센터장은 아직 외부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보다 직접 전하시는 게.”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도수는 김광석을 일별하고 말을 이었다.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외과에서 부정적인 소견을 내놓은 환자를 제가 수술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으실 테니.”
“말씀하셨듯이 과장님께서 좋게 보지 않으실 겁니다.”
“언제는 신경 쓰셨던가요?”
도수의 물음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가 있었다. 현재 외과과장이 재실 중임에도 내부 사람의 아내인 임숙영의 진단을 성재호가 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경을 쓰고 있지 않거나 원내의 한심한 텃새놀음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직선적인 질문이었으나 도수는 센터장. 아무리 성재호가 응급외상센터 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직급 차를 함부로 넘나들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죠.”
“고맙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도수가 김광석을 돌아봤다.
“가시죠.”
“…잠시만.”
김광석은 이마를 짚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도수가 잠시 기다리자, 그제야 엉덩이를 떼고 말했다.
“담낭암일 줄은 몰랐다.”
“…….”
“…어려운 부탁을 하게 돼서 미안하구나.”
생존 확률이 낮은 수술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커리어에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환자를 잃는 순간 느끼는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니.
특히 그 대상이 친분 있는 지인이라면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광석은 부탁했고.
도수는 수락했다.
“여러 번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직 안 끝났어요.”
“…그렇지.”
“수술은 성공할 겁니다.”
“그게…….”
김광석은 목이 막히는지 기침을 뱉고 물었다.
“너라면 내 아내를… 해리 엄마를 완치시켜 줄 수 있겠지? 남들은 다 안 되도 넌 할 수 있을 거야.”
“…….”
“제발, 부탁하마.”
진료실 문을 열기 직전.
김광석이 도수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
“애 엄마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아. 해주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부탁하마. 애 엄마를 살려줘.”
“네.”
도수가 문고리를 돌리고 말했다.
“해리한테 약한 모습 보이시면 안 돼요.”
김광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도수도 수많은 환자를 수술해 온 의사이기에 알고 있었다.
보호자를 대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나 본인 일이 되니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제발.’
간담췌 분야를 전공했던 김광석은 대장으로의 침윤이 진행된 담낭암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완치가 얼마나 힘든지도.
이런 큰 수술일수록 결과가 의사 실력에만 달려 있지 않았다.
운도 필요하고 기적도 필요했다
어떤 써전이라도 모든 변수와 악운에 대응할 순 없는 것이다.
이건 도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정작 도수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김광석을 마주봤다.
피하긴 커녕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교수님은 지금 의사가 아니라 환자 보호자십니다. 의사를 믿어야 돼요. 지금은 해리한테 집중하시고 아주머니는 제게 맡기세요.”
그는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환자를 믿었다.
포기하는 것과 포기하지 않는 것의 차이.
그 간극이 어떤 기적을 이뤄줄 수 있는지 여러 차례 봐왔기에,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았다.
그제야 한숨을 내쉰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그는 해리에게 다가갔다.
소식을 전하는 건 그의 몫.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워 보였으나 진료실에서 잃었던 평정심은 어느 정도 돌아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