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81화 (81/152)

# 81

휴일은 없다

헬리콥터는 병원 상공에서 멈추더니 천천히 내려앉았다.

타타타타타타타!

프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이 강풍과 어우러지며 주위를 날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스트레쳐카를 끌고 나온 김광석과 강미소가 보였다.

“환자 옮깁니다.”

도수와 레지던트 둘, 구조대원들은 함께 환자를 스트레이쳐카에 실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한 강미소의 입이 열렸다.

“이게 무슨……!”

응급조치 정도가 아니었다.

활짝 열린 환자의 배를 수술 패드가 감싸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고개를 홱 돌린 강미소가 물었다.

도수가 대답했다.

“일단 응급처치는 했습니다.”

“처치요?”

강미소는 자기가 똑바로 들은 게 맞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처치라고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빨리 수술해야 돼요.”

도수는 한시가 급했다.

한편 강미소는 자신이 본 광경에 대해 수많은 의문이 들었다. 환자 상태에 대해 기본적인 검사도 할 수 없는 공간에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하지만 호기심이 환자보다 먼저일 순 없었다.

“임 선생! 남 선생! 도와요!”

그녀와 레지던트 둘이 스트레쳐카를 끌고 앞서가자.

뒤를 따르던 김광석이 도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다 터졌습니다. 뼈는 고정시키고 터진 장기는 패드로 감쌌습니다. 출혈이 심해 복부대동맥만 봉합을 했고요.”

“……!”

김광석이 경악했다.

“봉합했다고? 헬기 안에서?”

배를 연 것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봉합이라니.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렸지만 상대는 도수. 지금 상황에 농담이나 하고 있을 위인이 아니다.

역시나 도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혈압은 정상으로 올라갔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에요. 부상도 심하지만 환자 나이도 문제입니다.”

팔십 대 노인 환자.

그 정도는 미리 듣고 온 김광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하지.”

“네?”

“수술. 내가 하마.”

“왜…….”

도수는 말을 하다 멈췄다. 지금 자신의 얼굴을 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안색을 빤히 훑던 김광석이 말했다.

“네 얼굴, 시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야. 큰 수술을 두 개나 하고 바로 현장까지 다녀왔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날 믿나?”

당연히.

김광석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믿습니다.”

“그럼 좀 쉬어둬. 아직 어떤 환자가 더 밀려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둘 다 퍼지면 안 된다.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응급실에 너뿐이야. 우리도 할 수 있는 수술은 우리가 하마.”

툭, 툭.

도수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린 김광석이 훌쩍 앞서가며 스트레쳐카를 함께 밀었다.

“…….”

뒤에 남겨진 도수는 걸음을 멈추며 멀어져 가는 의료진들과 환자를 응시했다.

‘혼자가 아니다.’

이젠 그를 도와줄 든든한 팀원들이 있었다. 전쟁터에서처럼 자신만이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만 할 수 있다는 지독한 책임감의 무게에 등 떠밀려 총탄이 빗발치는 지옥 속으로 뛰어들지 않아도 된다.

“하…….”

한숨을 내쉰 도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빛으로 잠긴 하늘. 쌀쌀한 겨울바람이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핑.

아찔할 정도로 어지러워진 도수가 일순 비틀거렸다. 자기도 모르는 새 몸에 너무 큰 부담을 준 것이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 도수는 다시 초점이 잡힌 병원 건물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

도수는 어떻게 와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연구실 형광등이 동공을 찌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불 끌 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던 듯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중얼거린 도수는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연구실을 나섰다.

눈에 익은 응급실 풍경이 펼쳐졌다.

그때 강미소가 지나가다 그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일어나셨어요?”

“얼마나 잤죠?”

“예닐곱 시간?”

“푹 잤네요.”

적어도 그의 평균 수면 시간 안에선 그렇다.

“환자는요?”

“어떤 환자 말씀하시는 거예요?”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너무나 많다.

따라서 도수가 생각하는 환자와 그녀가 생각하는 환자가 다를 수 있었다.

“헬기로 이송해 온 환자.”

“아… 이용구 환자! 지금 회복실에 계세요.”

“후우.”

도수는 안도했다.

김광석이 무사히 2차 수술을 마친 것이다.

“소아 환자는요?”

도수가 출동하기 전 수술한 환자에 대해 묻자, 강미소가 대답했다.

“이찬영 환자요? 그 애도 의식을 찾았고요.”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다.

“일 보세요.”

도수는 회복실로 걸음을 옮겼다.

먼저 만난 건 소아 환자 이찬영이었다.

도수가 다가가자 수술실 앞에서 만났던 애 엄마가 화장기 없이 자다 깬 얼굴로 맞이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찬영이 상태 좀 볼게요.”

“아, 네!”

그녀가 비켜서자.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찬영이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깜빡이는 녀석.

그 작은 행동이 도수에게는 기적같이 느껴졌다.

“깨어났구나.”

찬영이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마저도 감사했다.

“곧 건강해질 거야.”

그는 찬영이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동시에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

아직 항생제나 소변 줄, 수액은 떼긴 일렀지만 이곳에 들어와 수술할 때까지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빠른 회복 속도였다.

역시 아이들의 회복 속도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행이다.”

짧은 한마디를 남긴 도수는 보호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회복 속도면 금방 건강을 되찾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주치의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선생님이 우리 애를 살려주셨다고… 쉽지 않은 수술이었다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환자가 버티지 못했다면 수술은 실패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구조대원들이 늦게 도착했거나, 수술 중 의료진 누구라도 한눈을 팔았다면 그 역시 실패했을 터였다. 지금 찬영이가 눈을 뜬 건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럼 다시 오겠습니다.”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인 도수는 병실을 나서서 옆 병실로 갔다.

팔십 대 등산객 이용구 환자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써서 몸속을 살펴봤지만 특별히 수술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던 듯하다. 그저 너무 피를 많이 흘린 데다 고령의 환자라 회복이 더딜 뿐.

물론 최악의 경우 이대로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는 더 이상 의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

말없이 그를 지켜보던 도수는 몸을 돌려 실을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김광석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연구실 앞에 도착했을 때, ‘퇴실’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퇴근하셨다고?’

좀처럼 없던 일이다. 오늘 당직이 조근현 교수라고 해도, 어느 때든 항시 대기하던 김광석이 병원을 나갔다니 왠지 낯설었다.

도수가 휴대폰을 들자.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었다.

‘해리?’

김광석의 외동딸이자 도수와 남매처럼 지냈던 아이다.

그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신호가 가고.

이내 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어?”

-어라니? 어떻게 그동안 전화 한 통 없냐.

서운한 말투.

내심 집에 무슨 일이 있나 긴장했던 도수는 피식 웃었다.

“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받기나 했나, 뭐?

“전화는 했었고?”

-…에헴! 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수험생이고?

“그렇다 치자.”

바쁘기로 수험생이 응급외상센터장만 하겠는가?

하지만 도수는 따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웬일이야? 전화를 다 하고.”

-오랜만에 아빠가 집에 오셔서. 오빠도 올 수 있으면 오라구.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다 모이는 자린데 오빠가 빠지면 안 되잖아?

가족이라.

도수가 라크리마에 있을 땐, 꿈도 못 꿔본 개념이다.

그런데 이곳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분들이 대신 보내주신 것 같은 인연을 만났다.

“갈게.”

도수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김해리가 반색했다.

-진짜? 진짜지?

“응.”

수화기 너머에서 김광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만에 푹 자는데 왜 깨우고 그래?

-아빠는……! 잠이 중요한가? 이렇게 모이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그에 임숙영이 거들었다.

-그러게. 네 아빠는 너무 냉정하다, 얘.

듣고 있던 도수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푹 잤다고 전해 드려. 이따 보자.”

전화를 끊은 도수는 연구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오후 여덟 시가 막 지나는 시점. 응급실에 있다 보면 날짜 개념이나 시간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환자는 밤낮 안 가리고 발생하는 법이니까.

병원 규정대로라면 퇴근시간이 한참 지난 초과 근무시간이었지만 도수는 사복이 어색했다. 천하대병원에 부임한 후 지난 몇 달은 정말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지나 버린 것이다.

사복을 입고 응급실로 나가자, 다른 이들도 그를 이채 띤 눈빛으로 보았다.

“우와, 퇴근하시는 거예요?”

강미소가 스타트를 끊자 스테이션에 기대 서 있던 이시원도 놀란 기색이 만연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센터장님은 오프도 없으셨죠?”

“오프가 없으신 게 아니라 안 챙기신 거지.”

강미소가 정정해 주자.

이시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센터장님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너무 많긴 하죠.”

어조에서 존경심이 묻어났다.

피식 웃은 도수가 그의 어깨를 짚곤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저 퇴근해요. 무슨 일 있으면 호출해 주시고.”

“예.”

“푹 쉬다 오세요.”

그녀들의 인사를 들은 도수가 답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응급실을 나섰다. 문턱을 넘기 전까지 마치 뒤에서 누군가 달려와 잡을 것만 같았다. 사이렌을 울리는 구급차가 그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싣고 들어올 것 같았지만 오늘따라 병원 밖도 고요했다.

“병이네, 병.”

중얼거린 도수는 택시를 타고 한 고급 아파트로 향했다. 김광석과 가족들이 이사 온 곳이다. 도수는 한 번밖에 안 가봤기에 다시 전화를 걸어야 했다.

“몇 동, 몇 호야?”

대답을 들은 그가 전화를 끊고 집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자 김해리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오빠!”

“안녕.”

“이게 뭐야? 왜 이렇게 수척해졌어? 살이 더 빠졌네?”

도수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는 해리.

도수는 그녀의 손을 떨치며 임숙영과 김광석에게 인사했다.

“저 왔어요.”

“어서 와라.”

김광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고.

임숙영 또한 식탁을 가리키며 자리를 권했다.

“앉아. 밥 먹자.”

그 순간.

도수의 귓가에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그가 마주보고 있던 해리, 그리고 임숙영과 김광석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이게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면이 흔들리며 도수가 눈을 번쩍 떴다.

“센터장님! 큰일 났어요!”

실내는 어두웠다.

강미소가 그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꿈?’

아직도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은 도수를 향해.

강미소가 말했다.

“지금 밖에 김 교수님 사모님께서 실려 오셨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