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결단
구조대원들.
그리고 도수는 차례로 헬기에 탑승했다.
강풍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진이 다 빠진 모습으로 헬기에 오르자 창백한 얼굴의 남민수와 임재영이 보였다.
“혈압이랑 산소 포화도도 계속 떨어집니다! 어떻게 좀 해보세요!”
임재영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남민수는 주삿바늘을 든 채 라인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강풍 탓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켜요.”
도수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바늘을 쥐었다. 그는 다른 말을 할 새도 없이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살갗 아래 지나가는 혈관이 정확히 눈에 들어왔다. 팔십 대 노인이라 그런지 혈관의 두께가 무척 얇았다. 레지던트 두 사람이 손 놓고 바라봐야 했던 것도 그래서일 터.
“후.”
호흡을 가다듬은 도수는 주삿바늘을 찔렀다. 바늘이 정확히 혈관 속으로 파고들었다.
“피 짜요.”
투시력으로 본 환자의 몸속 상태가 너무 나빴다. 이 이상 피가 빠져나가면 혈압은 바닥을 치고 영혼이 육체에서 튕겨 나갈지도 모른다.
“삽관합니다.”
문제는 혈압만이 아니었다.
지속적인 출혈로 인해 산소 포화도도 굉장히 나빠진 상태.
폐가 터졌으니 당연했다.
이대로 두면 저산소증으로 인해 뇌사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도수가 환자의 머리 위쪽으로 움직여 환자의 목을 젖히며 기관 내 삽관을 했다.
쑤욱.
단번에 삽관한 도수가 엠부를 달았다.
“남 선생은 엠부 짜주세요.”
“예!”
임재영은 혈액을, 남민수는 앰부를 짰다. 그 둘은 흔들리는 헬기에서도 순식간에 라인을 잡고 삽관까지 마친 도수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지?’
‘말도 안 돼. 움직이는 헬기에서…….’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진 못했다.
도수의 표정에 초조한 감정이 어렴풋이 드러났던 것이다.
‘젠장.’
배 속이 다 터진 환자의 상태는 여전히 최악. 간신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타타타타타타타!
빠르게 상공을 가로지르는 헬리콥터가 왜 이리 느리게 느껴지는 걸까?
모든 준비가 끝난 수술실에서 환자를 대할 때완 달랐다. 그렇다고 전쟁터와도 달랐다. 만약 전쟁터에서 이런 환자를 봤다면 손도 못 대보고 포기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빠르면,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면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혈압 떨어집니다!”
피를 짜던 임재영이 외쳤다.
안 그래도 도수도 보고 있던 참이었다.
‘열어야 하나?’
움직이는 헬리콥터 안에서 배를 여는 건 도수로서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배를 연 다음 뭘 해야 할지도 지금은 명확하지 않았다.
이미 환자의 배 속은 손상된 장기와 혈관, 췌장액과 피로 뒤엉킨 채 꽉 들어차서 투시력을 써도 명확한 출혈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센터장님?”
임재영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수를 보았다.
남민수의 눈빛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레지던트의 절박함 앞에서.
같은 절박함을 품고 있는 도수는 결단 내릴 시점임을 직감했다.
“개복.”
“네?”
“……!”
두 사람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도수가 재차 말했다.
“개복합니다.”
“아……!”
그 역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건 두 레지던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책임자’로서의 중압감이 그를 갈림길로 내몰았다.
선택을 해야만 했고.
전쟁터에서 그러했듯, 병원에서 그러했듯 그는 환자를 어떻게든 살리는 쪽을 택했다.
“칼 주세요.”
도수가 손을 내밀자.
눈치를 보던 남민수가 말했다.
“센터장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셔도 이렇게 흔들리는 헬기에서 수술을 하는 건…….”
“맞습니다, 센터장님……!”
임재영도 동의했다.
구조대원들도 말릴 기세였다.
지금 이 안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도수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한뜻으로 그를 막고자 한다. 하지만 도수는 확신했다.
‘이대로 두면 죽어.’
환자의 배 속을 보고 있기에 장담할 수 있었다. 췌장액이 새서 다른 장기를 녹이고 출혈은 불룩한 배를 가득 채워 더 이상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그 압력에 눌린 장기들이 다 터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를 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두 가지뿐이다.
후폭풍으로 닥칠 책임소지가 두렵거나,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거나.
적어도 도수는 둘 다 아니었다.
그 역시 환자의 배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면 무리하게 배를 열지 않았겠지만, 배 속에 들어 있는 환자의 죽음이 빤히 보이는데 배를 열지 않는 건 외면이었다.
“엽니다. 칼.”
임재영이 망설이던 메스를 등 뒤로 숨기려 하는 찰나.
도수가 팔을 쭉 뻗어 손목을 틀어쥐었다.
턱!
“……!”
임재영이 눈을 크게 뜨고.
남민수가 외쳤다.
“센터장님!”
“미안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 모를 한마디를 남긴 도수는 메스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구조대원들이 움직이기 전에 환자의 배를 찔렀다.
쑥.
그 순간.
환자가 움찔했다.
도수는 그 상태에서 환자가 깨어나지 않도록 한 손으로 마취제가 든 주사기를 들고 마개를 입으로 물어뜯은 뒤 환자의 혈관에 찔렀다.
푹!
“이런…….”
남민수가 신음을 삼켰다. 그는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아무렇게나 푹 찌른 것 같은 주삿바늘이 환자의 혈관을 파고들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도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므로.
꾸우욱.
마취제를 투여한 도수가 주사기를 빼서 던지곤 메스를 움직였다.
스으으으으으윽.
도수의 시선은 환자의 가슴팍에 머물렀다. 심장박동 주기로 환자가 깨어나는 걸 감시하는 것이다.
“마취가 들지 모르겠습니다.”
출혈 진행 중에는 마취가 힘들다. 마취제가 혈관을 타고 돌아야 하는데, 밖으로 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약효에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수는 두 레지던트의 눈을 보았다.
“안 그래도 흔들리는 곳에서 환자까지 몸부림치면 도리가 없어요. 환자를 고정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
먼저 대답한 것은 임재영이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배까지 연 마당.
살리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은 남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돕겠습니다.”
두 사람이 환자를 잡자.
망설이던 구조대원들도 들러붙었다.
두근, 두근.
도수의 심장은 환자보다 훨씬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십 대, 삼십 대 환자도 아닌 팔십 대 환자다. 끔찍한 고통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에 수술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쇼크로 죽거나 도착도 전에 사망할 수도 있는 환자를.
차라리 편하게 보내주는 게 낫지 않을까?
무수한 잡념들이 머릿속을 파고들었지만 도수는 고개를 흔들며 모두 털어버렸다. 자신이 흔들리는 순간 환자의 생명도 위험해진다.
움찔, 움찔.
환자의 의식은 여전히 오리무중.
근육만 수축하고 있을 뿐이다.
마취제가 든 것인지, 그냥 환자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명확했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반드시 개복한 효과를 봐야 한다는 것.
도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피 쏟아집니다.”
“……!”
모두가 흠칫하자.
도수가 덧붙였다.
“임 선생은 거즈, 이리게이션, 타이 준비해 줘요.”
“예……!”
임재영이 환자를 놓고 즉각 지시를 수행했다. 그나마 그가 남민수보다 더 수술 경험도 많고 응급 환자도 많이 접했기에 고른 것이다.
역시나 임재영은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그러자.
도수의 메스가 움직였다.
스으으윽.
복막을 가르자.
왈칵!
피가 쏟아졌다.
시작된 것이다.
“임 선생, 거즈! 빨리!”
거즈를 배에 쑤셔 넣고 피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바닥에 내던지며 다시 외친다.
“이리게이션!”
임재영이 세척액을 붓기 무섭게.
“거즈!”
도수가 무턱대고 거즈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다시.
철퍽! 철퍽! 철퍽!
금새 기체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세척액이 섞여 옅은 핏물이 퍼지고 있었으나 아무도 그런 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이리게이션!”
콸콸콸!
“거즈!”
철퍽, 철퍽!
“후우.”
도수는 온몸이 뜨거웠다. 투시력을 많이 써서 과열된 것인지 지금 이 순간의 흥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반대로 손발은 차가워졌다. 머릿속도.
‘침착하게, 침착하게…….’
수혈이 출혈을 못 당해내는 상황.
안 그래도 손상된 장기가 배에 가득 찬 혈액과 췌장액에 으깨질 상황.
그래서 배를 열었고, 최대한 지혈을 해야 한다.
이리게이션으로 췌장액과 핏물을 빼낸 도수가 말했다.
“복부동맥부터 봉합합니다.”
임재영은 클램프를 들고 달려들었다.
봉합하기 위해선 일단 출혈이 있는 혈관을 찾아 빼내야 하기 때문.
그러나 흔들리는 기체에서 혈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혈관을 클램프로 잡고 있기는 더욱 벅찰 터.
임재영의 표정에 절망감이 스치는 순간.
도수가 말했다.
“제가 합니다.”
“아……!”
어차피 흔들리는 건 마찬가지.
이런 상황에서 봉합하는 것은, 어디서도 보거나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도수는 침착하게 손을 집어넣었다.
덜컹, 덜컹.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도수가 투시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샤아아아아아.
장기 사이로 숨은 동맥.
그 끊어진 부분을 단박에 잡는다.
슥…….
도수의 손에 끌려 올라온 동맥의 절단면이 보였다. 그리고.
푸슈슉!
뿜어지는 피도.
“잡아요.”
임재영이 동맥을 받아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기체는 덜컹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이런 상태로 봉합이 가능하다고?’
‘진심인가?’
모두의 시선에 담긴 불신.
어쩌면 당연하다.
혈관을 찾고, 어떻게 바늘을 통과시키는 것까지 성공한다 해도 진동이 있으면 타이가 안 묶이니까.
그러나 도수는 방법을 찾았다.
스르륵.
눈을 감은 그는 진동을 느꼈다.
흔들, 흔들.
진동폭을 재는 것이다.
일정한 진동과 불규칙적인 진동이 있었다.
일정한 진동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동.
불규칙적인 진동은 비행할 때 바람의 영향을 받아 생기는 진동이다.
일정한 진동에 대응하기 위해선 진동폭보다 한 템포 앞서서 손을 놀려야 했다.
반면 불규칙한 진동이 올 땐…….
‘멈춘다.’
번쩍.
눈을 뜬 도수가 임재영에게 말했다.
“고정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고정 안 됩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다면.
진동폭에 따라 흔들리는 임재영의 동선을 예측해서 선점하는 편이 수월했다.
“아… 알겠습니다.”
도수는 팔에 힘을 빼고 헬리콥터의 진동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렸다. 그리고 나서 임재영이 흔들리는 폭에 맞춰 봉합침을 놀렸다.
스윽.
놀랍게도.
단번에 봉합침이 끊어진 혈관의 단면부를 뀄다. 봉합사가 뒤따라 움직이고, 도수가 매듭을 만들었다.
슥, 스윽.
봉합사가 놀랍게 엉키며 매듭이 되었다. 그 사이를 도수의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빠져나왔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움직임.
매듭을 완성한 도수가 넋을 놓고 있는 임재영의 정신을 일깨웠다.
“컷.”
“커, 컷……!”
툭!
“다시.”
스윽, 슥.
“컷.”
툭!
“더 짧게.”
스윽, 슥.
“컷.”
툭!
이 기체의 진동 속에서도 도수의 타이 실력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떤 써전이라도 두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담담히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동맥을 봉합하자 내부 출혈이 완화됐다.
완전히 출혈을 멈출 순 없겠지만 한 고비 넘긴 셈이다.
도수가 바이탈을 확인했다.
“…….”
잠시 후.
남민수가 말했다.
“혈압 조금씩 돌아옵니다.”
“푸하!”
다들 물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숨을 뱉었다. 그들 모두 가슴을 졸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세척한 장기들, 패드로 패킹하겠습니다.”
꿰매는 봉합도 했는데 감싸는 패드패킹쯤이야.
가장 큰 위험이었던 동맥 봉합은 어떻게 성공했다지만, 이 진동 속에서 연달아 성공할 자신은 없었다.
더구나 장시간이 아니라면 패킹과 타이는 큰 차이도 없다.
패킹이 끝나고.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혈압을 보며 땀을 닦은 임재영이 말했다.
“대기조가 까무러치겠네요.”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정작 도수는 그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창밖을 보았다.
병원까진 아직 십여 분을 더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