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79화 (79/152)

# 79

치열함은 현장에서도

현장 출동용 구급키트를 메고 카파를 걸친 세 사람은 구조용 헬리콥터에 몸을 실었다.

타타타타……!

헬리콥터가 날아오르자.

창밖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들을 내려다보던 남민수가 물었다.

“날씨가 너무 안 좋은데요.”

임재영도 동의했다.

“악천후엔 비행이건 레펠이건 사고율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김 교수님이야 웬만한 구조원들 만큼 완숙하시니 걱정이 좀 덜 되지만…….”

“…….”

도수는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순간 투두둑, 소리와 함께 빗물이 묻었다.

“비가… 환자가 더 악화될 수도 있겠네요.”

“그겁니다.”

“네?”

남민수가 되묻자.

도수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목숨 걸고 가는 이유.”

“……!”

남민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가 겪어온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대부분 특권 의식에 젖어 있었다.

의사라는 전문직.

아무나 할 수 없고 사회적으로도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엘리트 집단이다.

그렇기에 의사 목숨과 환자 목숨을 같게 여기지 않는다.

으레 대부분이 그렇듯 남에 목숨보다 자신의 목숨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한 명의 의사는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다는 명분을 앞세워 가며.

한데 도수는 그러지 않았다.

“두 사람 다 환자를 많이 봤으니 알 겁니다. 사고, 질병,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죠.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어요. 우린 최대한 조심하며 우리 일을 할 뿐입니다.”

일을 한다.

거추장스러운 이유도, 포부도 필요치 않았다. 의사가 됐던 사명감으로 의사가 할 일을 할 따름이다.

환자가 있는 곳에 가고 환자를 어떻게든 살리는 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재영이 말했고.

남민수가 더했다.

“레펠이라도 타겠습니다……!”

썩 약발이 먹힌 모양.

도수는 고개를 돌렸다.

앙상한 나무들이 빼곡한 산 위를 지나고 있었다.

조종석에서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도착합니다.”

“……!”

레지던트 둘의 표정이 굳었다. 마음먹은 것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과 동일한 경험뿐인 도수는 어느새 침착한 표정으로 레펠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바람이 셉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임재영이 못내 걱정되는지 남민수와 같은 질문을 던졌으나.

창밖을 일별한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맞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내 헬리콥터가 상공에 멈추자.

드드드드드……!

기체가 부르르 떨렸다.

오는 중에도 몇 번이나 덜컥거렸던 기체다.

구조대원이 말했다.

“저희가 먼저 내려갈 테니 뒤따라오시면 됩니다. 아래서 줄을 잡아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도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름대로 긴장감의 표시였다.

그리고 이내 밖으로 로프를 던진 구조대원들의 하강이 시작됐다.

“하강!”

쉬이이이이이익!

구조대원들이 연달아 산등성이로 떨어졌다. 능수능란한 베테랑 대원들이라 그런지 금세 도수의 차례가 왔다.

“조심하십시오.”

“무사하셔야 됩니다……!”

앞다퉈 걱정해 주는 두 레지던트를 마주보고 선 도수가 짤막하게 외쳤다.

“하강!”

타악!

발로 밀친 도수가 레펠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쉬이이이이이익!

***

아래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조대원들이 나지막이 감탄했다.

“겁이 없네요.”

윗사람으로 보이는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타봤던 사람 같아.”

“부상까지 입어놓고… 이 강풍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악천후에 레펠을 타는 건 구조대원들에게도 큰 부담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도수는 두려움을 뚫고, 비바람도 뚫고 지면에 무사히 안착했다.

턱!

레펠 장비를 풀어헤친 도수가 물었다.

“환자는?”

“저쪽입니다.”

구조대원이 지도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내린 곳은 부상자가 있는 포인트로부터 삼십 미터 근방.

머지않아 깎아지른 절벽 아래 피를 흘리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발견한 도수의 걸음이 빨라졌다.

타타탓!

“환자분.”

도수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말을 걸거나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봐도 반응이 없었다. 만약 의식이 있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눈꺼풀을 벌리고 레이저 펜으로 빛을 쏘자 동공반사는 살아 있다.

‘일시적인 쇼크.’

그리 판단한 도수가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안면부터 골반까지 사선으로 뼈가 부서졌다. 팔다리에도 깊은 상처가 보였다. 피가 철철 흘렀다. 상처에서 새는 출혈도 출혈이지만, 내부 출혈도 무시 못 했다. 떨어진 충격으로 앞뒤가 붙으며 몸속 장기가 다 터졌다. 그 증거로 피로 가득찬 배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팔십대 노인이 버티기엔 버거운 상태였다.

의사를 태운 헬기가 직접 오지 않았다면 병원에 닿기도 전에 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살려야 한다.

고개를 돌린 도수가 구조대원들에게 말했다.

“골반부터 턱까지 뼈가 다 부서졌습니다. 장기도 터졌고 상처에서도 출혈이 심해요. 일단 지혈부터 하고 헬기 태우겠습니다.”

“여기서요?”

“일 차적인 응급조치만 하는 겁니다.”

도수가 환자의 다리를 들자 종아리에 벌어진 상처가 보였다.

굴러 떨어지는 도중에 날카로운 돌부리나 비슷한 것에 찍힌 상처.

그런데 뼈가 보일 정도로 깊고 끔찍했다.

더 큰 문제는 피가 가는 선을 그리며 쪼르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구조대원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이 비록 의사는 아니었지만 수많은 응급 환자들을 접하는 몸이다. 이런 식의 출혈이 뭘 의미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젠장, 이건 너무 심한데요?”

“계속 피가 나겠어요.”

대원들의 말에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희가 온 겁니다.”

그는 즉시 압박붕대로 상처 부위를 감았다. 확실히, 상처가 활짝 열린 상태라 이대로 출혈이 지속되면 십 분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도수가 구조대원들을 보며 덧붙였다.

“들것. 그리고 고정 띠 주세요.”

“아, 네……!”

더 이상 의문을 가지는 자는 없었다.

고정 띠를 받은 도수는 다시 한번 투시력을 사용했다.

샤아아아아.

마치 엑스레이 사진을 보듯이, 사고 전까지 제 형태를 갖추고 있었을 골격이 보였다. 물론 지금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곳곳이 으스러지고 부러진 것이다.

개중 조각난 뼈가 장기를 찔러 내부 출혈을 유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후.”

날숨을 짧게 뱉은 도수는 고정 띠로 뼈를 압박했다.

드드드드! 드드드득!

더 어긋나지 않도록 꽉 고정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투시력으로 봐가며 고정하는 덕분에, 마치 박스 테이프로 단단한 박스를 만드는 것처럼 교묘하고 빈틈없었다.

“그, 선생님.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방법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저희가 배운 것과는 달라서요.”

당연한 일.

그들이나 의사들이 배우는 건 엑스레이를 찍기 전 부러진 부위를 찾아 고정하는 수준이다.

도수처럼 그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뼈가 서로 부축하며 더 무너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법은 누구도 배울 수 없는 비기였다.

해서 도수가 말했다.

“정형외과 매뉴얼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입니다.”

“아……!”

“아, 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의사가 그렇다는데.

어리바리하게 대답하는 구조대원들을 보며 도수가 말했다.

“뼈가 사선으로 부서졌습니다. 한두 곳이 아니니 제가 포지션을 정해 드리죠.”

구조대원들은 서로 얼굴을 보았다.

어디가 부러졌는지, 그걸 언제 다 확인했다는 걸까.

“저, 선생님. 확실한 겁니까?”

“그게… 어떻게 척 보시고 판별하실 수 있는 건지…….”

“전 환자의 뼈 구조가 훤히 다 보입니다.”

도수의 대답.

진실과 가장 가까운 대답이었으나 투시력에 대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구조대원들우 멀리 돌아갔다.

‘그만큼 뛰어난 의사라는 건가?’

‘이상하네. 응급외상센터장이라고 했는데…….’

정형외과 전문의도 아닌 의사가 딱 보고 여기저기 부러진 뼈의 구조를 안다니 영 믿음이 안 갔지만, 의사가 동행한 이상 환자는 의사 소관이다.

그것도 센터장급 의사라면 두말할 것 없다.

때문에 구조대원들은 궁금한 만큼 토를 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도수는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그들이 위치할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이쪽에 한 분.”

환자의 어깨에 포인트를 찍은 도수는 반대편 골반으로 갔다.

“여기. 그리고…….”

마지막.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

움푹 들어간 도가니.

“여기서 잡아주세요. 힘껏 들어 올리셔도 됩니다. 쥐면 안 되고 아래서 들어야 합니다.”

“예……!”

그들은 각자 자리로 위치해서 구호를 셌다.

“하나, 둘, 셋! 읏차!”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어?”

구조대원 한 명이 눈을 치떴다.

다른 구조대원이 말했다.

“왜 이렇게 가볍죠?”

당연하다.

흐물거리는 부분을 힘으로 지탱하려면 몇 배의 힘이 든다. 그러나 딱딱하게 고정된 부분에 힘을 가하면 좀 더 수월하게 뭔가를 들어 올릴 수 있다.

딱 지금 상황이 그랬다.

더불어 교묘한 고정 방식과 노인의 부러지고 으깨진 뼈 구조가 정교하게 어우러지며 더 이상의 손상을 줄이고 있었다.

뼈가 기울어지는 일도, 다른 장기에 대미지를 주는 일도 일체 없었다.

이는 흐물거리는 천막이나 텐트를 칠 때 지반과 경사를 고려해 지지대를 세우는 일과 같았다.

도수는 환자의 무게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압박을 하고 구조대원들을 부렸던 것이다.

물론 구조대원들은 신기할 정도로 쉽게 들것에 옮기곤 한가한 소릴 했다.

“이 환자, 생각보다 골절이 심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다행이에요. 이렇게 균형 잡힌 상태로 옮겨보긴 처음입니다.”

도수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말했다.

“슬슬 올리죠.”

들것에 실린 환자.

구조대원들은 헬리콥터가 떠 있는 곳까지 환자를 옮긴 뒤 로프에 들것을 고정시켰다.

그런 뒤 위에다 수신호를 보냈다.

지익, 지익…….

환자를 태운 들것이 로프를 타고 오르기 시작하고.

뒤에 남은 구조대원들은 헬멧을 벗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높은 데서 떨어졌던데… 이만하길 다행이네.”

“그러게.”

그러나.

헬기가 위치한 포인트에서 자리를 지키던 구조대장만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혀를 찼다. 역시 매뉴얼을 벗어난 응급처치는 대원들의 솜씨가 아니었다. 그 뒤에 찾아오는 감정은 환자를 옮겨온 대원들의 무지함에 대한 한탄이었다.

“츳… 그럴 리가 있나.”

“예?”

“환자 고정할 때 들어간 고정 띠 개수나 위치를 봐라. 저게 불필요한 압박 같냐? 센터장님 아니었으면 들것까지 옮기기도 전에 몇 번이나 환자를 들었다 놨을 거다.”

“예? 그게 무슨…….”

당황하는 대원들.

그들의 대화를 한 귀로 흘린 도수는 하늘 높이 올라가는 들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칭찬 듣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혈한 뒤 뼈를 고정시키고 이송헬기에 태우는 것.

이건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에 불과하다.

생과 사의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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