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출동
저걱, 저걱.
서로 다른 크기의 혈관.
이 두 혈관을 잇는 방법은 혈관의 단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절제해 크기를 맞추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수는 소아 환자의 혈관을 가래떡 썰 듯 사선으로 잘랐다. 반면 성인 남성의 심장은 직선으로 잘랐다.
길쭉한 타원형과 원형의 혈관이 만나자 크기가 들어맞았다.
물론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 보고 바로 크기를 맞추다니…….’
김광석은 연신 놀라고 있었다.
몇 차례 잘라가며 사이즈를 맞춘 것도 아니고 단번에 사이즈를 예측해서 두 혈관을 맞댔다.
그토록 어려운 일을 해내고도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든 도수가 입을 열었다.
“혈관 봉합합니다.”
봉합사와 봉합침을 받은 도수는 클램프를 이용해 혈관들을 하나하나 잇기 시작했다.
모든 혈관을 봉합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시야 확보가 중요했다.
“폐동맥, 폐정맥, 먼저 연결하고 상하대정맥, 그다음 대동맥 순으로 연결합니다.”
등에 가까운 쪽부터 연결하겠다는 뜻.
슥, 스윽.
동맥을 손쉽게 연결한 도수가 입을 열었다.
“컷.”
김광석이 실밥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라냈다.
툭!
도수는 기다리지 않고 폐정맥을 연결했다.
“컷.”
툭!
그다음은 일사천리.
“컷.”
툭!
“컷.”
툭!
실들이 잘려 나간 자리에는 빈틈없이 연결된 혈관이 남았다. 집중해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원상태의 혈관인 줄 알 정도로 깨끗한 솜씨였다.
도수 한 명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어시스트를 서고 있는 김광석의 솜씨도 포함된 결과였다.
힐긋 시간을 확인하는 도수.
“시간 안에 끝나겠네요.”
김광석은 그 말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더니 덧붙인다.
“믿기 힘들지만…….”
막연히 살리겠다고.
반드시 살리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으나 ‘어떻게’ 살려야 할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정도로 상태가 나쁜 환자였다.
그러나 소아 환자는 대견하게도 큰 수술을 잘 버텨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수가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이었다.
슥, 스윽.
대정맥을 봉합한 도수는 눈꺼풀을 감았다.
땀방울이 눈에 들어간 것이다.
“땀 닦아줘요.”
“아!”
이하연은 방금 땀을 닦았기에 잠시 신기에 가까운 손기술을 보는 데 정신을 팔았다.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다시 도수는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진짜 괜찮으세요? 땀이 홍수처럼…….”
“괜찮습니다.”
도수는 말을 잘랐다.
길게 설명할 여력이 없었다.
옆구리는 욱신거리고 손바닥은 쓰리고 무뎠다.
집중력은 바닥을 드러내며 한계를 넘나들고 있었다.
만약 투시력과 오랜 시간 수 없는 수술 경험으로 단련된 감각이 아니었다면, 혹은 이 수술이 도수만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더라면 여기서 김광석에게 총대를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수는 멈추지 않았다.
이 수술은 ‘기존 흉부외과 수술의 상식에서 벗어난’ 심장이식인 데다 김광석은 흉부외과 전문의도 아니었던 것이다.
“심장 재활합니다.”
도수는 약물을 투여했다.
그러나.
잠잠…….
심장은 다시 뛸 생각을 안 했다.
김광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실패인가?”
“아직.”
도수는 환자의 가슴에 손을 쑥 집어넣어 심장을 거머쥐었다.
“에피네프린.”
그가 말하자.
김광석이 눈을 치떴다.
“이미 한 번 어레스트가 난 환자다.”
“심장에 직접 주사할 겁니다.”
“…….”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먼저 물러난 쪽은 김광석이었다. 무엇보다 집도의도 도수, 환자를 회생시킬 수 있는 인물도 도수뿐이었기 때문이다.
턱.
에피네프린을 건넨 김광석이 말했다.
“꼭…….”
“예, 꼭.”
도수는 에피네프린 주삿바늘을 환자의 심장에 쑤셨다.
푹!
여전히 미동 없는 심장.
그는 직접 손으로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꾹, 꾹.
스르륵 눈을 감은 도수가 대부분 소아 환자들이 가지는 심박 수에 집중한 채 손을 쥐락펴락했다.
꾸욱, 꾸욱…….
마치 시체를 붙잡고 되살리려는 것과 같은 느낌.
눈앞에서 잃은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염원하고 기도해도 이미 숨진 부모님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구 흔들고 오열해도 한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닫힌 입은 열릴 줄 몰랐다.
그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발!’
꾸욱, 꾹.
그 순간.
두근, 두근…….
손아귀에서 미세한 박동이 느껴졌다.
스륵.
눈을 뜬 도수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한마디 했다.
“심폐기 정지.”
“설마…….”
미미하게 미소 띤 도수가 손을 떼자.
두근, 두근 뛰고 있는 심장이 눈에 들어왔다.
“성공입니다!”
“심장 뛰어요!”
의료진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김광석 역시 비틀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미치겠군. 이러다 내가 먼저 심장이 멎겠다.”
한 번의 수술에 몇 번이나 생사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위이잉…….
심폐기가 정지되고.
환자의 얼굴을 빤히 보던 도수가 말했다.
“결과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에요.”
그는 최선을 다했을 뿐.
마지막 생사는 하늘이 도운 것이다.
그러나 늘 반전은 긴장을 늦추고 있을 때 닥쳐오는 법.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았기에, 도수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가슴 닫겠습니다. 타이.”
그 순간.
김광석이 봉합사와 봉합침을 들고 말했다.
“내가 하지.”
“…예?”
“거울이 없어서 잘 모르나본데 네 상태가 말이 아니다.”
도수는 그제야 수술복 안이 축축하다는 걸 느꼈다. 다리도 후들후들 떨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투시력을 유지했는지 그게 신기할 지경.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계를 넘은 것이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도수는 거부하지 않았다.
심장 수술의 초고난도 과정은 모두 끝난 상황.
나머지 봉합 정도는 김광석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 이상의 고집은 아집일 뿐이다.
도수가 한 발 물러서자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살려낸 환자인데. 마지막까지 긴장하고 마무리하마.”
***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서자.
혼이 나간 채 기다리고 있는 아이 어머니가 다가왔다.
“선생님… 어떻게 됐나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도수도 도수 나름대로 수술실 안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렀지만, 환자는 물론 보호자 역시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차라리 도수는 직접 싸울 수라도 있지,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달려와 애 아버지와 아이가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뇌사 지경까지 간 애 아버지의 심장을 아들에게 주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아들을 살릴 수 있을지 백 퍼센트 확신하지 못했다.
이런 그녀의 마음이 놀랍도록 깊이 파고들었다. 도수는 가슴이 저미는 느낌을 받으며 힘겹게 입을 뗐다.
“아직 확신하기는 이릅니다.”
“아…….”
그녀가 휘청거리자.
도수가 급히 부축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의학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아이들의 놀라운 회복력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훨씬 더 회복이 빠르니 잘 버텨줄 겁니다.”
이렇게밖에 얘기할 수 없었다.
이미 하늘이 무너진 여인의 면전에 대고 진실을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임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고 모면하고 싶은 이 상황을 피하면 안 된다.
바로 의사이기 때문에.
그가 외면하는 순간 환자나 보호자는 지금의 수렁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미 수렁 안에서 허우적댈 힘조차 없는 애 어머니는 창백하고 푸석한 얼굴로 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선생님……. 애 아버지도 그렇게 됐는데 우리 찬영이마저 잘못되면… 전 못 살아요.”
담담한 어조였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진 않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이 다 마른 것이다.
도수는 말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뗐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늘 그랬다.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니듯, 애 어머니도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
“…….”
도수는 애 어머니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도수 뒤편 수술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어린 아들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이.
“…아드님께선 곧 나올 겁니다.”
다시 한번 목례한 도수가 자리를 떠나 의국으로 향했다. 가자마자 주저앉아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옆구리 통증 때문에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
의국 앞에 도착한 그때.
뒤에서 발목을 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센터장님!”
무시한 채 문고리를 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도수는 몸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아… 연락이 왔어요……! 구조 요청이에요.”
“환자는요?”
“팔십대 등산객 환자라고 합니다. 정상부근 절벽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낙상(落傷)을 입었는데 출혈이 심한 것 같다고 해요.”
“…….”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가지 않는 것과, 가는 것.
산에서 다친 데다 출혈이 심하다면 빠른 응급처치와 이송을 위해 외상센터 헬기를 띄워야 한다. 지형이 지형이다 보니 레펠도 해야 할 터. 즉, 레펠을 탈 줄 아는 누군가 출동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전까진 김광석이나 이시원이 해왔다.
문제는 둘 모두 지금 수술 중이라는 것.
그렇다고 상황 대처가 미흡한 레지던트 1년 차들만 달랑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가봐야 현장에선 노련한 구급대원보다 나을 게 없을 터였다.
결국 도수는 다시 걸음을 뗐다.
“제가 가죠.”
“아, 네!”
그러나 도수는 자신의 몸 상태를 냉정하게 체크했다. 현장 출동은 처음이니, 막상 도착해서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환자를 위해선 어떤 상황에도 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임재영, 남민수 선생은요?”
“환자 보고 계세요. 불러 드릴까요?”
“네.”
도수는 그 즉시 김광석의 연구실로 가서 장비를 걸쳤다. 이미 외상센터 창문 너머로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중. 한가하게 장비를 빌려 쓰겠다는 허락이나 구할 상황이 아니었다.
여분의 장비까지 수거한 그는 스테이션 앞에 모여 있는 임재영과 남민수에게 장비를 던졌다.
턱.
받아 든 임재영과 남민수가 그를 보자.
도수가 말했다.
“입어요. 출동입니다.”
“아……!”
임재영이 서둘러 바람막이 카파를 걸쳤다.
반면 남민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물었다.
“레, 레펠을 해야 되는 건가요?”
“해야 해도 제가 합니다. 두 분은 현장 출동용 구급키트 준비해 주세요.”
일반 구조대원이 쓰는 구급용 키트가 아니었다. ‘현장 출동용’은 김광석과 이시원이 아로대학병원 응급외상센터에서 자주 썼던 물품을 맞춰둔 특수 키트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도록.
같은 아로대 응급외상센터 출신이라 그런 걸까?
임재영이 비교적 침착하게 물었다.
“혈액은 얼마나 준비할까요?”
“세 팩. 넉넉하게 챙겨요.”
“알겠습니다.”
“빨리 빨리 움직입시다. 일 분, 일 초가 환자에게는 골든아워예요.”
도수의 시선이 무심코 창밖 하늘로 향했다.
수술 전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화창했던 하늘이 회색빛으로 잠겨 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겨울 냄새 가득한 공기마저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