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심장이식
관상동맥에 색전이 생긴 경우 사망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장담할 수 없었다.
병원까지 오지도 못한 채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열두 시간이 지난 시점에 오는 겨우도 있다.
몇 군데나 막혔는지, 또 얼마나 심하게 막혔는지, 얼마나 중요한 혈관이 막혔는지에 따라 이런 요인들이 다양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략적으론 추측이 가능했다.
심장근육이 허혈 상태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두 시간 남짓.
이미 대수술로 삼십 분 이상을 보냈으니 한 시간 반이다.
변수는 그사이 출혈로 인한 심정지가 한 차례 있었고, 지금도 환자의 상태가 양호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한편 좋은 변수도 있었다. 지방 색전이 사고 난 직후 생긴 건 아닐 테니 그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두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도수는 길어야 한 시간으로 봤다.
그럼에도 도수가 할 수 있는 건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지켜본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 점을 인지한 도수는 투시력을 아끼며 마취과의에게 현 상황에서의 최선을 말했다.
“체온 낮춰주세요.”
큰 차이는 없겠지만.
몇 분, 몇 초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잘 버텨준 아이의 회복력을 감안했을 때 몇십 분에서 몇 시간까지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이미 그만한 상처를 입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았다. 한 번 기적을 이뤘다면, 두 번, 세 번 기적을 이룩할지도 모른다.
냉철하게 현 상황을 본 도수는 수술실 한쪽에 쪼그려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런 그를 보던 마취의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담하군.’
환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시점에. 피 냄새가 진동하고 환자는 배를 연 채 누워 있는 이 마당에 눈을 붙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휴식을 하는 편이 앞으로 닥쳐올 또 한 번의 대수술에 능률을 올린다 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간호사들 역시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하연은 도수를 힐끔거리며 눈을 떼지 못했다.
‘몸도 성치 않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보기엔 도수의 휴식이 단순한 휴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힘들어서 주저앉은 듯 보였던 것이다.
그 순간.
도수가 번쩍 눈을 떴다.
“시작하죠.”
“예? 뭘…….”
도수가 말했다.
“복부에 수술 패드 덮고, 흉부 열고 심장이식 할 준비합니다.”
“아직 김 교수님이 안 오셨는데요……?”
“더 지체할 수 없습니다.”
도수는 정확히 시간을 재고 있었다. 이십 분간 눈을 붙였으니 이제 환자에게 남은 예상 시간은 불과 사십 분. 사십 분 안에 인공 심폐기를 달아야 한다.
“시작합니다.”
수술대 앞에 선 도수는 손을 뻗으며 말했다.
“칼.”
이하연이 메스를 건넸다.
그걸 시작으로 도수가 가슴을 절개했다.
스으으으윽.
“개흉기.”
저걱, 저걱.
“가슴 열렸습니다.”
의료진 하나가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시계를 봤다.
그리고 그 순간.
김광석이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소아 환자를 일별하더니 짤막하게 말했다.
“옆방으로.”
도수는 대답도 없이 마취과의를 보았다.
“선생님이 잘해주셔야 합니다. 어떻게든 바이탈 잡아주세요.”
그 말을 들은 마취과의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밀었다. 이렇게까지 맹목적으로 환자에게 매달리는 써전을 오랜만에 봤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 자체도 근래 한 번도 못 겪었다. 그리고 이럴 때면 그 자신이 써전이 아님에도 수술에 참여하는 인원으로서 열정이 생겼다.
처음 의사가 되고자 마음먹던 순간 느꼈던 그런 열정이.
“알겠습니다. 책임지고 환자 살려둘 테니 빨리 오세요.”
“그러죠.”
도수는 김광석과 함께 옆방으로 갔다.
수술복도, 수술 장갑도 새로웠지만 육체만은 그렇지 못했다.
잠시 눈을 붙였는데도 피로감은 여전했다.
“후.”
나지막이 한숨을 뱉은 도수가 환자를 내려다봤다.
아이 아버지.
뇌사 상태의 환자다.
뇌사란 뇌간반사가 소실된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의식이 없는 깊은 코마(Coma: 혼수상태)에선 신경반사가 일어나지만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는 깨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보호자들은 심장이 멎지 않은 이상 희망을 걸지만 의학적으론 사망이다.
죽은 사람.
그렇게 받아들인 도수가 짧게 말했다.
“칼.”
턱.
그는 뇌사자의 가슴을 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옆방 소아 환자의 생존 시한은 째깍, 째깍 흐르고 있을 터.
망설이거나 손을 멈출 여유 따윈 없었다.
“가슴 열렸다.”
김광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클램프, 켈리.”
집게와 가위를 든 도수의 손이 정교하게 움직였다. 김광석이 양손에 클램프를 들고 그가 지나는 동선에 따라 시야 확보를 도왔다.
서걱, 서걱.
혈관들이 잘려 나갔다.
심장을 적출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수는 심장과 연결된 혈관들을 잘라내고 애 아버지의 심장을 꺼내 아이스박스에 담았다.
“빠르군.”
시계를 확인한 김광석이 말했다.
“난 봉합하고 가지.”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다시 소아 환자가 있는 수술실로 돌아갔다.
쉴 틈이 없었다.
이미 수술실에는 인공 심폐기가 세팅되어 있었다.
심장성형술을 할 때에도 썼던 기계다.
“시작하겠습니다.”
도수의 한마디에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비.”
그는 심막을 절개했다.
역겨운 냄새가 올라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이마에서 내리는 진땀이 문제였다.
욱신, 욱신.
계속 움직인 탓에 옆구리가 쑤셔왔다.
끊임없이 흐르는 땀을 닦아주던 이하연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카뉼레(Canuler: 주사관).”
그는 심장성형술에서 그러했듯, 평균보다 훨씬 좁은 시야 안에서도 대정맥과 대동맥을 손쉽게 찾았다.
마치 서랍에서 물건 꺼내듯 쉬워 보였지만, 아무리 실력 좋은 써전이라도 한참 걸렸을 일을 도수이기에 간단히 해낸 것이다.
턱.
카뉼레를 받아서 대정맥과 대동맥에 꽂은 도수가 심폐기기사를 보며 말했다.
“심폐기 가동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위이이이이이잉.
심폐기가 돌아가자.
도수가 덧붙였다.
“클램프, 심정지액 주세요.”
그는 클램프를 걸고 심정지액을 주입했다. 그러자 심장이 천천히 멎었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은 한층 강해졌다.
“켈리.”
가위를 받은 그는 혈관을 절제했다.
하나씩 정확하고 빠르게.
서걱, 석…….
혈관들을 잘라내고 심장을 꺼내는 순간, 도수는 손아귀에 잡히는 아이의 심장에 한 가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어른의 심장보다 훨씬 작은 심장.
그리고 그 심장을 담고 있었던 작은 공간.
이 공간 안에 아이 심장보다 훨씬 큰 어른의 심장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자면 핵심 요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좁은 아이의 가슴 속에 큰 심장이 자리 잡을 공간을 확보하는 것. 또 하나는 성인 심장 이식으로 인한 심박 출혈량 증가를 해결해야만 했다.
만약 심박출혈량이 급작스럽게 상승한다면 일시적인 고혈압이 발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뇌혈류 증가로 인해 뇌가 부어 생기는 혼수 등 부작용이 뒤따를 터였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이하연이 물었다.
“괜찮을까요?”
다른 의료진들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도수는 아이의 가슴에 성인의 심장을 이식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한 눈에 봐도 그게 힘들다는 것쯤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수는 이를 전면 부정했다.
“심장도 수술하면 됩니다.”
말이 쉽지, 아이의 가슴에 어른의 심장을 집어넣기 위해선 심장의 크기도 축소해야 할뿐더러 출력도 낮춰야 한다.
조물주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하지만…….”
토를 달던 마취과의는 입을 닫았다.
도수의 눈빛을 본 것이다.
그는 환자를 일별하고 있었는데, 결코 감정적이지 않았다.
열의가 앞서서 일을 그르칠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차가운 열정.
그 말이 적합할 것이다.
“…환자 바이탈은 걱정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잡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이식 시작합니다.”
심장성형술은 확장성심근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기형적으로 부어오른 심장을 절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 아버지의 심장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부담이었다.
“프롤린 투 제로, 테이퍼 커팅 파이브 에잇.”
봉합사, 봉합침이 손에서 손으로 건너왔다.
도수는 그 즉시 잠시 멈추고 있던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애 아버지의 심장이 눈에 들어왔다.
육안으로 보던 깨끗한 심장이 아니었다.
심장근육과 혈관들이 복잡하게 뒤엉킨 그런 모습이었다.
“후.”
짤막한 숨을 내뱉은 도수는 혈관들을 피해 심장근육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서걱.
“……!”
“끙!”
의료진들이 신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기 때문이다.
맙소사, 심장을 절제하다니!
그러나 도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석.
근육을 절제하면 피를 공급하는 심장의 펌프질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어른의 심장이 가진 출력을 아이의 심장이 가진 출력에 맞출 수가 있었다.
도수는 이 수술을 하며, 오히려 바티스타를 기반으로 한 심장성형술보단 난이도가 높지 않다고 느꼈다.
심장성형술의 경우 한쪽이 기형적으로 부푼 심장을 절제해야 한다. 당연히 혈관까지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어른 심장을 아이의 심장만큼 축소시키는 건 절제 부위도 더 협소할뿐더러 근육만 잘라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심장이 입는 대미지도 적었다.
과한 심장근육이 떨어져 나가자 도수는 봉합을 시작했다.
“타이.”
슥, 스윽.
귀신같이 근육을 꿰매는 도수.
막 문을 열고 들어온 김광석은 아무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것에 한 번 놀라고, 도수가 이미 심장근육을 절제한 뒤 봉합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말도 안 되는……!
그가 흉부외과 전문의는 아니었으나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얼마나 기적적인 장면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다른 의료진들 역시 홀린 듯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심장근육을 절제하면 출력이 낮아지고 크기도 작아진다’ 같은 개소리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개소리인 이유는 대부분의 외과의들이 딱 아이에게 불필요한 근육만 절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수는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수술이 성공해서 소아 환자가 눈을 뜬다면 이야기겠지만.
도수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가…….’
어떻게 된 녀석이란 말인가.
슥, 스윽.
그사이 귀신 같이 근육을 꿰맨 도수가 고개를 들었다.
“혈관 잇습니다.”
“크기가 다른데…….”
김광석이 신음처럼 뱉자.
도수가 물었다.
“공장문합할 때 어떻게 하죠?”
“사선으로… 아!”
김광석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어른 심장으로 아이 심장을 만드는… 아니, 성형해 버리는 녀석이 혈관 크기 하나 못 맞출까.
그 정도는 김광석도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단지 혈관을 문합할 때까지 진행할 수조차 없으니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막연히 ‘도수라면 할 수 있겠지’ 하고 믿었으나 이런 식으로 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상도 못할 광경을 매번 지치지도 않고 보여주는 도수였다.
“…거의 모세로군.”
모세와 차이점이 있다면.
모세는 바다를 갈랐지만 도수는 의학적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 그리고 모세는 간곡한 기도 끝에 한 번 기적을 이뤘으나 도수는 매번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김광석의 한마디를 들은 사람은 이 안에 없었다. 모든 눈과 귀가 도수와 환자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도수는 이 수술의 마지막 단계.
혈관문합에 들어가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클램프, 켈리.”
삑. 삑. 삑. 삑.
소아 환자는 언제 피를 쏟고 모든 의료진의 진을 쏙 빼놨냐는 듯, 평온하게 잠든 아이처럼 잠들어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