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임기응변
도수는 수술복을 갈아입고 김광석이 집도하고 있는 수술실로 갔다.
소독하는 사이, 심장이 가파르게 뛰었다.
‘빨리.’
손이 더 빨라졌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김광석이 수술 중인 자신에게 사람을 보낼 정도면 얼마나 다급한 상황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슈우우우우우!
슥, 슥 손을 닦은 도수는 수술실 문 앞에 섰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지옥이 펼쳐졌다.
“거즈, 빨리!”
김광석도, 의료진도 도수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수술실 안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리게이션! 거즈! 젠장, 출혈이 안 멎어……!”
김광석의 다급한 음성.
도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침착하게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바이탈은 불안정했고 혈압은 수직 하강 하고 있었다.
당장 어레스트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도수가 말했다.
“제가 하죠.”
홱.
김광석이 고개를 돌렸다.
“왔구나!”
그는 순순히 비켜섰다.
“난 할 수 없다. 제발 살려라. 제발……!”
도수는 대답할 새도 없이 투시력을 극한까지 발휘하며 다가섰다.
샤아아아아아아.
지금 이 순간.
죽음이 어린 소년의 목줄을 휘감고 끌어당기는 이 순간만 넘길 수 있다면.
그런 기적을 만들 수만 있다면 소년의 생명에 불씨를 다시 지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후욱.”
숨을 들이쉰 도수가 소년의 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소년의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장이 괴사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말했다.
“칼.”
칼자루를 받은 도수가 투시력으로 환자의 배 속을 들여다보며 칼날을 놀렸다.
서걱, 석.
지금 같은 상황에선 적당한 매뉴얼이 없었다. 오로지 의사의 판단과 감각에 의지해 신속하게 수술하는 수밖에 없다.
괴사가 진행된 부위는 잘라낸다. 끊어진 혈관은 다시 잇고, 괴사가 심한 장기들 중 드러내도 살 수 있는 장기는 통째로 드러낸다.
그 어떤 수술보다 간단명료한 이 과정이 무게로 치면 천근만근 무거웠다. 환자도, 의사도 이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결론은 오직.
생(生)과 사(死), 둘 중 하나뿐이다.
“후욱.”
도수의 숨이 거칠어졌다. 극도로 집중하자 갈비뼈의 통증, 무뎌진 손의 감각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배 속을 순식간에 채우는 출혈이 도수의 손을 잠갔다. 동시에 손동작도 느려진다.
“석션.”
김광석이 재빠르게 석션을 실실했지만.
그 정도로는 출혈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거즈, 많이!”
꾹, 꾹.
거즈를 밀어 넣은 도수는 곧바로 빼서 내던졌다.
철퍽, 철퍽!
수술실 바닥에 늘러 붙는 거즈들.
“젠장……!”
거즈가 닿자마자 피로 흠뻑 물든다는 건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특히 소아 환자에게 이 정도 출혈은 견디기 힘들었다.
도수의 손이 더 빨라졌다.
“봉합 도구, 빨리!”
“바이크릴은…….”
“그냥 줘요!”
빼앗듯 봉합사와 봉합실을 받아든 도수는 빠르게 조각난 혈관을 봉합했다. 순서고 뭐고 일단 출혈부터 잡기 위해서. 일단 목숨이 붙어 있어야 감염이나 다른 후유증 등의 고민을 할 수 있다.
“클램프.”
턱.
지걱, 지걱.
“칼.”
턱.
“가위.”
서걱, 서걱……!
“타이…….”
그 순간.
환자의 바이탈이 뚝 떨어지며 수평을 그렸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선생님, 어레스트!”
“……!”
이미 이 정도 대미지를 받은 환자에게 어레스트가 왔다는 것.
유일한 희망의 끈이 잘려 나갔다는 뜻과 같았다.
하지만 도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쏟아부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숨만 붙여봐요. 1분… 아니 30초만!”
김광석에게 한 말이다.
김광석 역시 환자를 살리고 싶은 집념은 도수 못지않았기에 간호사에게 심장을 뛰게 할 아드레날린을 받아 주입했다.
쿡!
“제발… 제발…….”
그 순간.
환자의 바이탈이 변화를 보였다.
삑. 삑. 삑. 삑…….
“성공이에요!”
의료진들이 외치고.
김광석은 털썩 주저앉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몸을 크게 들썩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내 도수를 쳐다본 그가 덧붙였다.
“한 번 더 심장이 멈추면 끝장이야.”
도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한 번 더 어레스트가 날 경우 그땐 정말 영영 손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출혈을 막고 수술을 끝내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환자의 배 속은 절반쯤 원상태를 찾은 상태였다.
김광석이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단순히 복원한 게 아니다.
출혈점을 잡고 생명에 깊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부터 해결했다.
따라서 환자의 생명은 연장됐다.
지금도 그대로 두면 머잖아 불꽃을 다하겠지만, 적어도 불꽃을 단숨에 집어삼키려는 듯 불어 닥친 폭풍은 막아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단계는 전혀 아니었다.
도수가 말했다.
“손상이 심한 데 비해 다행히 장기는 모두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구나.”
“문제는 바이탈인데…….”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뱃속의 혈관과 장기를 꿰매고 출혈을 막았는데도 혈압이 떨어진다는 건.
“운드(Wound: 상처) 열린 곳 있나 확인해 보자.”
김광석이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출혈 부위가 더 있다면 출혈 과다로 금세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놓친 곳은 없습니다.”
투시력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김광석이 물었다.
“사진도 확인 안 했잖아?”
“상처 때문이 아니에요. 이건…….”
도수는 환자의 외상 대신 내부를 꼼꼼히 훑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가슴 쪽을 투시하는 순간.
“이런.”
혈행이 늦어지고 있었다.
흘린 피의 양에 비해 공급되는 피의 양이 적어서 혈압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일단 출혈을 막았다고 해도 이대로 두면 환자가 사망하는 결론은 같다.
김광석 역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사진상에도 문제없어. 왜지? 왜……!”
이 자리 누구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도수는 혈행이 늦춰지는 포인트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혈관들을 지방이 막았어요.”
“뭐?”
눈을 크게 뜬 김광석이 재차 물었다.
“지방색전이 관상동맥으로도 갔다고?”
“네. 개흉해야 합니다.”
“……!”
“이식밖에 방법이 없어요. 어쩌다 관상동맥으로 흘러 들어간 지방덩어리가 쪼개지면서 열 군데도 넘게 혈관을 막았습니다.”
김광석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갑자기 심장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건 둘째 치고, 관상동맥으로 지방조직이 들어가는 것만 해도 극히 드물었다.
“그게 어떻게…….”
“외상을 입으면서 혈관이 파괴된 겁니다. 그로인해 지방조직이 혈관 속으로 흘러들어 간 거고요.”
“하필이면 그게 관상동맥으로 흘러들어 갔단 말이야?”
“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을 접하다 보면 그만큼 많은 특이 케이스들을 접하게 된다.
도수의 말대로라면 환자에게는 결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 안에 대체할 심장을 구해야만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갑자기 심장을 어디서 구해? 정말… 이대로 애가 죽는 걸 지켜봐야 한다고?”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심장이 건강했던 아이가 아니에요. 어렸을 때 심장 수술을 받았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들어오기 전에 애 엄마한테 물어봤습니다.”
수술실로 들어오기 직전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이 엄마를 만난 건 사실이지만 시간이 없어서 몇 마디 나누지 못했다.
투시력으로 심장 상태를 둘러댄 셈이었으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애 엄마의 몇 마디 말속에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애 아빠도 같이 사고를 당했죠? 현재 뇌사 상태고.”
“그, 그래.”
“애가 심장이 약했다면 뇌사 장기 기증 등록을 해놨을 확률이 큽니다.”
“아!”
김광석은 탄성을 내질렀으나 당연하고도 중요한 문제점을 떠올렸다.
“성인 심장을 어떻게 애한테 줘?”
그러나 도수는 상식을 깨부쉈다.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그는 심장성형술을 연구하며 한 가지 과제에 더 봉착했다.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국내 소아 청소년 환자가 천 명을 넘는 반면 또래의 장기기증자는 열 몇 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중에 실제 뇌사상태가 와서 장기를 기증하게 되는 경우는 서너 명뿐이다.
나이가 어린 기증자는 그만큼 부족했다. 따라서 아이의 심장이 성인의 심장보다 구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소아 청소년들에게 장기기증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였다.
성인 심장을 아이가 품을 수 있게 만드는 것.
도수는 이에 대해 연구했다.
“…제가 심장성형술을 연구하면서 공통분모로 심장이식을 고려했었습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방법일 텐데?”
“지금 이 아이가 살아 있는 것.”
도수는 환자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이 아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도 임기응변과 직감적인 대처가 어우러졌기 때문입니다. 우린 기술자가 아니에요. 기적을 만들려면 규격을 벗어나야 합니다.”
“…….”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도 이제 센터장이니, 책임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그대로 두면 사망할 환자였다.
그렇기에 김광석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아이가 살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직이 한숨을 쉰 그가 대답했다.
“…내가 바로 나가서 알아보지.”
창백한 안색의 김광석이 수술실 문 너머로 사라지자, 환자를 일별한 이시원이 물었다.
“버틸 수 있을까요?”
“심장도 약한 애가 이런 큰 수술을 버텨냈어요. 아직도 견뎌내고 있고요. 최악의 상황인 건 맞지만 견뎌줄 겁니다. 심장만 있으면 살릴 수 있어요.”
“자기 아빠 심장으로 살아가야 하다니…….”
이시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인가?
그러나 도수는 냉철함을 유지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둘 다 죽지 않도록 아이만이라도 살리는 겁니다.”
뇌사판정을 받은 아이 아버지가 깨어날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굳이 확률로 치자면 일 퍼센트도 채 되지 않을 터였다. 비록 외상은 적어도 가장 중요한 부위가 다친 것이다.
반면 아이는 새 심장만 받을 수 있다면 살아남을 가망이 있었다. 오십 대 오십. 버티지 못하고 사망할 수도 있으나 버티고 생환할 여지가 있다.
그 같은 생각을 하는 도수를 빤히 보던 이시원이 말했다.
“…잠깐이라도 쉬어두세요. 심장 쪽은 센터장님이 직접 손대실 수밖에 없을 거예요.”
물론 김광석도 기본적인 흉부외과 수술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장이식은 인공심폐기를 달고 진행해야 하는 고난도 수술이다. 바티스타 수술과 방식은 달라도 결코 더 쉽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수술 준비해 주세요. 바로 들어가야 하니.”
“알겠습니다.”
이시원은 군말 없이 의료진들과 수술 준비를 했다. 할 일이 많았다. 수술방을 하나 더 새로 잡고 적출 준비를 해야 한다. 동시에 이식 준비도 해야 하니 굉장히 빠듯했다. 준비가 늦어지는 만큼 환자의 생명도 불안정해질 것이므로.
‘정말 살릴 수 있는 걸까?’
이시원은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도수의 실력이야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런 상태로 실려 와서, 심장이식까지 받고 살아났다는 환자는 듣도 보도 못했다. 이건 치료의 경지를 넘어 부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모든 장기가 부서진 것만 해도 최악의 상황인데 심장까지 문제가 생겼다니.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을 보는 듯한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이시원은 이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짝!
소리 나게 뺨을 때린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마지막까지 환자 목숨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의사다. 수술실을 나서서 복도를 지나는데, 허물어져서 오열하는 아이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 앞에 선 김광석 역시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애 엄마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부자(父子) 중 한 명만 살 수 있다는 사실과, 그 한 명마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비보르 전했을 것이다. 아이 아버지의 심장을 아이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까지.
그러한 상황을 머릿속에 그린 이시원은 손이 부서져라 주먹을 쥐었다.
‘반드시 살려야 해! 센터장님은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
도수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건 이시원에게 환자가 살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작용했다.
지금껏 모두가 포기한 환자를 살려냈던 도수이기에.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다시 한번 믿음을 가진 이시원은 스테이션으로 가서 수술실 어레인지를 도와주는 마취과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