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75화 (75/152)

# 75

써전의 레벨

환자의 배를 연 도수는 고개를 들어 임재영과 남민수를 보았다.

오늘 수술에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온 이유는 눈앞에 누워 있는 환자가 맹장염 환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충수염이라고 하며, 충수절제술이 필요했다.

충수절제술은 서혜부탈장치핵 수술과 함께 젊은 소화기 외과의가 다룰 일이 많은 수술이었다.

특히 급성맹장염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이 다수 있고, 이 경우 담당 응급의학과 의사가 이 수술을 할 수 있다면 환자는 긴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어진다.

“남민수 선생.”

“네?”

남민수를 응시한 도수가 입을 뗐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직 손에 입은 화상 통증과 갈비뼈의 통증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김광석에게 했던 말처럼 환자를 걸고 도박할 생각이 없었다. 조금 더 지나면 직접 수술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수술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직접 하는 것보다 레지던트 1년 차의 수술을 감독하는 일이 더 힘들다. 수술자의 실력 차가 큰데도 불구하고 같은 퀄리티의 수술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말뜻을 알아들은 남민수는 눈을 부릅떴다.

“……!”

수술해 볼 기회를 주겠다는 것.

“감사합니다!”

그는 소름이 돋은 채 대답했다.

뜻밖에 충수절제술을 해볼 기회가 온 까닭이다. 직접 수술을 하다는 건 무섭기도 했으나 외과의를 꿈꾸는 그에게는 꿈에 그리던 일이었다.

‘지원하길 잘했어!’

국내 대학병원의 체제에서 이제 막 레지던트 1년 차에 들어선 의사에게 충수절제술을 직접 해볼 수 있도록 맡기는 건 상상도 못 해봤다.

하지만 도수는 수술은 해볼수록 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직접 하면 간단하겠지만 출중한 외과의는 수련의에게 지시를 내리며 수술할 수 있어야 한다.

외과의를 미쉐린식 등급으로 설정해 본다면 별 하나는 상급 집도의의 지시를 받고 수술할 수 있는 신출내기 외과의, 별 두 개는 경험이 부족한 이에게 집도를 시키면서 지시할 수 있는 단계, 별 세 개는 수련의에게 지시하면서 수술할 수 있는 의사다.

여기서 남민수나 임재영은 아직 좌우 분간도 못 하는 수련의나 다름없었다. 레지던트 1년 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수는 수술 기회를 주고 지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도수가 말했다.

“긴장하세요.”

“네! 충수절제술은 눈이 닳도록 봤습니다!”

충수염 수술 정도도 할 수 없다면 다른 수술은 꿈도 못 꾼다고 생각하는 외과의들이 많다. 남민수 역사 비슷한 반응을 보였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도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상진단이 진행된 상황에서 수술하는 충수염 수술은 그만한 염증을 수반하고 있어 수술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수는 이런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한마디로 대신했다.

“제대로 못 하면 칼자루를 넘겨야 할 겁니다.”

“……!”

남민수가 흠칫했다.

무의식중에 실력을 뽐내려던 자신을 돌아본 것이다.

‘세상에 쉬운 수술은 없다.’

조근현 교수가 수업 당시 했던 말이 떠오른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죠. 임 선생, 견인기.”

부러운 시선을 던지던 임재영이 두 개의 견인기를 들고 절개 부위를 힘껏 벌렸다.

그러자 도수가 남민수에게 메스와 겸자를 내밀었다.

“피하지방, 2층 천복근막 절개.”

“예.”

남민수는 메스와 겸자를 들고 절개를 거듭했다.

그때마다 임재영은 견인기로 절개 부위를 넓혔다.

‘제법 손발이 맞는군.’

도수는 썩 만족스러웠다.

물론 아직 본격적인 수술은 시작도 안 했지만.

도수가 어드바이스를 했다.

“외복사근건막의 섬유 방향을 따라서 조금만.”

고개를 끄덕인 남민수의 손이 조언을 따라 움직였다. 그가 가장자리를 겸자로 잡고 섬유 방향으로 절개를 했다.

동시에 임재영이 건막하층에 견인기를 위치시켰다.

그러자 남민수의 손이 잠깐 멈췄다. 시야에 방해를 받는 것이다.

도수는 간단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피하지방이 두꺼워서 그래요. 겸자는 빼고 진행해도 됩니다.”

“아… 예!”

다시 수술이 재개됐다.

반달선(복황근의 근섬유와 근막과의 경계선)이 나타나고, 남민수는 반달선 외측 근섬유부분을 상하로 열었다.

임재영이 견인기로 잡고.

마침내 복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수가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갔다.

“임재영 선생, 다시.”

“아!”

임재영은 다시금 견인기로 절개 부위를 사방으로 펼쳤다.

도수가 한 번 더 견인기를 전개하라고 한 이유는 피부보다 더 강한 근육의 탄성 탓에 그대로 두면 절개 부위가 점점 더 작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남민수, 임재영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땀을 닦아주고.

남민수가 말했다.

“복막 절개하겠습니다.”

도수는 가위를 내밀며 빠지지 않고 조언을 해주었다.

“복막 절개는 작게 해요. 습관적으로 시야 확보를 하려고 크게 하기 마련인데, 복막을 근막보다 크게 절개하더라도 봉합 폐쇄 시 힘들어지기만 하고 시야는 넓어지지 않습니다.

“아… 네!”

서걱, 석!

가위로 복막을 잘라내는 남민수.

복막을 모두 잘랐을 때, 도수가 말했다.

“좀 도와주죠.”

남민수가 어리바리하게 서 있는 걸 본 까닭이다. 적절히 손을 놀려가며 충수를 꺼내야 하는데, 처음 수술을 해보는 의사가 거기까지 소화하긴 쉽지 않았다. 외려 무리하게 박리하려다 천공(穿孔: 구멍이 뚫리는 것)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도수는 손을 뻗었다.

“겸자.”

턱.

남민수는 갸웃했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수술자 위치에 서지도 않은 상태에선 시야 확보조차 힘들다. 그런데.

턱……!

도수는 순식간에 겸자로 충수를 잡아냈다. 그리곤 살살 박리했다.

“……!”

임재영, 남민수 모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남민수의 잇새로 신음과도 같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운이 좋은 경우 절개하자마자 충수를 찾아내 박리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의도해서 단박에 잡아내는 건 처음 본 것이다.

더욱이 수술자 위치도 아닌 반대편에서, 시야 확보도 완전히 안 된 상태로 이 같은 일을 해내다니.

‘감으로 잡아냈다고?’

‘이게 말이 돼?’

남민수도, 임재영도.

두 눈을 의심했다.

환자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른 충수 위치를 어떻게 보지도 않고 찾아내서 단번에 꺼낸단 말인가?

물론 그 같이 기적적인 행동 기저에는 도수만이 아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두 눈을 밝히고 있는 도수.

그는 투시력으로 충수를 잡아낸 것이다.

손과 옆구리에 부상을 입었어도 투시력만큼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몇 배로 집중력을 쏟아 부었기에 더 명확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충수를 찾아내는 과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해부학 시간이 아니니 지름길로 가겠습니다.”

“예……!”

불만이 있을 쏘인가.

임재영과 남민수는 놀라고 감탄하기만도 바빴다.

그때 도수가 곧은 겸자를 건넸다.

“절제 시작해요.”

고개를 끄덕인 남민수가 곧은 겸자로 충수근부보다 수 밀리미터 떨어진 곳을 으스러뜨리곤 다른 손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도수가 기다렸다는 듯 3-0바이크릴(봉합사의 두께)을 주었다.

“쌈지 봉합.”

남민수가 그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손을 가져가자 도수가 짤막하게 뱉었다.

“충수근부에 너무 가깝습니다. 절제단을 매몰하는 포켓을 만들기 어려워져요.”

지적.

“아…….”

남민수가 당황하자.

도수가 천천히 경고해 주었다.

“그리고 모든 층에 실이 통과하면 분변루(Fecal fissura: 충수의 잘린 끝이 막혀 아물지 않고 열린 상태. 장 내용물이 체외 또는 다른 장기나 장의 일부분으로 통과하는 관이 형성되는 합병증)를 초래할 수 있으니 제대로 장간막근층에 걸쳐야 합니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실수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줄 생각이었다. 그런 작심을 하고 투시력을 아낌없이 쓰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많은 환자를 살리는 것. 의사의 본분을 다하는 데에는, ‘나 하나 수술 잘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다른 유능한 의사를 키워내는 것 또한 포함이 된다.

그리고 도수는 센터장으로서 이 기회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의사를 천천히 빚어나가고 있는 셈이었다.

어떤 사고, 어떤 환자도 케어할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도수가 만들고 싶은 응급외상센터였다. 다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아서 걸어 나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곳 말이다.

“…절제 시작해요.”

그는 남민수에게는 메스를, 임재영에게는 봉합사의 일종인 바이크릴 1-0을 건넸다. 그러자, 다행히 두 사람은 말뜻을 알아듣고 순서를 기억해 움직였다.

임재영이 충수의 으스러진 부분을 실로 묶고, 남민수가 도수에게 받은 메스로 충수를 잘라냈다.

“석션 합니다.”

도수가 구석구석 석션을 실시했다.

그리고 절단 부위를 베타딘(Batadine opical Solution: 살균 소독약의 일종)으로 소독했다.

그의 움직임은 두 사람을 완벽하게 서포트 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두 사람은 마음 놓고 수술할 수 있었다. 마치 걸음마를 떼기 전에 두툼한 이불을 깔아둔 느낌이었다. 도수가 있다면 어떠한 오류도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역시…….’

‘대단해.’

그들의 눈에 비친 도수.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크고 늠름했다.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더 동경 가득하게 바뀐 두 레지던트의 눈빛을 봤는지 못 봤는지.

그 존경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수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냉철한 시선을 환자에게서 떼지 않고 지시했다.

“자리 바꿔요. 닫는 건 임재영 선생이. 남민수 선생이 보조합니다.”

남민수는 자신이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솟구쳤다.

반면 임재영은 중요한 수술은 남민수가 모조리 다하고 마무리를 자신이 맡은 게 아쉬웠다.

하지만 그렇게 지시한 사람이 도수이기에.

두 사람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생각을 품었다.

‘내가 칼자루를 잡아본 게 어디야?’

‘수술에 중요치 않은 역할은 없다. 충수절제술을 어떻게 보조할지 배웠어. 수술 집도는 다음에 해보면 된다.’

그들은 욕심을 부리고 질투하기보단 서로 손발이 잘 맞았던 수술 과정을 떠올리며 신뢰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군말 없이 위치를 바꿨다.

“마무리 잘 부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들을 보던 도수는 마스크 안으로 빙그레 웃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져 가는 느낌이었다.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경이로운 기적을 보게 될 터였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영록같이 욕심이 앞서는 인사는 곤란했다. 사람을 바꾸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그런 데에 쏟을 심력과 시간이 없었기에 더욱 인력 충원에 신중했던 도수는 이로서 두 사람에 대한 시험을 끝냈다.

***

삑. 삑. 삑. 삑.

안정적인 바이탈을 유지한 채 수술이 일단락된 시점.

수술방 안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센터장님……!”

강미소다.

그녀의 수술복은 피투성이였다.

도수는 빠르게 그녀의 위아래를 스캔했다.

수술복도, 심지어 눈가에도 피가 튀었다.

“무슨 일입니까?”

“소아 환자예요! 장이 다 으깨져선… 김 교수님이 센터장님을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직접 가보기도 전에 상황 파악이 됐다.

조근현 교수는 한참 수술 진행 중.

따라서 도수에게 가보라고 했을 것이다.

도수의 실력이면 충수절제술을 거의 다 끝냈을 시간이니까.

김광석 교수 홀로 감당이 안 돼서 도수에게 S.O.S를 보냈을 터였다.

그만큼 환자가 악조건이라는 뜻.

더구나 소아 환자이기에 더욱 살리고 싶을 것이다.

모든 환자가 같다 해도 어린아이의 죽음을 보는 건 어떤 의사든 피하고 싶은 경험일 테니.

이내, 도수의 입이 열렸다.

“강 선생은 여길 맡아서 마무리해 주세요. 제가 건너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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