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레펠 훈련
다음 날.
도수는 응급외상센터 식구들과 레펠 실습 장소로 나갔다.
센터에는 고소공포증이 심한 강미소와 현장출동을 원치 않는 조근현 교수, 김용찬이 남았다.
그들이 널찍한 잔디구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구조용 헬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헬리콥터를 등진 김광석과 이시원, 교관이 나란히 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보는 눈이 있었기에 김광석은 존대를 했다.
그러자 도수가 답했다.
“여기 임재영 선생은 군에서 레펠을 배운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저나 남민수 선생은 처음입니다.”
“임 선생. 뭘 배웠지?”
“패스트 로프입니다.”
“역시.”
패스트 로프는 굵은 로프를 장비 없이 타고 내려가는 것을 뜻했다. 장비를 사용하는 레펠과는 조금 달랐지만 충분히 도움될 만했다.
김광석이 말했다.
“이쪽으로 합류하지. 보조해 주면 좋겠어.”
“뭘 하면 될까요?”
“지면에서 로프를 당겨주게.”
로프를 당기면 레펠은 저절로 제동이 걸린다. 안전한 교육 훈련을 위한 조치인 셈이다.
“알겠습니다.”
임재영이 김광석 측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이내 레펠 교육이 시작됐다.
지상에서 몇 차례 김광석과 이시원의 시범을 보며 연습한 뒤.
두 사람이 로프를 타고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레펠 원리상 악천후에는 로프가 흔들리면서 밧줄을 놓치고 추락할 위험이 커 보였다.
추락한다면 그대로 십오 미터 아래 지상에 처박히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소 중상.
만일의 상황에 임재영이 지상에서 팽팽하게 로프를 잡아당겨 제동을 걸어주지 않는다면 훈련 자체도 굉장히 위험천만해 보였다.
물론 이미 경험이 많은 김광석과 이시원은 여느 구조대원 못지않은 실력으로 시범을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느끼는 불안감은 똑같았다.
“…….”
남민수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헬기를 탔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타타타!
초보자들을 태운 헬기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점점 지상에서 멀어지는 장면을 창문을 통해 지켜보던 남민수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센터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요?”
자기도 처음이라더니.
도수는 침착했다.
“진짜 처음이십니까?”
“네.”
도수는 창밖을 보았다.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십오 미터 높이.
이곳에서 하강해야 한다.
남민수가 재차 말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왜 그래요?”
“아니, 왜 의사가 직접 출동을 해야 하는 겁니까?”
“다 알고 온 거 아니었어요?”
“구급차든 헬기든 탈 것만 생각했지, 떨어질 건 생각도 못 했는데요…….”
도수는 피식 웃었다.
“접근이 힘든 지역에서도 사고는 납니다. 부상이나 출혈이 심할 경우 현장에서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자는 목숨을 잃죠. 이걸 알면서도 현장에 뛰어들기 두렵다면 포기해도 됩니다.”
“센터장님은요?”
“저도 무서운데요. 그저…….”
“그저?”
창문에서 시선을 뗀 도수가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환자의 골든아워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쏟는 것뿐입니다. 시간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게 수술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하니까요.”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중증외상환자들의 삼십 퍼센트 이상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이십 퍼센트 이상이 이송 중 사망한다.
나머지 사망자들의 사인 역시 골든아워 내에 치료를 받지 못해서다.
그만큼 시간은 환자의 생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아니, 대부분의 죽음이 시간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를 말 안 해도 알고 있는 남민수는 문이 열리기 무섭게 거센 바람을 받으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해보겠습니다!”
도수는 미소 지었다.
남민수는 꿈에도 몰랐겠지만, 이번 레펠 훈련이야말로 그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응급실 티오는 한정된 반면 레펠을 탈 수 있는 의사는 몇 없었다.
따라서 도수는 출동해서 직접 레펠을 탈 수 있는 의사를 원했고, 그 때문에 남민수와 함께 임재영을 뽑은 것이다. 군에서 레펠 경험을 해본 임재영은 빨리 배울 테니까.
그런데 남민수는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할 겁니다! 해보겠습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외친 남민수는 교관의 도움을 받아 레펠을 타고 내려갔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남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누가 보면 애 잡는 줄 알겠군.”
“재밌나?”
김광석이 맞은편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이시원도 같이.
“총탄이 오가는 전장도 아닌데요, 뭐.”
도수가 태연하게 대답했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이시원이 말했다.
“내려가시죠.”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일어났다. 기체의 흔들림이 전해졌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이었다면 서 있기도 힘들었겠어.’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서도 레펠 장비를 입고 로프에 장착한 도수가 외쳤다.
“하강!”
그는 힘껏 두 발로 기체를 밀며 하강을 시작했다.
슈우우우욱!
몸이 로프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지면이 가까워졌다.
임재영이 로프를 힘껏 당기는 모습이 보였고.
‘다 왔다!’
두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바로 그 순간.
틱!
로프에 고정되어 있던 고리가 풀려 버렸다.
도수는 반사적으로 로프에 매달리며 팔, 다리에 힘을 가했다.
놓치는 순간 추락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치밀었기 때문이다.
“아!”
단말마 비명과 함께 로프를 잡고 있던 임재영이 휘청거렸고.
그 여파는 도수를 덮쳤다.
줄이 꼬이면서 도수의 몸이 빙글 돌아간 것이다.
“……!”
모두가 가슴이 철렁해서 비명을 삼키는 찰나.
도수는 기지를 발휘했다.
휘리릭!
알파벳 엘(L) 자 형에서 몸을 꽈서 로프를 품은 듯한 일(1) 자형 패스트 로프로 자세를 바꾸며 땅에 착지한 것이다.
털썩!
도수가 거칠게 넘어졌다.
팔꿈치가 까지고 손바닥과 허벅지는 화끈거렸다.
“이런……!”
“괜찮으십니까?”
사람들이 달려와서 물었다.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그러자 교관이 대답했다.
“그게… 레펠 장비가 풀린 겁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도수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칼을 잡고 수술을 해야 할 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약한 화상을 입었다.
‘이런.’
헬기가 착륙하고.
김광석과 이시원, 그리고 헬기에 탑승했던 교관이 달려왔다.
도수를 본 교관이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이, 이런. 어떻게 이럴 수가. 괜찮으십니까?”
분명 안전 점검을 했다.
장비도 확인을 했는데 사고가 생긴 것이다.
말 그대로 사고였다.
“괜찮습니다.”
도수는 털고 일어났다.
의사만 여럿이 있다 보니, 이시원이 재빨리 구급상자를 가져와 응급조치를 해주었다.
“매일같이 출동해도 이런 사고는 없었는데… 에이급 장비를 가져왔으니 고장은 아닐 테고, 장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겠죠.”
어느 때보다 사전 준비는 철저했을 터였다. 그런데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가벼운 화상을 입고 말았다. 흉이 남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쓰리고 아팠다. 감각도 일시적으로 무뎌진 느낌이었다.
상태를 확인한 이시원이 말했다.
“화상은 심하지 않습니다.”
그건 도수도 봐서 안다.
지금이야 고통스럽지만 연고 바르고 시간 좀 지나면 가라앉을 상처였다.
문제는 슬슬 욱신거려 오는 옆구리.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도수에게는 환부를 확인할 남다른 비법이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쓰고 상의를 들어 올리자.
갈비뼈에 미세한 금이 보인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 같은데.”
“좀 더 걷어보시겠어요?”
도수가 상의를 반쯤 탈의하자.
아니나 다를까 부어오르고 있는 옆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시원의 얼굴도 심각하게 굳었다.
“이거… 최소 일, 이 주 정도 수술은 못 하시겠는데요. 지금 잡힌 수술들은 다른 교수님께 넘기겠습니다. 미룰 수 있는 건 미루고요.”
그러나.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예?”
“지장 없을 겁니다.”
도수는 확신했다.
옆구리 통증은 거슬릴 정도라 일시적으로 투시력이 약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투시력이 있는 이상 수술의 정확도에는 차이가 없을 터였다. 속도야 살짝 떨어지긴 하겠지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이시원을 본 도수가 피식 웃었다.
“진짜 괜찮아요. 이 정도는.”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김광석이 한마디 했다.
“그만해서 다행이긴 하다만… 그래도 휴가 받은 셈 치고 좀 쉬지 그래?”
“당장 큰 수술은 없으니까 살살 할게요. 응급 환자 들어온 상태에서 인력이 달리면 그땐 어쩔 수 없고요.”
도수를 빤히 응시하던 김광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무리해서 나서진 말았으면 한다. 센터장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지만 가벼운 부상은 아니야. 우리 손동작 하나에 인명이 달렸음을 잊으면 안 된다.”
“물론입니다. 환자 목숨 가지고 도박할 생각 없어요.”
대답한 도수가 이시원에게 물었다.
“처치 끝난 건가요, 선생님?”
“아, 예…….”
“실력이 좀 는 것 같기도 하고.”
도수가 어깨를 두드리자.
이시원이 안색을 붉혔다.
같은 남자끼리 묘한 반응이다.
피식 웃은 도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남들 같으면 신음이라도 한마디 뱉을 통증이 동반됐으나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긍정적인 판단을 했다.
‘서서 수술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어.’
전쟁터에서 반군을 피해 뒤도 안 보고 내달리고 총탄과 포탄을 피해 몸을 내던지다 보면 이런 골절상은 예삿일이었다.
도수는 그때도 수술을 했다.
자신이 아니면 환자는 사망할 테니까.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한 그는 헬리콥터가 내려앉은 쪽을 바라봤다.
“장비 바꾸고 다시 할게요.”
“예?”
교관이 되묻자.
도수가 말했다.
“어차피 레펠 타는 데에는 문제없잖아요?”
고정된 상태로 내려오니 특별히 움직일 일은 없다. 이를 악물고 참을 수만 있다면 상태가 악화될 일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래도 부상을 당하셨는데…….”
“장비가 또 고장일 리도 없고.”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물론, 같은 사고가 하루에 두 번이나 반복될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수의 과감성이 납득되는 건 아니었다. 보통 사고를 겪은 직후에는 초조함과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그 같은 감정들은 트라우마로 발전하기도 한다. 적어도 방금 죽을 뻔했던 사람이라면 그 정도 반응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도수는 정반대였다.
“뭐든 수업료가 드는 거니까… 얼른 합시다.”
‘두 번’이 없는 전장에서 매일같이 목숨을 걸었던 도수이기에 이 정도 사고는 익숙했다. 그에게 사고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두 번, 세 번이라도 반복해서 적응하고 대비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만하면 수업료 낸 셈 치는 것이다.
김광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말리겠군.”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도수에게서 레펠의 재능을 보았다는 것.
불발적인 위기상황에 배우지도 않은 패스트 로프 자세로 대처할 수 있는 기지와 반사 신경을 갖췄다면, 머잖아 악천후도 뚫고 구조를 나가는 훌륭한 현장 인력이 될 수 있을 터였다.
***
레펠 사고 후.
도수가 수술 일정을 조정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본 것이다.
그동안 어떠한 장애도 없이 마음껏 집중하고 수술해 왔다.
여기서 제약이 생긴다면?
제약이 생긴 상태에서 최고치까지 집중력을 끌어 올려서 투시력을 쓴다면.
후에 집중력을 온전히 되찾았을 땐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를테면 태권도 선수가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을 받다가 모래주머니를 제거했을 때, 훨씬 스텝이 가벼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나는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진 도수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하연이 떨리는 눈동자로 화상이 모두 가시지 않은 손에 수술 장갑을 씌워주었다.
“센터장님, 괜찮으세요…?”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수술대 앞으로 가서 환자와 바이탈을 확인했다.
삑. 삑. 삑. 삑.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시원이 물었고.
도수는 대답 대신 환자의 환부를 응시하며 말했다.
“칼.”
턱!
칼자루를 쥔 도수가 두 눈을 감았다 뜨자.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동했다.
동시에 낡은 보물 지도처럼 투영되는 환자의 몸속.
그 누구도 이처럼 불편한 상태로 수술을 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전쟁터에서 겪은 경험과 더불어 ‘수술 길’이 보이는 도수만은 가능했다.
완벽한 수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