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보답
두 시간 후.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고.
도수는 싸늘한 공간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두 레지던트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인사했다.
간호사 이하연이 수술 장갑을 씌워주고.
수술대 앞으로 걸어간 도수가 입을 뗐다.
“오늘 수술의 관건은 정확성입니다.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환자한테는 치명적이에요.”
“네……!”
그를 보조하게 된 레지던트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수에게는 오늘 수술도 무수한 수술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두 레지던트에게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을 만큼 사이즈가 큰 수술이었다.
“칼.”
도수의 입이 떨어졌다.
턱!
메스를 받은 그가 칼끝으로 환자의 등허리를 푹 찔렀다.
척추 상단.
이곳에 혈전이 있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이 그 같은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도수는 레지던트들이 들으라는 듯 상황을 중계했다.
“혈전이 척추로 날아가서 사지마비가 온 환자의 경우 티 원(T-1: 척추 위쪽) 위치한 뼈 넘버) 위쪽이 문제일 확률이 큽니다.”
C1~C7까지.
혈전이 숨은 곳을 찾아내야 한다.
일일이 절개해 가며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수는.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을 통해 척수동맥 내부를 훑고 있었다.
“이 환자의 혈전은 씨 포(C-4) 위치의 뒤 척수동맥에 생겼습니다.”
“그걸 어떻게……!”
레지던트들이 눈을 부릅떴다.
열어보지도 않고 어디 혈전이 있다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집도의인 도수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집중하세요.”
“……!”
두 레지던트가 흠칫하며 수술부위에 집중했다.
그러자 도수가 혈관을 찾아서 말했다.
“잡아요.”
“아……! 죄송합니다.”
임재영은 뭐가 죄송한지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혈관을 잡았다.
마치 미꾸라지를 잡은 것처럼 미끄러웠다. 인턴 시절 여러 번 수술에 참여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혈관을 직접 쥐는 건 처음이었다.
“너무 세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네!”
“느슨한 것보단 조금 센 듯한 게 낫습니다. 손에서 미끄러지면 숨어버린 혈관을 다시 찾아야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혈관을 끊어먹는 의사는 없다. 대개 꽉 잡으라고 해도 꾹 잡는 척만 하는 것이다. 반면 혈관을 놓치는 실수는 자주 일어나는 사고였다.
물론 도수의 경우 투시력으로 다시 찾으면 그만이지만 대부분은 그리 쉽지 않다.
임재영이 적당한 힘을 가하자.
도수가 말했다.
“켈리.”
이하연의 손을 거쳐 가위가 넘어왔다.
“출혈 심해져요.”
도수의 한마디에 마취과 선생이고 간호사들이고 할 것 없이 긴장했다.
그리고는.
혈관을 묶은 도수가 가위질을 했다.
서걱!
푸슉!
혈관이 잘려 나가며 순식간에 핏물이 차올랐다.
“거즈.”
꾹꾹.
거즈를 눌러 담은 도수가 그보다 더 빠르게 피로 물든 거즈를 패대기쳤다.
촤악! 촤악!
“석션.”
치이이이이이익!
핏물이 빨려 들어가고.
도수는 동맥을 틀어막고 있는 혈전을 제거했다.
“이게…….”
두 레지던트가 토끼 눈을 뜬 채 혈전을 보았다. 직접 혈전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도수가 말했다.
“타이.”
남민수는 알아서 동맥의 크기에 맞는 봉합침과 봉합사를 건넸다.
정답이었지만.
도수의 봉합 실력은 표준보다 훨씬 정교했다.
“더 얇은 걸로.”
“……!”
남민수는 토 달지 않고 더 가는 봉합침과 봉합사를 주었다.
‘이걸로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더 촘촘하게, 더 정교한 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건넨 봉합침과 봉합사는 동맥을 파고들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늘었다.
자칫 봉합침이 부러져서 환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
하지만 도수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어진 말투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포셉.”
고개를 살짝 들어 남인수를 응시한다.
“잘 잡아요.”
동시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타이가 펼쳐졌다.
슥, 스윽.
봉합침은 놀랍도록 부드럽게 혈관을 파고들었다.
두 자루의 포셉이 기계적으로 교차하며 봉합사가 혈관을 조여주고.
“컷.”
임재영이 실을 잘랐다.
툭!
“더 가까이.”
도수의 지시는 간결했지만 명확했다.
스윽, 슥.
순식간에 매듭이 완성됐다.
“컷.”
툭!
교차점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실밥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매듭이 풀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도수는 그 와중에도 예리하게 길이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슥, 스윽.
촘촘하게 이어지는 매듭.
“컷.”
툭!
‘빠… 빠르다!’
모두의 뇌리를 관통한 한마디일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빠를 수 있지?’
도수는 괜히 수술의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정말 어려운 수술도 귀신같은 솜씨로 해냈다.
그에 따라 점차 동맥이 원상태를 찾았다.
수술이 할퀴고 간 봉합 부위는 끔찍한 흉터를 남기는 법인데도 도수가 봉합한 곳은 마치 박음질을 한 듯 정갈했다.
차라리 예술에 가까운 신기.
“대단하세요.”
남민수는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태풍처럼 휩쓸고 간 수술과정.
기가 막히게 색전의 위치를 찾아내고 제거하고 봉합하는 것까지.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
“수술에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일침을 들은 남민수는 뜨끔했다. 감탄할 틈도, 잠깐의 망설임도 없었다. 적어도 도수의 수술은 물 흐르듯 끊임없이 흘렀다. 그 유수에 잠겨 시간이 흘렀고, 눈 떠보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그사이 혈관 봉합을 마친 도수는 살가죽을 꿰맸다. 포셉 두 자루를 귀신처럼 다루는 것도 모자라 손놀림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칼과 실을 다루는 써전이라면 누구라도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컷.”
툭.
마지막 실밥이 잘려 나가고.
도수는 봉합한 실 자국을 손으로 쓸었다.
‘돌아올 겁니다.’
그래야 한다.
수술은 잘 끝났으니 이제 기다림만 남았을 뿐이다.
환자가 깨어나기 전까진 어떤 결말도 장담할 수 없었다.
도수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존경 어린 답례가 터져 나오고.
머리를 한 번 까딱인 도수는 수술복을 벗고 수술실을 나섰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이사장의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은 잘됐나요?”
“현재로선……”
도수가 말끝을 흐렸다.
왜 왔냐는 뜻.
비서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역시 센터장님이시네요. 이사장님께서 찾으십니다.”
“…….”
또 무슨 일일까?
도수는 위생두건을 풀며 말했다.
“가시죠.”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사장실로 향했다.
도중, 비서가 먼저 말을 붙였다.
“이사장님께서 센터장님을 굉장히 눈여겨보고 계세요.”
“그러신 것 같습니다.”
도수가 대충 추임새를 넣자.
비서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다른 분들과는 다르네요. 센터장님은.”
“제가요?”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사장님의 눈에 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거든요.”
“아아.”
그게 끝.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지 않자 비서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호기심만은 막지 못했다.
‘특이한 사람.’
비서가 보는 도수는 그랬다.
그 누구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당당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왕도보다 더 왕도를 걸어왔다. 최연소 전문의, 최연소 센터장, 최연소… 뭐든 ‘최연소’란 딱지를 휩쓸었다.
남들은 피를 토해가며 이, 삼십 년씩 볼 꼴 못 볼 꼴 다 봐가며 오르는 과장급 자리를 승천하듯 고공승진을 해서 거머쥐었다.
이건 보수적인 의사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도수라는 규격 외의 수술 귀신은 그 같은 기적을 이뤄냈다.
그를 시종일관 부담스러운 눈길로 응시하던 비서는 이사장실 문을 직접 열어주며 말했다.
“이사장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정작 도수는 한 번 끄덕이고는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로 자연스럽게 문턱을 넘었다.
그러자 소파에서 앉아 있던 이사장이 서류철을 접으며 자리를 권했다.
“앉지.”
도수가 자리에 앉았다.
턱을 괴고 그를 응시하던 이사장이 마침내 입을 뗐다.
“일본에 아사다 류타로라는 써전이 있다.”
“…….”
일본에 있는 외과의 하나 알려주자고 바쁜 사람을 부른 건 아닐 터.
도수가 잠자코 기다리자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네가 심장성형술 논문을 완성하기 전까진 흉부외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불렸지. 지금의 너처럼 수술의 귀재기도 하고.”
“그렇군요.”
대답하면서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도수.
그를 빤히 보던 이사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심장성형술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확장성 심근병증 환자들을 살리고 싶다고 했지?”
“물론입니다.”
“아사다가 인정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왜 그의 인정이 필요하죠?”
“바티스타 수술에 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이 일본이니까. 심장성형 분야에서 세계적인 입지가 가장 큰 곳도 일본이다. 내가 얘기한 아사다 류타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좀 더 빨리 이 수술을 상용화시키려면, 너 말고도 이 수술을 할 수 있고 하려고 하는 실력자가 필요해.”
“그건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그래. 그리고 그 기회가 생겼다.”
“어떤 기회요?”
“오성그룹 임옥순 여사께서 네게 보은을 하고 싶다면서 오성그룹 자매병원인 동일본병원으로 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 널 포함한 응급외상센터 직원 모두에게.”
꼭 심장성형술이 아니더라도 응급외상센터를 좀 더 체계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선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응급외상센터가 상대해야 하는 재난 피해 환자들.
국내에선 아로대학병원만 외상센터의 표본이 되고 있지만, 재난이 자주 발생하는 동일본의 외상센터 시스템은 또 다른 장점이 있을 터였다.
도수는 혹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센터 사람들 전부가 가면 누가 남죠?”
“연수 기간 세 달은 응급외상센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일종의 무기한 쿠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두가 평등한 기간 동안 연수를 갈 수 있으니 순서는 중요치 않아.”
이젠 걸리는 점이 사라졌다.
“…내부적으로 일 차 파견팀을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래. 대신 임옥순 여사께서도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부탁이요?”
고개를 끄덕인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일 차 파견팀엔 네가 직접 갔으면 하시더구나.”
“왜죠?”
“손녀분이 일 차 파견팀에 동행하신다.”
“…전 손녀분과 아무 연관이 없는데.”
“널 믿음직한 책임자로 여기시는 게지.”
나유하를 떠올린 도수가 물었다.
“손녀분은 왜 가시는 거죠?”
“언젠간 오성그룹과 오성병원을 책임지게 될 테니까.”
“조기교육인가요?”
피식 웃은 이사장이 대답했다.
“비유가 적절하구나.”
그는 도수에게 미련이 남는지 은근슬쩍 몇 마디 덧붙였다.
“믿음직한 손녀가 있으니 참 부럽구나. 우리 나이쯤 되면 평생 일군 것들을 잘 지키고 키워 줄 누군가를 모색하기 마련인데.”
그러나 도수는 모른 척 말을 돌렸다.
“저 바쁩니다.”
“안다.”
“일일이 손녀분 스케줄에 맞출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연수까지 주선해 준 마당에 그냥 좀 가지.
한숨을 내쉰 이사장이 말했다.
“우리 병원을 생각해서라도 아직 외상센터가 자리 잡히지 않은 지금 다녀오는 편이 낫다. 구성 단계부터 일본 외상센터의 장점을 흡수해서 만드는 게 나아.”
일 리 있는 의견인지라 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환자들과 얘기해서 스케줄 맞춰보죠.”
“그래.”
고개를 주억거린 이사장이 덧붙였다.
“손녀분은 전문가가 아니니 네가 옆에서 설명도 좀 해주고. 무슨 말인지 알지?”
김옥순 여사가 크게 마음을 써줬으니 그 정도는 해야겠지만.
도수는 나유하를 달고 다닐 생각에 벌써부터 귀찮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