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72화 (72/152)

# 72

마음가짐

그날 밤.

도수는 휴대폰 메일을 확인했다.

두 통의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

한 명이라도 정답에 근접하면 선방한 거라고 생각했건만.

두 사람 모두 환자의 환부를 정확히 파악했다.

척추로 날아간 색전.

‘제법이군.’

색전은 발생한 지 여섯 시간 이내일 경우 CT 사진상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레지던트들이 본 것 역시 CT 사진.

그들이 특별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은 CT 사진만 보고 색전을 찾아낸 것은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다.

‘머리 싸맸겠군.’

도수가 피식 웃는 순간.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철컥,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정영훈이었다.

“동생.”

씨익 웃는 그.

도수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병원에선 직함으로 불러주시는 게.”

“아, 그렇지. 센터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정영훈은 대답 대신 양손에 들고 있는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저녁 거르셨을 것 같아서.”

“그게 용건은 아닐 것 같지만…….”

도수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세요.”

고개를 끄덕인 정영훈이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비닐봉투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는 핫바와 시원한 사이다를 내놨다.

“없는 돈에 사왔습니다.”

치익.

사이다 캔을 딴 도수가 물었다.

“용건은요?”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사촌지간인데 이렇게 서늘하기 있나… 요?”

어색하게 ‘요’ 자를 붙인다.

도수는 사이다를 한 모금 들이키고 말했다.

“그건 용건 들어보고 판단하죠.”

“내가 가져온 정보를 아시면 기겁하실 텐데.”

“사 오신 음식은 잘 먹겠습니다.”

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정영훈이 두 손을 허우적대며 말했다.

“아이, 왜 이러시나? 앉아요.”

도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전한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쉰 정영훈이 입을 열었다.

“아까 우리 형님… 그러니까 신경외과 정영록 교수께서 응급의학과 조근현 교수를 은밀하게 찾아가셨더랍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정영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고급 정보를 듣고도 그렇게 태연하기입니까?”

“어떤 점에서 고급 정보라는 건지.”

“비극적이지만 형님은 우리 센터장을 굉장히, 아주, 무척 거북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요?”

“제 생각에는 엄승진 환자 이야기가 오갈 것 같은데.”

“그 이름이 왜 나와요?”

“조근현 교수가 색전 제거 수술에 못 들어가면 대안 있습니까? 김광석 교수님은 그 시간에 수술 일정이 잡혀있고. 그 환자, 한시가 급하다고 알고 있는데.”

“타과 일에 관심이 많으신 듯합니다.”

“그건 센터장님도 마찬가진 것 같고.”

“그래서… 정영록 교수가 환자 목숨을 걸고 장난질을 친다?”

“솔직한 말로 딱 좋은 케이스 아닙니까? 아직 색전이라고 확실히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술하겠다고 했으니.”

CT 결과에 ‘이상 없음’ 소견이 나왔으니 MRI를 찍어보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지마비가 온 환자에게 MRI 순번을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응급’으로 분류해 우선순위로 MRI 검사를 받게 하기도 정확한 진단명이 나오지 않았으니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 가능한 전문의가 부족해 수술이 미뤄진다면?

그로 인해 환자가 잘못된다 해도 병원 측은 FM대로 한 것뿐이니 책임 소지가 없다.

그렇게 되면 환자 유가족들은 분명 ‘색전 제거 수술’을 주장하면서도 차일피일 수술을 미룬 주치의 도수를 물고 늘어질 터.

최악의 경우 법정 싸움까지 갈 수도 있다.

승소한다 해도 상처뿐인 상처가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도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한 가지는 확실히 하죠.”

“뭘……?”

“저는 조근현 교수를 믿습니다.”

“아직 병원 정치를 잘 모르나 본데…….”

“아뇨.”

도수는 정영훈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분도 의사입니다. 의심조차 하면 안 될 의심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물론 나도 그분을 의심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일 터지고 후회하는 것보다야 낫지. 그래야 대안이라도 세울 거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왜?”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정영훈.

그런 그에게, 도수는 답답함을 한 번에 깨부숴 주는 한마디를 뱉었다.

“어차피 조근현 교수를 수술방에 데리고 들어갈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뭐라고?”

“그보다 제가 궁금한 건.”

도수는 호랑이 같은 눈으로 물었다.

“왜 평생 함께 산 형보다 생전 처음 보는 사촌 동생을 돕는 겁니까?”

“…….”

그 시선을 회피하지 않은 정영훈이 대답했다.

“남보다 못한 혈육이란 말이 있죠. 내게 우리 형 정영록 교수는 그런 존재입니다. 원래는 존경하는 형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야망에 잡아먹힌 괴물에 불과해요.”

“…….”

도수가 대답하지 않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때 이도수 센터장이 그 양반의 야심을 가로막았습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정영록 교수에게 중한 건 의중이 아닌 의심이에요. 이도수 센터장이 자신이 한평생 꿈꿔온 할아버지의 재단을 통째로 삼킬지 모른다는 의심.”

그 순간.

도수가 불쑥, 피식하고 웃었다.

“왜 웃어요?”

“그냥… 그딴 게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중요한가 싶어서.”

“그건…….”

“제가 돈과 권력에 관심 없는 이유는 간단해요.”

“……?”

“성인군자라서? 아닙니다.”

“그럼?”

정영훈이 묻자.

도수가 위화감이 풍기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어떤 일도 죽어가는 생명을 살렸을 때의 희열에 미치지 못합니다. 세상 모든 건 손에 넣으면 질리지만 이 일은 끝이 없어요. 제 삶엔 이 이상의 자극도, 이 이상의 성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그 시각.

정영훈의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정영록과 조근현은 동기 간에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나 조근현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잔을 밀어낸 그가 물었다.

“난 물 마시지.”

“오랜만인데 너무 쌀쌀맞은 것 아닌가?”

정영록이 서운한 투로 대꾸했지만.

조근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언제 콜이 올지도 모르고.”

“쉬엄쉬엄해. 우리도 이젠 그럴 위치가 됐잖아.”

“신경외과는 그런가?”

“하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린 정영록이 고개를 저었다.

“좋은 음식 앞에 두고 무슨 기 싸움이야? 그런 뜻 아니니 오해 말게.”

“오해가 생겨. 그러니 본론부터 꺼내고 추억팔이든 의기투합이든 하지. 날 왜 보자고 한 거야?”

불편한 표정.

정영록이 생각하던 것과 너무 다른 분위기였다.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물었다.

“그럼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이도수 센터장. 자네 자리를 꿰찼잖아?”

“내 자리였나? 그 얘긴 처음 듣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정영록이 술을 홀짝이며 말했다.

“…나도 이도수 센터장의 수술 실력은 인정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어린놈이 천하대병원의 룰을 제멋대로 바꾸고 우리 같은 장기 근속자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못 참겠네.”

“그래서?”

“자넨 그 녀석을 집도의로 앉히고 수술하고 싶나?”

“…….”

조근현은 단숨에 물 잔을 비우곤 입을 뗐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나보고 내일 수술에 들어가지 말라는 거지?”

“색전이 있는 게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만약 색전이 아니면? 정밀 검사도 없이 환자 몸에 수술 자국을 새긴 걸 어떻게 해명할 셈이지?”

“그건 걱정할 것 없어.”

피식 웃은 조근현이 덧붙였다.

“어차피 내일 수술은 나 대신 들어갈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까.”

“뭐… 뭣?”

정영록은 자칫 입에 머금었던 술을 뱉을 뻔했다. 그 정도로 놀랐다. 조근현을 제외하면 응급외상센터에서 ‘색전 제거 수술’에 들어갈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광석을 비롯한 레지던트들은 모두 수술이 잡혀있는 상황.

“누가 들어간다는 거야? 그것도 둘씩이나?”

“그건 내일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조근현은 겉옷을 챙기며 말했다.

“실망이군.”

“뭐라고?”

정영록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조근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도 이도수 센터장이 마음에 안 들어.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가 환자를 건강하게 치료했으면 좋겠다. 내 개인적인 감정은 내가 싸워야 할 부분이고, 그게 의사의 본분이야.”

“너 지금……!”

“우리가 애들한테 가르쳐야 할 건 그런 것들이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추악한 정치질이 아니라.”

“너 미쳤어? 내가 누군지 몰라?”

조근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다. 그래도 이도수 센터장 덕분에 너한테 바른 소리도 해보는구나. 어쨌든 음식은 손도 안 댔다. 물값이랑 자리값은 내가 셈하고 갈 테니까 나중에 딴소리 마라.”

드르륵, 탁!

미닫이문을 소리 나게 닫은 조근현이 일식집 룸을 떠났다.

뒤에 홀로 남은 정영록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개자식.”

그는 연거푸 술잔을 채워서 들이켰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긴 했는데 반격할 수 없는 기분. 쉽게 말해 기분 참 더럽다.

이 병원과 재단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 하나로 달려왔다. 지난한 의대 공부를 마치고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인턴 성적도 일 등, 셀 수 없이 많은 수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

그 공든 탑이 단숨에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도수란 사촌이 몰고 온 바람에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이다.

“절대 안 빼앗긴다.”

평생 누군가한테 뭘 빼앗긴 적도, 무언가를 포기했던 적도 없었다. 가지고 싶은 건 전부 다 가져왔다.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정영록은 더더욱 이도수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위협이 안 됐던 자신의 길에 거대한 장애물이 나타난 셈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할아버지의 신뢰가 요 근래 도수에게로 향하는 것 역시 못마땅했다.

정영록의 머릿속은 온통 이도수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도수는 응급의학과 전원을 이끌고 회진을 돌았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백색 물결이 파도처럼 복도를 휩쓸었다.

“안녕하세요.”

도수의 회진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여.

회진의 마지막 환자인 엄승진에게도 발길이 닿았다.

“컨디션은 어떠십니까?”

도수가 묻자 엄승진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감각이 없는 팔다리를 응시했다.

“여전히… 아무 느낌도 없습니다. 선생님, 저 운송업만 하던 사람입니다.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도,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일을 안 하면 멀리 계신 부모님 봉양도 못 해요. 두 분 다 요양원에 계십니다. 아직 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 말도 못했어요. 이게 무슨 불효랍니까? 제가 일을 해야 돼요. 제가…….”

목이 막히는지 목소리가 끊겼다.

그러더니 횡설수설.

같은 말을 반복한다.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저를 꼭 좀 고쳐주세요. 다시 일을 해야 합니다…….”

도수는 감각이 없는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최선을 다할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울컥.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그럼에도 엄승진은 자기 힘으로 눈물을 닦지 못했다. 다 큰 남자가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엉엉 울면서도 그 모습을 감출 수조차 없는 것이다.

도수는 그를 가려서며 어깨의 감각을 확인하는 척 손수건을 빼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감사합니다…….”

“혈전을 제거한다 해도 감각이 어디까지 돌아올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살려보겠습니다. 환자분도 그렇게 믿어야 몸이 도와줍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 들어보셨죠?”

“예…….”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도 최선을 다할 테니.”

“알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어깨를 두드린 도수가 환자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병실을 나서기 무섭게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남민수, 임재영 선생.”

“예……!”

굳은 표정의 두 사람이 나서자.

도수가 입을 열었다.

“수술 들어와요.”

“……!”

그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그래도 회진하면서 환자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선 과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물밀 듯 치밀어 올랐다.

“…….”

그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조근현 교수와 김광석 교수를 향했다.

자신들보다 두 사람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하는 의문.

그러나 조근현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말을 했다.

“이미 내부적으로 상의가 끝난 사항이다. 이사장님 재가도 떨어졌고. 두 사람 모두 채용하기로 결정됐으니 부담가질 필요 없다. 돋보이거나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하던 대로… 수술방에서 환자를 살리는 건 팀웍이다.”

“네, 교수님.”

“알겠습니다.”

남민수, 임재영이 차례로 대답하고.

김광석이 남민수의 어깨를 짚으며 덧붙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팀웍을 만드는 건 집도의야. 그리고 자네들 집도의는 센터장님이지. 어떤 상황이든 최선의 결과를 끌어낼 테니 열심히 돕게.”

“예……!”

김광석, 조근현과 차례로 시선을 맞춘 도수는 두 사람에게 지시했다.

“피 신청하고 수술방 세팅해 주세요. 두 시간 후 수술 들어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