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71화 (71/152)

# 71

도수의 시험

도수는 레지던트 1년 차들을 줄줄이 달고 응급실로 향했다.

환자 앞에 도착한 레지던트들이 숨을 헐떡이며 도수를 바라보았다.

“헉, 헉…….”

그들은 도수를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뭐가 이렇게 빨라?’

손만 빠른 줄 알았는데.

발도 빠르다.

아니, 체력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이 넓은 천하대병원을 가로질렀는데도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물론 도수가 이런 체력을 가지게 된 건, 투시력의 도움이 컸다. 투시력을 언제든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남들 자는 시간에 일찍 일어나 아침마다 병원 주위를 뛰었던 덕분이다.

환자 앞에 선 도수의 두 눈이 빛났다.

샤아아아아아아.

먼저 환자를 보고 있던 강미소가 설명했다.

“복수가 찬 환자입니다.”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복수천자(腹水穿刺: 주사로 복수를 빼내는 것)가 필요하겠죠. 누가 해보겠습니까?”

“……!”

레지던트들이 눈을 부릅떴다.

대뜸 복수천자라니.

물론 레지던트 1년 차 정도면 복수천자 정도는 꿰고 있다. 하지만 같은 레지던트 1년 차라도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인턴을 막 뗀 초짜들. 실제로 해본 경험은 없거나 몇 번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큰 문제는 실수했을 때의 부담감과 두려움.

도수가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그때 번쩍 팔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용기를 낸 레지던트는 남민수였다.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러자 남민수가 진지한 얼굴로 간호사에게 필요한 도구들을 주문했다. 어조나 태도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과연 천하대병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인턴을 마친 인재답게 능숙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았다.

그가 아닌 환자가 불안감을 느낀 것이다.

“끙… 혹시 처음 해보시는 건 아니죠? 어째 실험용 쥐가 된 느낌인데…….”

상의를 걷으면서도 겁먹은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개입하지 않고 담담하게 지켜봤다.

이내 남민수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환자분. 저는 레지던트 1년 차인 남민수라고 합니다. 교수님들보다야 경험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는 저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마음 편히 드시고 안심하셔도 되세요.”

부드러운 미소를 본 환자의 안색이 펴졌다.

“알겠습니다… 믿을게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남민수는 그가 보여준 자신감만큼이나 능숙한 솜씨로 배에 바늘을 찔러 넣고 튜브를 연결해 복수를 빼내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익.

“와우.”

강미소는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단번에 복수천자를 성공하다니, 얼마 전까지 여러 과를 돌던 인턴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정확하고 신속했기 때문이다.

다른 레지던트들도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시선으로 남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둘러 자원하지 않은 게 후회되는 눈치였다.

바로 그때.

도수가 말했다.

“그만.”

“예?”

남민수가 당황하자.

도수는 말없이 환자에게 다가가서 튜브를 제거했다. 복수가 다 빠져나가지 않은 시점이었다.

환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다른 레지던트들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주삿바늘과 튜브를 건넨 도수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이 이상 복수를 빼내면 위험합니다.”

“……!”

남민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복수를 빼내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란 말인가?

복수천자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의기양양했던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의사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죠.”

“아…….”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은 상태로 치료를 들어갑니까?”

날 선 일침이었다.

도수가 자기 입으로 복수천자를 지시했으니 교묘한 함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복수천자를 하라고 했지, 환자가 어떤 상태이며 얼마나 빼내라고 지시한 적은 없기에 그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민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수는 환자를 보며 말했다.

“현재 적정량의 복수를 빼낸 시점입니다.”

그리고 남민수를 향해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남 선생이 환자 몸에 손을 댄 순간부터 모든 책임은 남 선생이 져야 합니다. 환자 아닌 누구한테도 미안할 필요 없어요. 단 그러려면, 누군가한테 의지해선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이든 본인이 판단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믿을 수 있어야 해요.”

“…….”

남민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다른 레지던트들도, 심지어 강미소에게도 귀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감명받았지만.

도수의 테스트는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아무런 내색 없이 이어서 물었다.

“복수천자를 멈춘 이유는?”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강미소만이 정답을 아는 눈치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스윽.

한 사람, 한 사람 면면을 일별해도 대답이 나오지 않자 도수가 환자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복수를 대량으로 뽑으면 순환허탈(Circulatory collapse: 흉수나 복수를 한번에 대량으로 뽑았을 때 생기는 순환계 문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재팽창성 폐부종(Reexpansion pulm onary edema: 다시 복수가 차는 현상)을 동반할 수 있고요. 이러한 순환장애가 발생했을 때 주로 어떤 문제가 생기죠?”

모두가 고민하는 사이.

임재영이 선수를 쳤다.

“신기능이 악화됩니다.”

“신기능이 악화되면?”

도수가 다시 묻자.

임재영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간신증후군(Hepatorenal syndrome)이 나타납니다.”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법은?”

“…….”

이번에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레던트들을 둘러본 도수가 그 해답을 내놓았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혈장중량제를 투여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환자분의 경우 자연적으로 복수가 감소하는 걸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일정량 복수의 양을 감소시켜 급한 불을 껐으니 이 차적인 치료는 자연 치유에 맡겨보죠.”

도수가 환자에게 말했다.

“술, 담배 끊으셔야 하고 매일 제가 드리는 식단표대로 드시는 게 좋습니다. 동물성단백질보단 식물성단백질이 낫고요. 앞으로도 음주나 흡연은 불가하고 식단도 삼 년 이상 유지하시는 게 좋습니다.”

“끄응… 그리 살 바엔 죽고 말죠.”

“아직 덜 아프셔서 그래요.”

도수는 냉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 이상 악화돼서 다시 병원에 오시면 그땐 정말 방법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느끼시는 것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요. 보호자 분께도 따로 말씀을 드리겠지만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몸도 도와요.”

살벌한 이야기를 들은 환자의 표정이 우거지상이 됐다.

“그럼 오늘 푹 쉬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도수는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병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민수 선생, 임재영 선생만 따라오세요. 나머지 분들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예?”

“저도 할 수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반발이 솟구쳤지만, 도수는 짤막하게 일단락했다.

“다른 분들이 더 못한 의사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응급외상센터는 특성상 환자를 위해 언제라도 발 벗고 뛰어들 수 있고, 때론 실수도 두려워 않는 성향의 인재가 필요할 뿐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다른 레지던트들은 구시렁거리며 자리를 떴다.

뒤에 남겨진 남민수와 임재영은 웃음을 참으며 서로를 봤다.

하지만 티오는 한 명뿐.

그들은 모르겠지만 이 병원에 남을 사람도 한 명뿐이다.

도수의 입이 열렸다.

“가죠.”

그들은 다음 환자를 보러 갔다.

갑작스레 사지 마비가 진행되고 있는 환자였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쓰며 그가 물었다.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시체처럼 누운 환자가 말을 이었다.

“저 언제 수술하죠?”

“곧 수술 날짜가 정해질 겁니다. 마비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늦어도 내일 중에는 수술 들어가실 것 같습니다.”

환자의 문제를 일찍이 파악하고 있던 도수는 이 환자의 CT와 MRI 사진을 남민수와 임재영에게 건넸다.

“……!”

두 레지던트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이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어째서……?”

그들은 환자의 원인을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 레지던트들은 사진을 지도처럼 보고 문제를 찾아내기 마련인데, 사진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사고에 제한이 생긴다.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도수가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기한은 오늘 자정까지. 제 메일로 보내세요.”

마비가 진행되는 원인을 알아오란 뜻.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리 자신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기소침해 보였다. 도수의 말에서 그들이 합격한 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든.

도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원인을 밝혀낸 사람만 모레 있는 헬기레펠 교육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군 복무 시절과 아로대학병원 시절에 훈련받은 적 있는 레펠이야말로 임재영이 자신 있는 종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필수 종목으로 채택되진 않았다.

숙제의 정답을 둘 다 맞추거나, 적어도 자신은 맞춰야 레펠 실력을 뽐낼 기회가 올 터였다.

‘해낸다……!’

임재영은 그런 의지를 불태우며 남민수를 의식했다. 처음 도수가 자신을 떼놓고 천하대병원으로 간 걸 알았을 땐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 근무했던 짧디 짧은 시간이 잊히지 않아서 지원한 길이다. 절대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한편 남민수도 그를 흘깃 봤다.

‘내가 간다.’

원래 일 지망이었던 흉부외과까지 포기하면서 남들이 피하는 응급의학과에 지원한 참이다. 그것도 어느 과든 지원할 수 있는 인턴 성적을 가지고서. 이 모든 건 눈앞에 있는 도수의 영향이었다. 그에게 당대 최고의 써전과 수많은 수술을 해보는 건 목숨을 걸어서라도 얻어야 할 경험이었다.

‘절대 양보할 수 없어.’

그렇게 두 사람은 벌써,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다.

***

그 시각.

천하대병원 이사장실에는 퇴원 준비를 마친 임옥순 여사와 그 손녀 나유하가 와 있었다.

“이도수 센터장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임옥순이 고개를 저었다.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할 생각 없습니다. 그저 이사장께 인사도 할 겸, 부탁이 있어서 찾아온 것뿐이에요.”

“부탁이 있으시다고요?”

“그래요.”

주름진 입가에 웃음기가 맺혔다.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우리 이도수 선생한테 뭘 해줘야 할까. 내 생명의 은인인데 말이에요.”

“뇌물은 곤란합니다. 허허허.”

이사장이 실없는 농담을 던지자 어깨를 으쓱인 임옥순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요. 이 늙은이가 가진 거라곤 재물밖에 없는데.”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센터장도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요. 우린 의사이니 환자를 치료하는 게 일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제가 듣기로 이도수 선생이 제 목숨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까지 걸었다던데?”

‘심장성형술’은 성패를 확답할 수 없는 수술이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지요.”

“그래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려고요. 우리 깐깐하신 이사장께서 재물로 보답하는 건 안 된다 하니, 우리 오성병원과 자매결연 되어 있는 동일본대학병원으로의 한 달 연수를 주선해 드릴까 합니다.”

“이도수 센터장을요?”

“아뇨. 센터장뿐만 아니라 가길 희망하는 응급외상센터 소속 의사라면 누구든지요.”

“…응급외상센터는 굉장히 바쁜 곳입니다. 한 달씩이나 응급외상센터 인원들이 자리를 비운다는 건…….”

“교대로 나눠서 연수를 보내세요. 모든 비용은 오성그룹에서 지원합니다.”

빙그레 웃는 임옥순.

그렇게까지 말하자 이사장은 도저히 거절하기 힘들었다.

동일본대학병원이라면 일본에서 가장 명망 높은 병원 중 하나.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응급외상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또한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 아사다 류타로가 떡 버티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두 가지나 세계 일등을 하는 병원인 이상 배울 점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것이다.

특히 연수대상이 응급외상센터라면.

“…감사합니다. 이도수 센터장에게 의사를 물어보겠습니다.”

“그래요. 가기 힘들면 직접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내 목숨을 구해준 팀에게 내가 갚고 싶어서 보이는 작은 보은일 뿐이니. 이번 기회를 계기로 천하대병원도 동일본대학과 좋은 관계를 쌓아봐요.”

“일본의 의학 발전 속도는 대단하죠.”

“국내 권위자들도 미국, 유럽은 몰라도 일본은 인정한다고 들었습니다.”

“누가 더 낫다고 비교할 순 없지만 서로 배울 점이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사장은 가볍게 목례했다.

그러자 임옥순이 턱을 괴고 말했다.

“별말씀을. 이번 연수에는 우리 유하도 같이 갈 거예요. 오성그룹 계열사인 오성병원의 발전을 위해선 미리미리 다른 나라의 병원 시스템을 파악해 둬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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