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70화 (70/152)

# 70

센터장 업무

연구실로 돌아간 신경외과장은 정영록을 불러다 놓고 입을 뗐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안일했다고 생각했어.”

신경외과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니다. 보통 놈이 아니야. 이상한 게 우리 병원에 굴러들어 왔어.”

“…제 생각도 같습니다.”

누구보다 도수에게 가장 큰 위협을 느끼는 사람.

그는 바로 정영록이었다.

단순히 도수가 신경외과 영역을 침범해 망신을 줬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한 핏줄이라는 것에 있었다.

도수야 병원의 이권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지만, 사람 마음은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법.

더욱이 이사장이 그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니 언제 상황이 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젠장.’

순항하고 있던 정영록의 야망이 통째로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내보내야 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사장님을 등에 업고 병원 내의 질서를 제멋대로 흔들고 있습니다. 과별로 정해진 경계도 마음대로 넘나들고 있고요.”

“응급외상센터라.”

톡, 톡…….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신경외과장이 입을 열었다.

“조근현 교수랑 김용찬이. 기존 응급외상센터 인력들과 얘길 한번 해봐야겠다.”

정영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불만이 있을 겁니다. 굴러들어 온 돌이 외상센터를 흔들고 있으니까요. 센터장 자리는 날아갔고 경쟁자는 늘었고 이사장님 직속 라인이 되면서 다른 과에선 배척하고……. 전부 타병원 인력에 일거리까지 늘 판이니 그쪽도 이도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할 겁니다.”

“말은 똑바로 하지. 난 센터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게 아니야.”

신경외과장은 은근히 발을 뺐다.

“우리 병원을 걱정하는 걸세. 그동안 우리 선배들이 지켜왔던 전통과 규율이 무너지는 걸 염려하는 거야.”

“…물론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정영록은 속으로 욕지거릴 뱉었다.

‘여우 같은 늙은이.’

아니나 다를까, 신경외과장은 이 자리를 만들기도 전부터 계획했을 본론을 꺼냈다.

“조근현 교수가 자네랑 동기지, 아마?”

“예.”

“이런 얘기는 동기끼리 편히 얘기해야지 않겠나? 나야 이제 지는 해지만 자네들은 이제부터 우리 병원을 이끌어 갈 주역이니.”

아니.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과장 임기를 늘리려는 신경외과과장이다.

하지만 정영록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비위를 맞추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경외과나 응급의학과나 서로 협업하는 관계이니 그렇지 않아도 자리를 한번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자네 같은 제자가 있으니 아주 든든하구만.”

신경외과장은 그제야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

“에휴… 천하대병원도 다를 게 없네요.”

강미소가 한숨을 푹 쉬었다.

도수가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뭐가요?”

“그렇잖아요! 센터장님이 자기들이 쩔쩔매던 촌충을 찾아주셨는데 고맙단 말 한 마디 없고.”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 환자, 내과로 트랜스퍼하는 건 어떻게 됐어요?”

외과적 치료가 아닌 내과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응급실에는 미리미리 자리를 비워놔야 하니 입원 환자는 내과 병동으로 보내는 게 맞았다.

“안 그래도 그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트랜스퍼는 끝냈고요. 내과 갔다가 윤형근 과장님 만났는데 조만간 센터장님을 찾아뵙겠다고 하시던데요?”

내과과장 윤형근.

천하대병원 타이틀에 걸맞은 권위자이자 이 병원의 진료부원장이었다.

“그래요?”

도수는 형식적으로 물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작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레지던트 면접은요?”

“여기요.”

강미소가 정리해 둔 이력서를 내밀었다.

이력서는 총 여덟 장.

“이것밖에 안 돼요?”

“응급실이잖아요.”

“…….”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의학과는 많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하려는 일을 위해선 최대한 인력을 보충해야 했다.

“바빠질 거예요.”

팔락.

그가 이력서를 넘겨 보며 말했다.

다른 의사라면 표정이 일그러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위해 이곳까지 따라온 강미소는 볼까지 붉히며 흥미진진한 미소를 지었다.

“바라던 바입니다!”

그리곤 나지막이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맨 뒷장 좀 보세요.”

그녀를 일별한 도수는 이력서를 휙휙 넘겨 마지막 장으로 갔다.

그러자.

“어?”

전혀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재영?”

“그러게요. 센터장님 나가시고 인턴 끝나자마자 쫓아 나왔다더라고요. 정말 미친 거 아녜요?”

미쳤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도수야 특별한 경우고, 일반적인 경우 레지던트 1년 차가 병원을 옮긴다는 건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 적어도 다른 병원에 취업하려 해도, 병원 관계자들이 그렇게 볼 것이다.

그런데 임재영은 의사로서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두고 이런 과감한 모험을 한 셈이다.

“내가 안 받아주면 어쩌려고?”

“제 말이요.”

강미소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임재영 선생, 인턴 때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

“그리고 솔직히 우리 편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죠.”

“우리 편?”

“나머진 전부 다 천하대병원 출신이잖아요.”

“니 편 내 편이 어딨어요?”

도수가 미간을 찌푸리자 강미소가 흠칫했다.

“뭐,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솔직히 천하대병원 출신들도 자기들끼리 동질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우리라고 편먹으면 안 되나, 뭐?”

“강 선생.”

나지막이 주의를 주는 도수.

강미소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썩소를 지었다.

“말이 그렇다고요.”

전혀 말만 그런 것 같진 않았지만.

도수는 이력서를 챙겨서 몸을 일으켰다.

“면접 들어갔다 올게요. 무슨 일 있으면 콜하시고요.”

“넵, 염려 마시옵소서.”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의국을 나서서 면접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조근현 교수와 이사장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이사장이었다.

“또 한 건 했더군.”

“소문이 빠르네요.”

도수가 엉덩이를 붙이며 대수롭지 않게 답하자.

빙그레 웃은 이사장이 말했다.

“자네 손이 빠른 거겠지.”

“…더 빨라질 거예요.”

“그래야 할 거야. 그래서 인력을 충원해 주는 거니까.”

두 사람을 보던 조근현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전국 어느 병원 응급실이든 다른 과보다 분주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좋은 위치에 있는 천하대병원 응급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환자가 ‘밀려들어 온다’는 말이 정확했다.

한데 도수는 응급외상센터장으로 부임한 뒤 조금씩 응급의학과의 영역을 넓히려 하고 있었다. 궂은 수술을 도맡아 하질 않나, 일 년에 한두 번 뜰까 말까 하던 긴급 구조용 헬기를 매일같이 가동하고, 이제는 타과 환자들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이 모든 활동들을 앞으로도 활성화시키겠다는 듯 인력까지 충원하고 있었다. 아로대병원에서 새로운 인력이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레지던트를 뽑는단 말인가?

하지만 조근현은 차마 이사장 앞에서 이러한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다. 이사장이 보기에 이런 불만은 일이 많아서 싫다는 직원의 불평처럼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잠시 기다리자 면접장 안으로 첫 번째 면접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천하대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고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지원하게 된 남민수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남민수가 자리에 앉았다.

이사장이 이력서를 넘기며 말했다.

“인턴 성적이 좋구만.”

“감사합니다.”

“이 정도 성적이면 어느 과든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는 건가?”

그에 남민수의 시선이 도수를 향했다.

“이도수 센터장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센터장 때문에?”

“네. 인턴 돌던 시절부터 존경해 왔습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조근현이 물었다.

“어떤 점을?”

“라크리마에서 목숨 걸고 사람을 살리시고, 천하대병원에 오신 후에도 어려운 수술을 척척 해내시는 걸 보며 전율했습니다. 아! 이런 의사가 되어야겠다… 생각하면서요.”

“특이하군. 인턴들 중에는 센터장님을 질투하는 시선도 많다고 들어서.”

“그런 소문이 있긴 하지만 전 아닙니다! 나이나 학벌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씩씩해. 이런 스타일은 금방 번아웃되는데.”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전 응급의학과에 지원하기 전에 단단히 각오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입을 열었다.

“집에도 잘 못 들어갈 겁니다. 아로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의 경우 일 년에 귀가하는 횟수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의사들이 태반입니다. 물론 천하대병원에선 최대한 표준 근무 시간을 준수하겠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기꺼이 환자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의사를 원하고요.”

“각오하고 있습니다. 제 최종 목적지가 응급외상센터라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응급외상센터에서 많은 케이스를 접하며 외과의로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건 약속할 수 있습니다.”

대답한 도수가 나머지 두 사람을 보았다.

“…….”

질문을 끝낸 건 이사장이었다.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남민수가 나갔다.

그러자 빙그레 미소 지은 이사장이 말했다.

“의지가 남다르군.”

“오히려 그래서 조금 걱정됩니다.”

조근현이 대답했고.

도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문제 삼으면 어떻게 뽑겠습니까?”

“뭐라고요?”

“같이 일하면 알게 되겠죠.”

“…….”

조근현이 그를 쏘아보고.

도수는 개의치 않고 다음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여섯 명.

다들 응급의학과에 대한 열정을 표출했다. 아니, 어쩌면 도수와 같이 근무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의지를 보인지도 모른다.

모든 지원자들의 지원 동기는 단 하나.

바로 도수였던 것이다.

“인기가 대단하군.”

이사장의 말에 도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실무를 못 해봐서 그래요.”

겉보기엔 의사답고 멋져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 그 부담감과 피로감에 시달리다 보면 진저리를 치기 마련이다. 아로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선 하루 이틀을 못 버티고 병원을 떠난 레지던트들도 있을 정도였다.

마지막 지원자, 임재영의 면접에 앞서 도수가 말했다.

“티오가 하나뿐인 건 알지만 둘로 추려서 한 달 정도 실무를 시켜보면 어떨까요?”

그 제안에 조근현이 토를 달았다.

“전례 없는 일입니다.”

“전례는 만들어가는 겁니다.”

간단히 대답한 도수가 이사장을 응시했다.

그 눈길을 받고 있던 이사장이 턱을 괴며 말했다.

“전례는 없어도 일리는 있는 말이야. 응급외상센터의 특수성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인력을 뽑는 편이 향후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

“네. 점수를 매겨서 한 명만 남기면 됩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보단 나으니 그렇게 뽑으시죠.”

조근현이 설마 하고 있는 찰나.

이사장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하지만 이사장님…….”

“조 교수. 이 정도는 내 권한으로 처리할 수 있네. 그렇지?”

“…맞습니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받아들어야지. 자, 그럼 다들 바쁠 테니 마지막 사람 들이지.”

그리고 머지않아 임재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아로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근무하던 임재영입니다.”

“아, 그래.”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여기 이도수 센터장과는 구면이지?”

“같이 일했었습니다.”

도수가 대답했고.

임재영이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지원과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도수 센터장님을 존경해 왔지만 그뿐입니다.”

“그럼 왜 굳이 아로대학병원을 그만둬가면서까지 저희 병원에 지원하신 겁니까?”

도수가 묻자 임재영이 꼿꼿이 답했다.

“천하대병원에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천하대병원 응급외상센터에는 출동 인력이 부족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응급구조사 자격증과 헬기 레펠 경험도 있습니다.”

불과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임재영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도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삐비비빅. 삐비비빅.

호출기가 울렸다.

‘긴급’이다.

“환자입니다.”

반통보식으로 양해를 구한 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임재영에게 말했다.

“다른 지원자들 데리고 따라오세요. 실력 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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