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69화 (69/152)

# 69

내과적 치료

“촌충(寸蟲)입니다.”

“촌충……?”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김광석이 눈을 치떴다.

“혈전도 아니고 벌레 때문이라고?”

“네.”

뇌 속에 기생충이 있다는 뜻.

한 마리의 촌충은 하루에 이십 개에서 삼만 개까지 알을 낳는다.

대부분은 배설이 되는데, 유충과 달리 촌충의 알은 장의 벽을 관통할 수 있어 혈류로 흘러들어 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혈류를 타면.

우리 몸 어디에든 닿을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본 김광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촌충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겠군. 하지만 속단하긴 일러. 촌충이라면 숙주의 면역반응을 차단하고 체액의 흐름까지 조절할 테니까 증상을 못 느껴야하지.”

“맞아요.”

도수는 순순히 수긍했다.

단순히 벌레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촌충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촌충이 아니라면?”

촌충은 분비물을 뿜어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막을 형성한다. 그 보호막으로 인해 인체의 자체적인 면역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가 된 것처럼.

문제는 스텔스 기능이 고장 났을 때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광석이 중얼거렸다.

“면역 체계가 깨어나겠지.”

레이더에 잡힌 전투기는 방공포의 공격을 받게 될 터.

“맞아요. 기생충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럼 주위 조직이 부어오르기 마련이죠.”

“그게 뇌에 있다면……?”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명적인 겁니다.”

이제는 갑작스러운 발작 증세도.

점차 시력이 멀고 걷기 힘들어하는 이유도 해결이 된다.

만약 이대로 두면 부종으로 인한 뇌 기능 상실로, 환자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망할 수 있는 것이다.

“맙소사, 정말 촌충이라면……!”

상상도 못했던 기발한 생각에 김광석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도수 말대로 촌충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치료를 받으면 되니까.

신경외과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환자.

두 손 놓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했던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생긴 셈이다.

김광석과 시선이 마주친 환자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촌충이 뭔데 그럽니까?’ 묻는 듯이 불안한 눈빛. 그러나 아직 확진이 안 된 시점에 확답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

김광석이 말했다.

“다시 오겠습니다. 최대한 마음 편히 가지고 계세요.”

환자를 타이른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나 좀 보지.”

병실을 나서기 무섭게.

김광석의 입이 다시 열렸다.

“정말 촌충 때문이라고? 만약 촌충이라면, 촌충이 있다는 걸 어떻게 발견했지? 씨티에도 잡히지 않은 걸 그저 얼굴을 본 것만으로.”

그에 도수가 되물었다.

“제가 어떻게 발견했겠어요?”

“무슨 소리야?”

투시력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에 도수는 다른 말을 했다.

“아직은 신경외과에서 추측했을 법한 가능성들을 배제한 또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죽게 할 수는 없잖아요. 증명할 방법도 있습니다.”

“…어떻게?”

CT에도 나오지 않는 촌충이다.

그걸 무슨 수로 증명한단 말인가?

미간을 찌푸린 김광석을 마주 보며 도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엑스레이로 대퇴부를 찍으면 됩니다.”

“대퇴부를?”

“기생충은 머리보단 대퇴부 근육을 더 좋아하니까.”

“머리에도 있다면 대퇴부에도 있을 거다?”

김광석은 눈을 반짝였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엑스레이상으로 촌충이 나타날 것이다.

‘반대로 촌충이 없다면?’

불필요한 검사가 될 수도 있으나.

굳이 검사를 하지 않아도 매번 귀신같이 환자의 상태를 잡아냈던 도수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신뢰가 갔다.

“신경외과에서도 꼬치꼬치 묻지 않고 환자를 내줄 거야. 그 환자를 골칫덩이처럼 생각할 테니까.”

“태도는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한텐 다행인 셈이죠.”

도수가 빙그레 웃었다.

“환자한테도 그렇고요.”

“후… 만약 네가 신경외과 수술을 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우리가 독박을 쓰게 될 거다.”

“그럴 거예요. 하지만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편안히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김광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로대학병원이었다면 다른 과의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큰 저항을 받았겠지만… 도수는 확고한 어조로 덧붙였다.

“천하대병원에선 아무도 우릴 막을 수 없습니다.”

이사장 직속인 별개의 조직.

도수가 이끄는 응급외상센터의 현주소였다.

김광석이 팔짱을 끼며 읊조렸다.

“결국 담당 과도, 진단도 불확실한 환자를 우리가 받게 되는 거로군.”

“네. 신경외과에서 원하는 대로.”

미소 띤 도수가 물었다.

“원래 모험적인 분이시잖아요?”

김광석 역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과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지금부터 우린 계속 이런 활동을 하게 될 거예요. 타과에서 손 놓은 환자도, 타병원에서 돌려보낸 환자도, 마지막 희망마저 잃은 환자에게도 최후의 보루가 돼줄 겁니다.”

“……!”

김광석이 몸을 한 차례 떨었다. 소름이 끼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전율이라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가 지난날 아로대학병원에 중증외상센터장으로 부임했던 이유.

라크리마에서 목숨 걸고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이유 모두 방금 도수가 입 밖으로 뱉은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골든아워를 놓쳐서 죽어가는 환자들이나, 의사가 부족해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런데 이젠 한술 더 떠서 갈 곳 없는 환자들의 등대가 되어줄 수 있는 셈이었다.

마치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보듯.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이 같았다.

김광석은 바로 그 사실에 전율했다.

“고맙다.”

“……?”

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말을 이었다.

“벌써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줘서.”

“함께 온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그래야 할 텐데요.”

“그런 녀석들로 추려서 같이 오자고 한 것일 텐데?”

“맞아요.”

“그럼 분명 우리와 같은 마음일 거야.”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엑스레이 찍어보죠.”

***

우르르르.

신경외과장을 비롯한 정영록, 두 명의 레지던트들이 환자를 찾아갔다.

환자는 이미 목의 튜브를 제거한 상태였다.

“좀 괜찮으십니까?”

“아… 선생님.”

이십 대 남자의 표정은 어두웠다. 도수에게 촌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고작 코딱지만 한 벌레 하나 때문에 눈이 멀고 다리가 마비되고, 정신 착란 증세가 오고 대소변도 못 가린 채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엑스레이를 찍은 부위도 머리가 아닌 다리지 않은가?

그래서 그는 물었다.

“저, 뭐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전에… 여러 가지 뇌질환이 의심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습니다.”

“그, 그럼 선생님이 치료해 주시면 되지 않나요? 머리가 이상한데 신경외과가 아니라 응급실에서 치료한다는 게 좀…….”

신경외과장은 나지막이 타일렀다.

“죄송합니다만 환자분께서는 조금 특별한 케이스셔서요. 어느 과를 가셔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긴 힘든 상태입니다.”

그렇게 설명한 그가 덧붙였다.

“자세한 건 지금 담당하고 계신 중증외상센터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주실 겁니다. 그럼 이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뜨려던 신경외과장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하필 도수가 길을 막고 서있었던 것이다.

“나한테 볼일 있나?”

신경외과장이 묻자.

도수가 대답했다.

“보고 가시죠.”

“뭐?”

신경외과장이 미간을 찌푸리고.

정영록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건방지게 뭐 하는 짓이야?”

“또 반말.”

도수가 나직이 경고하자 정영록이 흠칫했다. 그러나 도수는 그에게서 눈을 떼며 신경외과장을 보았다.

“보고 가세요.”

“뭘?”

저벅.

바짝 다가선 도수.

신경외과장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도수가 속삭이듯 말했다.

“신경외과에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

“실수?”

신경외과장은 쌍심지를 켰지만 뭐라 하지 못했다. 도수가 휙 지나쳐서 환자에게 다가간 것이다.

“…무슨 헛소린진 모르겠지만.”

그는 돌아섰다.

다른 신경외과 의사들도 줄지어 돌아섰다.

그들 가운데서 환자에게 다가간 도수가 말했다.

“손 내밀어 보세요.”

환자가 손을 내밀자.

도수는 알약 두 알이 담긴 컵을 내밀었다.

“이게…….”

“알벤다졸(Albendazole: 구충제)입니다.”

“……!”

지켜보던 신경외과의들이 술렁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약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은 정영록의 입을 통해 나왔다.

“이도수 선생, 정신 나갔나? 갑자기 무슨 알벤다졸이야?”

도수는 대답 없이 신경외과장에게 시선을 옮겼다. 잠시 눈이 마주치자.

신경외과장이 눈을 치떴다.

“설마……?”

“맞습니다. 촌충이 뇌에 생긴 경우죠.”

“이런 어이없는…….”

신경외과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크게 놀란 건 정영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촌충이라고……?”

지금껏 시도했던 뇌종양을 의심한 방사선 치료, 뇌혈관염을 의심한 스테로이드제 치료들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결론이었다.

충격을 받은 신경외과장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한 거지? 어떻게 촌충이란 결론이 난 거야?”

도수는 그가 마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억지를 부리길 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들이 찾지 못한 환자의 문제점을 찾아낸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도수가 찾은 해결책이 틀리길 바라는 사람들처럼 비쳤다. 이는 환자가 죽더라도 신경외과의 자존심은 지키고 싶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 됐다.

그리고 그건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실수를 하신 건가요? 이 선생님들이 제 병명을 잘못 아신 거예요?”

크게 일그러진 표정.

그동안 고된 치료를 모두 견뎠음에도 차도는커녕 점점 나빠지다가 죽음을 각오할 지경까지 갔던 환자다. 스스로 실험용 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고, 지금 이 순간 그 불쾌한 기분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었다.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정영록이 나섰다.

“그게 아니라…….”

“오진은 아니었습니다.”

가로막은 건 도수였다.

“오진이 아니었다고요?”

아주 짧은 순간, 도수에게 신뢰를 갖게 된 환자가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애쓰며 물었고.

그에 도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환자분이 병원에 처음 오셨을 당시였다면 저 역시 같은 판단을 하고 표준 매뉴얼대로 치료를 했을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차도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진단하게 된 거죠.”

차분한 설명에도 환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의사면 병을 치료해 주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나한테 ‘준비하라’고 했어요……! 사형선고를 했단 말입니다……! 그게 말이 돼요? 아직 스물다섯밖에 안 된 내가…….”

그는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가를 붉혔다. 곁을 지키고 있던 환자의 어머니는 아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환자와 함께 따지기보단 도수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쩔 줄 모른 채 돌처럼 굳어 서 있는 신경외과 의사들.

도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달은 식후에 매일 드셔야 합니다. 복통, 구역질, 두통, 어지러움, 발열, 일시적인 탈모가 동반될 수 있습니다.”

“…….”

“이제 나을 수 있으실 거예요.”

쿵.

가슴이 내려앉은 환자가 마침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침대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문지른 그가 순식간에 눈물 자국으로 범벅된 얼굴로 도수를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꿀꺽.

두 알의 알벤다졸을 삼킨 그.

그는 고개를 돌려 신경외과의들에게 덧붙였다.

“오진이 아니었다는 건 이해해 보겠지만 그래도 용서가 안 됩니다… 가주세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신경외과장은 몸을 홱 돌렸다. 벌써 두 번째 마찰. 도수 덕분에 아무 문제없었던 자신의 경력에 두 번이나 스크래치가 났다고 생각한 그는 살갗을 손톱이 파고들 만큼 세게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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