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컨퍼런스
도수가 표정이 굳은 사이 강미소가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누구지?”
“이학승.”
분명 그였다.
제약회사 <브라운&윌리암슨>의 한국지사장. 모종의 연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도수를 스카우트하려 했던 장본인이자, 아버지의 논문을 막은 배후라고 강력히 의심되는 용의자.
하지만 강미소는 선뜻 알아듣지 못했다.
“그게 누구죠?”
“<브라운&윌리암슨>의 한국지사장입니다.”
“아!”
강미소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약을 쓸 때마다 종종 봐왔던 제조사 이름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런 사람이 왜 여길……?”
이번 컨퍼런스는 원내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즉, ‘병원 관계자’가 아닌 외부인이 참가한다는 건 굉장히 이질적인 그림이었다.
“직접 물어보죠.”
도수는 뜸들이지 않고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질문이 있습니다.”
삐이이이이.
마이크가 비명을 질렀다. 마치 거기서 멈추라는 듯이.
하지만 도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브라운&윌리암슨> 지사장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이학승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한테 집중된 눈길을 한번 뒤돌아본 뒤,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브라운&윌리암슨>에선 오랫동안 심장성형제를 개발해 왔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발표하겠지만 오랜 시간 투약하면 점차 부기가 빠지고 심장이 제 형태를 되찾게 해주는 제품이죠.”
“그래서요?”
“…그래서 심장성형술을 성공시킨 써전의 컨퍼런스를 듣고 싶다고 이사장님께 특별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렇군요.”
도수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논문 발표를 막아야 하나 고민되실 것 같습니다.”
“하하하. 나 원, 무슨 얘기인지…….”
이학승이 시치미를 뗐지만.
도수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고민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바티스타 수술의 불안정한 예후를 보완한 방법이니까요. 지금부턴 ‘논문 발표를 막을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
웅성웅성.
전문의 이상 직책을 가진 의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수군댔다.
대부분은 도수의 무례함을 지적하는 내용이었지만 도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학승을 쳐다보는 단 몇 사람.
이들의 의심을 북돋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으니까.
정말 논문 발표를 막아?
<브라운&윌리암슨>의 제약시장 독점에 대해 떠돌던 루머가 사실인가?
이런 의심 말이다.
어차피 그들 대다수가 도수를 ‘불청객’으로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 떨어질 이미지도 없었다.
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오셨으면 ‘뇌 표면 혈종 제거와 기존 바티스타를 보완한 심장형성술’에 대한 컨퍼런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지난 수술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도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더불어 빔프로젝터에서 나오는 수술 영상이 첨부된 자료들이 자리에 모인 교수들과 이학승의 이해를 도왔다.
그렇게 프리젠테이션이 일단락됐을 때, 이사장의 입에서 나온 결론을 하나였다.
“완벽하군.”
도수의 프리젠테이션이 완벽했다는 건지, 그가 고안해 낸 수술 방식이 완벽했다는 건지 모를 소리였다.
그러나 자리의 누구도 헷갈리지 않았다.
그들도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프로젠테이션과 수술방식 모두가 ‘완벽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상 아래에서 자료 화면을 제공하던 강미소는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이틀 만에…….’
남들은 몇 년씩 하는 의대 공부를 독학으로 몇 달 만에 마스터해서 국시 만점을 받은 괴물이란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대병원 중역들 앞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완벽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일은 또 다른 얘기였다.
‘하긴… 수술도 그렇게 대담하게 하는데.’
이깟 프리젠테이션쯤이야.
그렇다고 해도 강미소는 대회의실을 가득 채운 면면을 볼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전국 안과협회장, 국내 최초의 여성 신장내과 과장, NCI(미국 국립 암 연구소), 엠디앤더슨 암센터 출신 암센터장…….’
그 뒤로도 줄줄이 입이 쩍 벌어지는 권위자들이 향연이었다.
그들은 예리한 눈빛으로 도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도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말했다.
“질문 받겠습니다.”
쏟아졌어야 정상이다.
그들 대부분이 도수를 불청객으로 생각했고, 어떤 질문이든 날카로운 칼날처럼 벼를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의료인들이었으니까.
도수는 그 칼날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어야 정상이다.
분명 그런데.
“…….”
대회의실 안은 고요했다.
누구 하나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사장은 뒤를 돌아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도수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정영록마저도 얼굴을 붉힌 채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괜한 질문을 했다간 도수에게 치명타를 주긴 커녕 자신만 망신당하고 오히려 도수를 빛내줄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
그는 진정하려 애썼다. 질투심, 시기심이 품에 품은 가시처럼 가슴을 쿡쿡 찔러댔다. 현 천하대병원을 이끌어가는 주역들이 모두 보는 자리에서 대단한 수술 실력을 뽐내고 프리젠테이션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으니 ‘불청객’으로서가 아니라 ‘유능한 중증 외상센터장’으로서 급부상할 건 불 보듯 자명한 일.
그 누구도 도수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이번 컨퍼런스 이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수에게 날카로운 일침이 뒤섞인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질 수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정영록이 눈을 질끈 감는 그때.
도수의 입이 다시 열렸다.
“질문 없으시면 컨퍼런스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치기 전에,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릴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
번쩍!
정영록이 눈을 부릅떴다.
“저 새끼가……!”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으나 막을 수 없었다. 입을 막기엔 너무 먼 데다, 도수의 입에선 막힘없이 지난 일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김은영 환자의 뇌실질 혈종 제거 수술을 마친 후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는 임옥순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이미 말기에 접어든 상태였으므로 언제 더 악화돼서 환자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판단, 바로 응급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사이 전산 시스템을 끄지 않는 실수를 범했고, 신경외과 레지던트 1년 차 박상민 선생이 병원 지침에 어긋나는 항우울제 벤라팍신을 제 이름으로 처방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출혈을 야기할 수 있는 약물이죠.”
술렁술렁.
수술 장면이 포함된 쫀쫀한 프리젠테이션을 보느라 피로감에 젖었던 교수들은 이어진 도수의 고발을 듣고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도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컨퍼런스를 준비하며 확보해 둔 증거를 공개했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24시간 응급실 스테이션을 찍고 있는 병원 CCTV의 확대화면입니다.”
“…….”
“……!”
대회의실에 모여 앉은 모두가 수군대는 가운데.
박상민이 오더를 내는 모습이 똑똑히 흘러나왔다.
“신경외과?”
“어떻게 된 거야?”
박상민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신경외과장과 정영록은 나란히 앉아서 도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두 사람을 겨누고 있는 칼날 같은 시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
잔뜩 쪼그라든 두 사람을 보며 도수가 컨퍼런스의 진짜 막을 내렸다.
“따라서 저는 김은영 환자의 수술을 집도한 집도의로서 신경외과에 정식으로 항의합니다. 이상, 이번 컨퍼런스를 마치겠습니다.”
박수는 없었다.
애초에 박수를 받을 생각이었다면 고발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쥐 죽은 듯 침묵에 빠진 대회의실.
얼음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이사장이었다.
스윽.
몸을 일으킨 그는 돌아서서 신경외과 과장을 응시했다.
“이도수 센터장의 말이 사실인가?”
“…….”
신경외과 과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긍정하기엔 앞일이 두렵고 부정하기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사장은 그러한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병원장.”
“예, 이사장님.”
병원장이 엉덩이를 떼며 대답하자.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병원에서 있어선 안 될 일이야. 이대로 묵과하고 넘어간다면 앞으로 어떤 환자가 우리 병원을 찾겠나? 책임지고 조사하게.”
‘책임’지라는 말은 곧 자기 자리를 걸고 조사하라는 뜻이다.
신경외과의들이 앉은 자리에 두려움이 스쳤고.
원망스러운 눈길로 신경외과장을 일별한 병원장은 이사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책임지고 조사해서 진상을 밝히겠습니다.”
“엄중히 문책할 걸세.”
그렇게 말한 이사장이 <브라운&윌리암슨> 한국지사장을 보며 덧붙였다.
“부끄럽습니다.”
“이사장님께서 공명정대하신 분이니 잘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제 욕심 때문에 들어선 안 될 얘길 들은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꽁꽁 숨길 일이 아니지요. 원내에서 깔끔하게 마무리할 테니 개의치 마십시오.”
“저야 외부 사람인데 관계가 있겠습니까. 가실까요?”
이학승과 함께 걸음을 옮기던 이사장은 신경외과를 지나치던 중, 정영록을 보며 한마디 남겼다.
“네가 이 일과 아무 연관이 없었으면 한다.”
“…네.”
이사장과 이학승이 문 뒤로 사라지자 정영록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지금껏 자신이 쌓아왔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눈을 떠서 자신을 이토록 궁지를 몰아넣은 장본인, 오늘 발표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도수를 쏘아봤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눈깔 빠지겠다.”
정영록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신경외과 과장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이사장 손자를 대할 때처럼 신사적이지 않았다.
“애들 다 데리고 따라와.”
***
<브라운&윌리암슨> 이학승은 이사장과 함께 이사장실로 가서 마주 앉았다.
먼저 입을 뗀 건 이학승이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이도수 선생 말입니다.”
“음… 그 아이가 시작 전 범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더군요. 논문을 막은 게 귀하의 회사라고 생각했다면 나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잠시 후 이학승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사장님은 그런 얘길 듣고도 저희를 의심하지 않으시는군요. 저희 회사가 그 논문과 관련이 없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그런 걸 묻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아, 누구라도 의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희가 ‘심장성형제’를 개발했는데, 그 논문은 ‘심장성형술’에 관한 것 아닙니까?”
“공교롭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의심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의심받은 곳이 귀하 회사인데,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을 벌였겠습니까? 게다가…….”
“…….”
“난 논문을 숨긴 범인을 알고 있으니 의심할 이유가 없지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범인을 아신다고요?”
이학승이 되묻자 이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죽기 전에 그놈을 요절낼 겁니다.”
“그게 누군지 여쭤봐도…….”
“가족사입니다.”
이사장은 빙그레 웃었지만 강경한 의지가 엿보였다.
“어디 가서 얘기할 만한 게 못 됩니다. 자, 그건 그렇고 이제 일 얘기를 해봅시다.”
이학승은 내심 아쉬웠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어쨌든 이사장이 다른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다는 것은 희소식. 만만한 인사가 아니었으니, 이 이상 속내를 보이면 도리어 의심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시죠. 오늘 이도수 센터장의 솜씨를 보니 어찌나 감탄스럽던지…….”
그는 서류를 꺼냈다.
“이번에 엘 파소(El Paso: 미국 일리노이주 우드퍼드 카운티, 맥린카운티에 걸쳐 있는 도시) 파견 건, 대상자를 흉부외과 박경환 선생에서 이도수 센터장으로 바꾸면 어떨까 합니다.”
이사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이도수 센터장은 실력에 비해 경력이 부족하니 좋은 이력으로 남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경외과 분야에서 최고 소리 듣고 계신 큰 아드님도 엘 파소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 두 분이 콜라보를 이룬다면 천하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 굉장한 시너지가 될 겁니다.”
“이도수 선생은 우리 병원 센터장입니다. 부임한 지도 얼마 안 됐고.”
이사장은 탐탁찮아했으나.
이학승은 빙그레 웃으며 주장을 펼쳤다.
“아로대학병원 센터장이었던 김광석 교수가 있지 않습니까? 동물에 비유해서 좀 그렇지만, 산 하나를 정복하는 데 호랑이를 두 마리씩이나 데리고 올라갈 필요 없지요. 한 마리는 더 큰 산으로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