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경고
신경외과 레지던트 박상민은 죽상을 하고 정영록을 찾아갔다.
“저, 교수님. 레지던트 1년 차 박상민입니다.”
빌어먹을.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들어와.”
연구실 문 뒤편에서 들려오는 차디찬 목소리. 박상민은 잔뜩 위축된 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철컥.
“…….”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
그를 본 정영록이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이 왜 그래?”
“그게…….”
말을 잇지 못하자 정영록이 추측한 바를 뱉었다.
“환자가 난동이라도 부렸나?”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이도수 선생이…….”
“뭐?”
벌떡.
정영록이 몸을 일으켰다.
“이도수 선생이 뭐?”
“이, 이도수 선생이 폭력을 가했습니다.”
“널 때렸다고?”
“…예.”
정영록은 그를 유심히 살폈다.
코뼈는 부러져서 거즈로 지혈하고 있고, 목에도 붉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명백한 폭력 사건이다.
“내가 처리하지. 응급실은 불편할 테니 정형외과 가서 치료받아.”
“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신경외과 자존심이…….”
“맞은 놈이 왜 자존심을 따져? 어떻게든 알려야 수술 실력 믿고 물 흐리는 미친놈을 도려낼 것 아냐?”
“그, 그게…….”
박상민은 눈치를 봤다.
일부러 투약 오더를 잘못 냈다는 사실을 밝힌다면.
이미 부러진 코뼈를 정영록에게 한 대 더 맞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판단한 박상민은 위축된 채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래. 가봐.”
“예.”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박상민이 나가고.
정영록은 열이 오른 채 성큼성큼 응급실로 내려갔다.
이도수는 김은영 환자의 동공반사를 확인하고 있었다.
“예후가 좋습니다.”
보호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사건 전부터 따님이 복용하시던 항우울…….”
“이도수 선생.”
정영록이었다.
도수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면 나서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내막을 모르는 그는 눈에 불을 켠 채 도수에게 말했다.
“나 좀 보지.”
한숨을 내쉰 도수가 보호자에게 말했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바쁘시면 가보셔야죠.”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두 사람은 아직도 도수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방금 전에 사람을 쳤다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에 더 열이 뻗친 정영록은 꼴 보기 싫다는 듯 홱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갔다.
잠시 후 따라 나온 도수가 엘리베이터 타자, 정영록이 옥상을 찍었다.
위이이이잉.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사이.
두 사람은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리고 옥상에 도착해서야 정영록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입을 뗐다.
“우리 과 선생한테 손을 댔다고?”
피식 웃은 도수가 발음을 씹어 뱉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뭐?”
“그쪽네 선생이 무슨 짓을 했는진 알고 오신 겁니까?”
“그쪽?”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의도적으로 잘못된 오더를 냈습니다. 그 탓에 뇌출혈 수술을 한 환자한테 다시 한번 출혈이 생길 뻔했고요. 그랬다면 환자는 사망했겠죠.”
정영록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너무 놀라고 화가 나서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찾아온 까닭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할 말은 있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타 과 레지던트한테 손을 대?”
“고개 숙여 미안하다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국에 적반하장이구만.”
“뭐?”
“당신이 아랫사람 관리를 개떡같이 해서 내가 담당하고 있던 환자가 사망할 뻔했다. 사람이 죽을 뻔한 사건이야. 신경외과에서 내부적인 징계로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나한테 반말을 하는 건가?”
“존대를 원했으면 당신도 존대를 썼어야지.”
도수가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난 중증 외상센터 센터장이다. 당신은 평교수고. 아닌가?”
“…하!”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퉤 뱉은 정영록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네놈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일이 안 풀려. 열받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야. 지금까진 사촌이라서 봐줬지만 앞으론 아니다.”
“기대되는군.”
“우리 과 박상민 선생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중징계를 받게 될 거야. 그리고 넌 박상민 선생을 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을 거다.”
“할 얘기 끝났으면… 환자가 기다려서.”
도수가 미련 없이 몸을 돌리자 정영록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꿍꿍이지?”
도수가 고개만 돌리고 대답했다.
“그냥 좀… 그래도 같은 피가 섞였는데 어떻게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나 해서.”
“무슨 뜻이지?”
“내가 어떤 방법으로 아로대병원에서 여기로 왔는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걸 왜 자꾸 묻지?”
“……!”
정영록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도수가 인턴이었음에도 이 병원에 중증 외상센터장으로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언론을 이용했고.
로펌 ‘명인’이라는 병원 법무팀보다 강력한 패를 내민 덕분이다.
그만한 빽을 가진 사람이 사람 한 대 쳤다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
“솔직히 마음 같아선 주먹 꺼낸 김에 당신도 한 대 패고 싶은데. 그럴 자신도 있고.”
사이를 둔 도수가 말을 이었다.
“나야말로 사촌이니 봐줍니다. 아, 그리고 앞으로 센터장 직함 꼭 붙이고 존대해요.”
그 순간.
생전 처음 겪는 모욕감에 부들부들 떨던 정영록이 도수의 멱살을 틀어쥐며 거세게 돌려세웠다.
투두둑!
가운 안에 입었던 티의 앞섶이 찢겨 나가며 그림 같은 가슴근육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자상이나 총알이 스쳐서 난 흉터들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
정영록이 흠칫했다. 그 역시 매일같이 끔찍한 흉터를 직접 새기기도, 보기도 하는 써전이었지만 환자가 아닌 도수의 몸에 새겨진 흉터를 본 느낌은 또 달랐다. 더욱이 자신이 멱살을 잡은 지금 같은 상황에선 분노를 뛰어넘는 위화감이 느껴진 것이다.
말문이 막힌 그를 향해 도수가 말했다.
“여기까지.”
중얼거린 그는 가볍게 손등을 잡아 꺾었다.
콰악.
“윽……!”
정영록의 잇새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도수가 꺾은 방향으로 몸을 뒤트는 그.
그를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도수가 말했다.
“폭력은 명분이 있을 때 쓰는 겁니다. 이렇게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고.”
“놔……! 놔! 이거 안 놔?”
도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써전이 손을 함부로 놀려서야 쓰나.”
“놓으라고!”
“…마음 같아선 영영 못 쓰게 만들고 싶지만, 한 번은 참겠습니다.”
도수가 힘을 빼자.
타악!
손을 뿌리친 정영록은 얼굴이 벌게져서 외쳤다.
“이 새끼, 이거 완전 깡패 아니야!”
“이 정도로 억울하면 곤란한데.”
“뭐?”
“박상민 선생 일은 컨퍼런스 때 정식으로 문제 삼을 겁니다. 그 사람이 환자 오더 갖고 장난친 건 병원 씨씨티브이만 봐도 나올 테고, 난 피해자니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겠죠. 하지만 정영록 선생은 환자 수술방에 함께 들어갔던 데다 박상민 선생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 그리고 나와 대립점이었던 걸 감안해 조사 대상이 될 겁니다.”
“…….”
“그때 진짜 억울해하세요. 너무 억울하다고 오늘처럼 잘못 판단하면 그 손, 영영 못 쓰게 될 테니 명심하시고요.”
그제야 몸을 돌린 도수는 옥상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 남겨진 정영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처음 도수를 옥상으로 불러 올릴 때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태어나 가장 큰 모욕을 당했다. 늘 모욕을 주고 자존심을 짓밟던 사람은 자신이었는데, 이젠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이런 개 같은…….”
그는 담배를 피울 생각도 안 드는지 담뱃갑을 통째로 구기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
한편, 몰래 담배를 피우러 올라왔다가 옥상 한구석에 숨어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게 된 나유하는 입을 딱 벌렸다.
“개 멋져.”
도수를 본 솔직한 심경이었다.
어렸을 때 몸이 약했던 탓에 유년기를 통째로 오성병원에서 보냈다.
그녀에게는 할아버지 병원이다.
어쨌든 그랬던 덕분에, 병원 생리에 대해선 대충 알고 있었다.
의사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도 충분히 안다.
그들 사회가 얼마나 고리타분한지도 뒤늦게 아버지가 재단 경영에 손대는 걸 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한데 도수는 그 질서와 규범을 당당하게 파괴하고 있었다.
“하긴… 보통 사람이라면 할머니 심장에 손 댈 생각을 못하지.”
오성그룹 안주인의 심장에 손을 대는 일이다.
잘 되면 어마어마한 영예를 얻겠지만 잘못되면 그 순간 엄청난 불이익이 뒤따를 수도 있었다.
물론 도수는 몰랐고, 알았어도 수술했겠지만.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나유하에게 도수는 ‘할머니 심장에 손을 댄 간 큰 의사’. 그리고 ‘오성그룹에서 가장 유력한 후계자인 아버지 앞에서 고개 뻣뻣하게 들고 이사장한테 직접 설명 들으라’고 했던 간이 배밖으로 나온 젊은 의사인 것이다.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눈을 반짝인 나유하는 몰래 숨겨온 담배를 한 대 피우려던 불량 청소년에서, 담배 따윈 거들떠도 안 보는 요조숙녀로 돌아갔다. 실제로 한 모금도 안 피운 담배를 버리곤 도수를 쫓아갔다.
다행히, 도수는 아직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저기.”
나유하가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임옥순 환자 손녀분.”
“네.”
고개를 끄덕인 나유하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할머님 만나러 갑니다.”
도수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유하가 말했다.
“같이 가요.”
도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두 사람이 몸을 실었다.
그제서 나유하가 다시 입을 뗐다.
“왜 아무 것도 안 물어보세요?”
도수가 그녀를 보고 되물었다.
“뭘 물어야 하죠?”
“제가 쭉 옥상에 있었다는 거 알잖아요.”
당연하다.
맨 끝 층엔 옥상밖에 없었으니까.
“그랬겠죠.”
“그럼 제가 다 들었는지 안 궁금해요?”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
“네.”
도수는 뻔뻔해 보일 정도로 당찼다.
그 모습에 나유하는 입을 가리고 풋 웃음을 터뜨렸다.
“풉.”
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나유하가 먼저 말을 건넸다.
“싸움 잘하시나 봐요.”
뜬금없는 질문.
그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전쟁터에서 오셨다니까…….”
“제가 전쟁한 건 아닌데.”
도망 다니기 바빴다.
물론 그 와중에 불가피하게 지지고 볶기도 했지만.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유하가 말했다.
“꼭 육탄전을 벌여야 싸움은 아니죠.”
“…….”
그건 그렇다.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도수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싸웠으니까.
나유하는 층수가 바뀌는 LED화면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덧붙였다.
“선생님은 죽음과 싸워서 우리 할머니를 살려주셨는데… 전 할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싸우거든요.”
그녀가 뜻 모를 말을 남긴 그때.
엘리베이터가 VIP병동이 있는 13층에 도착했다.
도수가 내리기 전에 나유하가 먼저 내렸다. 그녀는 방금 전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것과 달리 그를 뒤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가요. 할머니가 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