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소탐대실(小貪大失)
“말도 안 돼.”
흉부외과 김한철 과장의 잇새로 새어 나온 한마디였다.
그에게 고개를 돌린 이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옛 생각 나나 보군.”
그 말은 비단 김한철 과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환자 목숨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타과 과장들도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도수의 수술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열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 옛날, 처음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시절. 현실에 부딪치고 세월의 풍파에 마모돼 초심이 퇴색되기 전처럼 말이다.
모두가 들으라는 듯, 이사장이 말했다.
“이렇게 치열한 수술을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어. 센터장이 바티스타 수술 순서를 바꾸었지?”
질문은 김한철을 향해 있었다.
흉부외과 과장 김한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티스타 수술은 절제하고 봉합합니다. 그런데 이도수 센터장은 봉합하고 절제했어요.”
“단순한 차이 같은데?”
“그렇진 않습니다.”
김한철은 굳이 도수의 공을 덮지 않았다. 수술 전에야 ‘이도수’란 존재 자체가 마뜩찮았지만 수술이 끝난 지금, 그는 흉부외과 써전으로서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티스타 수술은 수술 과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봉합해 두고 시작하면 근육에 걸리는 부하를 줄여서 심기능의 회복을 촉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있을 것 같다’?”
“네. 이 수술을 해본 써전 자체가 몇 없기 때문에… 진짜 효과가 있는진 몇몇 환자의 예후를 지켜봐야 할 겁니다.”
“전 있을 것 같은데요.”
우진우였다.
김한철이 이전에 언급했던 흉부외과 에이스.
그는 굳이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현재 바티스타 수술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은 일본입니다. 그쪽도 이런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
이사장이 흡족하게 웃었다.
“자네들 말만 들어도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감이 오는구만. 아베 타츠히로가 배 좀 아프겠어.”
아베 타츠히로.
천하대병원과 자매결연이 되어 있는 병원의 병원장이었다.
이사장은 신경외과 과장 민정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심장성형술 전에 신경외과 수술을 했다고?”
“…예.”
민정호는 자존심이 크게 상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증 외상센터 인력이 신경외과 수술을 했으니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 쪽이야 중증 외상과 워낙 밀접했지만, 신경외과 수술은 연관되는 경우가 현저히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영록을 흘깃 쳐다봤다.
‘이사장 손자 놈만 아니었어도.’
민정호가 그를 추궁하지 못하는 건 훌륭한 써전이라서가 아니었다. 이사장의 손주란 타이틀이 그의 입을 막았다.
물론 이사장은 정영록을 감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컨퍼런스가 기대되는군.”
도수가 바티스타 수술을 보완한 새로운 수술법을 만들어낸 이상 원내 컨퍼런스는 불가피했다. 수술의 안정성까지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해야 할지도 몰랐다.
즐거운 상상에 빠진 이사장은 도수를 내려다 봤다.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난 죽지 않았구먼.’
도수를 아로대병원에서 데려오기 위해 수락해야 했던 조건. 남들 모두 ‘무리’라고 했던 그 조건은 도수의 값어치에 비해 결코 비싼 값을 치른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세상에 하나뿐인 보석을 거저 얻은 기분마저 들었다.
***
잠시 정신을 차린 도수는 수술 장갑을 벗고 수술실을 나섰다.
자동문이 열렸을 때.
그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렸다.
웅성웅성.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도수가 자신이 방금 수술한 임옥순 여사의 신원을 알았더라면 기자가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을 했을 테지만, 어쨌든 그는 환자의 신원을 몰랐다.
‘가족애가 대단한 집안인가?’
그렇게 치부할 따름이다.
그때, 한 중년 남자와 소녀가 나란히 다가왔다. 먼저 입을 뗀 건 중년 남자의 팔을 붙잡고 있는 소녀였다.
“안녕하세요.”
차분한 목소리.
“수술은… 어떻게 됐나요?”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도수의 물음에 그녀가 대답했다.
“손녀에요.”
도수가 대답했다.
“수술은 잘됐습니다만 워낙 큰 수술을 받으셔서 아직은 좀 더 두고 보셔야 합니다.”
“아… 선생님 인터넷 기사로 본 적 있어요.”
아로대학병원 이사장을 고발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셨다고 봤는데요.”
“네.”
“흉부외과 수술도 직접 하시는 건가요?”
가족들은 임옥순의 수술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내막을 알았다면 이렇게 근본적인 질문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평소 같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설명해주었겠지만, 도수는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그 부분은 이사장님께 직접 들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전 장시간 수술로 피곤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도수가 그들을 지나쳐서 의국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던 중년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례하구나. 자기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의사라면 환자 보호자를 등지진 않을 텐데.”
“사정이 있겠죠.”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을 떼며 말을 이었다.
“이사장님한테 가요, 아빠. 그분이 잘 설명해 주실 거예요.”
중년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꾸나.”
두 부녀(父女) 도수에게 들은 결과를 외가 친척들한테 전하고 따로 이사장실로 향했다. 이들 중 오성그룹의 유일한 직계(直系)였기 때문에 누구도 막지 못했다.
이사장은 두 사람을 환대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는 중년 남자를 정중하게 대했다. 오성그룹을 통째를 물려받을 후계자로 유력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녀한테는 편하게 덧붙였다.
“오랜만이구나. 못 본 새 어엿한 아가씨가 됐어.”
“안녕하세요.”
소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두 사람이 앉자 이사장이 맞은편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여사님이 각별하게 비밀을 요하셔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중년 남자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 어떻게 된 건지 좀 설명해 주십시오. 요즘 떠들썩한 이도수 선생이 어머니 수술을 맡았던 것 같더군요. 직접 수술을 하고서 설명은 이사장님께 들으라고 하지 뭡니까?”
“하하하하, 양해해 주십시오. 어머님 수술이 워낙 큰 수술이기도 했고, 그 직전에도 어머님 수술 못지않은 수술을 한 상태라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아니, 그럼 그렇게 힘든 상태에서 우리 어머니 수술을 한 거란 말씀이십니까? 오성병원에 있는 최고들도 고개를 내젓는 판에…….”
중년 남자가 말끝을 흐리자.
이사장이 그를 달랬다.
“추후 결과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술은 잘됐습니다. 그렇다고 오성병원 의사들이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닙니다. 우리 병원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봐도, 이번 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도수 센터장뿐이었으니까요.”
중년 남자와 소녀 모두 눈을 치켜떴다.
“지구상에 그분만 가능한 수술이 존재한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중년 남자는 선뜻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는 똑같이 놀라놓고도 차분했다.
“왜 그분만 가능하신 거예요?”
“그게…….”
병원장은 바티스타 수술과, 이를 개량한 도수의 수술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맞은편의 두 사람은 단번에 납득하지 못했으나 그것이 ‘새로운 수술법’이란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부작용은요? 더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럴 확률은 미미하다는 게 흉부외과 입장이다.”
이사장은 중년 남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좀 지켜보시지요. 이도수 센터장을 비롯해 저희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여사님께선 건강을 되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
알람을 맞춰두고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인 도수는 의국을 나섰다.
수술 전과 수술 후, 중증 외상센터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가장 달라진 건 도수를 보는 눈빛이다.
“센터장님,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동료 의사들, 간호사들 할 것 없이 모두가 도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어려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대한 축하 외에도 중증 외상센터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사람 놀라게 하는 건 여전하구나.”
김광석 역시 사심 없는 말을 건넸다.
“나였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거야.”
천하대병원에 와서 중증 외상센터장으로서 인정받은 일을 말하는 건지, 수술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애매했다. 하지만 도수에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교수님이 나머지 수술들을 맡아주신 덕분입니다.”
사실이었다.
천하대병원에 온 후로 도수보다 더 많은 수술을 한 김광석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그 역시 굵직한 수술들로 사람을 살려냈다. 결코 도수보다 공이 가볍다 할 수 없는 것이다.
“할 일을 한 게지.”
“저도 분발하죠.”
살짝 웃은 도수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 뇌수술을 받은 은영이에게로 갔다.
그 자리에는 신경외과 과장 민정호, 정영록, 그리고 응급상황에서 도수한테 한소리 했던 간 큰 레지던트가 와 있었다.
도수가 신경외과 수술 사례를 통틀어도 찾기 힘든 고난이도 수술을 해내면서 은영이는 ‘수많은 환자 중 한 명’에서 ‘집중해야 할 환자’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도수를 발견한 환자 보호자 두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선생님.”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도수가 겸양하는 사이.
신경외과 인원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됐다. 상반된 환자 보호자들의 반응에 민망했는지, 민정호가 먼저 자리를 떴다.
“가지.”
정영록이 레지던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다시 한번 체크하고.”
그가 떠나자.
고개를 꾸벅 숙였던 레지던트가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길이 도수를 스쳐 은영이에게로 향하며 입가엔 미소가 스쳤다.
‘뭐지?’
도수는 놓치지 않았다.
환자들 어깨너머로 또렷하게 본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미소를 두고 ‘회심의 미소’라고 부른다.
도수의 경험상, 자신에게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저런 웃음을 짓는 직후에는 그리 달가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설마.’
예감이 발동했다.
결코 해선 안 될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것이다.
해서 그는, 어차피 하려고 했던 일을 조금 서둘렀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을 발휘하고.
은영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면밀하게 살폈다.
한 차례 죽 훑었지만 특이한 점은 없었다.
‘착각이었나?’
하지만 도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배운 대로 돌다리도 두 번, 세 번 두드렸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이 강해졌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현미경을 착용해서 투시력에 시너지를 부여했을 때도 이렇진 않았다.
‘이건…….’
두 차례의 거듭된 대수술 덕분인지, 투시 강도가 부분적으로 다르게 보였던 전과 달리 은영이의 전신이 투시력을 극대화시켰을 때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보여선 안 될 투명한 약물이 혈류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박상민 선생.”
“…예.”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는 레지던트가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고.
도수가 말했다.
“나 좀 보지.”
전처럼 존대하지 않았다.
박상민이 이를 악물든 말든 그따위 건 알 바가 아니었다.
도수는 스테이션에 서서 투약기록을 확인한 뒤 간호사에게 한마디 던졌다.
“김은영 환자. 아미트리프탈린(Amitriptyline: 심환계 항우울제) 주세요.”
“네, 선생님.”
도수는 계단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박상민이 뒤따라 들어오기 무섭게 홱 돌아서며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콰악!
“컥!”
벽에 뒤통수를 찧을 만큼 밀려난 박상민이 공포심이 깃든 눈빛으로 도수를 바라보았다.
“케켁! 왜 이러시는…….”
“몰라서 묻나?”
도수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난 아무 오더도 내린 적이 없는데, 왜 환자한테 벤라팍신(Venlafaxine: 우울증 약)이 들어갔지?”
“…….”
일순 부정하려던 박상민은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닫았다. 오리발을 내민 순간 정말 도수가 자신을 죽일 것 같다는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인턴… 이 센터장으로 온 게 열받아서…….”
“그래서?”
“실수로 위장하려고… 시,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항우울제이기도 하고…….”
외상도 외상이지만 당장 급한 건 수술받은 뇌 쪽이었다.
즉, 신경외과 병동으로 이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 도수가 상의 한 마디 없이 병원 내부 지침에 어긋나는 부적합한 항우울제를 처방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수가 열받은 건 자신이 곤경에 처할 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콰악!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커헉!”
“그렇다고 환자 목숨 갖고 장난 쳐?”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지만 더 했다간 기절할 지도 모르기에.
도수는 손을 뗐다.
“켁, 켁!”
눈물을 쏙 뺀 레지던트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씨발, 네가 뭐 그렇게 잘났는데? 막말로 네가 시스템켜 놓고 수술 들어간 게 실수 아닌가? 내가 환자 죽으라고 오더 낸 것도 아니고! 같은 항우울제 약 이름만 좀 바꾼 거로 사람을 밀치고 목 졸라? 이 사이코패스 새끼! 신경외과 소견 무시했다고 과장님한테 좆도 한 소리 듣고 끝났을 일을……!”
“멍청한 새끼.”
“뭐?”
“벤라팍신이 어떤 부작용이 있지?”
“…뭐라고?”
그는 진짜 몰랐던 듯 눈을 치떴다. 그러더니 이내 입을 벌렸다.
“아, 아니 그런 게…….”
도수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빠악!
콧등을 얻어맞은 레지던트는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아!”
코가 부러졌는지 코피가 줄줄 새고 있었다.
그가 처방한 벤라팍신.
도수가 처방한 아미트리프틸린과 같은 항우울제 같지만, 출혈 위험을 동반한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싸늘하게 그를 내려다본 도수가 말했다.
“잘 들어. 네 코뼈야 시간 지나면 다시 붙겠지만 환자는 뇌출혈이 재발할 뻔했다. 이게 네가 한 짓이야.”
“으으으으…….”
“컨퍼런스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겠다.”
그 말을 남긴 도수는 철문을 열고 계단실을 나왔다. 다 용서해도 그가 절대 용납 못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전쟁터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것. 알량한 감정 싸움에 인명(人命)이 위협받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