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63화 (63/152)

# 63

심장성형술

우르르르르.

이사장이 움직이자 천하대병원 의사들이 다 함께 수술 참관실로 향했다.

흉부외과 과장 김한철은 굳은 표정으로 이사장 곁에 서 있었다.

‘바티스타라니.’

만약 천하대병원 내에서 그 수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도전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테이블 데스(Table death: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하는 일)가 날 거야.’

도수가 남들은 넘보지 못할 만큼 뛰어난 수술을 가진 써전이란 건 이미 귀 따갑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방금 전 어려운 신경외과 수술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심장성형술은 또 다른 문제였다.

현대의학에서조차 아직 완성된 수술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어째서 이사장은 손자를 지옥 구덩이에 빠뜨리려는 걸까?

평소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지 않는 이사장의 깊은 심계(心界)를 고려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불쑥.

이사장이 말을 걸었다.

“김 과장.”

“…예, 이사장님.”

“아무래도 흉부외과가 담당해야 할 환자를 이도수 선생에게 넘긴 걸 납득하기 힘들 거야.”

“그럴 리가요. 이도수 선생을 데려올 때부터 예정됐던 일인데요.”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겠나?”

“괜찮습니다. 하하하하. 이도수 선생이 꼭 그 환자를 살리길 바랄 뿐입니다.”

“김 과장 같이 의사로서 본분에 충실하신 분이 우리 병원에 있어서 다행이네.”

“별말씀을요. 그런데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환자가 누군지…….”

이사장의 주변인이라고 했으니 범상치 않은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이사장의 입 밖으로 나온 이름은, 김 과장의 걸음을 멈추었다.

“임옥순 여사일세.”

“이, 임옥순 여사요?”

철렁.

심장이 내려앉은 김한철은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오성그룹 임옥순 여사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사장은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김한철은 결코 담담할 수 없었다.

‘이런……!’

바로 납득이 됐다.

손해 볼 짓을 절대 하지 않는 이사장이 왜 직접 도수에게 환자를 보냈는지.

오성그룹의 안주인인 임옥순 여사의 환심을 살 수만 있다면 막내 손자의 명운을 걸어서라도 해봄직했다.

심장성형술이 아니라 심장을 만들어오라고 해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질 정도니까.

“이사장님……! 어떻게 임옥순 여사를 그런 초짜 의사한테!”

김한철은 감정을 드러냈고.

이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모든 환자는 평등하네. 그렇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자네는 환자의 신원을 몰랐을 때 바티스타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했어.”

“…….”

김한철은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바티스타 수술을 임옥순 여사한테 직접 할 생각은 없었다. 표준치료가 아닌,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경우 쓸 수 있는 대체 치료였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수제자 정도는 걸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천하대병원 흉부외과의 위상을 드높이고, 그 자신도 오성그룹에 줄을 댈 수 있다면 남는 장사인 것이다.

그는 못내 아쉬운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 이사장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저희 과 에이스 진우를 보내서 이도수 선생을 거들라고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적극적이 됐나? 정말 우진우 선생이 바티스타 수술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자네가 직접 나선다면 모를까.”

“그건…….”

“오늘은 일단 믿고 지켜보게. 오성병원에서도 사모님께 이렇다 할 치료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더군. 그쪽도 바티스타 수술을 하겠다는 의사가 없는 게야. 하지만 우리는 있지 않은가. 자기 인생을 걸고 수술을 하겠다는 녀석이.”

이사장은 여느 할아버지가 그렇듯 손자를 자랑하듯 말했지만 김한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자신이 보인 언행들로 인해 이사장의 그물망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젠장.’

이사장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욕심에 잡아먹혔던 김한철은 참관실에 도착해서야 방금 자신이 보인 행동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

한편 수술실에 들어선 도수는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극도로 피로한 건 당연했다. 이 이상 투시력을 많이 쓴다고 써봐야 한 번.

그 이상 무리를 했다간 사망하는 건 환자가 아닌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르륵.

도수는 눈을 감았다.

‘할 수 있다.’

투시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도수의 판단이었다. 어차피 열어야 할 곳도, 손대야 할 곳도 확실한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논문을 보완한 새로운 논문을 쓰면서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수술과정을 그려왔다. 이제 남은 건 집중과 몰입.

‘환자 몸은 하나의 유기체(有機體).’

함께 호흡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바티스타 수술은 심장을 절제하고 봉합하는 수술. 그야말로 환자를 죽였다 살리는 수준의 수술이기 때문에 써전의 감각적인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도수의 수많은 경험들이 그 빈틈을 메워줄 것이다.

번쩍.

눈을 뜬 도수는 수술실 안의 구성원들을 훑었다.

마취과 전문의, 어시스트 강미소, 김용찬, 간호사 이하연, 인공심폐기기사.

자신까지 여섯이다.

바티스타 수술의 평균 소요시간은 네 시간 정도.

도수는 드디어 대장정의 첫발을 뗐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수술은 바티스타 수술을 개량한 심장성형술입니다.”

의료진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스쳤다.

오직 도수만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제 지시에만 집중하세요.”

끄덕끄덕.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를 확인한 도수는 환자의 가슴을 보며 말했다.

“칼.”

턱.

손아귀에 칼자루가 들어왔다. 지금부터 하려는 수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듯, 빛을 받은 메스 날이 번들거렸다.

하지만 도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스으으으윽.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흘렀다.

“톱.”

턱.

도수는 전동 톱을 환자의 뼈로 가져갔다.

지이이이이이잉.

과격하게 뼈를 잘라낸 그가 말했다.

“립 스프레더(Rib spreader: 개흉기).”

가슴을 열린 채 고정시킨 뒤.

“보비(Bovie: 전기메스).”

심막을 절개했다. 연기가 나며 절개 부위가 타들어가고, 심장을 보호하고 있던 심막이 벗겨지자.

마침내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누군가 침음을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좌심실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정상적인 심장에 비해 현저히 느렸다.

두근, 두근…….

“인공심폐기 장착하겠습니다.”

도수는 일단 대정맥과 대동맥을 찾았다. 심장의 구조는 케이스 별로 머릿속에 훤했기 때문에 혈관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빠르시네요.”

강미소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수는 들은 체 만 체 카뉼레(Canuler: 주사관)를 대정맥과 대동맥에 꽂고 말했다.

“심폐기 가동해 주세요.”

위이이이잉.

“클램프 걸고 심정지액 주입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미소가 심정지액을 주입했다.

그러자 천천히 움직이던 심장이 서서히 멈췄다.

“긴장하세요.”

도수는 야수처럼 눈을 치켜떴다. 여기까진 준비과정. 본격적인 수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네……!”

의료진들이 대답하고.

도수가 말했다.

“칼.”

턱!

동시에 그는 투시력을 발동했다.

샤아아아아아아.

머리가 핑 돈다.

딱 한 번.

이번 수술에서 투시력을 쓸 수 있는 그 한 번을 지금 쓴 것이다.

‘시간이 없다.’

심장을 투시하자 변성 부위가 정확히 들어왔다. 도수는 변성된 범위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그림처럼, 사진처럼 기억했다.

만약 변성된 부위를 잘못 절제하는 순간 환자는 다시 큰 위기에 빠질 터였다. 수술을 받지 않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스으으으으.

투시력의 범위가 점점 좁아졌다.

현미경과 투시력이 시너지를 일으켰을 때부터 ‘투시력의 범위를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지금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심장에 칼집 냅니다. 석션.”

강미소가 호스를 가져다 댄 그 순간.

도수는 변성 부위를 통째로 잘라내지 않았다.

틱, 틱, 틱!

변성부위 주변에 칼집을 냈다.

꿀렁꿀렁.

피가 흘렀다.

그 피를 강미소가 석션으로 빨아들였다.

치이이이익.

그녀는 할 일을 하면서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기존 바티스타와는 달라요. 우린 수술 후 불안정한 예후를 안정적으로 보완할 겁니다.”

바로 지금.

일반적인 바티스타 수술과 다른 길로 들어섰다.

도수가 발견해 낸 길이었다.

그간 무수히 홀로 걸어왔던 길.

이제 그 길을 공개할 때가 된 셈이다.

그는 투시력을 해제하며 말했다.

“현미경.”

이하연이 현미경을 씌워주자 육안으로 보기 힘든 부분까지 시야가 확보됐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도수가 덧붙였다.

“프롤린 투 제로(Proline 2-0: 봉합사의 얇기) 테이퍼 커팅 파이브 에잇(Taper Cuting 5/8: 봉합침의 굵기) 주세요.”

그 말에.

의료진들이 일제히 당황했다.

특히 의료 도구를 건네주는 간호사 이하연은 더 당혹감에 빠졌다.

“네? 선생님, 무슨…….”

“봉합부터 합니다.”

“봉합이요?”

“시간 없어요.”

“……!”

강미소, 김용찬 같은 의사들 눈치를 보는 이하연. 그러나 그 둘도 그녀와 같은 표정이었기에, 이하연은 도수에게 실과 바늘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봉합도구를 넘겨받은 도수가 절제할 변성 조직을 타이하기 시작했다.

슥, 스윽.

변성조직이 당겨지며 좌심실이 줄어들고, 절제할 부위만 튀어나왔다.

“……!”

그들이 알고 있는 바티스타 수술과는 달랐다.

‘무슨 생각이지? 왜…….’

누구 하나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바티스타 수술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참여해 본 것은 최초. 손에 꼽히는 흉부외과 권위자들도 평생 한 번 해볼까 말까한 수술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리바리 했지만 도수만은 달랐다. 그는 수도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이미지트레이닝 해왔다.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수술에 준비도 없이 참여하게 된 나머지 사람들의 허점을 혼자 메워야 했다.

슥, 스윽.

더 빠르게.

스윽……!

더 정교하게.

절제할 절제면을 순식간에 봉합한 도수가 피 묻은 장갑을 내밀었다.

“칼.”

이하연은 서둘러 메스를 건넸다.

턱.

“심장 절개합니다. 피 나요.”

눈으로 따라 잡기도 힘들만큼 빠른 속도였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모든 의료진이 오금을 저렸다.

그럼에도 도수는 카운트도 세지 않고 즉시 심장을 건드렸다.

틱!

멀쩡한 심장이 벌어지며 피가 넘쳤다.

“석션.”

강미소가 움직였다.

시이이이이이익!

석션이 시작되자.

도수의 손이 한층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메스를 돌려주고 가위를 받아 절단면을 잘라냈다.

서걱, 서걱…….

다시 피가 올라왔다.

도수의 시선이 바이탈 그래프로 향했다.

삑. 삑. 삑. 삑.

“혈압 떨어집니다.”

마취가 전문의가 말하기 무섭게 도수가 덧붙였다.

“볼륨 늘려요.”

심폐기기사가 혈류의 순환속도를 올리자 환자의 상태가 일시적으로 균형을 찾았다.

도수가 환자의 가슴속에서 손을 빼자, 변성된 조직이 딸려 나왔다.

“병리과에 가져다주시고.”

김용찬에게 떠넘긴 도수가 말을 이었다.

“봉합합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

순식간에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 도수 역시 새로운 경계 너머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전까진 투시력으로 보고 손이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보는 즉시 손이 반응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꿰맨 곳을 타고 다음 섹터를 꿰맨다.

슥, 스윽.

“컷.”

툭!

“다시.”

슥, 스윽.

“컷.”

툭!

눈 깜짝할 새 심장의 절제면을 봉합한 도수가 바이탈 그래프를 쳐다봤다.

삑. 삑. 삑. 삑

그리고 한마디.

“이제 확인합시다.”

“…….”

의료진들도, 심폐기기사도 감히 뭔가를 물어볼 엄두도 못 냈다. 대응하고 대처하기에는 너무도 거침없는 속도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인형이 된 것처럼 딸려갈 수밖에 없었다.

“심장 깨워요.”

강미소가 심정지액을 빼냈다.

도수의 신기(神技)로 인해 수술 시간이 단축된 덕분에 심장은 다시 제 역할을 되찾기 시작했다. 어느새 심장근육이 다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선생님!”

“환자 심장 돌아왔습니다!”

수술실 안이 술렁였다.

바티스타 수술을 개량한 도수만의 심장성형술이 사실상 성공한 셈.

이는 일반적인 바티스타 수술을 성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상용화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수술 후 내부 컨퍼런스를 통해 회의를 하고, 대외적인 심사까지 거쳐야겠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새로운 수술’을 만드는 데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도수는 지독히도 냉철했다.

“아직 수술 안 끝났습니다. 심폐기 정지.”

“…….”

숙연해지는 의료진들.

덩달아 머쓱해진 심폐기기사가 심폐기를 껐다.

위이이이이잉……

심폐기가 서서히 멈추고.

심폐기로 혈액을 전달시켜주던 카뉼라를 뽑은 도수는 혈관을 봉합했다.

슥, 스윽.

순식간에 수술이 마무리됐다.

혈관을 봉합하고 정상 크기를 되찾은 심장을 응시하던 도수는 한마디로 수술 결과를 알렸다.

“수고했습니다.”

“……!”

방금 한 소리 들은지라 누구 하나 소리 내서 기뻐하진 못했지만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이 수술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강미소, 김용찬, 이하연은 얼굴색까지 붉어졌다.

조금 느슨하게, 천천히 환자 가슴을 닫은 도수는 빠득 이를 악물었다.

긴장이 탁 풀리면서 무리했던 피로감이 파도처럼 전신을 덮친 것이다.

아득해지는 의식. 손발에 힘이 일시에 쭉 빠져나가며 사지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도수는 억지로 버티며 고개를 들었다.

2층.

참관실은 물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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