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뜻밖의 손님
도수와 마주앉은 <브라운&윌리암슨> 이학승 사장이 입을 뗐다.
“피곤하실 테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네.”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인 저희 <브라운&윌리암슨>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뉴라이프 프로젝트’라고, 수술 로봇에 관한 사업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본사 미래연구개발부의 자문위원이 되어주십시오.”
수술 로봇?
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술을 보조하는 로봇은 이미 개발된 걸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걸 양해해 주십시오. 회사 내부 사람이 되시면 전부 알게 되실 내용입니다.”
“글쎄요. 별로 알고 싶지가 않아서.”
“백 배.”
“……?”
“현재 연봉에 백 배를 받게 되실 겁니다.”
도수는 놀라지도 않고 피식 웃었다.
“그 돈을 어디 써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이학승은 말문이 막혔다.
“그게 무슨…….”
“관심 없다는 뜻입니다.”
환자, 수술.
이것과 아무 관련 없는 일이기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단도직입적인 대답에 이학승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그딴 짓을 할 순 없지.’
도수의 아버지 ‘이찬’의 논문이 발표되는 걸 막았던 과정이 떠올랐다. 그땐 어쩔 수 없이 그 같은 일을 했지만 다시 한번 손에 구정물을 묻히고 싶진 않았다. 해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제안을 던졌다.
“돈에 관심이 없으셔도 이건 관심이 생기실 겁니다. 심장성형술에 관련된 아버님 논문. 국내에서 발표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죠.”
“……!”
도수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눈빛은 예리해졌다.
“무슨 뜻이죠?”
“이도수 선생님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아버님 논문을 아로대병원장이 중간에서 탈취했다고요. 그 일 때문에 병원장과도 척을 지고 나오신 것 같고… 저희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저희가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면 이도수 선생님은 아버님 논문을 대신 발표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곳 한국에서요.”
“이번 건 제법 흥미롭네요.”
도수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눈을 빛냈다. 그 시선 끝에 머무른 냉기 때문인지, 이학승은 이상하게 오한이 들었다.
그가 싸늘한 느낌에 대해 고심하기도 전에, 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관심이 생길지, 그렇지 않을지는 사장님 대답에 달렸습니다. 질문 하나만 하죠.”
“…하시죠. 질문.”
“이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예?”
이학승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든 말든 도수가 이어 물었다.
“<브라운&윌리암슨>이란 곳이 이 일과 관련이 있냐는 뜻입니다.”
“그건…….”
당황한 이학승이 말을 잇지 못하자.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신 것처럼 관심이 생길 것 같네요. <브로운&윌리암슨>.”
“…무슨 말씀이신지…….”
“제안에 대한 대답부터 해드리겠습니다. 제 대답은 거절입니다.”
“왜… 입니까?”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브라운&윌리암슨>이 제 평생의 숙원 중 하나를 풀어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가령 아버지 논문을 막은 것에 대한 속죄라든지.”
“저희가 그 논문을 막았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아직 확신은 아니에요. 하지만…….”
“하지만?”
“하나의 가능성이죠.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곳과 손잡을 순 없습니다. 전 수술 로봇인지 뭔지에 대해서도 궁금하지 않고, 그렇게 많은 돈도 필요 없거든요. 그리고 하나 더.”
“…말씀하십시오.”
“다시 한번 <브라운&윌리암슨>이 제 아버지 일에 원흉이라고 가정해 보죠. 그런데도 얼마 전까지도 철저하게 막으려던 아버지 논문을 발표하게 도와준다? 수술 로봇인지 뭔지가 아버지 논문을 던져줘서라도 해결해야 할 만큼 중요한 과제란 건데, 제가 그걸 돕겠습니까?”
철렁.
다시 한번, 이학승은 간담이 서늘했다. 마치 도수의 시선이 한 자루 칼처럼 심장을 꿰뚫고 있는 느낌이다. 그 칼을 뽑는 즉시 즉사할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그의 마음을 아는 걸까?
도수는 기어코 칼을 뽑았다.
“막으면 막았지.”
“……!”
이학승은 자신이 큰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서둘러 말했다.
“생각이야 본인 마음이니 가정하는 것까지 막진 않겠습니다만… 그저 가정뿐인 일을 확신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제가 그랬나요?”
도수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추후에도 제 가정이 확신으로 바뀌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그럼 전 수술 때문에 피곤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드르륵.
몸을 일으킨 도수가 뒤돌아섰다. 돌아선 그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브라운&윌리암슨>.’
그는 확신했다.
그곳이 아버지 논문이 가로막힌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한편,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이학승 역시 고개를 저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한 방에 도수가 추론해 낼 줄은 몰랐다. 막상 직접 맞상대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영리하고 야생적인 놈이었다. 하지만 그것뿐, 어차피 <브라운&윌리암슨>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일은 없었다.
‘또 한 번 더럽게 꼬이긴 하겠지만…….’
접촉 실패.
그게 다였다.
아쉽긴 해도 도수가 어쩔 수 있는 기업이 아니었으니까. 본인이 사실을 알아챘다 해도 위험해지는 건 기업이 아닌 도수일 것이다.
***
짧은 만남을 가진 도수는 맥이 다 풀린 채 중증 외상센터 의국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심산이었다.
그래야 또 투시력을 쓸 수 있을 테니까.
언제 응급 환자가 실려 올지 모르는 응급실에선 한상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가 응급실을 가로지르는 그 순간.
강미소가 팔을 붙잡았다.
“센터장님……!”
도수는 그녀가 이번 수술에 대한 이야길 할 줄 알고 벌써부터 피곤해지려 했는데, 정작 강미소는 다른 이야길 꺼냈다.
“센터장님을 꼭 좀 빨리 뵙고 싶다고 찾아오신 환자분이 계세요.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환자분?”
“네.”
환자라니.
도수는 걸음을 돌렸다.
응급실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녀는 도수를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선생님, 요즘 흉통이 너무 심합니다…….”
흉통?
도수가 물었다.
“다른 증상이 있으신가요?”
“난 확장성 심근병증 진단을 받았어요. 심장이식을 해보려 했지만 체질상 그것도 힘들다는 판정을 받았고요.”
“……!”
도수가 눈을 크게 떴다.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면 바티스타 수술의 대상이 되는 심장 질환이기 때문이다.
역시, 환자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한 달 전쯤인가, 이사장님한테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티스타 수술이 필요한 분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그땐 괜히 수술받다가 잘못될까 봐 미루고 있었는데. 요 며칠 흉통이 너무 심해서 이렇게 직접 이도수 선생님을 찾아왔어요.”
도수가 눈을 빛냈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휘되고.
확장성 심근병증이 폐색전증(Pulmonary thromboembolism: 심부정맥의 혈전이 이동해 폐혈관을 막은 상태)으로 이어진 게 보였다.
즉, 흉통은 폐색전증으로 인한 것이었다.
확장성 심근병증이 폐색전증이란 증상을 동반했다는 건 이미 우심부전(Heartfailure: 우측 심장기능 저하로 신체에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 왔다는 뜻. 이 정도면 이미 말기라고 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심장에 시한폭탄을 달고 있는 것과 같다.
더 큰 문제는 이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폭탄이 터질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
아니, 지금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 판단한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강미소 선생님. 응급수술 하나 잡아주세요.”
“으, 응급수술이요?”
강미소가 보기엔 할머니의 상태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기에 던진 질문인데,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틀린 적이 없는 도수였으므로 그녀는 의심을 가지지 않고 대답했다.
“네……! 지금 바로 잡을게요.”
도수는 다시 할머니를 보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액세서리와 복장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곁에 정장을 입고 서 있는 청년 또한 가족 같지 않았다.
“일단 간단한 검사부터 하겠습니다.”
도수가 근처를 얼쩡거리고 있던 간호사 이하연에게 말했다.
“에코카디오그래피(Echocaiorgraph: 심장초음파) 해주세요.”
“네!”
이하연이 할머니에게 붙자.
할머니를 보필하던 정장 입은 남자가 반대쪽을 부축했다.
“가시죠.”
“끄응.”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도수를 보며 말했다.
“나 좀 살려줘요.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 말은 했지만.
방금 전까지 고난도의 뇌수술을 하면서 투시력을 극한까지 쓴 상황이었다. 지금도 툭 치면 쓰러질 정도로 지친 마당에, 다시 지속적인 투시력을 쓰면서 수술하는 건 불가능했다.
방금 전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머리가 핑 돌 정도였으니까.
‘바티스타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나 하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의 경우 바티스타 수술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치료법이 남아 있지 않았다.
‘미뤄야 하나?’
아니.
지금도 환자 상태는 꾸준히 안 좋아지고 있다.
언제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괜히 ‘응급수술’에 들어가려고 강미소에게 지시한 것이 아니다.
‘믿어야 한다.’
도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그는 다른 써전들에 비해 수술할 때 힘을 빼고 부드럽게 칼을 다루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긴장과 열이 잔뜩 올라 있었다.
‘할 수 있어.’
꽈악.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미 아버지의 논문을 수도 없이 읽었다. 눈을 감으면 부모님이 해외에서 진행했던 수술 과정이 영상처럼 펼쳐질 만큼.
그만큼 깊이 파고들었기에 한층 더 발전된 수술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발전시킨 수술법을 수도 없이 떠올리고 연습했다.
물론 당시에는 3D바이오시뮬레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 환자의 심장 모양을 만들어서 연습하진 못했지만, 다양한 케이스를 고려해 심장성형술을 수 없이 반복했던 것이다.
그때 곁에 다가온 레지던트 이시원이 물었다.
“센터장님, 괜찮으세요?”
“김 교수님은요?”
갑작스러운 도수의 질문에 이시원이 볼을 긁적였다.
“아……! 수술 들어가신다고 하셨어요.”
“…젠장.”
“예?”
“아닙니다.”
최고의 어시스트도 자리를 비운 상황.
이제 혼자서 투시력 없이, 일반 의사들이 수술하듯 난이도 극상의 심장성형술을 해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악재가 겹친 셈이었지만.
도수는 수술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이시원에게 말했다.
“방금 수술 받은 김은영 환자 신경 좀 써주세요. 전 다시 수술 들어갑니다.”
“예? 방금 수술 마치셨는데… 다른 교수님들도 계시잖아요?”
“수술할 수 있는 분이 없어요.”
“예? 어디가 아픈 분이길래…….”
“확장성 심근병증입니다. 저 말고 다른 분이 들어간다고 해도 바티스타 수술이 필요해요.”
“아!”
이시원은 입을 닫았다.
흉부외과 과장이 와도 바티스타 수술을 시도하진 않을 것이다.
바티스타 수술.
확장성 심근병증에서 심실의 확장으로 인한 심실기능 저하를 되돌리는 수술이다. 심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좌심실의 외측 자유벽을 절제하고 일차 봉합해 심실의 용적을 축소시킨다.
하지만 이 수술은 심실의 기능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외측벽을 절제하기 때문에 효용성에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현재는 시행되지 않고 있는 수술이기도 했다.
“그… 수술을 진짜 하시려고요?”
이시원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고.
도수가 대답했다.
“그냥 두면 환자는 사망합니다. 제게 새롭게 개량한 바티스타 수술이 있어요. 환자는 그 수술로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