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접촉
뇌실질의 혈종은 굳어 있었다.
뇌실질 자체가 세 개의 막을 벗겨내고 접근해야 하는 심부(深部)인 만큼 시야는 더 협소해졌다. 그런 반면 훨씬 더 민감하게 다뤄야 했다.
샤아아아아아아.
극한까지 발휘되고 있는 투시력.
앞뒤 재가면서 아낄 때가 아니었다.
‘제발 버텨주길.’
도수의 몸이 먼저 축날지, 환자의 혈종이 먼저 제거될지.
가파른 줄다리기였다.
“혈종이 굳었다.”
그 말은 정영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혈종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항응고제를 쓰기에 너무 딱딱해.”
혈종을 녹여서 카테터로 출혈을 제거해 줘야 하는데 항응고제로도 혈종을 완전히 녹일 수 없다는 뜻. 이렇게 되면 혈종을 모두 제거하지 못하게 된다.
“닫지.”
그는 단념했다.
뇌실질 고랑에 직접 혈종이 생겼다면 경막, 지주막 사이에 굳은 피를 긁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건 뇌의 가장 예민한 부분과 직접 맞닿아야 하는 문제였으니까.
결국 물리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도수의 생각은 달랐다.
“계속 진행합니다.”
“계속 하겠다고?”
정영록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묻는 반면.
정영훈은 어깨를 떨 만큼 흥분했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나쁜 의미의 ‘미친 새끼’가 아니다.
정영훈이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신경외과에서 성형외과로 전공을 바꾸었던 건, 실력의 한계를 느껴서였다. 한데 불쑥 나타난 사촌 동생은 그가 상상 속에서나 꿈꾸던 일을 두 손으로 이루려 하고 있었다.
죽음의 코앞에 도달한 환자를 끌어내 생존시키는 것.
도수는 어떤 의사라도 부딪칠 수밖에 없는 아득한 벽 앞에서, 그 벽을 뚫고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시작하죠.”
그런 것 치고 도수의 어조는 담담했다.
그때 정영록이 말했다.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 아니,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가 될 지도 몰라.”
“여기서 멈추면 그렇게 되겠죠.”
도수가 말을 이었다.
“멈추지 않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어요.”
“희박한 확률에 네 모든 걸 걸겠다?”
“제 모든 것?”
역질문한 도수가 답했다.
“제 모든 건 이 환자를 살리는 겁니다.”
“…….”
“칼.”
“…….”
“칼을 줄지 겁쟁이처럼 도망칠지. 선택하세요.”
지켜보고 있던 정영훈이 입을 열었다.
“메스는 여기…….”
“아뇨.”
단칼에 자른 도수는 정영록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직접 주십시오.”
시간이 지체되는 건 일, 이 초.
하지만 각오도 안 된 의사가 이 수술방에 남아 있으면, 앞으로 남은 수술 전체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칠 위험요소가 된다.
만약 이 수술이 끝난 시점에 환자가 잘못될 경우, 가족들 중 누구라도 수술 과정을 문제 삼는다면 이 수술실 안에 있는 의사 중 누구도 구설수를 피해갈 수 없다. 특히 수술 성공률 구십구 퍼센트에 도전하고 있는 정영록 입장에선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술 성공률이 구십구 퍼센트라는 건, 애초에 생존 확률이 희박한 환자에게 칼을 대지 않는다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에게 찾아가서 ‘수술하자’는 대답을 듣는 순간 살아남을 확률이 백 퍼센트에 가깝다는 의미가 될 테니.
환자들은 그를 찾을 것이다.
‘아버지 기록을 깨야 하는데.’
정영록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나가시죠. 칼.”
도수가 정영훈에게 눈길을 돌리자.
정영록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하지.”
그래, 이번 한 번을 실패해도.
성공했을 때 얻는 명예가 더 클 것이다.
한 번에 뇌를 두 곳이나 다친 환자는 극히 드물고. 그런 환자를 살려내기란 더욱 힘든 일이니까.
애초에 그래서 수술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정영록은 메스를 건넸다.
그의 눈빛에서 이번에도 ‘환자에 대한 열정’이 아닌, 지독하게 냉철한 이기심을 읽은 도수는 묵묵히 메스를 받았다.
‘쓰레기.’
그에 대한 생각을 확정한 도수는 다시 환자 뇌고랑 속에 웅크린 혈종에 집중했다.
도수는 투시력을 더욱 끌어 올렸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과 현미경의 도움을 받아 혈종의 위치와 형태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두개골 뼈를 자르고 세 개의 막을 벗겨냈기에 가능한 현상.
“후.”
짧게 숨을 뱉은 도수는 호흡을 멈춘 채 예리한 칼끝을 놀렸다. 메스 끝에서부터, 손으로 신경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로지 감각에만 의지해야 하는 영역. 마치 심해(深海) 속에 발을 들인 것처럼 막연한 두려움이 덮쳤다.
‘닿으면 안 된다.’
메스가 뇌의 표면에 닿으면 안 된다.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고 혈종을 제거해야 한다. 깨끗하게 제거해야 하니 뇌 표면과 눈곱만큼의 간격도 남기면 안 된다.
‘할 수 있어.’
도수는 자신을 믿었다.
감각을 믿고 경험을 믿었다.
수 미리미터의 오차만으로 환자의 생사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 은영이의 창창한 미래가 오로지 도수의 칼끝에 달려 있었다.
스으으으으윽.
현미경.
그리고 극대화시킨 투시력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켰다.
남들은 절대 보이지 않는 뇌 표면과 혈종의 경계선.
그 경계선을 따라 메스를 놀렸다.
미세한 떨림도 없이.
문득, 두려움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후…….”
만약 찰나라도 망설이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더 큰 실수를 불러올 테고, 환자의 뇌는 벌집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도수는 날선 집중력으로 공포를 뚫었다.
스윽, 슥…….
뇌 표면에 유착돼 있던 혈종이 베어져 나가며 제거됐다. 이는 투시력을 극대화한 도수만이 가능한 일이었기에, 정영록은 눈을 부릅떴다.
“……!”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이건 말이 안 된다.
그의 상식선에선 불가능했다.
원래 뇌 표면에 혈종이 항응고제도 듣지 않을 정도로 굳어버렸다면 환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데, 도수는 그 혈종을 경막 위에 굳은 피를 떼어내 듯 절제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출혈이 없다.’
출혈이 없다는 건 메스 끝이 뇌 표면을 교묘하게 스치지 않고 혈종만 긁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이런 게 가능하다고?’
도수가 수술하는 것을 처음 봤을 때,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만큼 도수의 수술 실력은 귀신같았다.
거기까진 인정.
하지만 인간의 수술 실력을 벗어난 신기(神技)는, 단연코 평생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정영록은 놀라고 당황했을 뿐이지만.
함께 이 장면을 보고 있는 정영훈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당연히 내 편이 될 수 없지.’
부르르 주먹이 떨린다.
‘이런 써전을 누가 품을 수 있겠어?’
환자들의 것이다.
신만이 품을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을 살리라고 하늘이 보낸 신의(神醫)다.
크리스천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수님이 인간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신이 보낸 구원자라면, 도수는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신이 보낸 구원자였다.
정영훈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슥.
칼끝이 굳은 혈종을 교묘하게 뇌고랑 밖으로 끌어냈다. 뇌 표면은 스치지도 않고 말이다.
“집게.”
도수는 클램프를 받아서 혈종을 떼어냈다.
“말도 안 돼.”
정영록은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메스로 혈종을 긁어냈는데 뇌혈관들이 거미줄처럼 퍼진 뇌실질에선 아무런 출혈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수술실 안에 있는 모두의 눈이 토끼 눈이 되었지만, 정작 도수는 차분하게 메스를 건네주고 읊조렸다.
“타이.”
봉합침, 봉합사가 손에 들어왔다. 이제 잘라낸 반대 순서로 안쪽에서부터 연질막, 지주막, 경막을 모두 되돌려 놔야 하는 것이다.
슥, 스윽.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얇은 연질막, 지주막, 경막이 도수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원래 형태로 붙고 있었다. 누군가 이 수술을 본다면 한 점 망설임 없이 말할 터였다.
‘완벽한 수술’이라고.
경막까지 봉합한 도수는 그제야 투시력을 풀었다.
“현미경 벗겨주세요.”
간호사가 도수한테서 현미경을 벗겨냈다. 그러자 이제야 보통 시야로 돌아왔다. 현미경에 투시력까지 사용한 시야와는 완전히 달랐기에, 도수는 머리가 핑 돌았다.
“후.”
아주 잠깐 비틀거리는 그를 향해 간호사가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이하연이었다. 그녀는 존경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새로운 센터장이 지금껏 본 적 없는 실력을 발휘하며 정영록을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정영록의 성질머리는 병원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전 센터장도, 다른 과장급 인사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이사장의 손자. 그리고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써전이라서.
그런데 새로운 이사장의 손자는 그딴 걸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긴, 같은 성골에 실력마저 정영록을 한참 넘어섰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수술 결과는 머잖아 병원전체에 퍼질 터였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일관되게 수술에만 맹목적이었다.
“괜찮습니다. 다시 타이.”
다른 때 같으면 마무리 정도는 정영록에게 맡기겠지만, 그는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직접 두개골을 닫고 두피클립을 푼 뒤 다른 크기의 봉합침과 봉합사를 받아 두피를 꿰맸다.
뇌도 다루는 마당에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 바람 같은 속도로 수술이 마무리됐다.
스윽.
환자의 민머리를 한 번 쓸어준 도수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
저벅, 저벅.
도수가 수술실에서 나오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브라운&윌리암슨> 한국지사장 이학승이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짝…….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만면에 미소를 띤 그.
도수가 물었다.
“누구신지.”
“전 <브라운&윌리암슨>의 한국지사장 이학승이라고 합니다.”
그가 명함을 건넸다.
힐긋 확인한 도수가 물었다.
“제약회사?”
“그렇습니다.”
“저를 찾아오실 이유가 없을 텐데.”
“있습니다. 그것도 굉장한 희소식과 함께 왔습니다. 하하하, 수술 때문에 피곤하시겠지만…….”
“피곤합니다.”
“…….”
이학승은 다시 웃었다.
“하하하핫, 그래도 잠시만 시간 내주실 수 없을까요? 오 분 안에 끝내겠습니다.”
오 분 정도야.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두 사람은 병원 내 휴게실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본 정영록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학승 사장 아니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정영훈이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저 치가 왜 우리 사촌 동생이랑 같이 있지?”
둘 모두 경영권에 관심이 있었기에 이학승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브라운&윌리암슨>의 한국지사장이 일개 의사를 볼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
정영록이 의문에 빠진 얼굴로 서 있는 그때.
정영훈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섭섭한 거 아니지? 너무 수술을 잘해서 내가 굳이 공정할 필요도 없던데?”
“사람 긁지 마라.”
“에이, 형님도. 환자가 살았으면 좋은 거지.”
“좋은 건 좋은 거고…….”
정영록은 도수가 있던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자식, 우리 아버지도 못 하는 수술을 해냈어.”
“흠흠. 우리 병원에 아주 훌륭한 인재가 들어왔군.”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몰라서 신난 거냐?”
“응? 뭘?”
“너랑 내가 밀려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에이. 형이 형 입으로 말했잖아? 저 녀석, 아무 관심 없다고.”
“저놈이 아무리 보통 아닌 놈이라도 우리 영감만 하겠어?”
“수술 실력과 경영은 별개기도 하고…….”
“저 실력이면 엄청나게 유명해질 거다. 인턴 때부터 아로대 병원장을 날릴 만한 담력. 수술 실력에 인지도까지. 관계가 없겠어?”
“…….”
“자칫하다간 눈 뜨고 코 베인다. 한가한 소리 말고 네 밥그릇이나 잘 챙겨.”
그렇게 말하고 제 갈 길을 가는 정영록. 그의 표정은 처음 수술실에 들어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어두웠다.
반면 정영훈은.
빙그레.
웃었다.
“흐음… 그나저나 <브라운&윌리암슨>은 또 무슨 일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