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복병(伏兵)
한편 그 시각.
수술 참관실로 한 사람이 들어섰다.
천하대학병원 참관실조차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사람.
세계적인 제약회사 <브라운&윌리암슨>의 한국 지사장이었다.
의료업계에서 <브라운&윌리암슨>의 영향력은 컴퓨터 시장에서의 ‘마이크로 소프트’나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조아리며 로비를 하고 영업을 하는 건 일반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이야기.
<브라운&윌리암슨>의 지사장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특정 업체가 아무리 컴퓨터 하드웨어를 잘 만든다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윈도(Window)’라는 소프트웨어를 배포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다면 그 컴퓨터 회사는 뒤쳐질 터.
마찬가지로, 일 년에도 몇 번씩 이전 버전보다 업그레이드된 신약을 독점적으로 개발하고 배포하는 <브라운&윌리암슨>를 척진다는 건 병원 입장에선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인 것이다. <브라운&윌리암슨>의 모든 신약들이 지금도 전국 병원에서 수술이나 처방에 쓰이고 있었으므로.
그토록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지사장은 지금 천하대병원 수술 참관실에서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영어로 말했다.
“이학승입니다.”
-아로대병원장을 날린 녀석은?
“곧 수술이 시작될 겁니다.”
-대단하군. 개복수술만 해도 믿을 수 없는 실력으로 해내는데 개두수술까지.
“뇌, 신경 쪽 실력은 확인해 봐야 합니다만…….”
-접촉해 봐. 그 정도 실력이면 이번에 준비 중인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거다. 단순히 약 파는 회사가 아니라, 전 세계 의료산업의 선구자로 거듭날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거야.
‘뉴라이프 프로젝트’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브라운&윌리암슨>이 있게 해준 제약업을 ‘단순히 약 파는 일’로 치부할 만큼 이번 프로젝트는 기존 의료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시도였다.
<브라운&윌리암슨>은 여기에 명운을 걸었다.
그렇다고 해도, 도수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마친 이학승은 확답을 할 수 없었다.
“…반골 기질이 강한 걸 보면 웬만해선 안 넘어올 것 같은데요.”
-약해빠진 소리. 한국 전체에 우리 회사 약품을 심은 사람은 어디 갔지?
“…죄송합니다.”
-노력해 주게.
“…….”
침묵했던 <브라운&윌리암슨> 한국지사장 이학승이 물었다.
“직책은 어디까지 생각하십니까?”
-본사 미래연구개발부 자문위원.
“……!”
이학승은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미래연구개발부.
본사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서다.
이번 ‘뉴라이프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
그런 곳의 자문위원이라니. 바꿔 말하면 미래연구개발부 부장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삼십 년간 이 회사에 뼈를 묻어온 자신과 동급의 직책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본사 결정.
‘까라면 까야지, 씨발!’
본사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은 그저 주어진 일을 하면 된다.
그 충성심으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바뀔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제안하겠습니다.”
-그래, 이번 사업은 그 녀석 때문에 복잡하게 꼬인 ‘심장성형제’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야. 알고 있겠지?
“네. 반드시 영입하겠습니다.”
-그게 안 되면……
“말씀하십시오.”
-미국으로 보내.
“…예.”
-이건 수십, 수백 조 단위가 아니야. 천문학적인 금액이 걸린 사업이다. 이런 사업에 자네 목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이 태풍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부디 살아남길 바라네. 그럼.
뚝.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을 부서져라 쥐고 부들부들 떨던 이학승이 거칠게 뱉었다.
“개새끼.”
십수 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 같은 지시를 받았다.
<브라운&윌리암슨>이 야심차게 개발 중인 심장성형제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완벽한 바티스타 수술’이 보편화되는 걸 막고 그에 해당하는 논문을 쓴 이찬을 해외로 발령내 버렸다. 그리고……
“젠장.”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떨친 이학승은 창밖으로 보이는 수술실 정경을 바라봤다.
‘수술의 귀재’로 불리는 두 사람이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대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있었다.
***
도수는 길고 탐스럽던 머리카락이 깨끗이 밀려 나간 은영이의 두피를 투시했다.
샤아아아아아아.
두개골 뼈 아래로 옅은 붉은색이 눈에 들어왔다.
경막, 지주막 사이의 경막하출혈이다. 하지만 정확한 출혈 범위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 같으면 천공폐쇄배액술(Burr hole trephination: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출혈을 빼내는 최소침습수술)로 진행을 했겠지만 씨티로 확인한 혈종은 그의 생각보다 컸다.
결국 개두술(開頭術)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뜻.
“개두술하겠습니다. 칼.”
메스가 손에서 손으로 건너왔다.
도수는 다른 때보다 더 신중하게 환자의 머리에 칼을 댔다.
혈종이 있는 부위를 둥글게 절제하자 곧 하얀 두개골이 드러났다.
“이리게이션.”
주사기에서 뿜어진 세척액이 피부에서 묻어난 핏물을 씻어 내렸다.
그러자 새하얀 두개골 뼈가 드러났다.
“드릴.”
개두기(開頭器. Craniotome: 두개골을 여는 데 쓰이는 도구)를 말하는 것이다.
턱!
드릴을 손에 넣은 도수가 말했다.
“이리게이션 계속 해주세요.”
지이이이이이잉!
드릴이 돌아가며 두개골을 뚫었다.
톱밥처럼 쌓이는 뼛가루.
주사기에서 나온 세척액이 드릴과 두개골의 마찰을 줄여주며 씻어 내렸다.
지이이잉!
정확한 위치에 구멍을 뚫어서 윤곽을 잡고.
구멍 사이에 칼집을 내서 얇은 철로 된 엘리베이터(Elevater: 수술용 지렛대, 거싱기)를 밀어 넣은 뒤 지렛대 원리로 들어냈다.
쩌걱!
그야말로 거친 과정을 거쳐서 드러난 경막. 그 속에 응고된 핏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투시력이 있었기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응고됐는지 벗겨보지 않아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한데.
‘저 속에 있는 건 뭐지?’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경막에 응고된 핏덩이는 시커멓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짙은 붉은색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그림자처럼 잡힐 듯 말 듯 일렁이는 뭔가가 있었다.
도수는 덜컥, 불안감이 치밀었다.
‘설마…….’
경막 외에도 출혈이 일어난 곳이 있는 건가?
수많은 수술 기록을 읽었어도 찾기 힘든 케이스였다.
기계가 한꺼번에 두 곳 이상 고장 나는 경우가 드물 듯, 사람의 뇌도 한꺼번에 한 곳 이상 문제가 생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래서 순순히 어시를 서겠다고 했구나!’
정영록은 봤을 것이다.
반면 도수는 씨티 사진을 보고도 경막 아래 또 하나의 출혈점이 있는지 찾지 못했다. 그만큼 미세한 출혈이 경막 아래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말해주지 않다니.’
도수가 사나운 눈길로 고개를 들자.
정영록이 물었다.
“빨리 안 하고 뭐 해? 두개골만 열고 칼자루 넘기려고?”
눈매는 흔들림이 없지만 마스크 속 입꼬리는 한껏 올라가 있을 터였다.
그는 상상도 못 하리라. 방금 도수가 경막 아래 깊은 곳에 숨겨진 미세한 출혈점까지 투시력으로 발견했다는 것을.
도수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마 찾아내지 못했다면 정영록의 말처럼 결국 칼자루를 넘기는 쪽은 도수였겠지만, 이젠 아니다.
‘경막부터 해결해야 된다.’
도수는 머리를 비우고 수술을 지고, 이기고의 스포츠 경기쯤으로 아는 정영록에 대한 분노를 버렸다.
어차피 정영록은 지금 도수가 뜸 들일 때 칼자루를 빼앗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테니까.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알려주듯, 도수의 칼끝이 경막에 아주 미세한 칼집을 냈다.
틱.
“가위.”
도수는 클램프로 잡고 있는 경막을 잘라서 벗겨냈다. 그러자 원색을 잃고 시커멓게 죽은 채 응고된 핏덩이가 경막을 덮고 있는 게 보였다.
“현미경 주세요.”
“네!”
간호사가 현미경을 씌워주자 투시력이 증폭됐다.
샤아아아아아아.
눈을 질끈 한 번 감았다 뜨는 시간이 스쳐 가자 훨씬 더 세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
척.
도수의 쉴 틈 없는 지시에 따라 손에 들린 의료 도구들이 정신없이 전환됐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환자의 ‘뇌’에 손을 댈 순간이 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잠깐.”
정영록이 도수의 눈을 마주보며 물었다.
“괜찮겠나?”
그의 표정도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만약 피가 굳지 않았다면 카데터를 이용해 피를 빨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피가 응고된 상태.
쉽게 말해 메스로 살살 긁어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깻잎 한 장 차이의 오차만 발생해도 환자는 저승길을 떠날 터.
하지만 도수는 그걸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
그 모습을 보던 참관인 정영훈의 얼굴에 흥분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의 이목을 받은 도수가 입을 열었다.
“석션.”
“…석션.”
정영록은 섬세한 손길로 석션을 시작했다.
그 역시 환자가 죽어 나가는 건 원치 않았으니까.
다른 누군가 피를 빨아들인답시고 뇌에 손상을 입히면 안 되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동시에 도수 역시 응고된 피를 메스로 살살 긁어냈다.
지주막이 손상되지 않도록.
슥, 스윽.
시이이이이익.
메스와 석션호스가 한 몸처럼 붙어서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최고의 써전임을 증명하듯 순식간에 응고된 피를 모두 긁어냈다.
그러자 콜라맛젤리처럼 생긴 핏덩이가 떨어져 나왔다.
또한 두 사람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 출혈이 있었냐는 듯 놀랍도록 깔끔했다.
도수는 담담했지만 정영록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야.’
과연 나였다면 이렇게 깔끔하고 빠르게 응고된 피를 제거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납득도 안 갔다.
원래부터 도수의 수술 솜씨는 인정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물론 본인 말처럼 뇌를 처음 다뤄본 것은 아니겠으나 경막하출혈만 오십 회가 넘는 임상경험을 보유한 자신보다 섬세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 수술은 기술이 전부가 아니야.’
신속함.
정교함.
두 가지로 보통 써전을 평가한다.
하지만 그 전에, 정말 중요한 덕목이 하나 있었다.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느냐’ 하는 것.
이건 정영록이 질 수가 없는 판이었다. 씨티를 본 적도, 볼 시간도, 구분하는 법도 그가 도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는 도수가 뇌실질에 미세하게 나타난 출혈까지 잡아내진 못했을 거라고. 이제 머리를 닫으려고 하는 찰나 자신이 나서서 수술을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정영록의 마지막 히든카드. 수술에 트집을 잡을 구실이었다.
이미 주사위가 던져진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도수는 머리를 닫을 생각을 안 했다.
“…왜? 뭐 문제 있나?”
그러면 안 됐는데, 정영록은 급한 마음에 물었다. 만에 하나 도수가 뇌실질 출혈을 찾아냈다 해도, 확신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환자 상태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머리를 닫게 한 뒤 칼자루를 빼앗아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수는.
정확하게 말했다.
“열죠.”
정영록이 눈을 부릅떴다.
“뭐?”
그는 얼마나 놀랐으면 하마터면 석션 호스를 떨어뜨릴 뻔했다. 자신조차 간신히 발견해 낸 뇌실질 출혈을 찾아낸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애초에 그는 투시력이 있는 도수를 속일 수 없었음을.
“너 방금 뭐라고…….”
도수는 정영록의 말을 무시한 채 지시를 내렸다.
“경막, 지주막, 연질막을 모두 열어야겠습니다. 다행히 경막하출혈이 난 부분과 출혈 위치가 멀지 않아요. 이대로 진행합니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도수.
반면 당황한 정영록을 번갈아 쳐다보던 참관인 정영훈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우리 형님 제대로 임자 만나셨네.’
그 말이 정답인 걸까?
도수는 한 술 더 떠서 정영록에게 말했다.
“절개 들어가겠습니다. 석션.”
시킨다.
“…….”
“석션!”
“…후.”
시켜도 해야 한다.
약속은 약속.
짤막한 한숨을 뱉은 정영록은 석션 호스를 가져다 댔다.
시이이이이익!
그리고 다시금.
칼잡이 도수의 칼질이 시작됐다.
슥, 스윽!
경막을 모두 벗겨냈으니, 이제 지주막.
라이스페이퍼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얇고 투명하게 덮인 막이다. 그렇기에 아주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했다.
그 힘든 일을, 도수는 큰 어려움 없이 해냈다.
슥, 스윽!
경막에 이어 지주막마저 벗겨낸다.
너무도 손쉽게.
‘어떻게 이런 일이……?’
정영록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복수술과 개두수술은 완전히 다른 수술이다.
개복수술은 수술 필드가 좁긴 해도 빈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개두술은 뇌실질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면 안 되기 때문에 훨씬 더 섬세한 터치가 필요했다.
그런데 허구한 날 개복수술만 하던 놈이 뇌수술을 식은 죽 삼키듯 해버리는 장면이 그렇게 이질적일 수가 없었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남들 시선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부터 집중력 잃으면 환자 사망합니다. 누구 하나라도 손이 엇나가는 순간 끝이에요.”
그 말에 정신을 번쩍 차린 의료진들이 바짝 긴장했다.
경막, 지주막, 연질막을 벗겨내고 마침내 뇌실질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한꺼풀만 열면 뇌가 있기에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곳.
그야말로 숨소리 한 번 만 틀어져도 환자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샤아아아아아아아.
도수의 투시력이 다시 한번 발휘되고.
은영이의 연질막 안쪽 뇌실질 고랑에 생긴 혈종이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