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참관인들
“영훈이를?”
이사장이 눈을 크게 떴다.
정영훈.
이사장의 둘째 손자이자 정영록의 친동생이다.
“영훈이를 공정한 참관인이라고 생각하느냐?”
도수는 정영훈을 모른다.
반면 정영록과 정영훈은 한 병원에서 지낸 시간이 길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네게 불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텐데?”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고?”
“애초에 참관인 눈치를 볼 만큼 미흡한 수술을 할 바에는 환자 몸에 손대지 않는 게 나을 테니까.”
“도대체…….”
이 대담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런 의문을 품는 동시에 이사장의 눈에 도수의 얼굴과 막내딸의 얼굴이 겹쳐졌다.
‘제 엄마를 쏙 빼닮았구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도수의 어머니, 정영화가 딸이 아닌 아들이었다면 이 병원은 그녀의 몫이었을 터였다.
실수.
명백한 실수였다.
사위 이찬의 출신이나 강직한 성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매몰차게 내쫓았던 일이 막내딸을 영영 잃는 비극으로 돌아왔다.
“영록이와 네가 경쟁해봐야 우리 병원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거다. 그래도 꼭 해야겠느냐?”
만약 무조건적으로 막을 생각이었다면 묻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도수는 이사장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환자를 위해섭니다.”
“…….”
침묵하던 이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뜻밖에 말을 했다.
“그렇다면 난 널 응원하마. 꼭 네 차례에서 무사히 수술을 끝내거라.”
도수는 그게 이상했다.
“왜 정영록 선생이 아닌 저죠?”
“그게 환자가 원하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
이사장이 말했다.
“영록이는 무너져 봐야 한다. 제 아비처럼 되지 않으려면.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을 바꿀 수 없듯, 나 역시 그 녀석을 바꿀 힘이 없단다.”
***
다음 날, 도수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찾아갔다.
은영이는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와 달리 의식이 깨어 있었고, 조사를 나온 형사 둘과 함께였다.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은영이와 조마조마하게 세 사람을 지켜보는 보호자들.
그들을 일별한 도수가 형사들에게 말했다.
“환자는 안정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사건 조사를 해야 해서…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르면 조사가 난항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선생님.”
“그래도 환자 안전이 우선 아닐까요? 아직 한 번 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
형사는 한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쯤 조사가 가능할까요?”
“환자 측에서 연락드릴 겁니다.”
형사 중 한 명이 아버지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은영이가 안정 찾거든 꼭 연락 주십시오, 아버님.”
“그리하겠습니다.”
형사들이 빠져나가자 환자 어머니가 도수에게 말했다.
“감사해요, 선생님. 경찰이라고 신분증까지 보여주면서 조사를 하니까 어쩌질 못했는데…….”
도수는 목소리를 낮췄다.
“외부적으로 정신적 충격이 가해지면 환자한테 좋을 게 없습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니까요.”
“네에,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은영이에게 물었다.
“몸은 좀 어때요?”
은영이가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요…….”
아플 것이다.
용케 잘 참고 있었다.
도수는 오늘 환자에게 어떤 조취를 취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기에, 환자와 보호자들을 훑으며 용건을 말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이차수술에 대한 걸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저 또 수술받아요?”
은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짙은 두려움. 아무리 당장 중증 외상센터에 배정된 환자라고 해도 신경외과 담당인 뇌 관련 문제에 대해선 신경외과 선생이 직접 와서 이야기해 주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정영록은 그에 대해 아직 한마디도 해주지 않은 것이다.
“지난번에 수술실 앞에서 봤던 선생님은 아직 안 오셨나요?”
“아뇨, 선생님이랑 그때 계셨던 여자 선생님만 몇 번 오시고… 그 선생님은 오신 적 없어요.”
으득.
도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바쁘셨나 보네요.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도수는 은영이와 눈높이를 맞추며 덧붙였다.
“일 차 수술은 잘 끝났어요. 겉보기엔 큰 부상이었는데 다행히 운이 좋아서 배 속은 상태가 괜찮았습니다.”
“아…….”
“이 차 수술도 잘 끝낼 거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요. 이번엔 머리 쪽을 좀 봐야 합니다. 떨어지면서 부딪친 것 같아요.”
“그, 그럼 저 반신불수나… 식물인간 같은 게 되는 거 아니에요?”
도수는 잠깐 고민했다.
보통 이럴 땐 ‘모두 그렇진 않아요’라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그런 사람도 있어요’가 된다.
환자를 불안에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현실 그대로 정확히 인지시키는 것과 조금 과장을 하더라도 희망을 심어주는 것.
의사는 이 두 가지 기로에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도수의 선택은, 후자였다.
설령 이 말로 인해 후에 더 큰 책임을 떠안게 되더라도 이미 환자는 따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을 테니까. 보호자들 역시 돌이키기 힘든 절망 속으로 빨려 들어갈 터였다.
그에 비하면 의사가 져야 할 책임은 결코 무겁지 않다.
따라서 도수는 자신의 말에 책임질 각오를 하고 은영이를 안심시켰다.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할 테니까. 은영 씨보다 훨씬 노쇠하고 심각했던 환자도 지금은 완전히 회복해서 언제 다쳤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어요.”
“아…….”
“그 전에, 선택을 해야 돼요. 누구한테 수술을 받을지.”
마침내 도수는 집도의에 대한 문제를 거론했다.
“일단 저는 중증 외상센터 소속이고 이렇다 할 뇌수술 경험이 없습니다. 반면 지난번에 응급실 앞에서 보셨던 정영록 선생은 수많은 임상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본인이 했던 말처럼 뇌수술 분야에선 국내 최고의 실력을 가진 써전입니다.”
“알고 있어요.”
어머니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저희도 검색을 해봤거든요. 대단하신 분이더군요.”
“그렇습니다.”
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인성을 떠나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뇌, 신경 쪽은 그리 호락호락한 분야가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들에게는 인성이 중요한가 보다. 스팩만 들으면 고민할 것도 없는 문제를 두고 그들은 고민했다.
“우리 애 목숨이 걸린 문제니까… 우리도 쉽게 생각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먼저 여쭤보고 싶습니다.”
환자 아버지가 물었다.
“선생님도 그분만큼 수술을 잘 해주실 수 있나요?”
“누가 더 수술을 잘한다는 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도수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그분보다 수술을 잘할 수 없다면, 제가 먼저 그분께 따님 수술을 부탁할 겁니다.”
“…….”
보호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과연 도수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무언의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답은 뜻밖에도 환자에게서 나왔다.
“전 이 선생님한테 제 수술을 부탁하고 싶어요.”
보호자들이 그녀를 보고.
은영이는 눈가를 훔치며 덧붙였다.
“그렇잖아요. 제가 죽거나 장애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확실히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한테 수술을 맡겨야죠.”
그제야 결정을 망설이던 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어머니가 도수의 손을 덥썩 잡았다.
“선생님, 부탁드려요. 전에 수술해 주셨을 때처럼… 꼭 우리 은영이를 구해주세요.”
그에 도수가 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언제나 같은 대답.
같은 말을 해도 언제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마련이지만, 도수는 모든 환자에게 같은 생각으로 이 말을 했다.
목숨 걸고 살리겠다.
라는.
***
도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삼 주.
다시 말해 이십일 일.
하루하루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도수는 수술에 들어갈 때를 제외하곤 수술 준비에 주력했다.
응급실에는 김광석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아무 문제없었다.
일곱 번의 응급수술.
일주일 만에 뇌신경 분야의 책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이 주 동안 3D바이오시뮬레이터로 은영이의 뇌를 본떠서 실습을 했다.
하루에 수면 시간은 고작 세 시간 반에서 네 시간. 깨어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니 하루가 길 법도 한데 순식간에 지나갔다.
가파르게 시간이 흐른 가운데.
마침내 환자 수술 당일이 됐다.
수술실 앞에서 만난 정영록은 손을 소독하며 도수에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됐군.”
“…….”
“준비는 많이 했나?”
“네.”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지?”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최고’라고 하죠?”
뜻밖에 돌아온 질문에 정영록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고니까 최고라고 하는데 그게 문제가 되나?”
“적어도 우리는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안 됩니다.”
“왜지?”
“최고의 성능을 가진 컴퓨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최고의 복서가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우린 정해진 룰도, 싸워야 할 적도 없습니다.”
“…우린 죽음과 싸운다.”
“그럼 더더욱 최고라고 할 수 없어야죠. 세상 어떤 의사도 죽음을 이길 순 없으니까. 단 한 명의 환자라도 잃어봤다면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안 됩니다. 그냥 우린 삶의 경계에 서서 최대한 끌어당기는 것뿐이에요. 죽지 말고 살라고.”
슈우우우우우.
증류수에 소독약이 씻겨 내려갔다.
수도꼭지를 잠긴 도수는 항균 페이퍼로 물기를 닦으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한테 최고가 되고 싶은 겁니까?”
질문을 남긴 그는 먼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 남겨진 장영록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난 알 것 같은데.”
이제 막 도착한 지각생 한 사람.
참관인 정영훈이 웃는 낯으로 끼어들자, 정영록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또 늦어?”
“나야 뭐 참관인인데. 금방 준비하지. 그나저나…….”
정영훈이 눈을 반짝였다.
“뇌신경 쪽에서 형한테 도전장을 내미는 인간이 다 있네. 우리가 사촌 동생 하나는 살벌한 놈으로 둔 것 같아. 안 그래?”
“헛소리.”
“방금 봤잖아? 공명심 탐내지 말고 네 할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한 거.”
“네가 하고 싶은 말이겠지.”
“원래 동생들은 대개 비슷한 법이지.”
씨익 웃은 정영훈은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골고루 소독약을 바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난 공정할 거야.”
“합리화시키지 마라. 어차피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에이, 그래도 친형제가 사촌지간보단 훨씬 가깝지 않겠어?”
다시 한번 웃은 정영훈이 덧붙였다.
“그래도 난 공정하겠지만.”
이런 태도가 하루 이틀이 아닌지 화도 안 내고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다는 표정을 지은 정영록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몇 걸음 걷다가 수술실 문 앞에 우뚝 멈춰서 고개를 살짝 틀며 말했다.
“아…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네가 아무리 공정하니 어쩌니 해도 저놈을 네 편으로 삼진 못할 거다.”
“내 편?”
“그래. 저놈은 의사로서의 영예나 돈, 사회적 지위 같은 것에 아무 관심도 없거든. 여우 같은 우리 영감이 흔들어도 꿈쩍 않는 놈이야.”
“불경하긴…….”
피식 웃은 정영훈이 말했다.
“상관없어.”
그리곤 나지막이 덧붙였다.
“내가 저 녀석 편이 되어볼까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