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실력 발휘
천하대병원 간호사들을 본 환자들은 종종 말한다. 아, 꽃밭이구나!
실제로 천하대를 찾는 환자들은 간호사들이 웃옷을 걷고 심전도 검사를 해줄 때 이상 반응이 나올까 봐 긴장한다는 있다는 얘기도 우스갯소리처럼 떠돌았다.
그중에도 눈에 확 띄는 미모의 소유자가 있었으니.
바로 중증 외상센터 소속 이하연 간호사였다.
그녀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보는 의사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은근한 추파나 대시를 받고 있을 만큼.
단순히 ‘예쁘다’는 이유만으론 부족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봤을 것 같은 분위기. 온실 속 화초 같은 그녀가 환자들의 피를 손에 묻히며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그녀의 진짜 매력이었다.
더욱이 부유한 집안 자제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런 여자가 굳이 오버 타임 근무가 일상인 중증 외상센터에서 자원해서 볼꼴 못 볼 꼴 다 봐가며 일하는 이유는 하나.
환자에 대한 열정인 것이다.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도수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신임 센터장.’
도수가 천하대로 오기 전, 소식을 들은 병원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새로운 중증 외상센터장은 모교 출신이 아니다. 인턴 실습을 마치기도 전에 센터장으로 부임한단다. 이것만 해도 전례 없이 파격적인 인사인데 고작 열아홉 살의 소년이란다.
직접 본 도수는 과연 앳됐다.
그러나 환자를 응시하는 눈빛.
이하연은 그 눈빛에서 과장들에게나 볼 수 있을 법한 노련미를 보았다. 손에 들고 있는 메스만큼이나 예리하고 치명적이었다.
보통 개복수술의 절개면적은 15센티 이상.
그러나 도수는 10센티 정도에서 멈췄다.
절개면은 말도 안 되게 깔끔했다.
그러나.
‘안쪽이 안 보일 텐데……?’
감히 수술에 개입할 수는 없었으나 다른 써전들의 수술 때보다 절개 부위가 현저하게 좁았다.
수술 성공 시 환자 몸에 흉터를 크게 남기지 않기 위한 건 좋지만, 절개 부위가 너무 좁으면 시야 확보가 힘들 수 있다.
특히 이런 다발성 장기손상 환자는 더더욱.
강미소를 제외한 모두가 의문을 품는 그때.
촥!
환자의 복부에서 피가 차올랐다.
도수는 당황하지 않고 메스를 내려놨다. 그리곤 침착하게 대응했다.
“석션… 아니, 거즈.”
석션은 늦다고 생각했는지 거즈를 요구한다.
이하연이 거즈를 건네기 무섭게 도수가 환자의 배 속에 거즈를 채워 넣었다.
그리고.
촤악! 촥! 촥!
거즈가 수술실 바닥에 패대기쳐 졌다.
배 속에 넘실대던 핏물을 빨아들이고 배 속 장기를 확인한 그는 즉시 말했다.
“칼.”
턱.
이하연은 메스를 건넸지만 마스크 위, 얼굴 절반 가까이 차지한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떴다. 깊은 속눈썹이 들리고.
‘저게 보이나……?’
절개 부위가 너무 좁은데?
다시 한번 의문이 들기 무섭게.
지나치게 빨리 칼날이 파고들었다.
비좁은 절개 부위 사이로 뒤엉킨 장기들과 혈관들.
보통 사람이라면 뚫어져라 쳐다봐도 뭐가 뭔지 모를 미로 속을 거침없이 헤집는다.
깻잎 한 장 차이로 혈관과 장기들을 피해 움직이는 칼날.
보는 사람이 다 조마조마했다.
“……!”
움찔, 움찔.
이하연은 몸을 들썩였지만.
그녀 옆에서 복부를 고정시키고 있는 강미소는 감탄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손상된 조직을 절제한 도수가 말했다.
“타이할게요.”
이하연이 실과 바늘을 건넸다.
그러자.
그때부터 도수는 그야말로 귀신같이 터진 장기들을 봉합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피 짜주세요.”
환자 바이탈 체크까지.
마취과 전문의가 말하기도 전에 선수를 친다.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요하는 수술을 하는 동시에 환자 혈압까지 체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도수의 경우 어디까지나 투시력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마취과 전문의와 이하연은 눈을 맞춰가며 놀랐다.
슥, 스윽.
끊어진 혈관을 묶고 봉합하자.
순식간에 환자의 배 속이 원상태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장기들과 혈관들이 골고루 손상됐지만, 손상 부위가 크지 않고 손상된 혈관도 치명적인 곳은 없었기에 실과 바늘을 빼고 보면 다치기 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배 속이 돌아가 있었다.
“대단해요.”
이하연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마취과 전문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사장님께서 왜 센터장으로 모셔왔나 했는데… 기가 막히는 군요.”
도수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부러진 뼈가 알아서 잘 붙도록 근육들 사이에 고정시킨 뒤 배를 닫았다.
재봉틀처럼 빠르게 살 속을 파고드는 바늘 끝. 그에 따라 길게 늘어진 실.
“컷.”
툭!
“컷.”
툭!
말 그대로 순식간에 봉합이 끝나 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도수의 짧은 한마디.
그의 수술을 처음 접한 마취과 전문의나 이하연 모두 침음을 삼켰다. 듣긴 들었지만 이건 상상 이상 신속하고 정교했다.
그들의 표정을 본 강미소는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같은 아로대병원 출신인 도수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천하대 사람들 기를 누르는 장면은 몇 번을 겪어도 뿌듯할 것 같았다.
그 순간.
이하연이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센터장님.”
장갑을 벗던 도수의 시선이 2층에 서 있는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
한편 2층에서 도수의 수술 장면을 모두 지켜본 한 사람.
정영록은 도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제법이야.”
솔직히 놀랐다.
라크리마에서 행했던 도수의 수술 장면을 본 후 인턴 수준은 한참 벗어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병원장 목을 날린 것도 아로대병원장이 워낙 구린내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한데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그새 더 늘었군.’
라크리마에서 찍힌 수술 영상.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빨라졌다.
어렸을 때부터 수술을 했다고 하니 도수의 수술 시간은 점점 더 단축됐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전공이 달라서 장담할 순 없겠지만, 수술의 기본이 되는 절개나 타이 면에선 ‘수술 천재’라고 불리는 자신도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았다.
“아버지 정도… 되려나.”
그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써전인 아버지라면 절개와 봉합 속도 면에선 비슷할 것 같았다.
둘 중 누가 더 깔끔한지에 대해선 절개면이나 봉합 부위를 못 봐서 모르겠지만.
그 순간 시선을 맞추고 있던 도수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수술방을 나갔다. 거의 눈인사나 다름없다고 느낄 만큼 성의 없는 인사였다.
“…….”
꾸욱.
주먹을 쥔 정영록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아버지를 넘기 전, 이 천하대병원에 넘고 가야 할 새로운 제물이 등장했다.
***
물론 그 같은 감정은 정영록의 전유물일 뿐.
정작 도수는 관심도 없었다.
애초에 가치관이 달랐다.
정영록이 수술을 자신의 커리어로 생각한다면, 도수는 ‘커리어든 나발이든 환자만 살리면 장땡’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수술실을 나서자 급히 연락을 받고 온 환자의 부모님이 서로 손을 모으고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기도하던 두 사람이 창백한 안색으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어떻게 됐나요?”
“우리 은영이… 괜찮을까요?”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도수가 말했다.
“처음 환자분이 도착했을 때, 다발적 복부 손상이 있었습니다. 당시 환자분 상태가 당장 사망할 정도로 위급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라 한시 빨리 수술을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대로 출혈이 심해지도록 내버려 두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아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도수의 손을 잡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환자 어머니.
환자 아버지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그럼 우리 은영이는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입원은 며칠이나 해야 할지…….”
“그건 추후 상황을 지켜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술 상처는… 남을까요?”
“네.”
도수의 말에 환자 보호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 도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10센티 정도 얇은 수술 흉터가 생길 겁니다.”
“아……!”
보호자들은 일반 수술에 비해 얼마나 흉터 자국이 작게 난 건지 감이 안 왔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강미소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설명을 거들었다.
“보통 이런 개복수술을 하고 나면 15센티 이상의 흉터가 남곤 해요. 여기 이도수 선생님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 써전이시니까 수술도 깨끗하게 됐을 테고, 흉터가 생겼다고 해도 크게 흉하진 않을 거예요.”
“아! 이도수 선생님이요?”
환자 어머니가 그 이름을 알아들었다.
“그게 누군데?”
아버지가 묻고.
환자 어머니가 답했다.
“얼마 전에 TV에서 봤어. 간암 말기 환자 간이식도 성공하셨다고…….”
“아! 그분!”
환자 아버지도 알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시금 도수의 손을 잡는 보호자.
도수가 그리 질색하던 유명세.
그 유명세를 통해 얻은 ‘이름값’ 하나로 환자 보호자들이 수술 결과를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환자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터.
그런 의미라면, 유명해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도수는 맞잡은 손에 가볍게 힘을 주며 말했다.
“회복 속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환자의 의지예요. 특히 머리도 다친 상태기 때문에 충격이 커서 좋을 건 없습니다. 두 분께서 환자가 안정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세요.”
“머리요?”
보호자들의 낯빛이 하얗게 탈색된 걸 넘어 아주 노랗게 질렸다.
“머리가 어떻게 됐다는 거예요?”
“많이 다쳤습니까?”
그에 대해 도수가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신경외과 선생님이 설명해 주실 겁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머리 쪽 2차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점뿐입니다.”
“아!”
환자 어머니가 비틀거렸고.
아버지가 부축하며 벽을 짚었다.
“그… 머리면…….”
생각하기도 싫은지 눈을 질끈 감는다.
일반인들에게 신경외과 수술, 즉 뇌수술의 의미는 더 이상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와 같다.
도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해줄 위로가 없었다.
“…….”
“호, 혹시 못 깨어난다거나……. 어디가 불편… 해진다거나 하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어머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
환자 아버지 역시 눈을 내리깔고 침묵에 빠졌다. 한참 그러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제 열여덟 살인데… 분명히 충격이 크겠죠. 그 끔찍한 일을 당했으니.”
“…그렇겠죠.”
도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마취가 깨면, 일단 환자는 의식을 차릴 겁니다.”
“어떻게… 머리 수술도 해야 한다는 말을 그 애한테, 어떻게…….”
중얼거린 환자 어머니가 물에 빠진 사람, 물가에 떠다니는 지푸라기라도 찾으려는 심정으로 물었다.
“어… 어떻게 말하면 될까요? 선생님은 저희보다야 많은 환자들을 보셨잖아요. 그러니까…….”
“…….”
도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라크리마에서 사고는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었고, 그들을 치료하는 것조차 바빠서 ‘어떻게 마음을 달래야 할지’까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도수는 자신의 기억에 빗대어 생각했다. 자신 역시 라크리마에 있던 시절, 수도 없이 충격적인 사고에 휘말리고 위험에 빠졌던 것이다.
완전히 환자의 마음을 달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보호자들에게 말해주었다.
“사고에 대해 굳이 상기시키실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충격을 받아서 좋을 게 없는 상태입니다. 신경외과 수술도 확실한 게 아니니 좀 지켜봐야 하고요. 그쪽 선생님한테 확실한 소견을 듣기 전까진 말씀을 아끼고 평소처럼 행동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뒤에서 지켜보던 강미소는 도수에게 등이라도 두드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환자의 현실을 인지시켜 주고 보호자가 취해야 할 가장 올바른 태도까지 제시해 준다. 최선의 대처가 분명했다. 중증 외상센터 특성상 날벼락을 맞은 보호자에게 환자의 죽음을 알리거나 수술 경과를 말해줘야 할 일이 다분했기에 그녀는 이 부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많이 고민을 해왔고, 오늘 뜻밖의 사람에게 하나 더 배웠다.
바로 그 순간.
신경외과 전문의 정영록이 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삼 주.”
그는 환자의 보호자들을 보며 말했다.
“늦어도 삼 주 안에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