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56화 (56/152)

# 56

능력의 증명

샤아아아아아아.

도수의 두 눈이 빛났다.

김광석이나 아로대병원 인력들이 그랬듯, 조근현도 평범한 반사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평범치 않았다.

“조근현 교수님. 지이알디(GERD: 위식도역류질환) 있으시죠?”

“……?”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근현은 당황했다. 처음 보는 이가 어떻게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을 알아챈단 말인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은 하나였다.

‘흔한 질환이니까.’

그는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하십니까?”

도수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폐.

그 속에 기관지가 일반인들에 비해 좁아진 상태였다.

“에스마(Asthma: 천식)도 있으시고요.”

아주 옛날에 심했고 근래에도 환절기마다 심해지긴 했지만, 한눈에 봐서 알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다. 조근현 교수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그건 또 어떻게…….”

마지막 도수의 눈길이 머문 곳은 그의 골반부였다.

샤아아아아아아.

궁둥뼈부터 신경이 퍼져 나가며 염증으로 손상된 곳이 보였다.

“싸이아리카(Sclatica: 좌골신경통)도.”

“……!”

이제 조근현은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그래, 예리한 사람은 상대방이 서 있는 자세를 보고 허리가 아픈 것 같다든지 다리가 불편한 것 같다든지, 물어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대부분은 디스크나 협착증을 생각하지 ‘좌골신경통’이란 용어를 말하진 않는다.

“어떻게…….”

이쯤 되자 역류성질환을 맞춘 것도, 천식을 알아챈 것도, 좌골신경통을 말한 것도 전부 우연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앓고 있는 세 가지 질환을 맞출 수 있는 건 세상에 누구도 없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천식은 단순 알레르기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난생처음 보는 젊은 의사가 진찰도 아닌, 그냥 마주 본 것만으로 세 가지 지병을 속속들이 꿰고 말을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수가 이를 굳이 입 밖으로 낸 이유는 간단했다.

“인체에 손상이 생기면 어떤 이상 반응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통증에 둔감한 사람은 통증을 못 느낄 테고, 그 이상 반응이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이상 반응이 나타나긴 하죠.”

그걸 모르고 있는 의학도가 있던가?

하지만 모든 이상 반응을 알아챌 수 있다면 검사가 필요 없을 것이다.

조근현이 말뜻을 종잡지 못하고 있을 때, 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그 미세한 반응들로 상대방이 앓고 있는 질환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두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꽤 정확도가 높죠.”

무슨 선무당 같은 소릴.

조근현은 조금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자체가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은 존재했다.

“아, 그래서…….”

“어쩐지. 어떻게 알았나 했네. 그래서 검사도 없이 응급 환자의 상태를 바로바로 파악했던 거구나.”

구시렁거리는 레지던트 두 사람.

심지어 김광석 교수까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김광석 교수는 국내 모든 응급의학과 교수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인물.

조근현 교수 역시 다르지 않았기에,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

잠시 말이 없던 조근현이 물었다.

“믿기 힘들지만…….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왜 진작 밝히지 않으신 겁니까?”

도수와 관련된 기사 어디서도 그런 사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만약 이 사실이 밝혀졌더라면 엄청난 각광을 받았을 텐데.

그러나 도수의 답변은 간단했다.

“조 교수님도 안 믿으시는 걸 다른 사람들이 믿을까요? 그리고 믿는다 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제가 볼 환자들이 괜히 불안할 수 있죠. 데이터는 실수를 하지 않지만 사람은 실수를 하니까. 데이터보다 자기 감을 믿는 의사가 있다면 어떻게 믿겠습니까? 목숨이 걸렸는데.”

“…….”

할 말이 없었다.

너무나 맞는 말이었기 때문.

“…그럼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건지.”

“조 교수님은 이제 저와 함께 일할 사람이니까요. 응급 환자를 빨리빨리 조치하려면 서로의 신뢰가 두터워야겠죠. 그리고.”

잠시 말을 끊었던 도수가 덧붙였다.

“증명하래서 증명한 겁니다. 제가 환자들의 상태를 조 교수님 생각보다 훨씬 더 소상히 파악했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 모든 걸 그대로 지면에 적어도 보여 드릴 수 있다는 것도.”

“…….”

조근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못 믿겠다고 난리를 피우다가 갑자기 충성을 맹세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지 않은가?

도수는 그의 체면치레를 이해했다.

“조 교수님 환자는 재배정하지 않을 겁니다. 재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아직 불안정한 레지던트들까지입니다.”

채찍질 다음은 달콤한 꿀을 발라줘야 한다.

“저한테 센터장 대우를 하라고도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계시는 연구나 수술에도 관여하지 않을 테고요. 대신 응급외상센터의 규칙 몇 가지는 바꿀 겁니다. 그 규칙과 더불어, 응급상황 땐 제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마침내.

조근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천하대병원 응급외상센터 조근현 교수입니다.”

애초에 상식 밖의 능력을 선보인 도수다.

이 정도면 경계심도 사라진다.

그 자리를 호기심이 채울 뿐.

맞서려는 생각은커녕, 대쪽 같은 자존심도 굽혀질 수밖에 없다.

그 마음을 짐작한 도수가 팔을 뻗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합니다. 천하대 응급외상센터장으로 부임한 이도수입니다.”

***

촤르르르르르륵!

스트레쳐카가 응급실 문을 통해 들이닥쳤다.

“삼 층에서 떨어진 환자입니다! 환자 의식 없고…….”

도수가 투시력을 발휘했다.

샤아아아아아.

장기가 다 터졌다.

더 큰 문제는 머리도 멀쩡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막하출혈.’

머리 쪽은 직접 수술해본 적이 없지만, 상태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자 상태에 따른 디테일 상황판단은 담당 과가 정확했다.

“신경외과 콜하고 수술방 어레인지해 주세요. 시티 찍고 바로 수술 들어갑니다.”

레지던트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채 삼 분도 지나지 않아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내려왔다. 응급실이야 아로대학병원이 더 체계적으로 돌아갈지 몰라도 콜 반응은 인력이 충분한 천하대가 훨씬 빨랐다.

환자를 유심히 살피던 신경외과 레지던트는 환자 곁에 선 도수를 보고도 다른 사람을 찾았다.

“김광석 교수님은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

“인턴이셨다고 들었는데.”

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명백히 자신을 비꼬는 행위.

“그만하죠. 환자 앞에 두고 뭐하는 짓입니까?”

“……!”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괜히 한 방 먹이려다 한 소리 들은 것이다.

그 말처럼 실려 온 환자는 당장 수술해야 할 정도로 위중했고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신경외과 레지던트는 응급외상센터장으로 부임한 도수를 상대로 더 이상 하극상을 범할 수 없었다.

“…복부 수술부터 들어가시죠. 뇌 손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쪽은 시간을 좀 두고 지켜보다 수술해야 될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얼굴을 돌리며 강미소에게 말했다.

“수술 들어갑니다. 강미소 선생님이 직접 들어오세요.”

강미소의 표정이 활짝 피었다.

“네!”

원래 반말을 하던 그녀였지만 응급외상센터장이 된 도수에게 감히 반말을 할 수 없었기에 존대를 붙였다.

하긴, 김광석도 존대를 하는 마당에 그녀가 반말을 하면 그것도 이상하다.

‘적응되겠지.’

미소 띤 강미소는 도수의 얼굴을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로대학병원 인턴 나부랭이였는데 어느새 천하대학병원 센터장이 되어 있었다. 도수가 걸어온 모든 길이 전례 없는 신항로였다. 그래서일까?

그를 볼 때마다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충격적이고 신선하고 병원이란 먹이사슬의 하단에 위치한 레지던트로서 대리 만족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도수 아버지의 논문.

그녀는 올해 한 일 중, 그 논문을 본인에게 돌려준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구사일생 한 건가?’

강미소는 피식 웃었다.

처음엔 의사로서 초심을 잃고 가정마저 막 대하는 아버지가 미워서 벌인 일이다. 그 일이 자신의 생명을 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의 주범 중 한 명인 병원장마저 병원장 직위를 잃을 위기에 처했고.

불명예 해임을 당한다면 그 전의 위세를 회복하긴 힘들 터였다.

아버지 역시 언제 도수에게 응징 당할지 모른다.

그럼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만약 그런 판단을 하지 않고 그녀마저 아버지의 편에 섰다면 의사 가운을 벗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병원장이 해임당할 정도의 폭풍에 일개 레지던트 목이 붙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녀가 복잡한 생각에 잠긴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수술실에 도착해 있었다.

손을 소독하던 강미소가 대뜸 물었다.

“괜찮으세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러 군데 손상된 것 같긴 한데, 환자 상태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하하하!”

강미소는 자기도 모르게 명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환자 얘기 말고. 선생님이요.”

“저요?”

“네.”

“제가 왜요?”

“방금 신경외과 선생님이 함부로 말씀하시던데.”

“아.”

도수는 어이없는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수술 전에 무슨 그런 쓸데없는 일을 떠올려요?”

그렇다.

그에게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뜨끔한 강미소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전 그저 걱정돼서.”

“전혀 걱정할 일 아닙니다.”

도수가 칼 같이 말하자 강미소는 입술을 삐죽였다.

‘하긴… 내가 누굴 걱정하냐.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 이도수 선생 걱정이지.’

병원장까지 끌어내린 인턴이 응급외상센터장 직함까지 달고 무서운 게 뭐가 있겠는가?

괜히 한 소리 들은 강미소는 고개를 흔들며 도수를 따라서 수술실로 들어섰다.

“하! 역시 천하대.”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러나 도수는 전쟁터에서 수술하다 아로대학병원 수술실을 보았을 때처럼 덤덤하게 말했다.

“중요한 건 수술실이 아니라 어떤 환자를 누가 수술하느냐입니다.”

“그야 당연하죠.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집중하자는 의미였어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 같아서.

도수는 뒷말을 생략했지만 강미소는 알아들었다.

‘정신 차리자.’

천하대학병원에 온 뒤로 알게 모르게 들뜬 구석이 있는 그녀였다.

그래서, 더 힘차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마침내 천하대병원 의료진들과 손발을 맞추는 첫 수술.

두 사람은 수술대에 올려진 환자 양측에 마주섰다.

상체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환자는 아직 어린 여고생이었다.

“예쁘게 닫아줘야겠어요.”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그 역시 안타까웠다.

늘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늙고 쇠약한 환자는 수술 후에도 후유증을 심하게 앓을까 봐, 젊고 건강한 환자는 젊음의 아름다움에 손상이 갈까 봐 안타까웠다.

물론 이 모든 건 살아난다는 전제.

일단은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칼.”

턱.

메스를 쥔 도수가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

수혈팩에선 환자의 몸으로 피가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는 마취과 선생.

모든 준비가 끝나고, 도수는 환자의 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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