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사촌형제
“…….”
가족.
도수는 그 부분에 대해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덤덤한 그를 보며 이사장이 말했다.
“네 사촌 형 둘이 우리 병원에 있다. 큰놈은 신경외과 교수고, 둘째는 성형외과 레지던트 3년 차야.”
사촌 형이라면 어머니 오빠의 아들들이란 뜻.
“첫째는 ‘수술의 천재’로 유명하지.”
수술의 천재.
도수와 별명이 똑같다.
“넌 그 녀석만 조심하면 된다. 둘째는 굉장히 털털하거든.”
“제가 조심해야 하나요?”
“널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의사장의 말에 도수가 물었다.
“왜죠?”
“녀석은 굉장한 특권의식이 있거든. 할아비가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 이사장인 데다 젊어서부터 수술 천재란 말을 귀 따갑게 듣다 보니 그리된 게지. 제 아비를 쏙 빼닮았어.”
“…….”
침묵하던 도수가 물었다.
“외삼촌은요? 어디 계시죠?”
“미국에 있다.”
“미국…….”
“그래. 우리 병원과 협력관계인 텍사스 엘 파소 병원에 파견된 상태다.”
“전공은요?”
“역시 신경외과. 첫째가 제 아비를 보고 따라간 거지.”
아빠를 보고 따라가서 수술 천재로 인정받고 있다면, 그 아버지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닐 터였다.
“실력이 좋은가 보군요.”
“애 아빠? 실력은 최고지. 신경외과 쪽으론 세계 최고의 권위자 중 한 명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사장의 미소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안색이 그늘에 잠겼다.
“…하지만 자기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녀석은 내 말을 듣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 첫째 손자 놈은 돌이킬 수 있어. 제 아비처럼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서 진정한 의사의 사명을 잊지만 않았다면…….”
제법 의미심장한 혼잣말이었지만.
도수는 그 이상 알고 싶지도, 개입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신경외과의 권위자라는 남자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다.
“왜 파견을 나가 있죠?”
만약 그가 천하대에 남아 떡 버티고 있다면 병원은 더 대단한 위세를 얻고 있을 텐데.
그러나 이사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미 우리 병원은 국내 최고 소리를 듣고 있어.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건 변함없다. 하지만 고인 물을 썩기 마련이야. 우린 세계 각지에 뛰어난 인력을 파견해 두었다. 우리 병원 이름을 이 좁은 한국 땅을 벗어나 세계 전역에 알리기 위해.”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서 자라며 숱한 수술을 성공시킨 소년’이란 특이하고 드라마틱한 이력으로 유명해졌다지만 아직 세계적인 권위자들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야.’
나이를 보면 슬슬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빙긋 웃은 이사장이 덧붙였다.
“이제 너도 내부 사람이니 모든 걸 말해주는 게다.”
별 뜻 없는 한마디 같았지만 도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사장이 집요한 눈빛을 보내는 건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신호란 걸.
그럼에도 모른 척 말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것들만 알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당장은. 나머진 차차 알아가게 될 거야.”
은유적인 대화다.
이사장은 도수를 후계 구도에 넣고 있었다.
도수는 그걸 계속 거절하는 거고.
“…그럼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고.”
이사장은 잡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난 도수는 이사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는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초면인데, 그는 도수를 강렬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 사람이 첫째.’
도수는 가운에 달고 있는 신분증을 확인했다.
‘정영훈.’
남자, 정영훈이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애구나.”
“…….”
“내 사촌.”
“네.”
도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정영훈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하하하하하! 이야, 이게 무슨 일이래? 엄청 반갑다!”
불쑥 두 팔을 벌리고 다가오는 정영훈.
이사장의 ‘조심하라’는 말에 내심 대비하고 있던 도수는 당황했다. 이건 그가 대비하던 상황과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음… 남자가 이렇게 들러붙는 건 좀 그런가?”
“네, 많이.”
“형젠데?”
“그래도…….”
“우린 혈육이잖아?”
“…….”
도수는 할 말을 잃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그런 와중에도 정영훈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래, 뭐… 얘긴 들었다.”
눈물을 참는 듯 콧등을 붙잡은 그가 말을 이었다.
“그 오지에서 홀로 지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가족의 정이 뭔지 느낄 여력도 없었겠지. 내 다 이해한다. 앞으로 이 형이 잘 보살펴 줄게.”
그가 대뜸 다가오는 바람에 거리가 가까워져 있었다. 도수는 다시 한번 명찰을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상황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성형외과.
정영훈은 이사장이 ‘조심하라’고 했던 첫째가 아닌, ‘털털하다’고 했던 둘째인 것이다.
그런데 이건 털털해도 너무 털털하다.
이런 식이면, 첫째는 얼마나 도수를 싫어하기에 주의까지 줬단 말인가?
정영훈은 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쨌든 회포는 다음 기회에 풀자. 조만간 소주나 한잔하자고. 하하하하하! 난 이만 할아버지 만나러 들어가 봐야겠다!”
다시 한번 어깨를 두드린 그가 이사장실 문을 노크하고 말했다.
“할아버지~ 접니다. 잘생긴 영훈이요!”
“…….”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도수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그는 한 사람과 맞닥뜨렸다.
도수는 눈앞의 상대를 본 순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할아버지가 얘기한 첫째라는 것을.
“…….”
도수가 말없이 서 있자 남자가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비키지.”
도수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를 지나치려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미꾸라지. 네가 왜 여기 왔는지 모른다. 알 바도 아니고. 근데… 뭘 하든 적당히 해. 여긴 아로대가 아니니까.”
그는 도수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싫다는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무감정. 아예 도수의 존재 자체를 안중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가 막 다시 발을 떼려 할 때.
피식 웃은 도수가 발목을 잡았다.
“형치곤 나이 차이가 크네요.”
고개를 돌리는 정영록.
도수는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저를 좋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럼 됩니다.”
도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엘리베이터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도수가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무관심하던 정영록의 눈빛이 바뀌어 있었다. 그 위로 호기심인지 황당함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
다음 날.
도수는 응급실로 출근했다.
“이도수입니다.”
응급의학과 소속 레지던트 김용찬은 불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김용찬입니다.”
악수를 나누고.
도수가 물었다.
“조근현 교수님은요?”
“그게…….”
김용찬의 표정이 당혹감에 젖었다. 그 모습을 본 도수는 곧바로 상황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아예 나와보지도 않았군.’
레지던트만 보낸 것이다.
하긴, 천하대 교수직에 오르기 위해 수십 년간 뼈를 깎는 노력과 인내를 해왔을 것이다. 질리도록 수술과 연구를 병행하며 그 자리에 올랐을 터였다. 그런 조근현 교수가 보기에 도수의 응급외상 센터장 발령은 탐탁찮을 수밖에 없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근본도 없는 풋내기가 센터장으로 왔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일 것이다.
“…안내해 주시죠.”
도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이 정도 반향은 충분히 예측했기 때문이다.
대놓고 시비를 따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여전히 불편한 얼굴의 김용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도수는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뒤에 서서 지켜보던 김광석, 강미소, 이시원도 함께 움직였다.
김광석은 지금 있는 자리가 어색했다.
‘역시…….’
웃긴 일이다.
아로대병원에 있을 땐 응급외상센터장 자리가 그렇게 피곤하고 부담이 됐었는데.
막상 자리를 내려놓고 보니 허전함을 느끼다니.
선두에서 걷는 도수의 등을 보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스로 드는 감정에 대한 자괴감을 느낀 것이다.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수는 응급실과 회복실에 있는 환자들을 일일이 체크했다. 모두 응급실을 거쳐 간 환자들이었다. 아로대학병원 응급실이 그랬듯 환자의 양상은 다양했다.
오십 명이 넘는 환자들을 모두 보고 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김용찬이 말했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한 번에 전부 파악되진 않으셨을 텐데…….”
“파악됐습니다.”
“…예?”
도수가 다시 말했다.
“전부 파악했습니다.”
“아… 예에.”
김용찬은 전혀 믿지 못했다. 그저 도수가 기선 제압을 하려는 것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선입견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도수가 환자를 파악한 것뿐 아니라, 그중 한 명의 처방을 바꾸었던 것이다.
“응급실 십칠 번 배드 사십육 세 당뇨병 환자 란투스 대신 트레시바로 바꿔서 처방해 주세요.”
“……!”
눈을 부릅뜨며 잠시 놀랐던 김용찬이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센터장님. 저희는 저혈당 위험이 높은 환자나 매일 같은 시간에 인슐린을 투약하기 힘든 환자한테만 트레시바(Tresiba: 기존 인슐린과 달리 하루 한 번만 투여하면 되는 기저인슐린. 만 1세 이상의 소아과 청소년, 성인당뇨병 치료제로 쓰인다)로 처방하고 있습니다. 나머진 란투스(Lantus: 인슐린 글라진. 지속형 인슐린의 유사약. 당뇨병 치료에 쓰인다)로 처방하고요.”
“약가 차이가 있는 반면 저혈당 감소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 반대합니다.”
“예?”
도수가 말을 이었다.
“두 가지 약이 같은 계열에서 비슷한 수준의 장단점이 있는 약이라면 몰라도 트레시바는 란투스보다 더 진보된 약입니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차이죠.”
“그래도 기존 지침이…….”
“그 지침을 바꾸는 겁니다.”
“지금 바로요?”
“지금 바로 처방을 바꿀 건 김용찬 선생님이고, 저는 응급의학과 공지를 올려야겠죠. 지금 이 상황은 엔피에이치(NPH: 중간형 인슐린)과 롱 엑팅(Long-acting) 인슐린이 소개됐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울트라 롱 엑팅(Ultra long-acting) 인슐린이 롱 엑팅 인슐린의 단점을 극복했다면 당연히 울트라 롱 엑팅 인슐린을 써야죠. 이 환자한테는 란투스를 주고 저 환자한테는 개선된 트레시바를 주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란 얘깁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번 칼을 대기 시작한 도수는 응급외상센터의 세부지침들을 하나하나 바꾸었다.
환자에게 투여하는 약물은 무조건 최선의 약효를 볼 수 있는 것들로.
기존 환자들에게 했던 처방까지 손을 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수는 환자들의 경중, 손상 부위를 따져서 주치의를 재배치할 것이라는 공지를 같이 올렸다.
이쯤 되자 조근현 교수는 얼굴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구실에서 내려온 그는 대뜸 도수를 찾아왔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인사도, 통성명도 없었다.
스테이션에 있던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들어오신 지 하루입니다. 아직 환자 파악도 다 안 됐을 텐데…….”
“파악은 됐습니다.”
친밀감 형성은 아직이지만.
도수는 뒷말을 아꼈고, 그 옆에 있던 김용찬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조근현에게 말했다.
“그게… 전부 소상하게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게 말이 돼?”
“저도 잘… 정말입니다, 교수님.”
조근현은 도수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단순히 기억한다고 그 환자들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닙니다.”
“…….”
“어디서 발견됐는지, 어떤 상태에서 실려 왔는지, 어떤 지병이 있는지, 수술방에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시지 않습니까.”
차트는 확인했겠지만 아직 모든 기록을 전부 다 읽어보진 못했을 터.
반론의 여지가 없는 한마디에.
도수는 짧게 대답했다.
“압니다.”
다양한 환자를 수술한 경험이 많으면 이게 좋다. 환자의 환부를 보기만 해도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 수술방에서 어떤 상황들이 있었는지 검시관(檢屍官)처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럼 환자에게 물어봐서 직접 확인을 한다. 그리고 투시력을 쓰면, 환자의 몸속 구석구석을 두 눈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지병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그 사정을 꿈에도 모르고 이를 갈아붙이는 조근현.
‘어디서 뻔뻔한 거짓말을……!’
그때 고개를 든 도수가 입을 열었다.
“환자를 위한 올바른 의심입니다. 제 능력에 의심이 가시다면 직접 증명하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