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피……!”
주위사람들이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그러나 누구도 도수를 막지 못했다.
“거즈!”
그는 거즈를 배 속에 쑤셔 넣었다가 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피로 물든 거즈가 날아다녔다.
철퍽!
“거즈 더!”
철퍽! 철퍽!
바닥에 늘러 붙는다.
이런 상황에.
다른 과 레지던트는 두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씨발…….’
그는 정형외과.
애초에 나설 재주도 없을뿐더러 도수가 칼을 댄 이상,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서서 어시스트라도 서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만약 허가도 없이 수술한 이 환자가 사망할 경우, 공동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위험하게 한창 칼질 중인 사람을 건들일 수도 없는 노릇.
“미치겠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사람도 존재했다.
“제가 할게요!”
어느새 수술복을 입은 임재영이 간호사에게 거즈를 빼앗아 도수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철퍽!
인턴 집도에 인턴 어시스트!
이 무슨 기형적인 상황이란 말인가?
하지만 정작 도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에게는 임재영이나 타과 레지던트 눈치를 볼 여유가 없었다. 단 하나, 환자를 위해서 나선 그는 이미 수술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였다.
손바닥 두 개만 한 공간.
그 속에서 대동맥을 정확하게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좁은 공간 안에 수술 도구들을 집어넣고 놀려가며 수술해야 하는 것이다.
뭐 하나만 실수로 잘못 건드려도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지는 게 수술.
그럼에도.
도수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교했다.
동시에 투시력도 점점 강해졌다.
샤아아아아아.
대동맥의 압력은 굉장했다. 그로 인해 약해진 혈관벽이 풍선처럼 부풀다 터진 것이 이 환자.
콸콸!
출혈은 폭포처럼 지속되고 있었다.
수혈팩을 매달고 피를 짜도 혈압이 떨어지는 걸 막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방법은 하나.
수술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믿을 건 도수의 귀신같은 수술 솜씨뿐인 것이다.
턱!
단번에 대동맥을 잡아낸 도수는 클램프로 혈관을 집었다. 그러자 일시적으로 피가 멎었다. 피가 멎은 건 좋은데, 다리로 흐르는 피를 막았으니 지체되면 괴사가 올 수 있다.
“후.”
짤막한 한숨을 뱉은 도수는 예리한 메스 날로 터진 혈관의 입구에 흠집을 냈다.
인조혈관삽입술을 하기 위해서다.
이내 그의 입이 열렸다.
“스텐트 그라프트(Stent-Graft: 인조혈관).”
고개를 끄덕인 임재영이 인조혈관을 건넸다.
이 인조혈관의 생김새는 철사를 겹쳐놓은 듯 복잡한 구조였는데, 평소에는 커버를 덮어놓은 우산처럼 접혀 있었다.
도수가 스텐트 그라프트를 받아 들자, 수술 경험이 많은 간호사가 물었다.
“서, 선생님… 스탠트 삽입술을 하시려고요……?”
“네.”
“아…….”
간호사의 표정에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원래 스텐트 수술은 얇은 철사같이 생긴, 접힌 인조혈관을 대동맥 안으로 넣어서 펼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육안으로 진행하기에는 노련한 의사도 무리가 있다. 그런데 도수가 현미경이나 확대모니터도 없이 이 수술을 하겠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샤아아아아아아.
도수는 투시력을 극도로 끌어 올린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시야를 흐리던 핏물까지 거즈로 싹 다 빨아내 제거해 버렸으니 이제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수는 한마디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할 수 있습니다.”
그저 한마디일 뿐인데.
간호사는 묘하게 안심이 됐다.
이미 도수의 수술에 들어가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정작 어이없는 건 지켜보고 있던 레지던트였다.
‘뭐야? 정 간호사가 한마디에 입을 다문다고?’
아무리 수술 중이라고 해도, 기운 센 정 간호사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거침없이 수술을 진행했다. 철사처럼 생긴 스텐트 그라프트를 대동맥 안으로 쑤셔 넣은 뒤 투시력으로 관찰하며 터진 위치까지 밀어 넣었다. 그 다음.
스으윽.
우산을 편 상태로 감싸고 있던 비닐을 벗겨내듯 스텐트 그라프트의 커버만 빼냈다. 그러자 스텐트 그라프트가 우산처럼 펼쳐지며 대동맥의 터진 부분을 대신했다.
대동맥과 비슷한 크기의 스텐트 그라프트가 대동맥 혈관 펼쳐지자 저절로 고정이 됐다.
“휴!”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역시……!”
임재영이 외쳤고.
간호사들도 저마다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러나 도수는 그들을 일별했을 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수술을 마무리했다.
혈관을 집고 있던 클램프를 제거해 다시 다리로 혈류가 흐르도록 하고 배를 닫았다.
귀신 같은 타이솜씨에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입을 딱 벌렸다.
“헐…….”
이야기는 누차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고 나니 그 속도가 믿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총알같이 신속하다.
슥, 스윽.
아주 간단하게… 살을 꿰맨다.
‘우리 병원 레지던트들을 통틀어도 저렇게 쉽게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아니, 속도는 교수님들보다 더 빠른 것 같고. 정교함도…….’
자기도 모르게 불경한 생각을 하던 레지던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후우! 진짜 미치겠네.”
임재영이 실실 쪼개며 눈을 흘겼다.
“선생님. 도수 실력 직접 보시니 어떠세요? 장난 아니죠?”
“야, 임재영.”
레지던트의 표정이 돌변했다.
“내가 네 친구냐? 그 표정 뭐야?”
“…죄송합니다.”
입을 삐죽 내민 임재영이 고개를 돌렸다.
‘도수한테 택도 안 되니까 괜히 나한테 지랄은…….’
그사이 타이를 마친 도수가 말했다.
“항생제랑 수액 처방할게요. 지켜보자고요.”
장갑을 벗자, 간호사들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와, 완전 과장 포스…….”
임재영이 다시 한번 말했고.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눈알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는 걸어 나오는 도수를 막진 못했다. 눈을 피하며 은근슬쩍 비켜준 것이다.
‘역시 나한테만 지랄하는 거였네.’
임재영은 다시금 속으로 구시렁댔고.
도수는 굳은 표정으로 수술방이 되어버린 처치실을 나섰다.
***
‘이걸 빌미 삼겠군.’
수술방을 잡지도 않고 임의로 수술을 했다. 환자는 살렸지만 병원장이 직접 문제 삼으려면 얼마든 문제 삼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물론 이건 병원 내 문제일 뿐 환자 쪽에서 고소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처벌을 받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금 도수는 사표를 낸 상태이니, 병원 내 문제에 휘말리지 않아도 된다.
바로 이게 진짜 문제가 되는 이유였다.
‘너무 섣불렀다.’
원래 마지막 순간에 내려던 사표였다.
그런데 한순간 감정이 복받쳐 선택한 작은 실수가 책잡힐 만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젠장.”
조금만 꼼수를 부려서 사직서를 받은 즉시 퇴사 처리 통보를 했다고 주장하면 도수는 소속 병도 없이 남의 병원에서 수술한 의사가 돼버린다.
이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고, 도수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수술하기 직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다시 메스를 잡을 터.
지금은 히든카드를 써야 할 때였다.
‘병원장 패를 보고 써먹으려고 했지만.’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어쩔 수가 없다.
도수는 이시원과 강미소가 막 내려오는 장면을 목격했으나 모르는 척 병원 뒤편 공터로 향했다. 지금 당장은 두 사람과 김광석을 만나러 가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공터에 도착한 도수는 핸드폰을 샀을 때 등록하고 한 번도 걸지 않았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신호가 가고.
이내 한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장성민입니다.
도수가 자신을 밝혔다.
“이도수입니다.”
-이도수?
“네. 국시 수험장에서 아드님 응급조치를 했던.”
-아……! 그렇잖아도 가끔 생각이 났었네. 연락이 없어서 이대로 못 보나 했는데……. 시험 결과를 알아보니 국시에는 합격했다더군.
“네.”
-정말 대단하군. 그런 상황을 겪고도……
“그보다.”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려고 건 전화가 아니었다. 도수는 대충 추임새를 맞추며 물었다.
“전에 부탁이 생기거든 연락하라고 하셨죠?”
-…….
놀랐는지 잠시 말이 없던 장성민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반가운 일이 두 개나 있군. 내가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기는 건가?
“잊지 않으셨군요.”
-내 아들 목숨값을 어떻게 잊겠나?
“그럼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도수는 병원장과 자신 사이에 얽힌 내막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통화했을 때.
듣고만 있던 ‘법무법인 명인’의 대표 장성민이 대답했다.
-자넨 아무 걱정 말고 의료 활동에만 전념하도록 해. 자네가 그럴 수 있도록 만들어줄 테니까.
인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의사고, 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법조계 사람이다. 게다가 장성민은 그냥 법조계 사람도 아닌 국내에서 손꼽히는 로펌의 대표.
도수는 그의 대답을 믿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내일까지 내가 기자들 데리고 직접 병원으로 갈 테니 아무 걱정 말고 일 보고 있게. 아로대학병원을 떠나려면 준비할 게 많을 테니.
너무 간단하게 말해서 정말 아무런 걱정이 안 된다.
도수는 전화를 끊고 몸을 돌렸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그의 마음은 가벼워져 있었다.
‘병원 법무팀과 내가 싸우면 진다.’
이건 당연했다.
도수가 아무리 대단한 변호사를 고용해 봐야 한계가 있을 테니까.
‘법무법인 명인과 병원 법무팀이 싸우면 명인의 압승이다.’
이것도 당연했다.
법을 주무르는 건 의료계가 아닌 법조계니까.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팩트가 있었다.
‘병원장은 구린 구석이 많아.’
진흙탕 개싸움이 되는 순간 털릴 건 병원장이다. 도수야 병원 내규를 어기고 수술을 했다지만 병원장은 그게 아니다.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한국에 살았던 시간이 길어서, 일급수와 구정물이 같이 흘러드는 병원장이란 직무를 수행해서, 그리고…….
아버지의 논문을 빼돌렸던 것까지.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물러설 수밖에 없다.
“이직 한번 더럽게 힘드네.”
거칠게 뱉은 도수가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앞에는 응급실 식구들이 딱딱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시원과 강미소가 동시에 물었고.
도수가 대답했다.
“환자 살렸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그렇다고 수술실도 아닌 곳에서 수술을 하면…….”
“수술실은 없었고 환자는 일, 이 분만 지체됐어도 사망했을 거예요.”
“…….”
강미소가 입을 닫자 김광석이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네가 나섰다면 그럴만했겠지.”
도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덧붙였다.
“병원장님을 만나고 왔다. 네게 유감을 가지고 계셔. 이번 일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큰일 아니에요?”
나선 건 이시원이었다.
그는 마치 자기 일처럼 눈을 부릅뜨고 말을 이었다.
“아니, 얘기 들어보니 다 죽어가던 환자를 살린 것 같은데 그게 문제가 되다니요.”
“…….”
침묵에 잠긴 네 사람.
먼저 입을 뗀 건 도수였다.
“문제없을 겁니다.”
문제는……
병원장에게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