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천하대병원
간관 문합을 마친 도수는 입을 열었다.
“현미경 벗겨주세요.”
오염 때문에 스스로 벗지 않고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벗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간호사가 현미경을 벗기자 도수는 눈을 깜빡였다.
‘투시력은 다시 원상태.’
그는 방금 전 겪었던 변화가 아쉬웠지만 미련을 두진 않았다. 어차피 꾸준히 지식과 경험을 쌓고 체력 관리를 하다 보면 저절로 한계는 늘어날 테니까.
“마무리하죠.”
도수는 새로운 봉합침과 봉합사를 받아서 열었던 배를 닫았다.
다시 한번 신기에 가까운 봉합 실력이 발휘됐다.
하긴, 혈관도 손쉽게 봉합하는 써전이 살을 꿰매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종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이런 큰 수술을 성공하고도 기쁜 내색 한 번을 안 하냐.”
“아직 안 끝났으니까요. 컷.”
툭!
실밥을 잘라낸 도수는 가만히 환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나머진 당신 몫입니다.’
가슴 속으로 말한 그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몸을 돌려 수술실을 나섰다.
사부작, 사부작.
수술복을 벗은 도수가 문을 통과하자 환자의 보호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 공여자의 어머니이자 환자의 아내인 중년 여자가 두 손을 모으고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됐나요?”
표정에 간절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염색을 못해 곳곳이 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화장도 못한 파리한 안색, 주름진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다.
“일단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아……!”
눈을 질끈 감은 그녀가 비틀거리자.
기족들이 뒤에서 잡아주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중얼거린 여자는 도수의 손을 꼭 붙잡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복받으실 거예요. 우리 가정을 살리셨습니다.”
“…….”
“그럼… 그이는 언제 깨어나는 건가요?”
“그건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여자의 눈이 커졌다.
분명히 성공했다면서?
눈빛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에 도수가 숨김없이 대답했다.
“일단 마취가 깰 때까지 하루 정도가 소요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요. 간 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한다면 의식을 찾으실 테고, 환자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간이 제대로 기능을 못할 경우… 깨어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분명 수술은 성공하셨다고…….”
“수술 성공과 환자 회복은 또 다릅니다. 하지만…….”
맞잡은 도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드님을 생각해서라도 깨어나실 겁니다. 그럴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수는 ‘저희’가 아닌 ‘제가’라고 했다. 그는 다른 누군가를 입에 담지 않았다. 그의 법칙은 간단명료했으니까. 자신이 집도한 환자이니 끝까지 책임진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책임 또한 자신이 진다.
진심이 닿은 걸까?
여자는 도수에게서 손을 떼고 공손히 두 손을 배꼽 아래에 모았다. 그리고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부탁했다.
“네, 선생님. 제발 무슨 수를 써서든… 그이만 살려주세요. 우리 가족 모두 그이 등만 보고 살아왔어요. 살려만 주세요…….”
“네.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수는 같은 말을 반복하곤 걸음을 옮겼다. 환자들로부터 몇 걸음 더 떨어졌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수술 잘 봤습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기자였다. 이번 공개 수술에 참관인으로 초청된 당사자기도 했다.
“나중에 얘기하죠.”
도수는 단칼에 자르고 가던 길을 갔다.
현기증이 날 만큼 피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정신을 잃고 혼절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꽤 긴 시간 두 개의 수술방에서 두 번의 수술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버텨낸 것이다.
‘…평소보다 더 많은 체력과 집중력을 쓴 것 같은데.’
라크리마에선 생존이 체력 훈련이고 일상이 투시력을 키워주는 경험치였다.
그러나 이곳에 온 후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체력은 새벽마다 뜀박질로 기르고 경험을 쌓던 시간은 지식을 키우는 시간으로 대체했다.
당연히 투시력이 향상되는 속도가 더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빨라졌다.
이미 경험으로 쌓을 수 있는 경험치는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던지 새로운 방식의 경험치 쌓기에 투시력이 어느 때보다 강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어느새 뒤에 따라붙은 기자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 그래도 큰 수술을 성공하셨는데, 그에 관해서 한 말씀만 해주시죠. 지금 드는 생각도 좋고 소감도 좋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
투시력에 대한 걸 만천하에 떠벌린다면 만천하가 놀랄 것이다.
그리고 도수는 수술 실력보단 초능력자로 유명해질 터였다. 정신병에 걸리고도 환자를 닥치는 대로 수술해서 살려내는 초능력자.
“제 소감은 자중할 때라는 겁니다. 아직은 뭐라 얘기하기 이르니 환자가 깨어나면 그때 하시죠.”
고개를 돌린 도수가 훌쩍 멀어졌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기자는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다만 뒷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을 따름이었다.
“젊은 의사들이 큰 수술을 성공하면 유명세나 영달에 눈이 머는데 전혀 다르네.”
신선했다.
대학병원에서 난다 긴다 하는 외과의들 대부분이 자존심이 높은 만큼 수술에 대한 공명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수는 그들과는 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나이가 어린데도 백전노장의 일면을 가진 것이다.
“뭐… 이래저래 겪다 보면 기회가 오겠지.”
깨끗이 단념한 기자, 김흥찬은 수첩을 덮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
잠시 눈을 붙인 도수는 일어나자마자 회복실로 갔다. 그러자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있는 아들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병석을 지키던 아내 역시 고개를 돌려 도수를 발견하곤 알은체를 했다.
“선생님…….”
그 와중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도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있었다.
못 보던 얼굴.
“하… 이거 어이가 없네.”
대뜸 반말이다.
남자의 시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 형수랑 수혁이 보니 그쪽이 우리 형님 수술을 했나 보지?”
“…이도수입니다.”
“그건 당신 가슴팍에 쓰여 있고.”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자.
나머지 두 사람이 말렸다.
“삼촌……!”
“도련님!”
“아, 가만히 있어 보세요들. 지금 이렇게 어린 의사가 수술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 형님이 못 깨어나시지. 대부분 간이식받고 하루면 깬다더만! 이 병원에는 아무나 수술 막 하고 그러나? 엉?”
“나가서 말씀하시죠.”
“나가서 말하면? 왜, 한 대 치게?”
“여긴 회복실입니다.”
“그래서?”
“회복실에서 떠드는 건 제가 보호자 분을 한 대 치는 것보다 훨씬 더 형님한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하! 이거 봐라?”
남자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성큼성큼 병실을 나갔다.
그러자 아직 병석에 누워 있는 아들과 그 엄마가 어쩔 줄 모르고 말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맞아요, 원래 저렇게 난폭한 사람이 아닌데… 저희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아뇨.”
도수가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게 빠를 겁니다. 가족분들이 말씀하셔 봐야 반감만 더 생길 테니까요.”
그는 남자가 원래 그런 사람이든 아니든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소란을 피우고 있고 진정시켜야 할 상황이 왔을 뿐이다. 이런 상황은 생명이 오가는 곳에선 어디서나 벌어진다. 그래도 여기는 칼부림, 총부림은 없지 않은가?
도수가 회복실을 나가서 문을 닫자.
남자가 한 걸음 성큼 다가오며 허리를 짚었다.
“당신, 내가 경우 없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나도 다 알아보고 왔어. 근거도 없는 수술을 했더만? 간암 4기 환자한테 희망 심고 희망 고문 하다가 마루타 삼아서 식물인간 만든 거 아니야!”
도중에 감격이 격해졌는지.
콰악.
멱살을 잡고 도수를 돌려세우는 남자.
그는 울고 있었다.
“수술 동의? 그건 내가 안 했고. 말로 살살 꼬드겨서 죽어가는 사람 죽이면 죄책감이 덜한가? 그래?”
남자는 힘을 줘서 흔들었다.
도수는 저항하지 않고 말했다.
“수술 전 설명드렸지만 몇 번을 설명드려도 부족할 테고.”
“뭐?”
“이렇게 저를 쥐고 흔들거나 폭행을 하셔도 그것 또한 분이 안 풀리실 테고.”
“너 지금 뭐라고…….”
“그런데 말입니다.”
턱.
도수가 팔목을 잡았다.
항거할 수 없는 악력에 남자가 손을 빼려고 힘을 주며 눈알을 위아래로 굴렸다.
“야, 이거 안 놔?”
그러든 말든, 도수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를 직시한 채 물었다.
“동생분은 믿어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타악!
남자가 손을 뿌리쳤다.
도수가 놔준 것이다.
씩씩대던 남자는 도수를 죽일 듯 노려보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지금 저 형님이 저렇게 누워 있는 걸 보고도…….”
“실패면 실패. 사망이면 사망. 판단이 서는 즉시 말씀드릴 겁니다.”
“시, 실패가 뭐 어째? 하하하! 편리해서 좋겠다! 너무 황당해서 이 개 같은 상황에 웃음이 다 나오네. 의사란 새끼가 잘도 그딴 뻔뻔한 말을 지껄이는구나.”
도수는 못 들은 척 할 말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저기 누워 계신 형님도, 형님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아내와 멀쩡한 간을 떼어낸 아들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지금은 형님을 믿으세요.”
“…….”
“일단 믿으시고. 지금 힘쓸 거 아껴뒀다가 잘 일어났다고 형님을 안아줄 때 쓸지, 저를 때리는 데 힘쓸지 결정하시죠.”
“…정말…….”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편 남자가 도수의 팔를 붙잡으며 물었다.
“정말 이러다가도 깨어날 수 있는 거야?”
“네. 아마…….”
“아마?”
“…그게 지금인 것 같지만.”
도수가 남자의 어깨 너머를 턱짓했다.
그 시선을 좇아 고개 돌린 남자. 그의 시야로, 눈물범벅이 돼서 뛰쳐나온 형수의 모습이 보였다.
“살았어요, 도련님……! 아이고, 선생님… 살았어요. 우리 남편이… 애 아빠가… 깨어났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으흐흑, 흐흐흑… 흐어엉!”
웃다가 감정이 복받쳤는지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
“큰 고비는 넘기신 것 같습니다.”
그 말과 함께.
펄럭!
멱살이 잡혔던 가운 깃을 세게 한번 털어낸 도수는 다시 병실로 걸어 들어갔다. 이번에는 나올 때보다 몇 배는 떳떳하게.
***
병원에서, 특히 응급실에서 자주 벌어지는 해프닝을 겪은 다음 날.
도수는 첫 오프(Off: 의사들이 쉬는 날)였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을 보는 듯한 눈길로 그를 보던 임재영이 물었다.
“오늘 뭐 하게?”
그는 도수가 어려운 수술을 척척 해내고 인턴이 인간 같지 않은 실력을 발휘하며 각광받을 때보다 더 부러웠다. 그건 비현실적이고 오프는 그도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수가 말했다.
“극비 사항인데.”
“뭔 극비?”
임재영이 물었지만 도수는 모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취조는 끝나지 않았다.
강미소가 곁다리로 툭 뱉은 것이다.
“난 어디 가는지 알 것 같은데.”
“정말이십니까?”
임재영이 묻자.
종이컵에 든 블랙커피를 호로록 들이마신 강미소가 자신의 추리를 뱉었다.
“병원 가는 거 아니야?”
“병원은 왜요? 여기가 병원인데?”
“여기 말고 다른 병원.”
“예? 도수 어디 아파요?”
“으이구, 인간아. 그건 같이 사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아…….”
“그게 아니라 왠지 오프 날에도 수술할 것 같아서.”
“아!”
임재영은 그제야 말뜻을 깨닫고 도수에게 당부했다.
“너 진짜 다른 병원 가서 수술하고 그러면 안 된다. 라크리마에선 어떨지 몰라도 한국에선 큰일 나. 네가 나 처음 봤을 때 도와준 것도 김 교수님 아니었으면 끝장이었을 거야.”
도수는 피식 웃었다.
“다른 병원 갈 건데.”
“잉?”
임재영과 강미소가 동시에 눈을 치떴지만 도수는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임재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스쳐 지나갔다.
그에 벙찐 임재영이 구시렁거렸다.
“에이씨, 말이나 하지 말지. 더 궁금하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강미소는 궁금증을 화풀이로 대신했다.
“하늘 같은 선배 앞에서 에이씨?”
“…….”
“인턴. 안 뛰어?”
후다닥!
임재영이 앞질러서 응급실로 내달리자 그 뒷모습을 응시하던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강미소가 보였다.
인턴 임재영, 레지던트 강미소, 이시원.
자주 어울리는 응급실 남매들.
그리고 응급실에서 부모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센터장 김광석, 교수 양진명까지.
그들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터였다.
오프 날 도수의 발길이 닿을 곳이 천하대병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