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47화 (47/152)

# 47

수술의 천재

서걱, 서걱!

도수는 메스를 바쁘게 놀리며 간을 고정하고 있는 인대를 모조리 잘라냈다.

삑. 삑. 삑. 삑.

결코 바이탈이 좋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나마 아직은 버틸 만한 수준이었다.

수혈팩에서 끊임없이 혈액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침착하자.’

도수는 눈을 부릅뜨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간성혼수까지 왔었던 간암 4기 환자. 그야말로 언제 어레스트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두 손에 환자 목숨이 달린 의사가 평정심을 잃는 건 환자의 죽음을 재촉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부드럽고 정교하게.

티끌만큼의 실수도 없이 손을 놀려야 한다.

스으으으윽.

메스가 마지막 인대를 잘라냈다.

“후우.”

이제 간문부 쪽 림프절(Lymph node: 임파선)에 전이된 연부 조직(Soft-tissue: 뼈나 관절을 둘러싸고 있는 연한 부위나 조직. 뼈를 싸고 있는 막, 힘줄 인대 따위를 아우른다)들을 절제해야 한다. 간관, 간동맥, 간문맥에 붙은 조직들을 깨끗하게 박리하는 작업.

도수의 시야 끝에 암이 전이돼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비대해진 림프절이 걸렸다.

동시에 그의 손이 들린 메스가 움직였다.

슥, 스윽.

조직 절제는 도수가 수도 없이 해본 일이었다. 일단 라크리마에서 총이나 폭탄을 맞은 환자들에게는 반드시 손상된 조직을 절제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때때로 부위나 위치는 달랐지만 ‘메스를 사용해 조직을 제거하는 행위’라는 것만은 같았다. 할리 무어 장군이나 다른 암 환자들에게도 그렇게 익힌 손기술을 써먹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그 솜씨가 발휘되고 있었다.

“칼끝에 신경이라도 달린 건가?”

마취과 김종학이 바이탈을 체크하며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간호사들은 완전히 홀려서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수술 경험이 많은 간호사들만 골라서 꾸린 수술팀이기에 그들은 도수의 실력을 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연부조직들을 도려낸 도수가 다시 간과 연결된 혈관들로 눈길을 돌렸다.

“혈관 절제하겠습니다.”

간 공여자의 경우 혈관의 분지를 잘라냈지만 간암환자는 이후 문합을 위해 분지로 나뉘기 전의 온간관, 온관동맥, 간문맥을 잘라줘야 했다.

서걱, 서걱.

출혈이 발생했다.

“환자 혈압 떨어져요.”

김종학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병원 내에 어떤 의사들보다 많은 수술에 참여한 마취과 과장답게 차분했다. 간호사였으면 소리를 질렀을 일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더 놀라운 건 도수였다. 그에게 혈압이 떨어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취과 과장의 말을 가볍게 씹는 건 둘째 치더라도 환자 상태에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도수는 투시력을 극한까지 발휘하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아.

그의 눈에는 환자의 혈액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생생히 보였다. 간 공여자에게 간을 적출할 때 최소한의 투시력만 썼던 덕분에 지금은 투시력의 범위를 모두 개방할 수 있었다.

환자의 전신 구석구석 벌어지고 있는 내부 상황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수술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누구보다 빠르게 즉각적인 대처를 할 수 있을 터였다.

서걱, 서걱…….

혈관을 묶고 자르기 때문에 출혈 자체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다만 환자의 몸 상태가 최악인 상태로 수술을 시작했기에 작은 대미지도 치명적일 뿐이다. 혈압이 약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더 떨어지면 그건 죽음이다.

“혈압 더 떨어지면 환자 위험할 수도 있어.”

김종학 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간호사에게 말했다.

“피 짜주세요.”

간호사가 수혈팩에 붙어서 손으로 꾹꾹 눌렀다.

이런다고 당장 뭔가가 해결되진 않겠지만 아주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다.

혈관들을 문합할 시간을.

딱 거기까지만 도달하면 된다.

거기까지만 안전하게 데려갈 수 있다면 그다음은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을 테니까.

‘이제 하대정맥.’

서걱.

마침내 간을 붙잡아 두고 있는 모든 인대와 혈관들이 끊어졌다.

도수는 환자의 몸에서 간을 통째로 떼어냈다.

“간이식 하겠습니다.”

아이스팩에 보관되었던 공여자의 간이 손에 들어왔다. 아들이 공여한 간의 일부가 아버지에게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도수의 머릿속에 그동안 습득했던 내용들이 촤라락 펼쳐졌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지금까진 간을 떼어내는 작업만 했다.

하지만 이젠 사람 몸에 간을 집어넣고, 그 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기적 같은 수술을 해내야 한다.

“현미경 주세요.”

지금까지처럼 손상된 장기나 동맥을 꿰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간호사가 현미경을 씌워주었다.

바로 그때.

삐이이이이이익!

“……!”

노이즈처럼 날카로운 이명(耳鳴)이 고막을 난도질하며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야말로 아찔한 순간이 지나가고, 정전된 것처럼 블랙아웃됐던 눈앞이 형광등을 껐다 켰다 하듯 점멸되며 다시 열렸다.

츠츠츠츠츠츠.

“아……!”

도수의 입매를 비집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투시력을 쓴 상태에서 현미경을 착용해 큰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그러나 문제의 방향은 나쁜 쪽이 아니었다.

투시력은 여전했으며, 오히려 더 섬세해졌다.

‘이게 무슨…….’

미생물을 현미경으로 보는 듯한 느낌.

세포조직들의 구성이 눈에 잡힐 듯 꿈틀대고 있었던 것이다.

도수는 이상 현상에 대해 확인 차 잠시 힘을 풀었다.

그러자줌 아웃을 하듯 투시력의 배율이 낮아졌다. 집중도에 따른 투시력의 깊이 변화.

지금껏 현미경을 쓴 상태에서 투시력을 써본 적이 없었던 도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라거나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뭐 해?”

김종학이었다.

고개를 가볍게 흔든 도수는 정신을 차렸다.

감탄은 환자를 살린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것.

문합을 해야 한다.

문합(吻合).

입술을 합친다는 뜻인데, 혈관을 서로 이어붙이는 행위를 말한다.

말이 쉽지 실제 문합술은 경우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김종학은 못내 걱정이 됐다.

‘지금 와서 돌이킬 수도 없고……’

그 역시 다른 수술은 도수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문합술은 달랐다. 김광석이 믿고 맡기겠다고 해서 제제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김광석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도수가 어리바리하게 굴더라도 대안이 없다. 직접 환자 목숨을 책임져야 하고,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 후폭풍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불안한데.’

문합을 끝냈을 때 조금이라도 새는 구석이 있거나 잘못 연결되면 이식받은 장기에 문제가 생길 테고, 환자가 쇼크 상태에 이를 수 있었다. 이 환자에게 쇼크가 온다는 건 사망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도수는 침착하게 말했다.

“타이.”

그리고 이내 실과 바늘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이 움직였다.

혈관들을 자를 때와 반대로 간정맥, 간문맥, 간동맥, 간관 순으로 문합을 해준다.

“후우.”

슥, 스윽.

도수는 먼저 간정맥을 문합했다. 비교적 작은 환자의 혈관은 사선으로 자르고 그에 비해 커다란 이식할 간의 혈관은 비스듬히 잘라냈기에 봉합만 필요한 상황. 먼지 한 올 들어갈 빈틈도 없이 현미경을 통해 보이는 혈관을 꿰맸다.

“…….”

김종학은 지금 도수가 잘하고 있는 건지 볼 수 없었으나 그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저건 긴장한 표정이 아니다.

극도로 집중하고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정교하고 섬세한 손놀림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만큼 미세한 폭으로 움직임이면서도 혈관을 차근차근 이어붙이고 있었다.

전율.

경이로움.

김종학은 그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다른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주위의 어떤 것도 감각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공간에는 오직 환자와 자신만이 존재했다. 고요하고 팽팽했다. 그 무엇도 이 시간 속에 들어올 수 없었다.

오로지, 그의 손만 움직였다.

환자 몸속의 미세한 반응들 하나하나까지 다 잡아내며 혈관이 이어졌다.

간정맥, 그리고 간문맥.

간문맥까지 연결한 도수는 출혈을 막기 위해 혈관을 집어놨던 클램프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간이 붉게 변하며 피가 돌기 시작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하나같이 상체를 앞으로 바짝 숙인 채 손톱을 물어뜯거나 머리카락을 감싸 쥐며 수술 상황을 지켜보던 참관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레지던트, 인턴들이 일제히 내지른 환호였다.

재관류.

간이 붉게 변하며 생기를 찾았다는 것은, 문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서 혈액이 돈다는 뜻이다.

교수들도 시끄럽게 구는 그들을 뭐라고 나무라지 못했다. 그들 역시 헛웃음을 터뜨리며 한 마디씩 했다.

“휴, 진짜 대단하네요.”

이유리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민혁찬도 주먹을 꽉 움켜쥔 채 할 말을 잃었다. 의사로서 모든 지식과 경험을 부정하지 않는 한, 인정과 감탄이 아니면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병원장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교수가 말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군요. 다행입니다. 환자 목숨을 구해서.”

“…아직 확실한 건 아니죠. 하루는 지나봐야 간 기능이 제 역할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 테니까.”

이유리는 팩트를 짚었다.

그러나 원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리가 모르는 실수를 했다면 모를까, 이도수 선생은 할 일을 전부 다 한 셈입니다. 수술은 잘 끝났어요. 병원에서는 의무를 다했다는 뜻이죠.”

“…….”

이유리는 이 순간에도 ‘의무’를 운운하는 병원장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지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쯤 도수는 마지막 순서인 간관을 문합하고 있었다. 담관, 담도라고도 불리는 이곳을 문합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기술이 있었다.

담관-공장 문합술(Hepaticojejunostomy: 소장을 끌어당겨 담도와 문합하는 술식. 이하 D-J.)과 담관-담관 문합술(Duct-to-duct anastomosis: 담관과 담관을 다이렉트로 연결하는 문합술. 가장 일반적인 술식. 이하 D-D).

도수는 덕 투 덕(Duct-to-duct: 담관-담관 문합술의 약칭)으로 문합을 진행했다. 소장을 문합하지 않으므로 수술 후 조기에 경구 섭취를 시작할 수 있으며 담관-공장 문합술보다 대미지가 덜한 문합 방식이었다. 환자 몸 상태가 수술 후에도 굉장히 쇠약해진 상태일 걸 감안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도수는 담관과 담관을 능숙하게 문합했다.

“역시……!”

교수들이 감탄했다.

“와우. 빠르긴 빠르네요.”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수술 천재가 아닙니까.”

중증 외상센터장 김광석 이름으로 잡힌 수술.

병원 내 모두가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했던 그 수술을, 아직 인턴에 불과한 이도수 혼자 끝내 버린 셈이다.

다들 수군거리며 도수를 칭찬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전문지 기자가 병원장에게 물었다.

“원장님. 수술이 잘 끝난 것 같은데… 이도수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병원장이 마치 준비된 듯한 답변을 내밀었다.

“우리 아로대병원에 이도수 선생 같은 인재가 있다는 건 매우 기쁜 일입니다. 우리 병원은 기존 학계에 고리타분한 관례들을 탈피하고 이도수 선생에게 실력에 맞는 대우를 약속할 것입니다.”

“천하대병원에서도 상식 밖으로 우대하는 조건을 제안했다던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우리 병원 인재에 대한 인터뷰에 왜 남의 병원 이름이 나오는지 의아하군요. 아주 불쾌한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로대에선 이도수 선생님에게 어떤 대우를 약속하실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신다면 다른 병원들에서도 더 이상 눈독 들이지 못하지 않을까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병원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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