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전조(前兆)
도수는 공여자가 있는 수술방으로 움직였다.
두 개의 수술방.
그리고 두 번의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는 다시 수술복을 갈아입고 손을 소독했다.
‘교수님은 옳은 선택을 했다.’
적어도 도수는 그렇게 믿었다.
아직 짐작일 뿐이지만 환자 상태는 바로 이송이 힘들 만큼 중태일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찾아오는 게 아닌,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야만 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굳이 수술을 앞둔 김광석이 출동했다면 헬기로 이동했을 테고, 레펠을 타야만 하는 지형에 환자가 방치돼 있었을 것이다.
그간 중증 외상센터에서 지내며 알게 된 사실은 김광석만이 직접 레펠을 타고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의사란 점이다.
김광석이 가지 않으면 죽는 환자라면 가는 게 맞다.
이곳 수술은… 도수를 믿는 거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전해졌다.
‘난 환자를 살린다.’
눈을 반짝인 도수는 수술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손을 내밀자 간호사가 장갑을 끼워주었다.
“선생님.”
그녀가 위쪽을 눈짓했다.
도수가 소독을 하고 들어오는 사이 어느새 수여자의 수술방에서 공여자의 수술방으로 모두 옮겨와 있었다.
“관객이 많네요.”
“…화이팅하세요.”
간호사가 새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표정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
한차례 의료진들을 일별한 도수는 환자 곁에 가서 섰다.
그러자 마취과 김종학 과장이 바이탈 체크를 해주었다.
“세상모르고 잠들었어. 시작하지.”
고개를 끄덕인 도수.
그가 한마디 뱉었다.
“칼.”
턱.
메스의 차가운 감촉이 수술 장갑을 사이에 두고 전해졌다.
“지금부터 간 좌엽을 적출합니다.”
도수는 명치 부위로 메스를 가져갔다. 아래 가슴 중앙에서 시작되어 양 갈래로 삼각을 이루는 개복방식. ‘밴츠’의 앰블럼과 절개 부위가 흡사해 메르세데스 절개라고도 불리는 절개법이 실행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종학은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진짜 눈 하나 깜짝 안 하네.’
이미 여러 번 수술에 성공했다는 말은 들었다. 동영상도 봤다. 그러나 직접 보는 것만 못했다. 수술실 안의 냄새. 온도. 약간 건조한 습도를 피부로 느끼며 도수의 표정, 눈빛, 손짓 하나하나를 바라본 느낌은 또 달랐다.
‘우리 둘째만 한데……’
열아홉이라고 했다.
이런 어린애가 수술을 하다니.
메스 잡기도 두려워하는 인턴들은 덜덜 떨고 레지던트들도 잔뜩 긴장하는 개복수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간이 가장 잘 보이는 메르세데스 절개법으로 복부를 가르고 들어간 도수는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아.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적출에 이식까지. 해야 할 수술이 두 개로 늘었다.’
둘 다 투시력이 도움이 되는 수술들이다.
따라서 도수는 딱 필요한 곳에만 쓸 요량으로 복강 안에 간을 고정하고 있는 좌엽 쪽 인대들을 확인하고 그림처럼 기억했다.
그리고 메스 날을 가져갔다.
서걱, 석……
인대가 잘려져 나갔다.
좌엽 인대를 모두 자른 도수는 메스를 돌려주며 툭 뱉었다.
“쿠사(CUSA: 초음파 분쇄 흡입기의 상품명).”
“쿠사.”
간호사가 쿠사를 넘겼다.
도수는 연부조직 장기를 출혈 없이 자를 수 있는 쿠사를 사용해 간의 살질만 잘라냈다.
샤아아아아.
투시력이 함께 발현되며 간 아래 있는 혈관과 담도가 눈에 훤히 들어왔다. 이를 피해 간을 절개하는 도수. 혈관을 만나면 잠깐 멈춰서 실로 묶은 뒤 진행한다.
그렇게 간을 살짝 드러내자, 안에 연결된 혈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동맥, 간문맥. 간정맥은 따로 있기 때문에 혼동하면 안 된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이 한층 강해졌다.
그러자 혈관으로부터 우엽과 좌엽 양쪽을 퍼진 분지들이 보였다.
‘먼저 왼쪽 간관부터.’
도수는 좌엽과 연결된 간관의 분지를 묶어서 출혈을 막고, 잘랐다.
투둑.
정교한 솜씨.
하나 묶고 자를 때마다 아무리 빨리도 삼 분. 총 삼십 분은 걸릴 텐데 도수는 투시를 통해 시야확보를 하고 모든 혈관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손을 놀리니 시간이 더 단축됐다.
물론 그건 도수나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는 경악할 만한 솜씨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특히 김종학 과장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어디서 이런 괴물이. 라는 뒷말은 아꼈다.
‘이런 애를 왜 인턴으로 받아?’
오히려 그게 더 어이없을 지경이었다.
하긴, 인턴을 레지던트를 거치지 않고 전문의가 된 케이스는 없으니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수술에 임하는 태도나 손기술을 보면 또 한평생 칼을 잡은 써전만큼 침착하고 능숙해 생각이 뒤집혔다.
그사이 도수는 간동맥, 간문맥 순으로 잘랐다.
아래쪽을 다 잘랐으니 이제 남은 건 간정맥.
도수는 마지막으로 간정맥을 절제한 후, 절개한 간 좌엽을 환자 몸속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막 떼어낸 건강한 간을 아이스 팩에 담아서 부패를 막았다.
“휴우……!”
여기저기서 안도의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수는 아이스팩을 간호사에게 넘기고 곤히 잠든 환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배 닫겠습니다. 타이.”
봉합이 시작됐다.
다시 한번 귀신같은 솜씨로 뱃가죽을 꿰매는 도수.
슥, 스윽.
김종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끝내지? 김 교수가 왔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러더니 다 꿰맨 부분을 보고 덧붙였다.
“환자가 좋아하겠네. 예쁘게 꿰매줘서.”
마취과 과장이 원래 이리 말이 많았던가?
도수는 대답 없이 마무리를 했다.
“컷.”
툭.
봉합사 실밥이 잘려 나가고.
1차 간 적출을 깔끔하게 끝낸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수술방 옮기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는 말 따윈 하지 않았다. 끝이 아닌, 이제 시작이니까. 지금에서야 모든 준비를 마친 것뿐이다.
도수는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긴장하세요. 마음 놓는 순간 환자의 목숨도 내려놓는 거니까.”
그 한마디가 수술방 안 의료진들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마음 놓는 순간.
환자 목숨도 내려놓는 것이다.
“명언제조기네.”
다음 수술실로 넘어갈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입을 쉬지 않는 김종학 과장이었다.
***
위층에서 육안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수술을 참관하던 의료진들은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특히 민혁찬 과장은 석상처럼 표정이 굳었다.
‘이 새끼… 뭐야?’
그는 처음 김광석 교수가 출동 나갔다는 얘길 듣고 도수가 이 수술을 미룰 줄 알았다. 공개 수술을 참관하러 온 이들은 붕 뜨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며 눈에 가시 같은 김광석과 도수는 쫓겨날 줄 알았다. 그런데 도수는 수술을 강행했다.
문제는 공개 수술을 참관하는 누구도 그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두고 보았다.
그 결과.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 버렸다.
김광석 교수의 연구실에서 마주쳤을 때 최악의 첫인상을 남겼던 도수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깔끔한 솜씨로 장기 적출을 끝낸 것이다.
너무 놀란 나머지 표정까지 사라진 민혁찬 과장.
그를 흘깃 쳐다본 소아과 이유리 과장이 말했다.
“남에 수술 따윈 안중에도 없으신 분이 라크리마 영상을 보셨을 리도 없고… 많이 놀라셨겠어요?”
민혁찬의 드높은 자존심을 탐탁찮게 여기는 그녀가 본심을 드러내자, 민혁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치의였던 의사로서 환자가 잘못될까 봐 걱정될 뿐입니다.”
“하! 그래서 그렇게 수술을 막으셨구나.”
“…….”
민혁찬은 기분 나쁜지 몸을 홱 돌렸다.
팔짱을 끼고 쌍심지를 켜는 이유리의 어깨를 토닥인 병원장이 물었다.
“이 교수. 이도수 선생, 어떻게 생각합니까?”
“엄청나죠. 수술 실력도 탑클래스인데 웬만한 수술은 다 되는 만능에. 산부인과 수술까지 하던데요?”
“그리고?”
“유명하지, 훤칠하지, 잘생겼지. 영화배우 할 필요도 없어요. 인생이 영화라. 천하대병원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으려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그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의심이 되는 겁니다. 그런 엄청난 인재가 왜 우리 병원에 들어왔을까요?”
“그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시는 게…….”
“속이 후련한 대답이 안 나와요.”
수술방을 내려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던 병원장이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도 갑시다. 좋은 구경 놓치기 전에.”
그들이 그곳을 나가 옆 참관실로 옮겼을 땐, 이미 도수가 수술방에 들어온 후였다.
현재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환자가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환자는 꿈에도 모를 텐데요. 이 수술에 자기 목숨만 달린 게 아니라는 걸.”
병원장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이유리가 막 생각난 듯 교수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소아과 레지던트 겸 의국장 권유나에게 말했다.
“유나. 우리 쪽 애들 응급실 내려 보내고 응급의학과 애들 좀 불러와.”
“네?”
“우린 저런 환자 거의 안 다루잖아. 적출은 봤으니까 본 게임은 실전에서 뛰는 애들이 보는 게 낫지.”
“예, 교수님.”
고개를 꾸벅 숙인 권유나가 움직였다.
지시를 내린 이유리는 고개를 돌렸다.
도수가 환자의 배를 열고 있었다. 언제 봐도 대담하고 신속한 칼질이었다. 데자뷔처럼 모든 게 똑같아도 방금 전 상황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환자의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식은 적출과 비할 바 없이 어렵다는 점이다.
‘정말 4기 간암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이유리는 팔짱을 끼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 치열한 사투의 결말에 어떠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수술대에 누워 있는 간암 환자의 경우 이식 과정에 몇 가지 넘기 힘든 고비가 존재할 것이다.
간을 통째로 떼어내고 절제해 온 간을 이식한 뒤 간정맥, 간문맥, 간동맥을 적출할 때와 반대순서로 문합해 주어야 한다. 그다음 이식된 장기에 혈류를 보내는 재관류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문합을 끝내고 장기에도 혈액이 돌면 배를 덮고 수술을 마무리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식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여기부터는 수술과정의 디테일과 환자의 의지가 성패를 가른다.
“인턴 이도수 선생이 이 수술을 집도해서 성공한다면…….”
이유리가 입을 열자 병원장이 고개를 돌렸다.
반면 병원장을 쳐다도 안 본 그녀는 수술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내로라하는 병원들 모두가 이도수 선생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혈안이 되겠네요. 병원이고 환자들이고 소맷자락을 붙잡고 매달리겠죠. 어시스트든 집도의든 김 교수님이라도 계셨으면 그래도 공이 분산됐을 텐데 이건 완전 스포트라이트잖아요? 이도수 선생을 중심으로 모든 게 맞춰진 듯한 상황이라니.”
병원장이 그 말을 받았다.
“…수술 끝나면 뭔가 요구하겠다더니……. 그런 뜻이었나.”
“……?”
“이 선생. 돈과 지위 말고, 이도수 선생이 병원 안팎에서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게 뭐일 것 같아요?”
이유리는 병원장이 도수에게 눈독을 들이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대답해 주었다.
“뭐… 오래 외국에 있었으니 한국에 있을지 모르는 가족들을 찾는 거라든지, 아니면 여러 케이스의 환자들을 접하고 수술한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연구나 논문을 발표해서 명예를 얻는 것 아닐까요?”
가족. 논문. 환자.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결론은 하나.
병원장은 이제 막 본격적인 간이식 수술에 돌입한 도수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식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