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초읽기
아침부터 도수는 김광석의 연구실에 불려갔다.
두 사람은 검사 결과를 놓고 수술 파트를 나눴다.
“공여자 간 적출은 내가 하고, 이식은 이 선생이 하는 것으로 하지.”
이미 연구실에 오기 전 예상한 바였다.
“좋습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
“수술에만 집중하자고.”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그는 김광석의 굳은 표정을 보고 그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4기 간암 환자의 간이식 수술.
임파선 전이로 임파선 제거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간암 치료에 관해서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 민혁찬 교수가 주치의였음에도 포기했던 환자.
그럼에도 도수만 믿고 강행하는 수술이었기에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불쑥 김광석이 미소를 지었다.
“널 만나고 계속 외줄을 타는 기분이다.”
“…….”
“그런데 신기한 건 이 기분도 적응이 된다는 거야. 불안보다 기대가 더 크다고 해야 하나.”
말없이 그를 응시하는 도수.
김광석 교수는 결론을 내렸다.
“널 믿는다.”
“저도 믿습니다.”
무뚝뚝하게 대답한 도수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환자를요.”
“…….”
김광석은 자신을 믿는다고 할 줄 알았는데 ‘환자’가 나오자 머쓱해졌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말을 이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 간을 꺼내 줄 수 있는 아들이 있으니 반드시 이겨낼 겁니다.”
김광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길 바라야지.”
“그럼 전 수술 전 환자를 만나보겠습니다.”
“그래. 환자 의지의 불씨를 살려주도록 해. 아들도 수술 앞두고 많이 불안할 테니 안심시켜 주고.”
“알겠습니다.”
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걸음을 멈춰야했다.
민혁찬 교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
“…….”
하필 딱 맞닥뜨린 두 사람.
민혁찬은 도수를 무심한 눈길로 일별하곤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동시에 한마디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들어와.”
“…….”
도수는 걸음을 돌려야 했다.
민혁찬이 김광석의 맞은편, 도수가 앉았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자연스럽게 도수는 앉지 않고 옆에 조금 떨어져 섰다.
그런 그를 올려다본 민혁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건방진 놈.’
조금도 미안한 태도가 아니다. 아무리 해당 환자가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환자가 아닌, 추적 소실(Lost to follow-up: 지속적인 치료를 받지 않고 도중에 이탈하는 행위) 환자라고 해도 자신이 전담했던 환자에게 자신과 다른 소견을 주장한 자체가 불쾌한 것이다.
안 그래도 그러한 이유로 기분이 상한 마당에 덜컥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렸다.
“내 환자였던 사람을 멋대로 수술하는 건 좋다 이겁니다. 그건 우리 김 교수님이 책임을 지신다고 했으니 실패할 경우 정직이든 해고든 본인이 감수하면 돼요. 그런데 공개 수술? 컨퍼런스 다녀와서 그 소식 듣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안 그래도 불가능… 아니, 희박한 성공 확률일 텐데 망신을 당하려고 환장했습니까?”
“…….”
김광석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여러모로 찜찜한 수술을 결행하려고 다짐했을 때부터 민혁찬이 분노를 표출하리라곤 이미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김광석의 아랫사람인 인턴, 도수가 있는 자리에서 보란 듯이 추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느낀 모욕감을 갚아주겠다는 듯이.
그럼에도 김광석은 감내했다.
반론이 나온 건 그가 아닌 도수의 입이었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뭐?”
민혁찬의 고개가 홱 돌아가자.
그의 두 눈을 직시한 도수가 덧붙였다.
“수술 성공했을 때 나올 말이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지금…….”
이를 악물며 말을 멈춘 민혁찬이 김광석에게로 타깃을 돌렸다.
“지금 인턴이 과장들 이야기하는데 대놓고 나서서 역성을 드는 겁니까? 중증 외상센터 이렇게 개판이에요?”
“죄송합니다.”
김광석이 사과했지만.
도수는 멈추지 않았다.
“전 수술 날 아침부터 득달같이 달려오셨기에 자신이 맡았던 환자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해 주러 오신 줄 알았습니다.”
“너! 지금 날 비꼬는 거냐?”
“비꼬는 게 아니라 실망감을 표하는 겁니다.”
드르륵!
민혁찬 교수가 의자를 밀며 벌떡 일어나는 순간.
도수가 한 발 다가가서 그를 내려다봤다.
“……!”
순간 움찔한 민혁찬 교수를 빤히 응시하며 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술이 성공하면 빛과 그림자가 생기겠죠. 수술을 강행한 사람들은 빛을 보게 될 테고, 수술을 포기했던 의사는 비난의 대상이 될 겁니다.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대중들은 과장님 판단이 틀렸다거나 무능력한 의사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도 모르죠.”
민혁찬 교수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불게 물든 얼굴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처럼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해진 어조로 물었다.
“그게 아니라는 건 인턴이라도 알 텐데?”
“알고 있습니다.”
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애초에 김광석조차 그를 믿고 강행하는 수술일 뿐.
어떤 의사라도 이런 상황에 수술을 결정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과장님이 이 방에 앉아서 환자의 생환을 원하는 얼굴로 우려 섞인 응원을 한 게 아니라,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실패할 수술’이라고 단정 지었다는 겁니다.”
“……!”
민혁찬 교수는 입을 더듬었지만 아무 말도 외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눈앞에 건방진 놈을 말로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뭐라 대꾸할 반론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분노는 분노대로 치솟는 와중에도 이성은 알고 있었다. 도수가 틀린 구석이 없음을. 자신이 창피할 일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묵묵히 지켜보던 김광석 교수가 깍지를 낀 채 입을 연 건 그때였다.
“수술에 성공하면 저희 과에선 민혁찬 교수님의 판단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해명할 생각입니다. 환자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가장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선택이며 환자를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다만 우리는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는 동안 진행된 환자의 상태를 보고 모험적이더라도 공격적인 수술을 결정했다고 밝힐 것입니다.”
“…….”
“이도수 선생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민혁찬은 도수를 한참 노려보더니 대답했다.
“나도 과장 직급 달고 다른 과 인턴이랑 실갱이할 생각 없습니다.”
몸을 홱 돌린 그는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뒤에 남은 김광석 교수가 도수를 보며 말했다.
“네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행동은 잘못됐다. 적어도 병원 질서 안에서 보면 그래.”
“그러니까 같은 실수들이 반복되는 겁니다.”
도수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질서를 따져가며 윗사람 눈치 보느라 범해지는 실수들. 그가 병원에 머물면서 겪은 바론 하나하나 입에 담기엔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김광석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기에.
도수는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덧붙였다.
“…저는 실수하지 않을 겁니다.”
***
도수는 간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찾아갔다. 그중에는 공여자인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미 오늘 수술할 부자(父子) 모두 준비를 마친 상황.
도수가 들어서자 환자와 가족들이 인사를 했다.
“아이쿠,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환자는 물론 가족들의 얼굴에도 지울 수 없는 긴장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럴수록 도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 수술에 참여하게 된 이도수입니다.”
인사한 그가 환자를 보며 물었다.
“기분 어떠세요?”
“좋습니다.”
환자는 미소를 지었다.
긴장감과 두려움을 숨기진 못했지만.
차라리 그래서 더 편안해 보였다.
“결과도 좋을 겁니다. 아버님께서 힘을 내주신다면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어휴, 제1의 인생도 지쳤는데 이상하지. 왜 그 지긋지긋한 인생을 더 살고 싶은지.”
그러면서 아들을 바라본다.
아들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나무랐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난 아무 미련도 없다. 그저 너 장가가는 것만 보면 이제 아무 원도 한도 없어.”
“그럼 그때까진 건강하셔야죠. 제 결혼식 오셔서 축하해 주셔야 할 거 아니에요.”
“여자나 좀 만나고 그래라. 허구한 날 일만 하지 말고. 에휴… 그런데 괜히 나 때문에 혼삿길 막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아들 가슴에 수술 자국 새기면서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또 그러신다.”
두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던 도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대로 아무 것도 못 해보고 아버님을 보낸다면 아드님 가슴에는 평생 끔찍한 상처가 남을 겁니다.”
자신이 그랬듯.
후회란 흉터는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그게 무능력으로 인한 흉터라도 말이다.
이런 마당에 능력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흉터는 더 이상 흉터가 아닌, 평생 남아 자신을 고통스럽게 옥죄는 끔찍한 상처가 될 터였다.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주억거린 아들이 말했다.
“맞아요. 그리고 혼사 길이 막히긴 왜 막혀요? 아무나 가지지 못한 영광의 상처인데.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제 효심을 몸에 새기는 건데요. 제 아내 될 여자는 그 흉터를 보고 반했으면 반했지,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뒀지 않습니까, 선생님. 하하하하……!”
그 말에 도수가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잘 두셨습니다.”
이상하게.
가슴속이 진탕되고 안쪽으로부터 깊은 무언가가 치솟는 느낌이었다.
‘지이알디(GERD: 위, 식도 역류질환)?’
직업병일까.
비슷한 증상을 떠올리며 싱거운 생각을 한 도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응급실로 돌아가자 간호사가 말을 붙였다.
“선생님. 김광석 센터장님 수술 앞두고 매체 인터뷰 하고 계시다고, 먼저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공개 수술이기에 인터뷰는 필연적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수술 준비를 했다. 실수가 없도록 각 과에 직접 찾아가 장기 적출과 장기이식, 동시 수술에 필요한 오더를 내고 ‘김광석’ 이름으로 어레인지되어 있는 수술방으로 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손을 마사지하듯 꼼꼼히 소독하고, 마스크를 썼다.
“후.”
긴장감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들어 온몸을 적셨다. 지난 2주.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틈틈이 책을 읽고 영상을 시청하고 무수한 변수를 떠올렸다. 투시력을 마음껏 사용하기 위해 체력관리도 소홀하지 않았다. 라크리마에서 쓰러졌을 때 아직은 불안정한 단계란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2주 동안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인턴 업무에만 집중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
항상 즉흥적인 상황이 터지고 준비할 새 없었던 라크리마에서도 숱한 죽음을 물리쳤던 그다. 자만은 금물이지만 자신감은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환자가 의사를 믿듯 의사도 환자를 믿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부어야 한다.
죽음의 그림자는 떨쳐내기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지금부터 수술할 환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럴수록 도수는 어느 때보다 당찬 걸음으로 수술실 문 앞에 섰다.
그런 그때.
간호사가 수술실을 박차고 나오다 도수를 발견하곤 간신히 멈춰 섰다. 자칫 세게 부딪쳤을 법한 상황.
도수가 뭐라 묻기도 전에, 간호사가 외쳤다.
“서, 선생님! 김 교수님이 지금 급히 출동하셔야 한다고 하세요! 얼마나 걸리실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
‘출동’이라고 했다.
아로대병원 권역에 응급 환자가 있어 직접 외부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2주 전에 잡힌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건 병원으로 이송하는 사이 환자가 사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
이 병원에 헬리콥터를 타고 구조하는 교육을 받은 것도 김광석뿐, 직접 출동하는 의사도 김광석뿐이다. 그가 나가지 않으면 한 생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상황을 이해한 도수는 고개를 들었다.
간호사 어깨너머로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방 내부가 보인다.
그 안을 지켜보고 있는 2층의 참관석도.
참관석을 가득 채운 병원 관계자들과 기자들도.
고개를 내려 간호사를 응시한 그가 말했다.
“갑시다.”
즉시 몸을 돌리는 도수.
물론 수술을 미루는 선택도 있지만, 그리되면 환자의 불안감만 증폭될 터.
‘할 수 있다면… 강행한다.’
적출부터 이식까지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 들이닥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