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상황전환
도수가 블라인드 틈새로 새어드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번쩍!
플래시가 터지며 눈살이 찌푸려졌다.
‘카메라?’
분명 카메라였다.
그는 근처를 서성이고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밖에 카메라가 있는 것 같은데.”
“아! 네, 선생님. 밖에 기자들이 엄청 몰려왔어요.”
새벽 세 시, 오래된 아파트의 지반이 무너지며 건물이 붕괴됐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날벼락.
십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대형 사건이고 여파가 클 수밖에 없는 비극이다.
주변 병원 안이 가득 찰 만큼 많은 사상자가 나왔기에 각종 언론사의 취재진이 모여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일단 인원 통제를 하고 있긴 한데 워낙 혼잡해서…….”
완전히 통제는 안 될 터.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시선을 돌렸다.
응급의학과 소속 레지던트 강미소가 기자 한 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선생님,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국민들도 알 권리가 있어요. 정확히 지금 환자들 상황이 어떤지만…….”
“나가세요.”
그녀는 하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의사 가운 안에 입은 흰 블라우스와 청바지, 하얀 운동화 곳곳에 피가 튄 자국이 보였다. 희고 유려한 목선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조차 신경 쓰지 않는 섹시한 여의사의 모습. 그 모습이 꽃망울이 터진 꽃처럼 벌떼 같은 기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미소가 기자 한 명을 내보내는 사이 세 명의 기자들이 더 비집고 들어와 그녀에게 들러붙었다.
“하- 끝이 없네.”
그 순간.
누군가 어깨를 턱 잡고 그녀 대신 기자들 앞으로 나섰다.
“그런다고 나가겠어요?”
“어……?”
강미소의 앞을 가로막은 이는 바로 도수였다.
“제가 얘기하죠.”
그녀는 갈등했다.
안 그래도 세계적인 이슈가 됐던 도수. 그가 이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꽃망울이 터진 정도가 아닐 터였다.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기자들이 따라붙을 텐데.
그러나 도수는 태연하게 기자들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꿍꿍이지?’
기자들은 타깃이 새로운 타깃한테 가로막혀 사라지자 잠깐 붕 떴다. 그러나 이내 눈에 이채를 띠며 도수에게 들러붙었다.
피투성이 수술복을 받쳐 입은 훤칠하고 잘생긴 의사. 그가 들려주는 붕괴 사고 이후 현황을 듣고 싶은 것이다.
기자 셋과 마주 선 채 그들을 빤히 응시하는 도수.
“…….”
그는 다른 의사들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매디 보웬을 포함한 라크리마의 종군기자들은 목숨 걸고 전쟁터까지 달려온 이들이기에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은 종류가 달랐다.
환자들에게 해가 될 수 있음에도 기다리지 못하고 통제를 뚫고 들어온 이들.
그들이 실적보다 양심을 생각하길 바라는 자체가 사치다.
의사도 각양각색이듯 기자들 또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 것이다.
그리고 도수는 이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과 생존만을 생각하는 족속들을 다루는 데 능숙했다.
“전 응급실 인턴 이도수입니다.”
“……!”
잠시 ‘이도수’를 떠올린 기자들이 술렁이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질문이 터졌다.
“이… 이도수 씨! 라크리마에서 천하대병원으로 이송됐을 때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근무하실 줄 알았는데요. 왜 여기로 오신 건가요!?”
“…….”
“대단한 수술 실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의술은 어디서 배우신 거죠?”
역시.
붕괴 사태에 대한 질문은 하나도 없다.
‘먹이를 던져주지.’
도수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천하대병원에서 전문의 자리를 주겠다는 스카우트 제안이 있었습니다.”
“……!”
기자들이 다시 한번 술렁였다. 그리고.
욕심에 목적이 붕괴된 그들을 향해 도수가 손을 슥 내밀었다.
멍하니 그 손바닥을 쳐다보는 기자들.
도수가 한마디 덧붙였다.
“명함.”
“아!”
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명함을 빼서 도수의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그리고 명함과 얼굴을 대조한 도수가 말했다.
“여긴 위중한 환자들이 많은 응급실입니다. 병원 통제에 따라주세요. 만약 이를 어기시는 분은 제 소식을 영영 뉴스를 통해서 보게 되실 겁니다. 뿐만 아니라 소속되신 언론사들에 공개적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
기자들은 벙 쪘다.
스타가 되고 싶은 젊은 인턴이라고 생각했다가 그게 얼마나 큰 오산인지 깨달은 것이다.
조금만 생각했으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특종을 잡을 수 있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판단력이 흐려진 탓도 있었다.
‘똥 밟았군.’
기자 한 명이 축 처진 어깨로 몸을 돌리자.
다른 두 기자도 줄줄이 응급실을 나갔다.
긴 과정 같았으나 도수는 너무도 간단히, 일 분도 안 되는 시간에 기자들을 모두 쫓아내 버렸다. 하지만 강미소는 못내 걱정이 되는지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해. 내가 처리했어야 했는데…….”
혹시라도 도수에 대해 악의적인 기사를 쓰진 않을까 걱정돼 던진 말이었으나, 도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차피 카메라도 없었는데요, 뭐.”
“아……!”
강미소는 탄성을 질렀다.
왜 몰랐을까?
그러고 보니 기자들은 응급실에 숨어들기 위해 카메라를 두고 왔던 것이다. 즉, 악의적인 기사를 쓰려고 해도 증거가 없다는 뜻.
“그래도 저 사람들은 네 존재를 알잖아. 천하대병원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다는 것도 알게 됐고.”
“그건 일부러 밝힌 거예요. 기사야 내겠지만 저를 취재원 삼고 싶을 테니 부정적으로 쓰진 않겠죠.”
“병원에선 좋아하지 않을걸?”
“그건 제가 바라던 일이고.”
“뭐……?”
하지만 도수는 그에 대해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는 두 손 놓고 보고 있던 보안요원에게 걸어가 방금 받은 기자 명함 세 장을 떠넘기며 말했다.
“이제부턴 강경하게 대응하세요. 회복실이 가득 차서 수술을 끝내고도 아직 옮기지 못한 환자들이 있습니다.”
“예……!”
누가 보안팀인지.
그들은 도수의 능숙한 상황 대처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의료적으로야 일반인들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능수능란한 게 의사들이다.
하지만 한 분야에 특화된 천재들이 모인 집단이니만큼 나머지 부분에선 허술한 것도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수는 예외였다.
우뚝 멈춰서 고개를 돌린 그가 강미소에게 말했다.
“뭐 해요?”
“……응?”
“아직 안 끝났습니다. 환자 봐야죠.”
“아… 응!”
강미소는 후다닥 도수의 뒤를 쫓았다.
한참 그렇게 뒤쫓다 보니 슬슬 궁금증이 생겼다.
“근데 어디 가는 거야?”
“회복실 갑니다.”
“회복실은 왜?”
“제가 처음 수술한 환자가 거기 있거든요.”
비장 적출에 제왕절개까지 했던 환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병원 내에 소문이 좍 퍼졌기에 강미소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건 했다던데.”
“두 건 했습니다.”
“아… 두 건.”
수술을 두 번 했으니.
두 건이 맞다.
“인턴이 수술을 집도한 걸 김 교수님에 반하는 병원 세력들이 걸고넘어질 수 있어.”
도수는 피식 웃었다.
“병원에 세력이 어딨어요? 합심해서 한 명이라도 더 치료하면 되는 거지.”
당연한 말인데도.
강미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네 말대로 돼야 하는데. 현실이 안 그런 걸 어떡하니? 여기도 이익집단이고, 어느 곳보다 더 치열한 욕망이 부딪치는 곳인데.”
씁쓸한 목소리.
하지만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그걸 몰라서 얘기했을까 봐요.”
이쯤 되자 강미소는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무슨 뜻이야?”
“앞으로 이 병원 누구도 저나 저와 관련된 사람을 건드릴 수 없을 거예요.”
그 순간.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회복실이 마련돼 있는 이 층에 도착했다.
“…….”
강미소는 도수와 함께 걸으며 그의 옆모습을 흘깃 봤다.
‘무슨 생각이지?’
분명 그렇게 말했다.
일개 인턴이 병원 전체가 자신을 못 건드릴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이 정도 되면 이건 자신감 정도가 아니었다. 미쳤거나 뭔가 있거나.
강미소가 보기에는 후자 같았지만, 선뜻 짚이는 바가 없었다. 그렇다고 물어보면 알려줄 것 같지도 않다. 그녀가 이래저래 막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그들은 도수가 수술 집도를 했던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 앞에 다다랐다.
도수는 응급실에서의 일은 잊은 듯 평온한 얼굴로 차트를 확인했다.
“오더는 맞게 들어갔네요.”
“응… 이제 회복하는 일만 남은 것 같은데.”
강미소는 산모의 얼굴을 빤히 보다 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가 수술을 잘해준 덕분에 건강하게 걸어 나가실 수 있을 거야.”
도수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담당하고 계신 환자 있어요?”
“아니. 난 어제 오프였다 오늘 콜 받고 출근했어. 응급실에서 인턴이 하는 일만 했지. 초진, 노티, 검사, 오더. 네가 수술하고 있는 동안.”
말에 가시가 있었지만 찔릴 정돈 아니었다.
묵묵히 들은 도수가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지금부터 제가 수술한 환자들을 돌아볼 건데 선생님이 직접 좀 봐주세요.”
“왜? 어차피 네가 수술한 환자라도 주치의는 다시 배정될 텐데?”
“안 될 거예요.”
“뭐?”
“제가 주치의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주치의 자격을 받아 오는 동안 선생님이 좀 봐주셨으면 해요.”
“…….”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든 걸까?
강미소는 진심으로 궁금해하면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밥 사는 거야?”
“커피도 사죠.”
“술이 아니… 아.”
그녀는 말하다 말고 도수가 열아홉 살이란 걸 깨달았다.
“어쨌든 콜.”
그녀는 진심으로 도수란 인간이 궁금했다. 밥이건 커피건 같이하면서 알고 싶었다.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랄까. 아니, 어쩌면 레지던트도 힘든 수술을 척척 해내는 소년에 대한 의료인으로서의 경이로움일 수도 있겠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모종의 계약을 맺은 두 사람은 다음 환자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강미소와 함께 수술한 환자들을 모두 돌아본 도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직도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모습은 수술방에서 나온 그대로였다. 목선과 발목에 선연한 핏자국. 가운을 걸치지 않았더라면 지금 막 수술방에서 나왔다고 해도 믿을 지경인 것이다.
아로대병원 꼭대기 층, 1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선 도수는 시계를 확인했다.
수술한 환자를 꼼꼼히 돌아보고 강미소에게 임시로 인수인계를 해주는 바람에 벌써 일곱 시 반. 다들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아침이 되어 있었다.
턱.
도수가 걸음을 멈춘 곳은 커다란 문 앞이었다. 매일 아침,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출근하는 이 방의 주인 역시 이미 업무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곳은 바로.
아로대학병원 원장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