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폭풍이 지나간 자리
전화를 끊은 도수는 환자를 데리고 수술실로 올라갔다.
오늘만 두 번째 드나드는 수술실.
소독을 마친 그는 수술방으로 들어섰다.
“후.”
마스크 안으로 숨 고르며 손을 들어 올리자.
간호사가 장갑을 끼워주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환자 앞으로 다가간 도수.
그런 그에게 잠시 불려온 마취과 과장 김종학이 말했다.
“완전히 잠들었다. 사람이 없어서 내가 수술실을 돌아다녀야 해.”
이 병원에서 가장 많은 수술에 참여하는 마취과와 중증 외상센터는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따라서 김광석과도 친분이 깊은 그는 도수의 첫 수술 때부터 미리 언질을 받았고, 이번에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종학이 수술실 코디네이터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문제 생기면 콜하고.”
“예, 선생님.”
“그럼 이도수 선생. 건투를 빈다.”
김종학이 수술실을 떠나자.
도수는 애처로울 만큼 작은 몸집으로 환부를 드러내고 있는 소아 환자를 내려다보며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
파열된 간이 눈에 들어왔다.
선홍빛을 띤 간이 끔찍하게 갈라지고 터져 있었다.
그걸 보자 저절로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머리는 차갑.
‘하나씩 천천히.’
도수가 손바닥을 뒤집었다.
“칼.”
턱.
메스를 쥔 그는 소아 환자의 복부를 소독했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작은 복부.
이 안에 장기들이 오밀조밀 다 들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몸집을 가진 소아 환자일수록 시야 확보나 수술 자체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마 이유리가 도수에게 소아 외상 환자를 수술해 본 적이 있냐고 확인한 것도 같은 이유이리라.
하지만 도수는 수도 없이 어린아이들의 배를 가르고 가슴을 갈라봤다. 라크리마 반군의 총알과 폭탄이 어른, 아이 가려서 날아들지 않기 때문이다.
잠시 옛 기억이 떠오른 도수는 메스를 쥔 손을 천천히 간이 반투명하게 보이는 복부로 가져갔다.
스으으으윽.
배가 열리며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보비(Vovie: 전기로 자르는 의료 도구)를 내밀었다.
하지만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칼로.”
복막을 자를 때 쓰이는 보비는 분명 출혈을 줄여줄 수 있지만 메스로 절개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 아이는 1초, 1초 출혈이 지속될 때마다 생명에 지장을 받는 혈우병 환자.
투시력과 타고난 감각으로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도수에게는 굳이 보비가 필요 없었다.
차라리 시간을 줄이는 편이 환자의 생존률을 올릴 수 있는 길인 것이다.
한편 그러한 결정 과정을 모르는 간호사들조차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깔끔하네…….’
‘보비 쓴 것보다 더 깨끗한 것 같은데.’
그렇다.
셀 수 없이 많은 실전으로 다듬어진 도수의 감각은 잘 벼른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거기서 나오는 칼솜씨는 차라리 예술에 가깝다. 하지만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이미 안에서 발생한 출혈은 막을 수 없었다.
“선생님 출혈이……!”
배를 열기 무섭게 간 열상으로부터 생긴 출혈이 복강 내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세요.”
그 말을 뱉는 와중에도.
도수의 손은 멈추지 않고 물 흐르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거즈로 닦아내며 출혈을 잡는 동시에 말했다.
“타이.”
봉합사 그리고 봉합침.
도수는 순식간에 간에 생긴 열상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슥, 스윽.
빠르다.
조금 과장하면 재봉틀처럼 순식간에 찢어진 부위가 오므라들고 있었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손놀림에 간호사들이 눈을 치켜떴다.
특히 마취과 선생 대신 들어와 있는 수술실 코디네이터는 한마디 했다.
“교수님들보다 빠르신데요?”
그녀 역시 수술 경험은 의사 못지않다.
그런 그녀가 빠르다면 진짜 빠른 거다.
하지만 하나 더.
도수는 빠른 게 다가 아니었다.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하시고.”
그가 봉합한 부위에는 손톱만큼의 빈틈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건 도수에게 당연한 일.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긴장하세요.”
환자를 살리는 것.
그러려면 감탄이고 뭐고 잡생각은 버리고 바짝 긴장해야 한다.
같은 외상 환자라도 그냥 외상 환자가 아니니까.
이 아이는 혈우병 환자였다.
출혈량이 일반인에 비할 수 없는 것이다.
더 빠르고 더 정교해야 했다.
수술방 안 의료진들의 손과 발이, 그들간의 호흡이 척척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바로 그때.
“선생님, 이 환자 출혈량이……!”
“혈압 떨어집니다!”
“피도 부족해요!”
간호사와 코디네이터가 정신없이 외쳤다.
그러나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도 수술을 해왔던 도수는 침착하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죠?”
“이게 다예요!”
피를 짜던 간호사가 대답했다.
분명 급박한 상황인데도.
끄덕인 도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곧 올 겁니다.”
그 순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수술실 문이 열리며 수술복을 입은 임재영이 들이닥쳤다.
“여기 수혈팩! 그리고 검사 결과.”
임재영은 검사 결과를 간호사에게 넘기고 직접 피를 매달며 도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인턴이 집도를 하는 장면은 상상 속에서도 본 적 없는 해괴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해괴한 광경을 만든 도수가 간호사에게 눈을 돌렸다.
“읽으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혈소판 수치 이백팔십 케이, 피티 십오 초, 에피티티 구십 초, 혼합 검사 에이피티티 사십삼 초입니다.”
“역시.”
혈우병이 맞다.
도수는 더 빠르게 손을 놀렸다.
슥, 스윽!
그 모습을 보던 임재영이 눈을 부릅떴다.
“……!”
물론 도수의 수술 장면을 저널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눈앞에서 보니 더 빠른 것 같았다. 마치 TV로 격투기를 보는 것과 실제로 휘두르는 주먹을 보는 느낌적인 차이랄까?
이제 막 감탄 좀 해보려고 하는 그때.
순식간에 봉합을 끝낸 도수가 말했다.
“이제 폐로 가죠. 그 전에…….”
그는 임재영을 보더니 환자의 복부를 눈짓했다.
“마무리하시죠.”
“내가?”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없으니까.”
툭 던지더니 자리를 옮겨 버린다.
그가 이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임재영과 지난 며칠 같이 생활하며 그가 타이연습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틈에 실력도 전부 파악했다.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임재영은 가슴이 떨렸다. 학교 실습에서야 봉합을 해봤지만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개복수술에서 봉합을 맡은 건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도수가 아닌 어떤 집도의라도 초턴에게 봉합을 시키진 않으리라. 하지만 중요한 건 인턴에게는 꿈에 그린 기회라는 점이다.
“고… 고맙다.”
도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가슴을 열고 있었다.
눈알을 굴리던 임재영은 간호사에게 말했다.
“타이.”
개복 부위 봉합.
도수는 떨어진 물건 줍는 것만큼이나 간단히 해낸 일이지만, 일반적인 인턴들에게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행위였다. 도수가 환자의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 인턴 임재영 역시 자신만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가슴을 연 도수는 투시력으로 보았던 장면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다. 갈비뼈 골절이 생기면서 왼쪽 폐를 찌른 것이다.
“포셉.”
의료용 집게를 건네받은 도수는 폐에 박혀 있는 부러진 뼛조각을 제거했다. 그러자 다시 한번 피가 뭉글뭉글 밀려 나왔다.
이번에도 출혈량이 지나치게 많다.
“…….”
혈우병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수술에 가장 중요한 수혈 자체가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들어가니 응급수술 시 사망 확률도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타이.”
도수가 봉합 실력을 발휘하려는 순간.
누군가 외쳤다.
“선생님, 혈압 떨어져요!”
바이탈이 엉망이 되고.
새로운 수혈팩을 꺼내던 간호사가 최악의 상황이 더욱 최악이 되었음을 알려왔다.
“선생님, 이게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네……! 지금도 여기저기 피가 나고 있고, 갑자기 환자가 몰리는 바람에 A형이나 O형 피를 구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도수는 뭐라 대답하는 대신 빠르게 손을 놀렸다.
복부 수술을 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분명 손끝과 시선 끝이 아이의 폐를 향해 있고, 모든 집중력과 에너지를 그곳에 쏟고 있음에도.
머릿속에는 아이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라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더 빨리.’
도수의 손이 꿈틀거리는 폐를 넘나들었다.
스윽.
봉합사를 빼서 묶는다.
‘더 정교하게.’
스스슥.
순식간에 매듭을 지은 그가 툭 뱉었다.
“컷.”
툭!
자르자마자 다시 터진 부위를 꿰매는 도수.
‘살릴 수 있다.’
소아의 가슴 안은 좁아터졌음에도 도수의 손은 눈으로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그 손놀림을 따라가기 위해 쉴 새 없이 가위가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툭……!
마지막 묶은 실밥을 잘라낸 간호사가 한숨을 뱉었다.
“후우!”
쫓아가기만 해도 벅찼던 것이다. 자신은 자르기만 하고 도수는 폐에 난 상처를 꿰어 매듭까지 짓는데도 시간 차가 크지 않았다.
‘뭐가 이리 빨라?’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그때.
도수는 이미 가슴을 닫고 있었다. 파도처럼 사납게 밀어붙이던 손놀림이 잔잔한 호수처럼 잦아들어 있었다. 이젠 속도보다 얼마나 예쁘게 꿰매주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다 꿰맨 도수가 고개를 든 순간.
지금까지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있던 바이탈이 눈에 들어왔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 맑은 것처럼 잔잔하고 차분했다.
다시 시선을 옮기자.
얼마 남지 않은 수혈팩이 보였다. 수혈되는 속도보다 출혈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니 조금만 늦었더라도 수술이 끝나기 전에 피가 먼저 떨어졌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수는 복부봉합을 맡겼던 임재영을 바라보았다. 임재영은 오히려 그를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어떻게… 봉합하는 동안 수술을 끝내?”
그는 경악했다.
자신이 복부를 꿰매는 시간 만에 도수는 흉부 수술을 끝내고 피부 봉합까지 마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황당한 짓을 저지르고도 도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형.”
“응?”
임재영이 멍청하게 묻자, 도수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지나갔다. 딱 한마디를 남긴 채.
“여기 마무리해 줘요.”
그는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수술실을 나섰다.
수술복을 벗고, 계단을 타고 응급실로 내려갔다.
다다다다.
도착해서 문을 열었을 때.
혼잡하던 응급실은 고요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곳곳에 핏자국을 묻힌 의사들.
“선생님, 이제 좀 풀렸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간호사의 말이 도수의 고막을 찔렀다.
그가 살린 환자 둘.
그리고 다른 의사들이 살린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새벽 네 시 응급실에 갑자기 들이닥친 거대한 폭풍우를 견뎌냈다.
그럼에도.
폭풍우가 지나갔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고 환희하는 사람도 없었다.
“…….”
폭풍이 지나간 자리.
살린 생명 둘보다 놓친 생명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 순간.
병원 창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