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실력을 드러내다
‘절개 부위가 왜 이렇게 좁아?’
이시원은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환자 몸에 수술 자국이 크게 남아서 좋을 건 없다. 하지만 너무 좁은 부위를 절개했을 시 수술 자체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이 딱 그랬다.
시야 확보는 됐지만 어쨌든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며 수술해야 하는데 절개 부위가 너무 좁은 것이다.
‘젠장.’
조마조마했다.
그렇다고 수술 중에 말을 걸 수도 없는 노릇.
괜히 집중력을 깨면 당장에라도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복잡한 틈을 비집고 도수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클램프.”
한순간 반응이 늦다.
도수가 덧붙였다.
“집중하세요.”
쳐다도 안 보고 던진 말.
이시원은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클램프를 건넸다.
도수는 너무도 능숙하게 비장과 연결된 동맥과 정맥의 분지(分枝: 원줄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를 찾아 클램프로 집었다.
턱.
순식간이다.
턱, 턱.
“……!”
마치 숱한 수술을 해본 써전 같았다.
몇 차례 어시스트를 섰던 경험이 있는 이시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거침없는 손놀림에 한번 놀랐고, 복잡하게 엉켜 있는 혈관 분지들 중 비장과 연결된 분지만 단번에 찾아내는 솜씨에 경악했다.
그때 서서히 차오른 핏물이 혈관들을 잠식했다. 이렇게 되면 분지를 찾는 게 더 힘들어진다.
따라서 이시원은 피를 빨아들이기 위해 석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도수가 말했다.
“내려놓으세요.”
“뭘……?”
이시원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설마 석션을 안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피로 가득 차서 시야 확보도 안 되는 상태로 수술을 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절대 아닐 거라는 그 생각은 정확했다.
“환자 자궁에는 아기가 있어요. 이리게이션과 석션은 마지막에 한 번만 합니다.”
“그게…….”
이시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핏물이 혈관들을 감추고 있는데.
이대로 수술하는 건 불가능한데.
도수의 손은 망설임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끊임없이 발휘되며 체력을 소모시켰다. 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시야 확보를 해야 하는 최소한의 범위만 투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능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역량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괜찮아요. 가위.”
흠칫.
이시원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가위를 건넸다.
분명 핏물이 혈관들을 감추고 있는데.
도수는 손을 계속 움직이고 있다.
‘…뭐야?’
환자가 숨을 쉴 때마다 장기들과 동맥, 정맥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 리듬 속으로 도수의 손놀림이 녹아들었다.
스윽, 슥.
너무나 쉽게.
끊임없이 분지들을 찾아 클램프로 집고 실로 묶고 잘라내는 도수.
서걱.
‘이, 이게 말이 돼?’
이시원은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앞으로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마스크 아래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지켜볼 뿐이었다.
핏물에 잠겨 눈곱만큼도 안 보이는 분지들을 단 한 번도 빗나가지도 않고 찾아내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핏물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한 듯이.
손의 움직임은 또 어떠한가.
‘현란하다’는 말이 부족했다. 도수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수술을 하고 있었다. 췌장과 혈관을 실로 묶는 타이 동작은 교수님들도 줄줄이 울고 갈 만큼 신속하고 부드러웠다.
당연히 수술도 물 흐르듯 진행됐다.
이시원은 고개를 들어 도수의 얼굴을 보았다. 이미 그의 뇌리에 ‘인턴’이라는 두 글자는 지워진 뒤였다. 눈앞에 있는 수술괴물이 인턴이라면 자신은 모형 청진기로 병원놀이나 하는 유치원생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미친.’
자기도 모르게.
김광석 교수를 납득하고 있었다.
왜 도수를 수술장에 올려 보냈는지.
이 수술을 집도하게 했는지.
무수한 반발이 뒤따를 걸 알면서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살린다’는 명목하에 특권을 쥐여준 것인지.
단단히 묶여 있던 매듭이 풀리듯 전부 다 이해가 됐다.
왜냐고?
이시원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단순히 저널에 공개된 특정 수술 영상이 아니라 도수의 실력을 직접 보았다면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무슨 말을 했던 거지?’
이런 이도수를 상대로.
자신이 무슨 텃세를 부렸던 걸까.
그 순간, 도수가 입을 열었다.
“정신 차리세요. 비장 적출합니다.”
이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고 절개 부위를 벌리며 어시스트를 했다.
그러자 도수가 비장을 들어냈다.
“이쪽은 마무리 됐습니다. 이리게이션이랑 석션 해주세요.”
이시원은 군말 없이 이리게이션과 석션을 실행했다. 최대한 조심해서 비장을 적출한 환자의 배 속을 깨끗이 소독하는 것이다.
치이이이이익.
이내 그 과정이 끝나자.
장갑을 바꿔 낀 도수가 재차 입을 열었다.
“피 새로 매다세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애초에 이 수술의 목적은 비장 적출이 아니었다.
다친 산모와 산모 배 속에 들어 있는 아이.
두 모자(母子)의 생명을 모두 구하는 것이 이번 수술의 최종 목적인 것이다.
***
삑. 삑. 삑. 삑.
“혈압 안정적입니다.”
노련한 간호사가 마취과 선생 대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자궁 상태를 확인했다.
샤아아아아아아.
다행히.
자궁 쪽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수혈이 가장 중요합니다. 피 주머니 최대한 많이 준비해 주세요.”
“오 형 적혈구 백오십 씨씨 세 팩 준비해 뒀습니다.”
“이유리 교수님은 언제 오신답니까?”
이유리는 소아과 전문의였다.
제왕절개 시 소아과 전문의가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매뉴얼.
하지만 지금은 새벽 네 시에 수십 명의 환자가 들이닥친 비상상황이었다.
남는 의사가 있을 턱이 없다.
“지금 오고 있으시답니다. 십오 분 정도 걸리신다고…….”
“당직 선생님은요?”
“응급실에 가 계세요. 소아 환자들이 많아서.”
그쪽이 훨씬 더 급박할 건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나지막이 한숨을 내쉰 도수가 말했다.
“칼.”
“하지만 선생님.”
간호사가 망설이자 도수가 말을 이었다.
“언제 기다립니까? 수술하고 있으면 오실 겁니다. 칼 주세요.”
“아… 네.”
간호사는 이시원을 흘깃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메스를 건넸다.
샤아아아아아아.
다시 칼자루를 쥔 도수.
그는 칼끝을 자궁이 있는 위치로 가져갔다. 비장적출을 위해선 마취가 불가피했기 때문에 자연분만은 무리.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스윽!
배를 가르자 자궁이 눈에 들어왔다.
투시력으로 보는 반투명한 자궁이 아닌, 커질 대로 커진 32주 차 자궁이었다.
도수는 자궁에 칼집을 낸 뒤 말했다.
“가위.”
턱.
서걱, 서걱.
칼집을 낸 방향으로 자궁을 자르자.
순식간에 출혈이 발생하며 핏물이 퍼졌다.
“……!”
소아과 수술에 들어와 본 적이 없던 간호사들이나 이시원이 당황했지만 도수는 침착하게 자궁 새로 보이는 태아의 머리를 잡았다.
쑤욱!
단숨에 태아를 끌어내는 도수.
태아를 두 손으로 받치며 그가 말했다.
“이시원 선생님.”
이시원은 하얗게 탈색된 안색으로 그를 보았다.
이내 도수가 말했다.
“탯줄을 삼 센티 간격으로 켈리(Kelly: 의료용 겸자의 한 종류)로 고정하고 자르세요.”
눈짓하자 이시원이 반응해 움직였다. 조심스럽게 탯줄을 켈리로 집고 가위로 잘랐다.
타악!
탯줄이 잘려 나가는 순간.
이시원과 간호사들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후…….”
하지만 도수의 눈은 아직도 인큐베이터로 옮겨지는 태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으로 번뜩이는 두 눈.
워낙 응급수술이었던지라 다른 의료진들은 미처 환자 상태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수술방에 들어왔다. 그러나 도수는 태아가 34주 이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폐 숙성이 덜 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태아는 혼자서 호흡할 수가 없다.
도수는 시험을 보기 전 공부했던 대로 즉각적인 처방을 내렸다.
“태아에게 암피실린(Ampicillin: 항생제의 일종). 그리고 프레드니솔론(Prednisolone: 스테로이드제의 일종)을 주세요. 폐 성숙을 촉진시켜야 합니다.”
완벽한 수술 끝에 처방까지.
이시원은 마치 김광석과 같은 수술방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어쩌면 김광석이라도 지금처럼 신속하고 깔끔하게 수술을 끝내진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이 녀석을 교수님보다 더 뛰어난 써전이라고 생각한 건가?’
이시원은 스스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 순간 수술 내내 봐왔던 장면들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정말일지도.’
그때 도수가 환자에게서 손을 떼며 장갑을 벗었다.
“……?”
이시원이 그를 바라보자.
도수가 말했다.
“마무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시원은 레지던트 2년 차다.
그것도 응급실에서 여러 번 응급수술을 해봤기에 실력이 좋은 편이었다. 수술이 다 끝난 환자의 절개부를 봉합하는 일 정도는 언제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자존심 문제다.
인턴이 수술 집도를 하며 레지던트를 어시스트로 삼은 것도 모자라 뒤치다꺼리까지 맡기는 셈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시원은 조금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알겠다. 여긴 내가 마무리하고 갈 테니까 가봐.”
“예, 그럼.”
고개를 숙인 도수가 몸을 돌려 문으로 다가갔다.
그가 이시원에게 마무리를 맡긴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투시력을 쓰기 위해선 집중력과 체력을 최대한 아껴야 했고. 둘째, 지금도 응급실에 북적이고 있을 환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봐야 했다.
각 과 의사들이 모두 병원에 들어오면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질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병원에 김광석과 도수. 단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문 앞에 서자 드르륵,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맞은편에 서서 도수를 응시하는 한 사람.
바로 소아과 전문의 이유리였다.
“넌……?”
“응급실 인턴 이도수입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이유리는 도수의 어깨너머를 보았다.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시원 어시스트를 했던 거야? 아니면 심부름?”
인턴이 심부름꾼도 아니고 심부름이라니.
도수는 대답 대신 간호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인큐베이터 주세요.”
“인큐베이터?”
이유리가 상황 파악을 못 해 되묻는 사이.
간호사가 태아가 누워 있는 인큐베이터를 가져왔다.
“뭐야? 태아를 꺼냈어? 산모는?”
도수는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했다.
“산모는 그대로 두면 위급해질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비장 적출을 하고 제왕절개 후 태아를 꺼냈습니다. 태아는 32주라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처방했고, 산모는 회복만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항생제는?”
“암피실린입니다.”
“스테로이드는?”
“프레드니솔론을 투약했습니다.”
거침없는 대답.
냉막한 인상의 이유리는 도수를 빤히 응시했다.
“…….”
“…….”
시선이 얽히고.
마침내 이유리가 입을 열었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