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태풍이 들이닥치다
도수는 피식 웃었다.
다른 인턴 같으면 푹푹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 변기에 앉아 질질 짰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시원이 어버버 하며 박제된 시체로 실습했을 의대생 시절 도수는 배를 가르고 가슴을 가르며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산 사람을 해체했다.
그뿐인가?
반군에 잡힌 적도 있고 군사 감옥에도 갇혔다. 그 와중에도 당황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탈출을 했고 지휘관과 거래를 했다.
그토록 열악한 과정을 이겨내고 사람을 살려왔는데.
이시원의 압박은 차라리 귀여웠다.
‘중증 외상을 전공으로 자원한 걸 보면 목적이 불순한 사람은 아니다.’
도수는 그렇게 단정 지었다.
중증 외상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대접도 못 받는 분야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온갖 더러운 꼴은 다 보는 반면 병원에선 적자만 내는 과로 취급받는다. 고된 근무로 피곤해서 신경질적일 순 있어도, 환자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으면 선택할 수 없는 전공인 셈이다.
이를 알고 있었기에 도수는 이시원을 마음껏 미워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실력을 보이는 수밖에.’
인턴이 인턴이란 직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실력 미숙이나 책임에 대한 공포. 하지만 알고 보면 실력이 미숙해서 공포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도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부분들이었다.
‘인턴도 의사란 걸 보여주지.’
그는 스테이션을 벗어나 응급실을 가득 채운 환자들의 상태를 일일이 확인했다. 해가 뜨면 빠릿빠릿하게 중환자는 중환자실로,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입원실로, 퇴원이 가능한 환자는 집에 보내서 새로운 환자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음.”
지금은 응급실에 남는 자리가 없었지만 아침이 되면 삼십 명 정도는 빠질 것 같았다. 간단한 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환자들을 감안하면 하루에 백 명 정도 환자들을 받을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도수는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숙직실로 갔다.
털썩.
몸을 던지자 졸음이 쏟아졌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다.
전신은 뜨거운 물에 용해되듯 흐물거렸고.
의식도 붕 떴다.
“하아.”
도수는 꿈나라로 달아나려는 의식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자신만 가진 특별한 능력. ‘투시력’에 대해 떠올렸다. 바빠서 못 느끼고 있었지만 라크리마에서처럼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응급실에 넘쳐나는 환자.
그들에게 투시력을 써도 크게 지치지 않는 건 단순히 체력이 늘어서만은 아니었다. 보는 환자 수가 늘어날수록 투시력을 쓰는 것도 점점 능숙해졌다. 딱 필요한 부위만 투시해 최소한의 체력소모로 최대의 효율을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직 더 발전할 수 있어.’
아직 해당 부위에 위치한 혈관, 뼈, 장기를 함께 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투시력을 쓰는 행위가 능숙해지면 혈관, 뼈, 장기들 중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엑스레이처럼.
‘그럼 체력 소모도 줄겠지.’
그리고 또 하나.
도수가 궁금한 건 혈관, 뼈, 장기 이상. ‘세포조직이나 신경까지 투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런 기대를 갖는 건 투시력이 라크리마에서보다 훨씬 더 정밀해졌기 때문이다. 서서히 정밀해졌는데, 심장이면 심장 질환 환자를 많이 볼수록 더 정밀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더 집중하고 더 정밀해질수록 체력소모도 비례하지만.
어쨌든 투시력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만큼 컨트롤이 되고 정밀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중태의 환자들을 살릴 수 있게 될 거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 순간.
삐비빅. 삐비빅.
호출기가 울렸다.
스윽, 눈을 뜬 도수는 시간을 확인했다. 분명 ‘투시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직 방안은 어둑어둑했지만 이 층 침대에 있던 임재영도 눈을 떴다.
“아, 뒤지겠다. 진짜…….”
도수는 대답하지 않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타타타타타타!
창밖에는 아직 프로펠러가 돌아가고 있는 구조용 헬기 한 대가 착륙해 있었다.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쳐카를 밀고 달려오는 의료진들.
그리고 그 선두에서 달리는 김광석 교수는 얼굴이며 복장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
도수와 임재영은 제자리에 못 박힌듯 굳어버렸다.
뒤따르는 사이렌 소리와 불빛.
다섯 대도 넘는 구급차들이 줄지어 들이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
“젠장, 저게 다 뭐야……?”
임재영의 잇새로 신음 같은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고작 한 시간 남짓. 잠깐 눈을 붙인 새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가죠.”
도수와 임재영은 머리도 못 감은 채 밖으로 튀어 나갔다. 이미 응급실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새벽 네 시.
다른 과에서 당직들이 모조리 지원을 내려왔고 이시원이 그들을 지휘했다.
수술장 준비하고, 혈액 받아놓고, 이동식 엑스레이와 CT 대기시키고, 교수님부터 인턴까지 모조리 개인 번호로 전화를 돌렸다.
간호사들도 바쁘긴 매한가지였다. 다들 바쁘게 뛰어다니며 각종 생명 유지 장치를 준비하고 침대를 들여놓고 환자를 눕힐 공간을 구석구석 확보했다.
그 모습을 보던 임재영은 기가 질려서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시원의 화살 같은 말이 날아들었다.
“뭐 하고 섰어? 빨리 빨리 안 움직이고!”
뭘 하라고 말도 안 한다.
자기 할 일은 알아서 찾아서 움직여라.
그 뜻이다.
임재영은 머리가 굳었는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마치 혼자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타악!
어깨를 때린 도수가 귀에다 대고 소리쳤다.
“당장 혈액 받아 와요! 혈액 받을 수 있는 병원에 모조리 전화 돌리고!”
“……!”
그제야 임재영의 시간이 흘렀다. 고개를 수차례 끄덕인 그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한편 뒤에 남은 도수는 응급실을 가로지르고 있는 스트레쳐카에 바짝 붙어서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샤아아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동되고.
스트레쳐카 위에 누워 있는 30대 여성 환자의 배 속이 눈에 들어왔다.
비장 파열이다.
그런데 문제는…….
‘젠장.’
복강 내 출혈로 인해 배가 불러온 게 아닌 임산부다. 그녀의 자궁에는 떡하니 태아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부 수술을 하려면 더 힘들어진다. 자궁이 커지면서 복강 안의 공간이 줄어들고 장기들은 위로 밀려 올라가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복부 절개 위치도 바꾸고 수술하면서 위치를 알아볼 수 있는 해부학적 표식 역시 바꿔야 하므로 더 어려운 수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희망적인 점은 환자가 의식이 있다는 것.
입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은 도수가 물었다.
“산모입니까?”
김광석이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32주다.”
32주.
그 말을 들은 도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34주 이후라면 태아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34주 전이라면 태아 스스로 호흡할 수 없다. 산모뿐 아니라 태아한테도 여러 가지 조치들이 필요해진다는 뜻이다.
“소아과에 연락해 두겠습니다.”
“잠깐.”
김광석이 도수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스트레쳐카에 붙어 있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한 선생. 부탁 좀 하지.”
“네, 교수님!”
그녀가 스테이션으로 달려가자.
김광석이 도수에게 말했다.
“넌 지금부터 수술만 한다.”
“수술이요?”
“그래. 나머진 인턴들이나 간호사들에게 맡기도록.”
도수도 인턴이다.
하지만 김광석의 눈에는 지금 벌어진 상황에 누구보다 필요한 써전이었다.
“이대로 환자 모시고 당장 수술장 올라가. 팀은 꾸려서 올려 보내마.”
“…….”
도수는 토를 달지 않았다. 수술 자체는 도수가 빠를지 몰라도 상황 대처나 팀을 꾸리는 건 병원 안 사정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김광석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도수야.”
“네?”
김광석은 스트레쳐카에서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할 수 있지?”
도수는 환자를 일별했다. 하나지만 둘. 꺼져가는 생명이 이제 막 피어나려는 생명을 품고 있다.
“둘 다 살려보겠습니다.”
김광석은 고개를 끄덕인 뒤 스트레쳐카에서 떨어졌다.
도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실로 올라갔다.
‘왜 이렇게 느려?’
평소 순식간에 오르락내리락하던 엘리베이터가 굼벵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층마다 불이 들어오는데 그렇게 느릿느릿할 수가 없다.
“어떻게 된 겁니까? 준비할 새도 없이.”
도수가 묻자 함께 현장에 나갔던 간호사가 대답했다.
“인근 병원들이 전부 다 차서 우리 병원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들어올 거예요.”
횡설수설이다.
“무슨 일이 있었냐구요.”
“건물이 붕괴됐습니다.”
질끈.
도수가 눈을 감았다.
‘폭발로 인한 붕괴가 아닌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하나?’
폭발로 인해 건물이 무너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이 들이닥쳤을 것이다.
대부분은 사망했을 테고.
하지만.
‘아직 살릴 수 있어.’
헬기 안에서 응급처치를 했는지 피 주머니 절반을 채운 혈액이 산모와 태아에게 계속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띵!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다.
“갑시다.”
촤라라라라락!
스트레쳐카를 밀고 수술실까지 달리는 그들.
일 분 일 초가 급박했다.
***
“이시원 선생, 지금 당장 6번 수술방으로 가!”
김광석이 온몸에 환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 야차처럼 외쳤다. 그는 환자의 출혈을 막으며 두 눈을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기가 눌린 이시원은 감히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수술방으로 갔다. 손을 소독하고 수술실 문 앞에 서자, 자동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
산모 왼쪽에 서서 당장이라도 배를 가를 기세인 사람.
수술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의사가 바로 이도수였던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환자는 잠들어 있었지만 심지어 마취과 선생도 보이지 않았다.
이시원은 입을 더듬다 물었다.
“네가 여기 왜 여기 있어?”
아직 환자 상태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응급상황.
이시원은 이도수 같은 풋내기에게 어시스트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시스트를 서는 쪽은 도수가 아니라는 점.
“제 앞으로 오세요. 태아가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비장 적출부터 할 겁니다.”
그 말에 모든 환자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지금 이 수술이 비장파열 된 산모한테서 비장을 적출하는 수술이고, 태아도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뜻.
어려운 수술이다.
특히 임산부에 응급상황이라면 더 힘든 수술.
레지던트 2년 차인 이시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란 의미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 네가 직접 메스를 잡겠다고?”
그를 흘깃 본 도수가 한발 물러서며 메스를 내밀었다.
“직접 하실래요?”
“…….”
이시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칼자루를 넘겨준다 해도 어버버하다 환자를 잃을 테니까.
도수는 맞은편을 눈짓했다.
“이리 오시죠.”
우두커니 서 있던 이시원은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수술대 앞으로 걸어가며 혼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인턴한테 수술을…….’
김광석을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인턴이 수술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밀려오는 이질감도 어마어마했다. 레지던트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수술을 잘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인턴 이도수도 미덥지 못했다.
라크리마에서 어려운 수술을 해냈다고 한들, 모든 수술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만약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심적인 책임과 현실적임 책임이 응급실 소속 모두를 무겁게 짓누를 것이다.
이 수술방에 있었던 사람들은 몇 배 더 힘들 테고.
턱.
걸음을 멈춘 이시원이 도수를 마주보며 물었다.
“정말 할 수 있다고?”
“네.”
“환자를 잃기라도 하면 우린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거다.”
“환자가 사망하는 것보다 끔찍한 결말이 있을까요.”
“말장난하지 말고.”
이시원은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그게 느껴진 도수는 그를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
“무서우면 나가셔도 됩니다.”
“뭐? 너 뭐라고 했어?”
“저는 두렵지 않아요. 어떤 책임이든 사람 몸에 칼을 댄 순간부터 각오했습니다. 지금은 이 환자와 배 속 아이의 생존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애쓸 뿐입니다.”
“…….”
한숨을 내쉰 도수가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시죠. 칼.”
눈치를 보던 간호사가 메스를 건네주었다.
턱.
마침내 도수의 손에 메스가 들렸다.
두근, 두근.
조용한 심장박동이 온몸 구석구석 신경 마디마디 파고든다.
얼마만의 수술이던가?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동했다.
그러자 환자의 복부가 반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췌장, 비장. 그리고 두 장기를 잇고 있는 동맥들과 정맥들이 시야에 가득 찼다.
‘깨끗하게 해드리죠. 잘 부탁드립니다.’
속으로 얘기한 도수는 메스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이시원이 물었다.
“비장위치 확실해?”
장기가 죄다 밀려 올라갔을 텐데도.
도수는 거침없이 배를 갈랐다.
스으윽.
피가 질질 샜다.
“확실합니다.”
도수는 다시 복막을 가르고 들어갔다.
동시에 이시원이 두 눈을 치떴다. 가장 잘 보이는 각도에서, 비장이 버젓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