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아버지와 아들
병원 내 카페 티테이블에 마주앉은 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은 지금 간이식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는 질질 끌지 않고 초장부터 본론을 꺼냈다.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식이요?”
그러더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전에 병원에서 이미 가망이 없다고 들었는데요. 수술도 힘들다구요.”
“일반적인 경우면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경우’요?”
아들의 표정에 균열이 생겼다.
“선생님! 뭔가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세요?”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그를 빤히 보던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께선 임파선 전이가 있긴 하지만 많이 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 절제하고 건강한 간을 이식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물론 광범위한 수술이 필요할 겁니다. 간이식 외에도 간에 있는 암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임파선만 제거하는 수술이 필요해요. 이걸 의학적으론 ‘간문부 근처를 도려낸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아버지가 나으실 수 있단 말씀이세요?”
도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아들이 도수의 손을 붙잡았다.
“선생님! 무슨 수를 써서든 살려만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정말 부탁드립니다.”
그 모습을 보던 도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 라크리마에서 수도 없이 보던 장면이지만 이런 순간마다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나라도 이랬겠지.’
부모님을 손도 못 써보고 잃었다. 만약 그 당시에 지금 같은 수술 실력이 있었다면 두 분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침묵하던 도수가 내색하지 않고 아들에게 말했다.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재발이나 사망 위험은 있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들이 대답했다.
“수술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전에.”
잠시 텀을 둔 도수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한테도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이신 상태니까요. 제 몸에 수술 자국을 남기는 것조차도 제 앞날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다.
아버지와 아들이란 이런 관계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아들 역시 부모를 위해 뭐든 한다.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도수는 경이로움에 가슴이 떨렸다. 물론 그 감정 역시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대신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건강한 사람의 간은 삼십 퍼센트만 남아도 금방 재생이 됩니다. 4개월 정도면 예전 크기의 팔십 퍼센트 이상이 되고, 일 년 사이에 원래 크기로 복구돼요. 받은 사람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준 사람은 특별한 부작용이 없습니다. 수술 자국도 예쁘게 잘 꿰매 드릴 테니 걱정 마시라고 아버님에게 전해주세요.”
도수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아들이 설득해야 할 몫이다.
“알겠습니다. 아버지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 테니 수술하는 쪽으로 준비해 주세요. 꼭 수술받으시게끔 하겠습니다.”
말하는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저흰 수술 준비를 하겠습니다. 동의서는 간호사한테 받으시면 됩니다.”
***
도수가 자리를 떠나자.
한쪽에서 커피를 들고 있던 강미소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착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아들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아버님께서 수술받으시게 됐다구요?”
“아, 네.”
대답한 아들이 다시 입을 뗐다.
“근데 솔직히 긴가민가합니다. 분명히 병원에서 수술이 힘들다고 했었는데……. 갑자기 수술할 수 있다니. 기뻐야 맞는데 꿈만 같아 그런지 불안하기도 하고. 아직 그러네요. 아버지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싶고…….”
“방금 만난 이도수 선생님에 대해 알고 계세요?”
“아뇨.”
“우리 병원에서 수술로는 그분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예요. 심지어 교수님들도.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렸던 소년 영웅이거든요.”
“아!”
아들이 눈을 치떴다.
“어디서 들어봤다 했는데 설마 요즘 뉴스에 나왔던 그분이……?”
“맞아요.”
생긋 웃는 강미소.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굳이 주치의셨던 선생님께 묻지 않으셔도 되세요. 이도수 선생님은 믿을 만하니까. 자,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버님 설득하러 가시죠. 제가 같이 가서 설명하는 걸 도와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녀의 손에 이끌린 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전에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년이 방금 만났던 의사란 걸 알게 되자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는 그였다.
***
응급실은 바쁘게 돌아갔다.
도수가 조직 검사를 의뢰하고 보호자인 아들이 말기 간암 환자인 아버지를 설득하는 사이.
김광석은 내과과장 민혁찬을 찾아갔다.
“과장님.”
“아, 김 교수.”
민혁찬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바쁜 분이 내과에는 무슨 일입니까?”
“과장님께서 담당하셨던 간세포암 말기 환자 중에 이상명 씨라고 있는데. 얼마 전에 우리 병원에 실려오셨습니다.”
“아… 결국 그렇게 됐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민혁찬.
그에 김광석이 말했다.
“해서 말인데, 그분을 수술할까 합니다.”
“수술이요?”
민혁찬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 환자분은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 그걸 모르실 분이 아니면서 무슨 수술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일단 지금 급성 심근경색을 앓고 계셔서 CAG와 PCI를 할 생각입니다.”
“암으로 사망하는 것과 심장 질환으로 사망하는 건 다르니 그렇다 칩시다. 한데 그건 심장 내과 소관 아닙니까? 간암 관련된 게 아닌데 왜 내과에 와서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런 뒤 조직 검사를 해서 암 성격을 파악하고. 전이된 임파선을 제거한 뒤 간이식을 할 생각입니다.”
“뭐요?”
민혁찬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내 판단을 무시한 채 내 환자에게 손을 대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까? 그것도 4기 간암 환자한테 간이식?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가 흥분했지만.
김광석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친족에게 건강한 간을 공여받을 생각입니다.”
“하!”
민혁찬은 헛바람을 뱉으며 물었다.
“간을 구한다 치고 다른 장기에 암이 전이됐을 텐데 그건 어쩔 생각이오? 재발 위험은? 대체 알 만한 사람이 왜 비상식적으로 구는 겁니까? 내 김 교수가 웬만해선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단 건 알고 있지만 이건 경우가 아니잖소.”
“그래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저를 한 번만 믿고 맡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건 부탁이 아닌 통보지.”
민혁찬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말을 이었다.
“응급으로 실려 왔다니 내 억지로 막진 않겠소만. 만약 내 판단을 뒤엎고 환자에게 손을 댄다면 나와 척을 지고 싶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김광석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오기 전부터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단지 말하지 않고 수술하는 것과 말하고 수술하는 건 엄연히 달랐기에 절차를 갖췄을 뿐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김광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혁찬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건방진 새끼!’
민혁찬은 내과 분야에선 알아주는 권위자. 그가 간암 말기인 이상명 환자의 치료를 단념한 데에는 분명한 ‘의학적 근거’가 있었다. 누구라도 같은 판단을 할 터.
민혁찬 입장에선 자존심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민혁찬의 연구실을 나선 김광석은 곧장 수술방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모든 준비가 끝나 있을 터.
일단은 심장 쪽 수술을 한 뒤 2주 정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임파선 제거와 간이식을 동시에 할 계획인 것이다.
수술방으로 가는 길.
병원 안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도수와 마주친 김광석이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과과장님 설득은 실패다.”
“역시.”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도 불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너무 태연한 반응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린 김광석이 물었다.
“아무리 초턴이라도 그렇지.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모르는 거냐.”
“심각한 상황이요?”
“그래. 심각한 상황.”
“심각한 상황이긴 하죠.”
고개를 주억거린 도수가 덧붙였다.
“심각하게 기쁜 상황이요.”
“뭐?”
“환자를 살릴 길이 열렸는데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딨어요?”
이 녀석은 정말이지 병원 내 절차나 규범, 지위나 정치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순수한 건지 당찬 건지 오로지 머릿속에는 환자 생각 하나. 그뿐이다.
“그래. 의사는 너 같아야지.”
“네?”
“아니다.”
김광석은 어깨를 두드리고 수술방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빤히 보던 도수는 피식 웃으며 다시 걸음을 뗐다.
내과과장이고 나발이고 간세포암 수술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2주.
지금은 환자한테 집중할 때였다. 임파선제거와 간이식 수술에 관한 어떤 정보라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할 때인 것이다.
***
응급실은 일 분 일 초가 부족하게 돌아갔다. 환자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특히 인턴들의 주 업무는 그 환자들을 초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밥 먹는 시간이나 화장실을 오가면서 잠깐잠깐 쉴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인턴 중 한 명.
식사를 마친 임재영은 휴게실 문을 열고 몸을 던지듯 들어섰다. 그는 의자에 쓰러지듯 기대앉으며 중얼거렸다.
“하. 빌어먹을 응급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도수는 쳐다도 안 보고 책을 팠다. 김광석의 심혈관 수술이 잘 끝난 덕분에 이제 임파선 제거와 간이식만이 남은 것이다. 2주 뒤 실행될 두 가지 수술에 환자 목숨이 달려 있었다.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그를 빤히 쳐다보던 임재영이 물었다.
“오 분도 못 쉬는데 그새 책을 보고 싶냐?”
“간이식은 한 번밖에 해본 적 없거든요.”
“뭐?”
임재영이 눈을 동그랗게 떠봤다.
“간이식을 해봤다고?”
“라크리마에서. 간 손상이 심각한 환자한테요.”
“간은 어디서 구했고……?”
“아버지. 아들이 다쳤거든요.”
“…….”
만약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임재영은 확실히 도수가 별종은 별종이라는 실감이 났다. 그게 아니면 불과 열아홉 살에 불과한 도수가 어디서 어떻게 간이식 같은 메이저 수술을 해봤겠는가?
“이 병원 내과 전문의들 중에도 간이식을 해본 사람은 손에 꼽을 텐데. 아마 과장님 정도만 해보지 않았을까?”
말을 하던 임재영은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니지. 근데 네가 간이식 수술에 대해서 왜 알아보고 있어?”
간이식 말고도 공부할 것들이 어디 한두 개인가.
간이식 같은 수술은 책을 본다고 바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다. 후일 수술에 참여할 기회가 있을 때 공부하는 게 맞다.
그제야 고개를 든 도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저 지금 책 보고 있는데.”
계속 말 걸면서 방해할 생각이냐는 물음.
하지만 임재영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러니까 간이식 수술에 대해서 왜 알아보고 있냐고?”
“제 마음입니다만.”
“그… 그건 그렇지.”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다.
자기 시간에 자기 눈으로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보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
도수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맨살에 묻은 핏자국을 박박 문질러 닦던 임재영이 그새를 못 참고 또 말을 시켰다.
“야. 근데 진짜 세상 환자란 환자는 죄다 우리 병원에 오는 것 같지 않냐?”
“그렇게 많진 않던데.”
“그러니까 우리 생각보다 다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 응?”
임재영이 토끼 눈을 떴다.
“안 많다고? 환자가?”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응급실은 지금도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건만. 하루 열아홉 시간씩, 씻을 시간도 없이 근무하고 잠깐잠깐 눈 붙이는 게 고작인 인턴 입에서 나올 말인가?
하지만 시체가 산을 이루는 전쟁터에서 온 도수 입장에선 응급실 환자도 많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한국이나 라크리마나 환자 수에 비해 손이 부족하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
“별로요. 전 책을 보겠습니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임재영은 팔로 베개를 만들고 이마를 박았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남는 장사였다.
***
삐비빅. 삐비빅.
호출기가 울렸다.
도수는 책을 놔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임재영의 어깨를 툭 치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 엄… 왁? 무슨 일이야?”
얼마나 피곤했으면 잠꼬대를 하던 임재영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더니 도수의 그림자를 쫓아 응급실로 나갔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인턴들이 빠져가지고.”
이시원이었다.
“죄송합니다.”
임재영이 사과하자 그는 도수를 보았다. 하지만 도수는 사과할 생각도 안 하고 손 소독제로 손가락을 문지르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김창모 환자. PE(Pulmonary embolism: 폐색전증). PE의 위험 인자는 고령, 비만, 흡연, 고혈압, 악성종양, 수술…….’
도수는 임상양상, 진단, 치료까지.
병명에 맞는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상기했다.
‘김민우 환자. ACS(Acute abdominal compartment syndrome: 급성복부구획 증후군). 원인은 복잡한 복강 내 수술, 다발성 외상, 대량 수액투여 오 리터 이상, 장폐쇄증, 복수, 혈복강…….’
다시 한번 복습을 하면서 응급실 내 모든 환자들에 관련된 정보를 외우고 있는 그를 보다 못한 이시원이 인상을 쓰며 건드렸다.
“어이, 인턴.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도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이시원을 빤히 쳐다보며 대응을 고민하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한숨? 지금 참냐?”
“그만하시죠.”
그 순간.
수술복 위에 의사 가운을 입은 김광석이 다가왔다.
“……!”
세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
이시원이 인사하자.
김광석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인턴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레지던트가 인턴을 교육하는 일에 교수가 나서는 건 모양 빠지는 일. 그러나 김광석이 찾아온 건 그들 이해관계에 개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던 건 잠시 후에 마저 하고. 언제 출동이 있을지 몰라서 미리 얘기해 두려고 왔다.”
“뭘……?”
“우리 응급실은 항상 손이 부족해. 경기권에서 다 몰려드니까. 그 짧은 공백에 환자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 그래서 각 과 선생들이 콜을 받고 내려올 때까지 이도수 선생 본인 판단하에 응급처치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려고 한다.”
이시원과 임재영 모두 눈을 부릅떴다. 인턴이 스스로 판단해서 응급처치를 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 김광석이 설명을 달았다.
“이도수 선생은 비록 인턴이지만 교수들 이상의 수술 경험이 있어. 응급처치 정도는 본인 판단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수님!”
이시원이 지금껏 한 번도 범한 적 없던 금기를 깼다. 교수 앞에서 언성을 높인 것이다.
김광석이 차분하게 물었다.
“뭐가 문제지?”
“이도수 선생은 인턴입니다. 간단한 처치를 하는 건 역량이 된다면 상관없지만 인턴이 스스로 판단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레지던트나 전문의한테 노티 정도는 넣고 허락을 구한 뒤 처치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특권을 주신다니요? 의료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레지던트인 저는 물론 과 전체에 책임이 돌아갈 겁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인턴한테 이런 특혜를 주시면 병원 내에서도 여러 말이 돌 거고요.”
응급센터 기강이 개판이다. 등등. 말이 돌겠지.
하지만 김광석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일단 이도수 선생이 의료사고를 낼 상황이면 누구라도 사고를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나머지 응급실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 같은 부작용들. 이건 환자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데.”
“……!”
이시원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대체 저놈이 뭐기에……!’
물론 수술 실력이 대단하다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었다. 하지만 직접 본 적도 없고, 도저히 도수의 앳된 얼굴에서 경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경험이 부족한 의사는 실수할 확률이 높고 그 말인즉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안 그래도 건방진 인턴이 특권을 얻게 됐을 때 얼마나 활개 칠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해서 그는 큰마음을 먹고 말했다.
“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편애한다고 생각하나?”
“…사실 아닙니까? 그렇게 절차를 무시할 수 있다면 다른 인턴들은 왜 인턴 과정을 거친단 말입니까?”
“필요하니까.”
“이도수 선생도 필요합니다. 필요치 않았다면 인턴이 아닌 레지던트로 왔겠죠.”
김광석은 피곤했다.
“억지를 부리는군.”
억지를 부리는 건 교수님이십니다. 이시원은 그렇게 일침을 놓고 싶었다. 하지만 간신히 참았다.
“교수님이 지시하신다면 따르겠지만 수긍하진 않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김광석은 도수를 힐끔 쳐다본 뒤 말을 이었다.
“내 판단에는 이도수 선생에게 본인이 판단하고 처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게 보다 많은 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
응급외상센터장. 즉 과장급 교수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데 레지던트가 대항할 무기는 없었다. 핵폭탄을 날린 김광석은 조금의 불안감도 없이 입을 열었다.
“난 오후에 컨퍼런스가 잡혀 있어서 나갔다 와야 하니까 사고 치지 말고. 이시원 선생은 하던 일 계속해.”
그는 실갱이를 벌일 힘이 남아 있지 않은지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뒤에 남겨진 이시원은 도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 몸을 홱 돌렸다.
“교수님한테 감사해라.”
제대로 기를 죽여놓으려 했는데 그 역시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사라지자 임재영은 안도의 한숨을 터뜨렸다.
“휴우! 나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그는 도수에게 말했다.
“근데 너 너무 개김성 투철한 모습만 보이지 마. 네 이미지 망가지는 건 둘째 치고 너랑 같은 인턴들 싸잡아서 욕먹는다.”
한 명의 책임은 곧 공동의 책임.
뭐 그런 건가?
“문제가 생기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은 임재영이 어느새 멀어지는 도수에 등에 대고 되물었다.
“말하면 뭐? 문제가 생기면 네가 뭐 어쩔 건데?”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권한을 얻은 도수.
그는 어느새 눈을 반짝이며 가까이 보이는 탈구 골절 환자에게 다가갔다.
“으으으으.”
뼈가 부러진 삼십 대 남자 환자가 우거지상을 쓴 채 팔을 붙잡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아.
도수의 투시력이 발휘됐다.
남자가 잡고 있는 팔의 부러진 위치가 뼈째로 눈에 들어왔다. 엑스레이보다 훨씬 선명하고 생동감 있는 광경이었다. 뼈를 맞추는 도수정복(徒手整復) 정보는 셀 수도 없이 해온 치료였다.
곧장 다가간 도수는 환자 앞에 앉으며 말했다.
“전 응급실 소속 이도수입니다.”
그는 EMR(Electnonic medical record system)을 통해 검사 기록을 확인했다.
응급으로 엑스레이 검사는 끝낸 상태.
이제 치료만 하면 된다. 그런데.
“끄으…… 발. 아파 뒤지겠어! 빨리 어떻게 좀 해봐!”
“…….”
다짜고짜 반말이다.
도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바깥쪽에서 팔을 붙잡았다. 그야말로 순식간.
꽈악.
힘이 들어가자 환자가 나 죽겠다고 비명을 질렀다.
“크악!”
그는 몸부림을 치려 했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환자를 제압(?)한 도수는 서늘한 시선으로 부러진 곳을 응시하며 단단히 잡은 팔을 밀어 넣었다.
우드득!
“으아악!”
눈을 질끈 감았던 남자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이 의사 새끼! 씨발 의사 새끼가 사람 잡네!”
동네방네 소란을 떤다.
그러든 말든 붕대와 석고를 찾는 도수.
그런 그의 뒷덜미를 향해 남자가 멀쩡한 손을 뻗었다.
콰악!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뭐죠?”
눈이 마주친 남자는 가슴 한켠이 서늘했다.
‘뭐야, 이 새끼…….’
그는 자신이 일순 쫀 이유가 도수의 떡 벌어진 어깨와 길쭉한 신장 때문이라고 여겼다. 팔이 아파서 미처 몰랐는데 일어난 도수는 젊고 강인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사내가 아니었다.
“아, 씨발. 치료하는 꼬라지 좀 보소. 환자를 죽이자는 거야, 살리자는 거야!”
화악.
밀치려던 사내는.
꼼짝도 하지 않는 도수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도수가 대답했다.
“일단 나오시죠.”
그의 시선은 더 이상 남자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반대쪽, 응급실 정문으로 들어온 노인을 항해 있었다.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