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도수의 묘수
응급실 안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환자가 실려 올 때마다 의료진들이 분주해졌다.
레지던트 이시원은 도수를 세워놓고 말했다.
“네가 어디서 왔는지 다 들었다.”
“네.”
“인턴이 지켜야 할 룰은 한 가지.”
“……?”
“아무것도 하지 마라.”
대뜸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도수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자 그가 말을 이었다.
“환자가 오면 환부랑 증상만 확인하고 해당 과 선생님들한테 콜해서 보고해. 그리고 선생님들이 오기 전까진 환자 옆에 딱 붙어서 지켜봐라. 그게 네가 해야 할 전부야.”
도수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시원은 스트레쳐카로 달려갔다.
구조대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칠십이 세 간암 말기 판정받은 환자입니다. 십오 분 전에 자택에서 쓰러졌습니다.”
이시원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앙상하게 마른 몸, 얼굴은 노랗게 떠 있었다. 복수가 찼는지 배가 부풀었고 배꼽은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간암 말기 환자.
치료는 불가능하다.
“…….”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간암 환자가 말했다.
“여기가 갑자기 아픕니다. 아파요……!”
환자가 윗배를 부여잡으며 나 죽어라 소리를 질렀다.
‘암성 통증.’
이시원은 그렇게 확신했다.
“진통제를 드리겠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는 컴퓨터로 기본 오더를 입력하고 진통제를 추가했다. 그리고 도수에게 말했다.
“내과 호출해.”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스테이션에 서서 내과로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 인턴 이도숩니다.”
-어, 그래. 환자는?
“간암 말기 환자입니다.”
-곧 사망진단서 쓰겠네.
“…….”
내과 전문의의 어조는 건조했다. 도수가 대답하지 않자 그가 덧붙였다.
-내려갈게.
전화가 끊어졌다.
하지만 도수는 암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간암 환자.’
수술한다 해도 살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라크리마에서 봤던 할리 무어 장군보다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근데 간암이 끝이 아니야.’
도수는 어느새 다른 환자를 보고 있는 이시원에게 가서 말했다.
“방금 그 간암 환자, 심전도 검사를 해보시죠.”
“심전도?”
이시원의 표정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안 그래도 일반인 신분에 응급실에 와서 기도 삽관에 관여했다는 소문을 들었던 참이다.
“내가 방금 전에 쓸데없이 나서지 말라고…….”
나무라려는 찰나.
고통을 호소하던 암 환자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여기가 갑자기 아픕니다. 아파요……!”
환자는 명치 쪽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 장면이 떠오르자 덜컥 불안감이 솟구쳤다.
‘설마…….’
도수가 심전도를 해보라는 이유.
바로 심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가정한 이시원은 큰 실수를 범할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맡은 환자가 너무 많은 데다 새로운 환자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 바쁘단 이유로 ‘말기 암 환자’라는 한마디에 그저 암성 통증이려니 넘겨짚고 지나친 것이다.
명백한 실수.
아무리 죽음이 확실시된 환자라 해도 ‘암’으로 죽는 것과 의사가 놓친 ‘다른 질환’으로 죽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해서 그는 노선을 바꾸었다.
“심전도는 왜?”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됩니다.”
분명 희귀한 케이스다.
간암 말기 환자에게 급성심근경색이 같이 오는 경우.
하지만 오지 말란 법도 없었다.
이시원은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네 말대로 심전도 검사해 봐.”
“네.”
간결하게 대답한 도수는 간암 환자에게 심전도 검사를 실시했다. 그러자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또한 사진에선 썩어 들어가고 있는 심장이 나타났다.
이미 투시력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던 도수는 놀라지도 않고 이시원에게 심전도 사진을 가져다주었다.
덜컥.
이시원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여기서 환자분 좀 보고 있어.”
그는 환자를 처치하다 말고 스테이션으로 달려가서 전화를 걸었다.
혈관조영술을 요청하려 하는 것이다.
뒤에 남겨진 도수는 눈앞의 환자를 빤히 보았다.
예닐곱 살쯤 됐을 법한 어린아이.
눈이 마주치자 살짝 미소지어 준 도수가 투시력을 발휘했다.
샤아아아아아아.
목에 굵은 생선 가시가 걸려 있었다.
“입 벌려볼래?”
소독을 하고, 남자아이의 목에서 가시를 빼냈다. 마치 서랍에서 물건을 꺼내듯 손쉽게.
단번에 가시 위치를 찾아냈기에 아이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우… 어? 우와! 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눈물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상태로 활짝 웃는 남자아이.
이시원이 가시 위치를 파악하는 데 꽤나 시간을 잡아먹었을 터. 그동안 아이는 적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아이 부모님 역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 어머니가 말했고.
아이 아버지는 간암 환자에게 달려간 이시원을 눈짓하며 농을 던졌다.
“저 선생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데 실력은 훨씬 좋습니다, 그려.”
아마 도수가 인턴이고 이시원이 레지던트인 줄 알았다면 이런 말은 못 할 텐데.
피식 웃은 도수는 아이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보셔도 됩니다.”
그리곤 환자들을 훑었다.
방금 전처럼 눈을 피해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환자들부터 치료할 목적으로.
엄연히 주치의가 있었기에 걸리지 않을 순 없겠지만 당장은 손이 한참 달리는 응급실에 단비가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테고.
결국 이런 시간 절약들이 사람의 생사를 결정하기에 이를 것이다.
도수가 손등이 찢어진 채 거즈를 대고 기다리는 열상 환자를 발견한 그때.
간암 환자 옆에 붙어서 턱을 감싸 쥐고 있던 김광석 교수가 결단을 내렸다.
“수술하지.”
그러자 곁을 지키고 있던 내과 전문의와 심장내과 레지던트가 화들짝 놀랐다.
“수술하신다고요?”
“교수님. 이 환자는 도저히 손댈 수 없는 상태 아닙니까?”
그 의견은 틀리지 않았다.
눈앞의 간암 환자 정도면 복수를 빼주고, 관장을 해주고, 진통제를 주는 정도의 기계적인 처치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연명하다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환자다.
의사라고 해도 모든 환자를 고칠 순 없는 노릇.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일희일비하면 오래도록 멘탈 관리를 할 수 없다.
의사기에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할 땐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광석은 수술을 고집하고 있었다.
“대체 왜…….”
전문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정도 말기 암 환자는 살릴 수 없다.
그런데 급성심근경색까지 왔다면 그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인 셈이다.
분명 몸이 못 버틸 텐데.
센터장급 되는 인사가 수술을 하겠다니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수술할 경우 모든 책임은 주치의에게 있으니까.
그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김광석은 도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도수는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김광석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살릴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 순간.
태블릿을 확인하고 있던 내과 전문의가 치고 들어왔다.
“교수님.”
“음?”
“이 환자분, 저희 과장님이 주치의셨습니다. 간암 발견 당시 이미 수술이 힘든 단계라서 색전술로 치료를 받으셨고요.”
간암 화학색전술(Transarterial chemoembolization)을 말하는 것이다. 간암 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동맥을 찾아 그곳에 항암제를 투여하고, 해당 혈관을 막는 치료다. 목적인 암 조직의 괴사.
김광석은 입을 달싹이다 물었다.
“당시 반응은?”
“세 번 받으셨고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2018년에 치료를 시작했는데 2019년에 임파선 전이가 왔습니다.”
임파선 전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하는 바가 컸다.
간암 전이는 다른 암들과는 다르게 대개 림프관이 아닌 혈관을 통해 전이가 된다. 그래서 림프관을 통해 전이되는 임파선까지 전이되는 일이 거의 없다. 보통 이렇게 되면 다른 장기들까지 전부 전이가 됐다고 판단 4기로 분류한다.
4기 환자는 수술해도 재발 가능성이 크다.
“치료가 힘들다고 판단했겠군.”
김광석의 말에 내과 전문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의견이 분분했던 걸로 압니다. 항암제만 쓰자, 방사선 치료만 하자.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상태가 악화됐습니다.”
그럴 것이다.
복수가 차고 황달이 나타나고 간성혼수가 오는 단계라면 이미 길어야 두 달, 대개 한 달 남짓 수명이 남았다고 판단한다. 이 환자 역시 한 달 내에 급사할 것이다. 하지만.
‘저 녀석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광석은 다시 한번 도수를 보았다. 녀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자를 여러 차례 살리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김광석조차 어떻게 살린다는 건지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막연한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확률의 희망이라도 환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걸어볼 만했다.
“내과과장님이 주치의라고?”
“네.”
아로대학병원 내과과장은 대단한 실력파다. 그만큼 본인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다시 말해 설득이 쉽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환자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십 번이고 설득해야 한다는 게 김광석 교수의 입장이었다.
“내가 한번 말씀드려 보지.”
“하지만…….”
“이 문제는 내과과장님과 내가 처리할 테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게.”
“…….”
내과 전문의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환자를 일별한 김광석은 도수에게로 갔다.
“확실한 거냐?”
구구절절 묻지 않아도 도수는 뭘 묻는 건지 알 수 있었다.
“할리 무어 장군보다 훨씬 안 좋은 케이스입니다.”
“그렇지.”
“수술 전에, 선행돼야 할 일이 있습니다.”
“……?”
“간이식이 불가피합니다.”
“간이식…….”
중얼거리던 김광석이 말했다.
“이식대상이 아니다. 1기, 2기면 몰라도 4기야. 센터에서 거부할 거다.”
남들이 봤을 때 가망이 없던 환자다.
그런 환자에게 간을 주진 않을 터.
도수는 묘수를 생각해냈다.
“친족에게 공여를 받으면 됩니다.”
“친족……!”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친족에게 이식받을 수만 있다면 굳이 기증센터에서 공여를 받지 않아도 될 터.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환자 주치의는 내과과장이었다. 그를 설득하는 게 먼저야.”
“설득되지 않는다면요?”
“강행할 경우, 실패하면 큰 책임을 져야 할 거다.”
“더 늦지 않고, 친족에게 간을 공여받을 수만 있다면 실패하진 않을 거예요.”
“……!”
김광석은 그럴싸하게 들렸다.
“간을 공여받을 수 있다고 쳤을 때. 재발하지 않을까? 아니, 환자 몸이 이식을 버틸 수 있을까?”
김광석이 물었고 도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건 환자에게 달렸겠죠.”
도수는 투시력을 쓴 상태로 환자 쪽을 보았다. 이곳은 병원. 라크리마에서처럼 아무런 ‘의학적 근거’ 없이 환자 배를 열 순 없었다.
“우리 몫은 할 일을 하는 겁니다. 일단 조직 검사를 해서 암의 캐릭터를 파악해 보죠.”
암의 캐릭터.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종양의 성격이 어떤지’ 표현하는 용어다.
간세포암은 종양의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 일 센티미터 크기라도 캐릭터가 나쁜 종양은 예후가 좋지 않고, 십센티미터라도 캐릭터가 좋은 종양은 예후가 좋은 편이다.
“조직 검사에서 성격 나쁜 종양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럴 리 없어요. 환자는 종양이 임파선으로만 전이됐습니다. 다른 장기는 깨끗하고요. 만약 성격이 나쁜 종양이었다면 이미 전신에 퍼졌을 겁니다.”
“너, 어떻게 임파선으로 전이된 걸……!”
분명 도수는 환자의 기록을 보거나 듣지 못했을 터.
그러나 도수는 뻔뻔하게 둘러댔다.
“다 들렸어요. 그 내과전문의가 하는 말.”
사실 태블릿을 보고 설명하는 장면으로 유추한 것이지만.
김광석은 입을 벌리고 있다가 물었다.
“귀가 밝아서 들었다 치자. 다른 장기에 전이되지 않은 건 어떻게 알아?”
“환자 상태를 봤잖아요.”
“뭐?”
“아시다시피 제 감각은 날카로운 편이죠.”
“그게 무슨 헛소리야?”
감으로 어떤 장기에 암이 전이됐는지 안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던 도수는 아예 막 나갔다.
“말씀드렸잖아요.”
“뭘 말이냐.”
“전 압니다.”
“……?”
“전 다 안다고요.”
빙그레 웃은 도수가 말을 이었다.
“조직 검사 해보시죠.”
“후.”
“실갱이하고 있을 시간 없잖아요.”
“좋다.”
김광석은 이제 슬슬 내성이 생기는지 의외로 쉽게 받아들였다.
“일단 내가 CAG(Coronary angiography: 관상동맥조영술을)를 하고 PCI(Percutaneous Coronary Intervention: 경피적관상동맥중재시술)로 심근경색을 잡을 거야.”
CGA는 혈관 어디가 막혔는지 찾는 것. PCI는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이었다. 국소마취만 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간에 부담이 덜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대답했다.
“제가 그동안 조직 검사 의뢰하고 친족인 공여자 찾아서 동의받아 놓겠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김광석은 살갗이 찌릿찌릿했다.
‘이 녀석과 함께라면…….’
어쩌면 구할 수 없었던 목숨들까지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율.
도수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감정이 심장을 뛰게 한다.
하지만 그건 김광석 입장.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이시원은 경악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도수는 인턴이다.
수술을 잘하다 해도 어디까지나 인턴.
반면 환자는 간암에 말기다. 어떤 권위자가 와도 해결하지 못할, 죽음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도수는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어디에 암이 전이됐는지 자긴 다 안다고 한다. 어떤 ‘의학적 근거’도 없이 말이다.
물론 조직 검사를 해보면 알 일이지만.
이시원은 평소 엄한 성격의 센터장이 왜 인턴의 근거 없는 허세를 받아주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라크리마에서 함께 동고동락을 했던 전우라고 해도, 그곳에서 둘만 아는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건 아니었다.
“교수님…….”
그 말을 김광석이 잘랐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안다.”
“…….”
“나도 처음엔 너랑 같은 생각들을 했으니까.”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린 김광석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수술한다는 것도 아니고 검사해서 손해 볼 건 없잖아? 저대로 두면 한 달도 채 못 버틸 환자다.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 못 할까.”
“하지만…….”
“가족들도 같은 생각이라면 아무 문제없다고 본다. 이 선생은 도수랑 같이 가서 가족들에게 잘 설명하나 보도록 해. 임재영한테 수술장 잡고 CGA, PCI 준비하라고 일러두고.”
임재영은 이미 몇 달간 인턴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수술 준비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교수님. 심장내과 교수님을 호출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엄연히 내과과장님이 전담하셨던 환자인데 말도 없이 수술한다는 게 좀…….”
“당연히 의견은 구할 거다. 하지만 그건 내가.”
일축한 김광석은 도수를 보며 말했다.
“아마 내과과장님은 반대하실 거야. 아니, 조직 검사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해도 대부분 반대하겠지.”
“그럼 수술을 못 하나요?”
도수가 묻자 김광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다. 남들이 봤을 땐 가망이 없는 환자야. 지금 와서 누가 데려가려고 할까. 응급으로 왔고, 수술할지 말지는 우리 권한이다.”
하지만 주치의였던 내과과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견을 묵살한 채 수술하게 되면 그의 결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게 된다. 즉, 서로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사집단에서 의사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때론 하루에도 수십 명씩 들이치는 환자들의 목숨보다 중요할 때도 있었다.
그래선 안 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도수는 그딴 현실 따윈 관심 밖이었다.
“그럼 됐네요. 빨리 움직이죠.”
피식 웃은 김광석이 이시원을 보고 말했다.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모두가 포기한 환자 한 명 살려보자고.”
“…….”
이시원은 뭐라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김광석이건 이도수건 무슨 신흥 종교 집단에 빠지기라도 한 듯 두 눈을 이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
다행히 환자에게는 직장인 아들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실려 왔다는 말을 듣고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로 직장에서 달려온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던 이시원이 말했다.
“인턴, 네가 얘기해라.”
그래야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수술이 가능하다고’ 한 건 도수였으니까.
그는 도수가 인턴답게 망설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도수는 성큼성큼 환자와 보호자에게로 걸어갔다.
그렇게 마주 선 도수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 이도수입니다. 아버님 주치의는 아니지만 치료를 돕고 있습니다.”
“아… 네.”
아들이 파리한 안색으로 일어났다.
그런 그에게 도수가 물었다.
“아버님 상태에 관해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