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면접
오랜만에 밖으로 나선 도수는 핸드폰부터 개통했다. 다행히 대외적으론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길거리 행인들이나 매장 직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단, ‘이도수’란 이름을 입력할 때 이야기가 나왔다.
“요새 유명한 소년 의사랑 같은 이름이시네요.”
“아, 네.”
“나이도 비슷한데 혹시 그분 아니에요?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다른 직원들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도수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
“…….”
뻘쭘해진 담당 직원은 얼른 신청서부터 작성했다.
그렇게 핸드폰을 마친 도수는 아로대학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대충 설명서를 읽었는데도 무슨 스마트폰 인터페이스를 익히는 일이 수술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음…….”
침음하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그.
-이번 역은 아로대학병원 앞, 아로대학병원 앞입니다.
방송이 나오고.
치이이이익.
버스 문이 열리자 도수는 그제서 눈을 떼고 차에서 내렸다.
때마침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구급차.
병원복을 입은 채 병원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환자들.
그들을 지나친 도수는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오셨네요?”
이미 몇 차례 얼굴을 익힌 중년 간호사가 반갑게 인사한다.
도수 역시 가볍게 목례를 했다.
“환자가 들어와서.”
그녀가 떠나자 도수는 환자로 붐비는 응급실을 지나서 김광석 교수의 연구실로 갔다. 다행히 오늘은 연구실 문에 ‘재실’로 표시돼 있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김광석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간 도수는 미소를 머금었다.
“저 왔어요.”
“그래.”
“오늘은 계시네요?”
“곧 나가야 된다. 그보다…….”
“……?”
“아침에 천하대병원 이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소식을 전하려고 집으로 전화하니 벌써 나갔다더구나.”
그랬을 것이다. 핸드폰을 만들려고 일찍 집을 나섰으니까.
그나저나.
“천하대병원 이사장님께서 왜요?”
“할아버지니까. 손주 소식이 궁금하시겠지.”
“그것뿐인가요?”
“솔직히 말하마.”
턱을 괸 김광석이 말을 이었다.
“천하대병원에서 널 탐낸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인데. 이미 대답도 했고요.”
“넌 국시에서 당당히 수석을 했어. 그것도 만점으로. 언론도 네가 천하대병원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겠죠.”
심드렁한 도수.
그를 빤히 보던 김광석이 깍지를 풀고 등을 기대며 물었다.
“병원은 정했고?”
“네.”
도수가 씨익 웃었다.
“교수님도 들으면 좋아하실 거예요.”
“어디길래?”
그렇게 물으면서도 김광석은 그곳이 천하대병원일 거라고 여겼다.
도수는 국가고시에서 만점을 받고 수석을 차지했다. 비록 의대를 나오진 않았지만, 그 이상의 유명세도 있다. 실력도 검증된 데다 여러 병원에서 그를 모셔가려고 탐내는 상황.
개중에는 아로대학병원과 근무 여건부터 비교가 안 되는 천하대학병원도 포함돼 있었다. 더구나 천하대학병원 이사장이 바로 할아버지가 아닌가?
어떤 방향에서 생각해 봐도 천하대병원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였다.
그러나 도수는 즉답하지 않고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면 재미없죠.”
***
미리 말을 안 해줬는데도.
진짜 재미없었다.
‘지금 이게…….’
김광석 교수는 침음을 삼켰다.
인턴 면접관으로 들어온 자신의 앞에 도수가 떡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온다던 병원이… 우리 병원이었어?’
아로대학병원.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천하대학병원에 비하면 근무 환경부터 한참 열악한 곳이다.
같은 생각인지, 병원장이 질문을 던졌다.
“국시에서 수석, 만점을 받았죠?”
“네.”
“러브콜이 빗발칠 텐데.”
“맞습니다.”
도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에 병원장이 다시 물었다.
“왜 우리 병원입니까?”
그들은 분명 빤한 대답을 예상하고 있을 터.
하지만 도수는 빤하게 나가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
“첫째, 아버지가 남기신 논문 때문입니다.”
그는 말을 뱉어놓고 앞에 앉은 병원장과 과장들의 반응을 살폈다.
병원장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반면 과장들 중 두 사람의 표정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뭔가 알고 있군.’
도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우연히 논문을 되찾아서 살펴봤습니다. 문제없는 논문이었어요. 그런데 복지부에선 발표를 막았습니다. 아로대병원에 소속된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전히 표정이 한결같은 병원장.
다만 표정이 변했던 두 과장 중 한 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병원장의 질문이 끝나지 않은 타이밍이었기에, 다시 물어본 것도 병원장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 논문을 본 건 아로대학병원 소속 의사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지부에선 논문에 대한 충분한 검토 기간을 갖지 않고 주제가 된 수술을 금지시켰어요.”
“우리 병원에 지원한 이유라고 보기엔 상당히 불순하군요.”
“아직 한 가지 이유가 더 남았는데요.”
도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대학병원의 병원장과 과장들이 눈앞에 앉아 있음에도.
그리고 해당 대학병원에 지원한 지원자임에도 전혀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병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저 들어봅시다.”
이내 도수가 답했다.
“전 환자들이 많은 곳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병원들에 대해 조사를 해봤죠. 이곳이 가장 환자가 많더군요. 환자 수에 비해 의사 수도 부족하고.”
“병원 내부 자료를 열람할 권한이 없을 텐데……?”
병원장은 물어보는 동시에 김광석 교수를 보았다. 혹시 내부 자료를 외부인에게 공개했냐는 무언의 질문. 하지만 김광석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도수에게서 나왔다.
“아로대학병원 응급외상센터 의사들의 평균 근무 시간이 나온 자료를 봤습니다. 평균 근무 시간이 오버타임이란 건 그만큼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아……!”
몇몇 과장들이 감탄사를 터뜨렸지만.
병원장은 이번에도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지금 본인은 인턴에 지원하는 겁니다.”
“그런데요.”
“어딜 가나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건 어느 병원이든 같죠. 인턴은 어디까지나 수련의 신분이니까요.”
“물론 수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깔끔하게 인정한 도수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실무에 대한 수련일 뿐, 인턴도 엄연히 의사 면허를 받은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끙.”
과장 하나가 중얼거렸다.
“앞날이 훤히 보이는구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도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면 병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접만 봐도 느낌이 왔다. 그야말로 미꾸라지 한 마리 잘못 들여서 잘 흐르던 냇물이 흙탕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도수는 굳이 자신을 숨기지 않았다. 숨길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전 제가 응급외상센터가 있는 아로대학병원에 최적화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력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외상에 관해선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말은 이 자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였다. 김광석을 제외한 이곳 누구도 전쟁을 경험한 적은 없으니까. 가장 많은 외상환자들이 있는 곳이 바로 전쟁터다.
“알겠습니다.”
병원장이 입을 뗐다.
“그만 나가보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도수는 고개를 숙여 보이곤 면접장을 나갔다.
타악.
문이 닫히자 병원장이 양측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보십니까?”
“딱 봐도 골치 아픈 성격입니다.”
“저런 친구를 우리 집단이 들이는 건 안 될 말입니다.”
“종잡을 수 없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반대들.
정작 세 사람만 말이 없었다.
김광석과 병원장, 레지던트 강미소의 아버지인 강인혁이다.
그들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김광석이었다.
“하지만 외상에 관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인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조차도 이도수 선생에 비하면 수술 초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과장이 반발하려는 순간.
강인혁 과장이 나섰다.
“전 저 친구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저 친구는 우리 병원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복지부랑 짜고 자신의 아버지 논문을 어떻게 했을 거라고. 이런 쓸데없는 음모론은 괜히 키워봐야 좋을 게 없습니다. 가만히 있을 성격도 아닌 것 같고요. 어차피 인턴이니 받아들이시죠. 만약 적응하지 못하면 본인이 떨어져 나갈 겁니다.”
그제야 다른 과장들이 입을 닫았다. 이 대목만 봐도 밖에서 굴러먹다 들어온 김광석 교수보다 강인혁 과장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의견을 쭉 듣던 병원권력의 정점. 병원장이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번 두고 봅시다. 언론이나 여론도 저 친구 편이니 당장은 병원 이미지에 나쁠 게 없어요. 그 이유 때문에 천하대병원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거고… 과 배정은 두고 봅시다.”
도수의 면접결과가 그 발언으로 정리됐다. 바로 그때, 강인혁 과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응급외상센터로 배정 내시죠.”
병원장과 과장들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김 교수 말에 의하면 응급외상센터에 가장 특화된 인재가 아닙니까. 본인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김 교수 생각은 어떻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김광석에게로 움직였다.
눈길을 받은 김광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적당히 쓰다 내쫓으려고 하는구나!’
응급외상센터에선 하루하루가 위급한 상황들에 연속이다. 매뉴얼을 중요시 생각하는 의사들도 외상센터에 오는 순간 급박한 상황에 치여 숙지하고 있는 매뉴얼을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환자를 살릴 수가 없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도수가 응급외상센터로 온다?
실수 한 번이면 끝이다. 언제든지 책잡아서 쫓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느 과를 가든 과장들이 도수를 이뻐할 리 없었다.
‘왜 면접 때 그런 노골적인 대답을 해서…….’
일개 인턴이 과장들을 주르륵 앉히고 ‘아로대학병원에 나쁜 놈이 있다!’고 말해 버렸는데 어느 누가 그런 인턴을 반기랴?
김광석은 차라리 자신이 품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저희 응급외상센터에서 인턴을 시작하는 걸로 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연한 기대감이 솟구쳤다.
과연 도수가 과장들이나 병원장 생각대로 움직여 줄까?
적어도 라크리마에선 그렇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거짓말처럼 모든 난관을 넘어섰다.
김광석은 어쩌면 도수가 라크리마에서 그랬듯 현재 병원체제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이제 막 인턴이 된 의사선생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걸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도수의 실력을 본 이들이 지을 표정이 눈에 선하다는 것이다.
***
합격 통보를 받은 도수는 김광석의 집에서 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와중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어? 넌……!”
예전에 아로대학병원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도수가 삽관을 도와주었던 응급센터 인턴 임재영이다.
“그때 그 닥터?”
“하하하, 맞아. 그땐 진짜 고마웠다. 우리 병원에 오기로 했다고 얘긴 들었는데… 처음부터 응급센터 배정된 거야?”
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2층 침대에서 내려서며 말했다.
“너도 고생 길 열렸네. 아무튼 이렇게 보니 진짜 반갑다! 난 스물아홉 살이고 이름은 임재영이야. 알고 있겠지만 너랑 같은 인턴이지.”
악수를 청하는 임재영.
도수와는 무려 열 살 차이였다.
손을 맞잡은 도수가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전 이도수. 나이는 열아홉이요. 여기서 같이 지내야 하는 거죠?”
“응. 좀 누추하지? 얼마 전에 같이 있던 인턴이 나가는 바람에 청소를 안 해놨는데…….”
“아뇨.”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대학병원이라 그런가. 이 정도면 훌륭한데요.”
한국에 온 뒤로 김광석의 아파트에서 지내며 안락한 생활을 누렸지만 아직 라크리마에서의 생활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수였다. 난민 막사에서 지내던 것에 비하면 인턴 기간 동안 배정받은 숙소는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뭐… 아무튼 얼른 준비하자고.”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왼쪽 가슴의 포켓에 색깔별로 펜을 꽂았다.
달각.
신분증을 달고 청진기를 목에 두른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의사?’
도수는 피식 웃었다.
그런 감투가 무에 중요하랴.
그저 필요에 의해 취득했을 뿐이다.
이제 마음껏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가자.”
임재영이 문을 열었고.
두 사람은 응급실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