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국시 필기 이틀째.
다시 말해 필기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도 운동장 앞에 선 도수는 이마가 지끈거렸다.
‘오늘은 못 피하겠어.’
그야말로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어제 수험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소문이 벌써 퍼진 것이다.
안 그래도 첫날 도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헛물을 켰던 기자들이니 바짝 약이 올랐을 터.
같은 수험생들도 도수의 얼굴을 확인했으니 더 이상 시선을 피해 숨을 곳이 없어져 버렸다.
그 말을 증명하듯.
운동장에서 인터뷰를 하던 수험생 한 명이 손가락을 들어 도수를 가리켰다.
스윽.
“저 사람이 이도수예요.”
“이도수……!”
“이도수다!”
순식간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도수는 그 플래시 세례와 질문들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우두커니 섰다.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모든 관심을 받았다.
“어제 수험장에서 로펌 대표 자제분이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대처하신 겁니까?”
“라크리마에서 한국에 들어온 소감 한 말씀만 해주세요!”
“시험은 잘 보셨나요?”
“로펌 대표님에게 사례를 받았습니까?”
“천하대병원에선 왜 갑자기 퇴원하신 겁니까?”
“지금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천천히, 도수의 입이 열렸다.
“이전에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
기자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도수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전 공인이 아니고 제 얼굴이 알려져서 불편을 겪는 게 싫습니다. 초상권은 지켜주시죠. 만약 지켜지지 않는다면 전 일체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건 물론, 해당 언론사를 고소하겠습니다.”
“……!”
기자들이 다시 한번 놀랐다.
이렇게 초강력 응수를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카메라 내려!”
기자들 지시에 따라 카메라가 하나, 둘 치워졌다.
그러고 나자 도수는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짤막하게 말했다.
“인터뷰를 원하시는 분들은 따로 약속을 잡아주세요. 지금은 시험 시간이 다 돼서.”
“그래도 한 말씀만……!”
“한 말씀만 해주세요!”
분분하게 외쳐대는 기자들.
그러든 말든 도수는 그들을 가로질러 당당하게 시험장에 입성했다.
그를 훔쳐보던 수험생들은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곤 했다. 어제 환자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나서던 모습. 그리고 오늘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모세처럼 길을 열던 모습이 매치되며 다른 이들을 저절로 주눅 들게 만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팔자 피겠네…….”
“벌써부터… 우리랑은 다르지.”
“하긴, 라크리마에서 수술도 많이 해봤다던데.”
“어제 흉관 삽입만 봐도 엄청 빨랐어.”
물론 도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보다 평정심을 유지한 채 이틀째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집에 돌아갔을 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푸짐한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시험 잘 봤니?”
임숙영이었다.
그 앞에는 김해리도 있었다.
김광석은 비록 병원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도수는 어느새 이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가족이 차지할 자리를 오랜 시간 마음속에 공석으로 비워두었기 때문에, 더 빨리 가족애를 가지게 됐는지도 모른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린 도수는 의자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해리가 준 엿을 먹어서 그런지, 척 붙을 것 같아요.”
***
의사 국가고시를 감독했던 감독관은 자기 일이 끝났음에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가장 큰 궁금증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특이했던 아이. 도수의 한마디가 계속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두고 보면 알겠죠.”
“뭘 두고 봐?”
감독관이 중얼거렸다.
그래, 이튿날은 시험을 잘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첫날 첫 과목. 한 시간 사십 분 동안 70문제를 풀어도 시간이 부족한 시험을, 사십 분 만에 70문제를 풀었다.
“다 푼 것 자체가 기적인데 성적이 좋을 리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어느새 그의 눈길은 의사국가고시 정답지와 도수의 시험지를 비교해 보고 있었다.
스윽.
1번은 동그라미.
“뭐, 어려운 문젠 아니었으니까.”
스슥, 슥.
2, 3, 4번도 동그라미였다.
“음.”
침음을 흘린 감독관은 계속해서 답을 맞춰보았다. 답을 채점해 나갈수록, 그의 눈이 점점 커졌다.
슥, 스스슥.
“어…….”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동그라미 행렬.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35번까지 왔다.
“이럴 리가.”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나중에 시간이 없었을 테니까.’
그걸 감안해도 굉장히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감탄한 감독관은 다시금 채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70번 문제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을 때.
“말도 안 돼.”
그는 눈이 찢어질 듯 부릅뜨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결과가 펼쳐진 것이다. 단 한 문제도 오답이 없는, 작대기 하나 없는 깨끗한 시험지가 완성됐으니까.
70문제 70정답.
만점자.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수없이 말해도 부족하다.
머리를 흔든 그는 얼른 다른 과목들도 꺼내서 채점을 했다. 하지만.
“이 자식, 사람 맞아?”
결과는 마찬가지.
모든 과목 만점이다.
첫날에도 이튿날에도 기복은 없었다.
필기 만점은 380점.
보통 360점 내외면 수석이라고 하는데, 아예 380점을 받아버린 만점자가 그의 교실에서 나온 것이다.
***
그 시각.
도수도 점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로지 합격, 불합격으로 결과가 나오는 실기는 짐작했던 대로 ‘합격’.
필기 점수도 예상하던 대로였다.
빨간색 색연필을 집어 던진 도수가 툭 뱉었다.
“해냈다.”
의사국가고시 만점자의 소감이라기엔 지나치게 짧았지만 그 한마디에 모든 기쁨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합법적으로.’
덜컥!
방문이 열리며 김해리가 쳐들어왔다.
“오빠! 어떻게 됐어?”
“잘됐어.”
고개를 돌린 도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부터 의사다.”
“아……!”
해리는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놀랐다. 설마 도수가 그 짧은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철썩 붙을 줄은, 붙길 바라면서도 내심 힘들 거라고 여기던 그녀였다.
“의대생들 배 아파 죽겠다.”
“아직인데.”
“응?”
“몇 점인지 안 물어봤잖아.”
평소 자랑을 하지 않는 도수다. 아니, 자랑은커녕 자기 얘기도 잘 안 해준다. 그런 그가 자랑스럽게 웃으며 몇 점인지 물어봐달란 식으로 말하다니.
김해리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몇 점… 인데?”
“380점.”
“어?”
“만점 맞았다고.”
“헐…….”
해리는 긴 말을 하지 못했다. 잠시 넋이 나가 감탄을 하더니 어렵사리 되물었다.
“마… 만점이라고? 진짜로……? 한 문제도 안 틀렸다고?”
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배고파.”
안 그래도 거실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모락모락 넘어오고 있었다.
애초에 도수를 식탁으로 부르기 위해 들어왔던 김해리는 목적과 상반된 외침을 뱉었다.
“지금 밥이 넘어가!?”
“밥보다 중요한 건 없다.”
“이런 밥팅이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도수가 걸음을 떼는 순간.
김해리가 와락 안겼다.
“진짜 축하해!”
얼떨결에 그녀를 안은 도수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왜 이렇게 오버야?”
“오버라니… 오빤 일 등을 했다고! 전국 의대생들 중에서도 최고가 됐다고. 나 시험지 볼래!”
“밥 먹자니까…….”
“시험지부터 보면 안 돼?”
그러나 도수는 해리를 떨어트린 뒤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가자. 밥부터.”
해리는 지금 순간에도 밥을 찾는 도수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며 자신을 운전하고 있는 도수에게 물었다.
“뻥이지?”
요 집요한 녀석 같으니.
도수는 고개를 젓고는 식탁에 앉아 있는 임숙영을 보았다. 김광석은 도대체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없었다. 왜 가족들이 힘들지 저절로 납득이 가는 도수였다.
‘살아 있을 때 잘해야 하는 법인데.’
씁쓸한 생각을 지운 그가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성적 나왔어요.”
임숙영의 시선이 와서 박힌다.
그러자 도수가 젓가락을 들고 말을 이었다.
“실기는 합격.”
“……!”
“필기도 380점 만점이에요.”
“뭐?”
똑같이 놀라는 임숙영.
김해리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렸다.
“…진짜였어…….”
임숙영한테까지 농담을 던질 리는 없으니.
도수가 젓가락을 상에 탁탁! 친 뒤 반찬으로 가져가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제부턴 의사란 뜻이죠.”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혼잣말을 했지만.
도수의 마음속에선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뒤로 얼마나 참고 있었던가?
오직 환자와 자신만 있는 그곳. 피 냄새가 진동하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 세상 모든 걸 잊고 오로지 칼끝에 몰입해 전율하던 순간을.
지옥 깊은 곳까지 손을 쑤셔 넣어 생명을 끌어 올릴 때의 희열을!
부르르.
어깨가 떨려왔다.
그 모습을 보던 임숙영은 수저를 내려놓고 입가에 쓰디쓴 미소를 머금었다.
“축하한다. 말하는 표정이 해리 아빠랑 비슷해……. 넌 좋은 의사가 될 거다.”
좋은 가장이 될 순 없겠지만.
뒷말을 삼킨 그녀가 물었다.
“그래, 그럼 어느 병원에 가려고? 의대를 졸업한 건 아니라도 국시에서 만점을 받았으니 네가 원하는 병원이면 다 갈 수 있을 텐데. 역시… 천하대 병원이겠지?”
천하대병원은 국내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커리어를 쌓기 위해 대학병원에 가고자 하는 모든 의사들이 희망하는 꿈에 직장인 셈이다.
도수가 입을 열려는 그때.
불쑥 전화 벨이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임숙영의 핸드폰이었다.
“잠시만.”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수화기 반대편에서 김광석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도수는 어떻게 됐어?
“합격했어요. 만점으로.”
임숙영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김광석은 앞선 두 사람처럼 놀라지 않았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축하한다고 전해줘. 그리고…….
그가 덧붙였다.
-도수 아버지 유품을 찾았다고도. 병원장님이 그의 논문을 갖고 계셨다고 말해줘.
“논문이요?”
-그래.
다시 침묵하던 김광석이 말을 이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 얽힌 것 같더라고. 왜 도수의 부모님이 라크리마까지 가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렸지만… 아무래도 벌집을 건드린 것 같다.
***
임숙영의 말을 전해 들은 도수는 무슨 말을 하려던 건지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김광석이 근무하고 있는 아로대학병원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김광석을 만날 순 없었다.
“센터장님은 지금 안 계세요.”
또 헬리콥터를 타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출동을 나간 모양이다.
“기다리겠습니다.”
대답한 도수는 김광석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런 그때.
시끌시끌.
복도 건너편에서 여러 명의 의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도수가 무심코 지나치려는데.
그중 한 명이 발목을 잡았다.
“아주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드는구만.”
“야……!”
“듣겠다!”
누군가 속삭이며 주의를 줬지만 그는 그치지 않고 도수에게 다가왔다. 언제 핀잔을 던졌냐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미는 그.
“시험 붙은 거 축하합니다.”
자주 드나들어서 그런지 이미 아로대학병원 사람들 대다수가 도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도수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누구신지.”
“아, 전 아로대학병원 정형외과 인턴 천태백입니다.”
“네. 그런데요.”
“이것 참, 축하한다는 사람한테…….”
손을 회수한 천태백이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언제 한번 만나면 선배로서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그쪽을 반기는 게 아니라는 걸. 언론이나 여론의 지지를 받는 분이니 스타병에 걸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단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만.”
언제까지 이딴 참견을 듣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도수가 말을 자르자 천태백의 안색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이런 식으로 말허리를 자르고 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지금 뭐라고…….”
“오지랖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