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
애써 시험지로 눈을 돌리려는 수험생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스쳤다.
그들 모두 의대생. 해부학 실습에서 인체를 해체해 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카데바(Cadaver: 해부실습용시체)일 뿐 실제 산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건 생각만 해도 떨리는 일이었다.
그 일을 도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으윽…….”
결국 일반인인 감독관의 잇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양호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친구가 하고 있는 응급처치가 맞는 겁니까? 저건 응급처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 아니, 너무 심화된 처치법이 아닌가?
양호교사는 동공을 흔들며 대답했다.
“맞긴 합니다. 맞는데… 아직 학생이 할 수 있는지는…….”
“아니, 그런 말이 어딨어요?”
감독관이 언성을 높이는 그때.
도수가 비수를 날리듯 경고했다.
“정교한 작업이고 집중해야 합니다.”
사실, 진짜로 방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폭발음과 총성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사람 몸에 칼을 대던 그였으니까.
다만 두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한 경고였고 효과도 있었다.
교실 전체가 쥐 죽은 듯 침묵에 휩싸인 것이다.
도수는 절개한 5번 갈비뼈 위쪽을 따라, 텅 빈 볼펜대를 삽관했다.
그리고 삽관이 끝나기 무섭게.
환자의 숨소리가 변했다.
“푸우…….”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
“성공입니다.”
도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위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산 사람 몸에 칼집을 낸다는 것.
숙련된 자가 아니라면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일을 도수는 해낸 것이다.
그 순간.
교실 창문을 통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어 신고한 감독관에게 전화가 왔고, 교실 위치를 들은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들이닥쳤다.
“환자 어디 있습니까?”
“여기예요!”
양호교사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환자 상태를 가까이서 본 구조대원들은 하나같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선생님이 처치하신 겁니까?”
양호교사는 말없이 도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구조대원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네? 아무리 의대생이라지만 아직 학생이… 이걸 했다고요?”
너무나 완벽한 응급처치.
양호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학생이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허.”
구조대원들은 서로를 보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확인했다.
“이런 적은 처음입니다.”
“…일단 옮기죠.”
들것을 들고 있는 대원의 말에 환자를 살피던 구조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환자를 눕히고 이송 준비를 마쳤다.
환자 인계가 끝난 시점에서야 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하려고……?”
누군가 물었다.
그들 모두가 잊고 있었지만.
도수는 잊지 않았다.
“전 시험을 봐야 해서요.”
“아……!”
시계를 보니 아직 사십여 분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방금까지 사람 가슴을 칼로 째고 펜대를 쑤셔 넣은 당사자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지나치게 침착한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자리로 돌아갔다.
벙 쩌 있던 구조대원이 말했다.
“일단 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아, 예……!”
양호교사가 동의하자 구조대원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쪽을 멍하니 보던 도수는 시험지로 눈길을 돌렸다.
“후…….”
할 수 있을까?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한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한 상태.
그나마 다른 학생들은 틈틈이 어느 정도 문제라도 풀었지, 도수는 환자에게 붙어 있느라 아예 손도 못 댄 것이다.
한 시간 사십 분의 시험 시간 중 이미 한 시간 가까이 흘러 버린 상황이 됐다. 남들에 비해 절반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안 그래도 시간이 부족한 시험 문제들을 모두 풀어야 하는 셈이다.
‘해보자.’
이 순간을 위해 투시력도 쓰지 않고 체력과 집중력을 아껴두지 않았는가?
1. 의식을 잃은 환자에서 동맥혈 가스검사 결과 pH 7.2, HCO3 10 밀리몰 퍼 리터, PCO2 30 수은 밀리미터, 혈청 전해질은 137-2.5-95이었다면 감별해야 할 질환과 추가로 시행할 검사는?
도수는 빠르게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요세관성 산증을 의심해야 하고 원위와 근위 감별을 위해 소변과 혈청에서 전해질, 크레아티닌, 포도당, 오스몰을 검사.
마치 수술할 때처럼.
집중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히 기입했다.
그리고 정확히 마킹했다.
그렇게 사십 분 후.
도수는 꽉 찬 OMR카드를 제출했다.
그러자 감독관이 말했다.
“오늘 사고는 유감입니다.”
그는 못내 도수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의사가 될 사람으로서 옳은 일을 한 거예요. 모두가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의로 나섰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후회할 필요 없습니다.”
그게 시험 결과든 환자에 대한 결과든, 중의적인 의미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실려 간 환자가 잘못된다면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도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환자는 괜찮을 것이다.
시험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위로는 그가 아닌 다른 학생들이 받아야 할 몫이었다. 대부분 수험생들이 이번 사고를 겪으면서 집중을 하지 못하고 몇 문제씩 놓치고 찍었을 테지만 도수는 70문제 중 단 한 문제도 놓치지 않았으니까.
물론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감독관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요. 의젓해서 다행입니다. 언젠가 시험을 통과하면 꼭 좋은 의사가 될 거예요.”
“…….”
빙그레 웃은 도수는 고개 인사를 하곤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양호교사가 다가왔다. 그녀는 아직도 아찔한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학생 아니었으면 환자는 큰일 났을 거예요.”
“저, 실례지만 다음 시험을 준비해야 해서.”
“아!”
양호교사는 조금 아쉬웠지만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진짜 대견하네요. 우리 아들도 배워야 할 텐데… 아무튼 남은 과목이라도 꼭 잘 보길 바라요.”
“네.”
도수는 다시 페이스를 찾아서 나머지 시험을 치렀다.
그렇게 1일차 시험을 모두 치렀을 때쯤.
학교 운동장으로 검은색 대형 세단이 들어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운전기사가 뒷좌석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기다리게.”
“예, 대표님.”
‘대표’라고 불린 남자는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뚜벅, 뚜벅… 그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국가고시장이었다.
시끌시끌.
교실 안은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로 시끌벅적했다.
수험생 면면을 살피던 중년 남자는 아직 시험지를 정리하고 있는 감독관에게로 갔다.
“안녕하십니까. 전 오늘 쓰러진 정찬영 수험생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아……!”
감독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저희 애의 목숨을 구한 친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맞습니다. 저 친구가 응급처치를 잘해준 덕분에 아드님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관의 손끝이 향한 곳.
그곳에는 도수가 있었다.
때마침 고개를 들었던 도수는 자신을 가리킨 감독관과 중년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무슨 일이죠?”
“자네가 내 아들을 구한 의인이로군.”
“의인이요?”
“그래. 인생의 중요한 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발 벗고 나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그것도 꽤 어려운 응급처치를 과감하게 했다던데. 보통 용기가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을 해냈어.”
중년 남자가 천천히 덧붙였다.
“사례를 할까 하는데…….”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요.”
도수가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중년인은 완강했다.
“내가 여기까지 온 성의를 봐서라도 사양하지 말게. 이건 내 명함이야.”
지갑에서 꺼낸 명함을 건넨다.
도수는 거기 쓰인 직함을 확인했다.
법무법인 명인.
대표 장성민.
‘법무법인?’
그것도 대표다.
도수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그때, 장성민이 말을 이었다.
“사례는 내가 좋은 것보다 자네가 원하는 걸 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 같군. 잘 생각해 보고 내게 원하는 게 있거든 언제든 자체 없이 연락을 주게.”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도수는 질질 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공돈은 그 자리에서 쓰는 게 가장 편하고 깔끔하듯 은원도 그 자리에서 해결하는 게 가장 마음 편했다. 사람 마음이란 언제 바뀔지 모르니까.
동시에 김광석 교수에게 들었던 일침이 떠올랐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네가 했던 것처럼 무작정 환자를 보게 해주는 경우는 없어. 정확히 말하면 네가 했던 행동들은 치료가 아닌 범죄였다.”
불쑥 라크리마에서의 일이 생각난 도수는 법무법인 대표에게 받고 싶은 보답이 생겼다.
“그냥 지금 부탁드릴게요.”
“음? 뭐든 말해보게.”
“그게…….”
요구 사항을 정리한 도수가 대뜸 말했다.
“제가 멋대로 절개하고 관을 삽입했는데요. 벌받지 않게 해주실 수 있나요?”
“뭐? 으하하하하!”
정성민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부탁인가?”
“네.”
“하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도수가 토끼 눈을 뜨자 정성민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응급의료법 제 5조 1항.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을 보면 응급의료종사자가 아닌 민간인이 응급의료법에서 말하는 ‘응급상황’에 응급처치를 한 경우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묻지 않게 되어 있네. 만약 결과가 나빠서 환자 측에서 소송한다면 모를까 지금 같은 경우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이지.”
“아…….”
도수는 안도했다.
물론 ‘응급상황’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법률이니 평소에 의사 자격 없이 의료 활동을 할 수는 없겠지만, 오늘 한 일에 대해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웃음기를 두른 정성민이 말을 이었다.
“안심하라고 자세히 얘기해 준 거야. 이 정도면 안심이 됐겠지?”
“네.”
고개를 끄덕인 이성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부탁으로 치지 않겠네. 이렇게 만났으니 사실 식사라도 대접해야 예의겠지만 다시 바로 병원에 가봐야 해서……. 연락처밖에 못 주는 점 양해 바라네. 혹시 자네를 놓칠까 봐 아들놈 의식 깨는 거 보자마자 달려온 거니까 꼭 연락해야 돼. 내 부탁함세.”
도수는 지금 당장 부탁할 것이 사라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하하하! 그럼 다음에 보자고.”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은 정성민이 도수의 어깨를 두드리곤 교실을 떠났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자리에 남아 있던 모든 수험생들이 도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조용해진 교실 안.
감독관이 입을 열었다.
“법무법인 대표라니…….”
의사 국가고시에 지원하는 이들은 전부 다 의대생들이다. 있는 집 자제들이 다른 곳보단 비교적 많은 편. 그렇다고 해도, 하필이면 법무법인 대표씩이나 되는 사람 자제를 살리다니.
그가 말을 이었다.
“시험을 어떻게 쳤든 사람은 얻었네요. 시험 칠 기회는 또 있겠지만 저런 분과 알고 지낼 기회가 어디 흔하겠어요? 이래서 착한 사람이 복 받는다는 건가 봅니다. 불의의 사고로 시험을 망쳤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아요.”
자꾸 좌절, 좌절, 좌절 타령. 위로도 한두 번이지 계속 들으면 싫증나기 마련이다. 애초에 좌절할 생각도 없는 도수는 명함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고 대답했다.
“저 시험 잘 봤어요.”
“그래요, 그럴 필요 없… 네?”
감독관이 되물었지만.
도수는 그저 씨익 웃었다.
“두고 보면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