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26화 (26/152)

# 26

천재 1

“후… 난 도무지 널 종잡을 수가 없구나.”

“그런가요?”

도수 역시 스스로 특별한 능력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한 성격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마주 주억거린 도수가 말했다.

“어쨌든 제 계획은 모두 설명했어요. 닥터가 제 아버지에 대해 알아봐 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또 하나. 제 거처가 정해질 때까지 조용히 먹고 잘 곳을 제공해 주셨으면 합니다.”

너무 당당한 태도에 김광석이 피식 웃었다.

“부탁치곤 너무 뻔뻔한 거 아니냐?”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도수의 눈동자.

그 속에 소용돌이치는 결연한 의지가 김광석의 가슴 한쪽을 돌덩이처럼 눌렀다. 어차피 한국에 와서 뭐든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상황. 그냥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도수는 목숨 걸고 갚을 기세다.

“그 정돈 그냥 받아도 된다. 우리가 예사 인연도 아닌데 뭐 어려운 일이라고.”

“원수는 잊어도 은혜는 잊으면 안 되죠.”

결연한 의지.

라크리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된 신념일 것이다.

김광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은혜는 꼭 갚고. 오늘은 좀 기다려라. 예정에 없던 퇴근을 하려면 저녁까지 여기 일을 좀 정리해 둬야 하니까.”

“네.”

퇴근이 예정에 없다는 이야길 듣고도 도수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라크리마에선 24시간 비상 대기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신, 대뜸 물었다.

“병원 좀 돌아봐도 돼요?”

“…….”

김광석은 그를 게슴츠레 쳐다봤다.

그러자 도수가 머쓱하게 덧붙였다.

“여기 이렇게 장식품처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순 없잖아요.”

“…에휴, 알겠다. 대신 절대! 절대로 아까처럼 끼어드는 건 안 돼.”

“그럼요, 의사가 이렇게 많은데.”

“의사가 없어도!”

“명심할게요.”

벌써부터 흥미진진한 미소를 짓는 도수.

김광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믿음이 안 가니…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불안하군.”

***

대여섯 시간 동안.

도수는 병원 안을 돌아다녔다.

그사이 소독약 냄새에 익숙해졌다. 남들은 ‘병원 냄새’라며 진저리를 칠 냄새가 오히려 그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또한 부모님이 입었던 것과 같은 흰색 의사 가운도 마음에 쏙 들었다.

병동을 죽 돌아서 응급실로 내려가자 다시 전쟁터가 펼쳐지고 있었다. 아로대학병원은 병실이 부족하고 응급실이 터져 나갈 만큼 환자들이 끊이지 않고 들이닥쳤던 것이다.

보통 의사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얼굴이 파래져서 도망갈 환경.

그 환경이 도수의 가슴을 뛰게 했다.

‘나도 현장에 서고 싶다.’

손이 근질거렸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생과 사의 현장. 순간의 판단에 목숨이 오가고, 때론 피를 뒤집어쓴 채 사람을 살린다.

말 그대로 사투(死鬪)다. 죽을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사투.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당장이라도 환자를 향해 달려들고 싶었지만 도수는 참았다. 지금 유혹을 못 이겨 한 발 잘못 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전쟁터보다 위태로웠다.

목에는 김광석이 준 방문증을 걸고 응급실 한가운데서 한참 눈을 못 떼던 도수는 몸을 돌렸다. 어느새 시간이 된 것이다. 김광석과 약속한 시간이.

철컥.

도수는 연구실 문고리를 비틀고 들어갔다.

“저 왔어요.”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됐다. 첫 오프(OFF: 휴무)구나.”

“오신지 얼마 안 됐잖아요?”

순진무구한 눈으로 묻는 도수. ‘이런 천국이 있는데 대체 왜 쉬려고 해요?’라고 묻는 듯하다.

김광석은 헛웃음을 지으며 외투를 걸쳤다.

“여긴 전쟁터랑 다르다. 엄연히 표준 근무 시간이란 게 있어.”

책상 위 근무표를 훑은 그가 덧붙였다.

“…물론 여기선 무의미한 규칙이지만.”

“여긴 라크리마보다 다양한 환자들이 있어요.”

“맞다. 치료할 수 있는 여건도 더 좋지.”

두 사람이 인사를 받으며 응급실을 나설 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도수가 말했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아요.”

김광석의 눈이 빛났다.

“왜지?”

“보험이 뭐예요?”

“……!”

김광석은 깜짝 놀랐다.

도수가 갑자기 ‘보험’이란 단어로 치고 들어올 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보험은 왜?”

“그게 문제가 되더라고요.”

“더 자세히 얘기해 봐라. 보험은 비싼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적 장치다.”

“하긴, 병원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닐 테니까…….”

도수가 중얼거리는 사이.

김광석이 차에 붙은 전단지와 명함들을 떼어내며 대답했다.

“그렇지. 사람을 치료하는 데에는 그만한 돈이 들기 마련이다.”

“네. 그 점 때문에 어떤 이들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치료를 받던데요. 이비인후과 62세 김은옥 환자. 마취 전 심장초음파검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는데 수술 수가에 별도로 책정되지 않아서 검사를 하기가 애매하다네요. 원래 심장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는 무조건 검사를 하는 편이 안전한데 말이죠. 심폐기능 부전이 온 중환자실 강하늘 환자도 심장과 폐 기능을 일시적으로 대신해 주는 장치(ECMO)를 달고 있는데, 환자가 살아날 경우 보험 적용이 되지만 사망하면 적용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마어마한 비용 때문에 소극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들었어요. 심은진 환자, 이채은 환자, 김성태 한자도 비슷한 경우고요.”

“너……!”

김광석은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다가 한참 만에 물었다.

“네가 어떻게 그 환자들을……?”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들도 모든 환자 이름을 외고 있진 않다. 모든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오늘 단 한 번 병원을 둘러본 도수가 환자 이름과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것도 각기 다 다른 과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을.

“모든 과 병동을 다 돌아본 거냐?”

“네.”

“그곳 환자들을 얼마나 파악했지?”

“전부 다요.”

“전부……!”

김광석은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게 도수이기에 ‘불가능하다’라고 단정 짓지 못했다.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앞서는 것이다. 그가 도수이기 때문에.

“천 명이 넘는 환자들을 모두 파악했다고? 한 명도 빠짐없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도수는 언제나 상식선 밖에 서 있는 인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끼리는 비슷비슷한 공통점이 있었고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환자들도 저마다 공통분모가 있었어요.”

“보통 사람이면 그 사람들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들다.”

“그래요?”

도수는 자신의 천재성을 백 퍼센트 모르고 있었다. 아니, 한 십 퍼센트 정도 알까 말까다.

김광석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 넌 감만 좋은 게 아니라 머리도 좋아.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일반인의 범주에 있는 아이라면 그런 어려운 수술들을 이해하고 외우고 실행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을.”

차에 탄 두 사람.

김광석은 한숨을 내쉬곤 운전대를 잡았다.

“일단은 가자.”

“어디 가는 거예요?”

“우리 집.”

“네?”

도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김광석이 말했다.

“네가 호텔에서 묵으면 기자들이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우리가 환자를 살리려는 집념만큼 특종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들이야. 우리 집도 그리 안전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 나를 찾아오는 기자들은 병원으로 오는 데다, 만일의 경우 내가 응대하면 되니까 그나마 지내기 편할 게다.”

***

김광석과 도수가 탄 차는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아파트였다.

도수는 신기한지 창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티는 안 내도 적응이 안 되겠지.’

김광석은 나름대로 해석하고는 시동을 껐다.

“다 왔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

김광석이 입을 뗐다.

“난 그리 환영받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아니다. 실은… 한국에 온 뒤로 처음 집에 오는 거야.”

“……?”

갑작스러운 고백에 도수가 고개를 돌렸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김광석이 덧붙였다.

“미리 알아두라고 얘기하는 거다. 난 늘 가족보다 병원을 먼저 생각했지. 외국에 나갔다 온 지금 이혼이 진행 중이고.”

“그런데 저를 데려오셔도 괜찮아요?”

피식 웃은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탓에 단련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해심이 깊은 사람들이야. 우리 가족은 내게 서운한 거지, 네 사정을 알면서 외면할 사람들이 아니다.”

“…….”

도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고 있는데 어깨를 툭툭 두드린 김광석이 앞서갔다.

따라서 도수는 말없이 그 뒤를 쫓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내린 그들은 현관 앞에 섰다.

“후우.”

숨을 내쉰 김광석이 초인종을 눌렀다.

띵- 동!

“누구세요!”

명랑한 목소리.

철컥,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도수와 비슷한 또래던가 더 어린 여자아이. 그녀는 김광석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아빠!”

반기지 않을 거라더니.

두 팔을 벌리고 김광석의 품에 안기는 소녀.

그녀는 한국에 와서도 집보다 병원에를 먼저 가 있던 아버지를 껴안더니 고개를 돌리며 감탄사를 뱉었다.

“아!”

우두커니 선 도수.

그리고 김광석의 딸, 김해리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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