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24화 (24/152)

# 24

유명 인사

“자.”

“……?”

인턴이 당황하자.

도수가 대뜸 물었다.

“나 몰라요?”

“내가 널 어떻게 알…….”

말을 하던 인턴이 눈을 부릅떴다.

이곳에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 전 센터장님이 한국으로 이송해 왔던 소년.

라크리마, 그 내전지역에서 미국인들과 난민들, 군인들까지 닥치는 대로 수술하고 살려냈다는 소년영웅이 떠오른 것이다.

“너, 넌… 이도수?”

“맞고. 이거나 빨리 받아요.”

도수가 환자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쿨럭, 쿨럭!”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환자.

간호사가 외쳤다.

“선생님!”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발등에 불이 붙은 인턴은 얼른 후두경과 삽관 튜브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튜브 굵기가 달랐다. 인턴이 그 전까지 성인 남성 표준 7.5㎜튜브로 기도 삽관을 시도했다면 도수는 대개 여성들에게 쓰이는 7.0㎜ 튜브를 건넨 것이다. 그가 튜브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때.

도수가 한마디 툭 던졌다.

“삽관 시작.”

인턴에게 눈을 뗀 그가 환자를 보았다.

샤아아아아아.

투시력이 발휘됐다.

환자의 구강 구조부터 기도까지 반투명하게 드러났다.

이젠 훤히 보인다.

“삽관!”

도수의 외침에 인턴이 손을 덜덜 떨며 후두경과 삽관 튜브를 다시 환자 입으로 가져갔다.

“긴장 풀어요. 제 말만 들으면 성공할 테니까.”

도수는 확신했다.

이미 라크리마에서 김광석이 기도 삽관 하는 것을 보고 원리는 파악한 상태.

인턴이 삽관을 실패하는 걸 보고 그 원리가 맞다는 걸 확인했다.

더 이상 검증은 필요 없다.

스윽.

인턴이 환자 입에 튜브를 찔러 넣었다. 나머지 한 손으론 후두경을 들고 안쪽을 비추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

그때 도수가 지시했다.

“거울을 좀 안쪽으로.”

인턴이 손을 움직였다.

“딱 그만큼 더 안쪽.”

슥.

인턴의 눈이 부릅떠졌다.

좁은 시야로 환자의 기도가 확보된 것이다.

“어떻게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런 건 나중에 따지고. 그대로 삽관해요.”

“그, 그래.”

고개를 끄덕인 인턴은 철사가 들어 있는 튜브를 일직선으로 깊게 찔렀다. 그러자 튜브가 거칠 것 없이 입과 기도를 통과했다.

“……!”

삽관 완료.

이제 철심만 빼내면 기도 삽관은 성공인 셈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급하게 실려 온 천식발작 환자.

분명 환자의 체형은 기도 삽관이 가장 어려운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베테랑 의사가 와도 애를 먹을 만큼.

한데 도수는 겉에서 보는 것만으로 정확히 위치를 잡고 삽관을 성공시켰다.

심지어 본인 손으로 움직인 게 아님에도.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기적적으로 살려냈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지금 도수가 한 일은 수술 실력만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턴은 천천히 철심을 빼내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과 표정이 복잡했다.

또 다시 질문 공세가 이어지려던 찰나.

도수를 구원해 준 건 반가운 목소리였다.

“이도수!”

도수가 고개를 홱 돌렸다.

수술복 위로 구조복을 걸친 김광석이 응급실을 지나오고 있었다. 흔히 상상해 오던 의사 가운을 입은 점잖은 의사와는 다른 이미지다.

“몰골이 왜…….”

전쟁터와 변한 게 없느냐는 말을 하려 했으나 말을 끊으며 먼저 치고 들어온 건 김광석이었다.

“너,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그는 삽관이 끝난 환자와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인턴을 번갈아 보더니 인턴에게 물었다.

“설마…….”

“아, 아닙니다! 삽관은 제가 했습니다.”

인턴이 해명하자 김광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에 도수가 피식 웃었다.

“저도 여기가 전쟁터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알거든요.”

이 나라 의료법도 모르는 판국에 무작정 달려들 만큼 멍청이는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환자 목숨이 끝난다, 이런 상황이었더라면 어쨌을지 모르겠지만.

주위를 휘휘 둘러본 도수가 말했다.

“…인력이 꽤 부족해 보이네요. 천하대병원은 응급실에 의사들이 넘쳐나던데.”

“뭐, 항상 그렇지.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냐? 천하대병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아직 소식 못 받으셨나 보네요.”

“무슨 소식?”

“그쪽에서 저를 찾을 텐데. 닥터한테도 연락을 해봤을 거고.”

“내가 좀 바빠서…….”

말을 하던 김광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퇴원한 게 아니라 도망치기라도 한 거야?”

“탈출은 제 전문이죠.”

도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긴, 라크리마에선 산전수전 다 겪은 할리 무어 장군도 그를 오래 잡아두지 못했다. 심지어 반군한테 끌려갔을 때 그 흉악한 놈들도 그를 놓치고 말았다는데, 순진무구한 대학병원 의사들이 그를 잡아둘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김광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날 따라와라. 그리고 임 선생. 자넨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하게 경위서 써서 나한테 제출하고.”

“네에, 교수님……!”

인턴, 임재영은 꼼짝도 못 했다.

그 모습에서 국내 병원 체계에서 김광석이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 도수는 실감할 수 있었다.

김광석이 성큼 앞서 걷고, 도수가 그 뒤를 쫓아갔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김광석의 연구실이었다.

김광석은 주스를 따라주며 물었다.

“못 말리겠군. 그래, 여긴 무슨 일이냐?”

도수는 연구실을 휘휘 둘러보며 대답했다.

“세간의 관심을 피해서 먹고 잘 곳이 없어서요.”

“뭐?”

예기치 못한 대답에 김광석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대병원 이사장 손자가 먹고 잘 곳이 없다고?”

“세간의 관심을 피하고 싶다. 이게 포인트인데요.”

“관심을 피하고 싶다…….”

“네. 행동에 제약이 생기는 게 싫어요. 불필요한 일로 시간을 쓰고 싶지도 않고.”

그는 부연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었다.

“천하대병원에 있을 때, 이사장님 가족이란 걸 모를 때도 과장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더라고요. 라크리마에서의 일 때문에 외부인들과 방문 약속도 멋대로 잡아버리고.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게 그렇게 이용되는 겁니다.”

라크리마에서 전쟁터를 전전하며 사람을 살렸던 아이다. 한국의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적응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아니, 적응할 성격도 아닌 듯하지만.

“…꽤 답답했겠구나. 그래도 버젓이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도망쳐 버리는 건 이사장님께 못 할 짓 아니냐?”

“가끔 찾아뵙죠, 뭐. 그보다 아로대학병원에서 찾고 싶은 게 있어요.”

“먹고 잘 곳은 핑계고 진짜는 이쪽이군.”

“둘 다예요.”

그렇게 말한 도수가 물었다.

“이찬. 20년 전 아로대학병원에서 근무했었어요. 결혼하자마자 곧바로 병원을 그만두고 해외의료봉사를 떠났습니다.”

10년 전이면, 김광석은 영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찬을 알 리 없는 것이다.

“이찬이 네 아버지냐?”

김광석의 추측은 정확했다.

“맞아요, 제 아버지.”

뿌리를 찾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 터.

김광석은 그 자신도 한 아이의 부모로서 도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수소문하면 알아볼 수는 있다.”

“그분이 왜 한국을 떠나 가난한 나라들을 전전했는지. 이곳에 뭘 두고 갔는지 그게 궁금해요.”

“여기 두고 떠난 뭔가가 있다? 그건 확실한 거냐?”

“네.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는 얘길 들었거든요.”

“…….”

김광석은 도수를 빤히 응시했다.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아이였다.

“후, 그래. 그 당시 이 병원에 근무하셨던 병원장님께 한번 물어보마. 그건 그렇고…….”

“네.”

“이제 어쩔 생각이냐? 넌 의사가 아니야. 오늘 같은 일이 반복되면 곤란하다. 네가 환자를 보면 지나칠 수 없는 성격이니 의사 자격부터 얻는 게 좋을 거야.”

“…….”

도수가 말이 없자 김광석이 덧붙였다.

“어느 나라든 의사가 되려면 엄청난 시간 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 필수적으로 밟아야 할 코스가 있고, 아무리 빨리 코스를 밟는다 해도 필연적으로 수년이 들기 마련이다.”

“수술을 할 수 있어도요?”

김광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가 하는 일이 수술만은 아니니까. 네 경험이나 수술 실력은 인정한다.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렇다 해도 그 외적인 부분에서 아직 배울 것들이 넘쳐난다.”

도수는 총명한 두 눈을 반짝였다. 아무리 몸으로 부딪쳐 가며 살아온 그라도 판단력만은 분명했다.

무작정 돌파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반드시 과정을 밟아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의사로서 인정받으려면 과정이 중요했다.

그때, 김광석이 입을 열었다.

“다만 과정을 단축하는 방법은 있다.”

“그게 뭐죠?”

“천하대병원에선 널 외국인 전형으로 편입시켜 줄 의향이 있는 것 같더구나. 물론 널 단순히 홍보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병원 소속으로 만들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그쪽이 저를 이용하듯 저도 그쪽을 이용하면 되겠군요.”

김광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국내 최고의 병원이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곳이니 그곳에서 근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게다가 네가 이사장 손자이니 아무도 텃세 같은 걸 부리지 못할 테고.”

“편하긴 하겠네요. 하지만…….”

도수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잠시 후, 생각을 떨쳐내며 입가에 미소를 물었다.

“저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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