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23화 (23/152)

# 23

탈주

이사장실로 돌아간 심태평 이사장은 책상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귀찮은 일이라고?”

모르긴 몰라도 도수가 말한 ‘귀찮은 일’은 대부분 이들이 꿈꾸는 일이다. 그런데 버젓이 자신을 찾아와 놓고도 ‘천하대병원 이사장 손주’라는 타이틀이나 재산을 탐하지 않는다. 그 말인즉 도수는 뭔가를 노리고 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도수가 했던 말이 모두 진실일 확률이 크다는 의미였다.

“정은아!”

나지막이 외친 그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아래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

흐느끼는 그.

그 순간, 인터폰이 켜졌다.

-병원장님 오셨습니다.

잠시 말이 없던 이사장이 눈물을 닦고 대답했다.

“들어오시라고 해요.”

이내 문이 열리며 병원장이 들어섰다.

“찾으셨습니까.”

“제 지시 사항은 잘 이행되고 있는 겁니까?”

“예, 그런데 그건 왜…….”

“정작 이도수란 아이는 다른 얘길 하던데요.”

“예? 무슨…….”

“떠나겠답니다.”

“…….”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 있던 병원장이 물었다.

“이사장님.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아이가 이사장님의 혈육이라고 주장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사실입니까?”

“그건 아직 모릅니다.”

이사장은 그렇게 둘러댔다. 이미 모든 게 확실해졌지만 공개할지 말지는 좀 더 논의하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병원장이 입을 열었다.

“다들 말이 많아서요. 그렇게 전달하고 쓸데없는 구설수가 퍼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도수, 그 아이를 병원 소속으로 만드는 것도 차질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그래요. 우리 병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 아이는 반드시 우리가 품어야 합니다. 그 아이는 우리 병원이 국내를 넘어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 줄 키맨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못 해왔던 아비 노릇, 할아비 노릇을 할 기회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분위기는 이사장을 비롯한 천하대병원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이사장이 업무차 자리를 비운 사이 도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병원장은 성화를 부렸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어요? 그냥 환자도 아니고 VIP병동에서 환자가 사라졌는데… 우리 병원 시스템이 이렇게 허술했습니까?”

부원장은 물론 원무과부터 모든 진료과 과장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부원장이 대신 고개를 숙였지만 병원장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대통령님부터 의원님들, 각 언론사 기자들까지. 방문 일정이 잡혀있던 분들께 뭐라고 할까요? 우리 이사장님한테는요! 우리 병원 명성을 높이려고 벌인 일이 우리 병원 얼굴에 똥칠을 하게 생겼습니다!”

“…….”

반론의 여지도,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누구 하나 대답하지 못하자 병원장이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어떻게든 찾으세요. 그게 급선무입니다.”

“언론에는 어떻게 공표하면 좋겠습니까?”

“일단 우리한테 유리한 사실만 공표하는 쪽으로 생각합시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됐다. 치료보단 안정이 필요해서 퇴원 조치를 했다. 이렇게 이사장님께 재가를 받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이도수의 소재는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아시겠습니까?”

부원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꼭 찾도록 하겠습니다.”

***

그 시각.

병원 옷에 외투만 걸친 도수는 경기도 수원의 ‘아로대학병원’ 정문 앞에 와 있었다. 귀국 당시 김광석이 미처 외투 주머니를 비우지 않고 빌려주었기에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으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아로대학병원.”

도수는 가만히 서서 중얼거렸다.

라크리마에서 들었던 김광석의 새로운 부임지다.

그리고 아버지 이찬이 어머니를 만나기 전 근무했던 병원이다.

한국에서의 모든 실마리가 이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후.”

크게 숨을 내쉰 도수가 막 걸음을 떼는 순간.

시끄러운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 한 대가 들어왔다.

“아오, 씨발! 빨리 빨리!”

후다닥 내린 구조대원들이 초록색 십자가가 프린팅된 박스 문을 열고 환자가 누워 있는 스트레쳐 카(Stretcher car: 환자 운반에 필요한 이동식 침대)를 꺼냈다.

“가!”

차르르르르륵!

구급대원들이 응급실로 스트레쳐 카를 밀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도수의 눈빛도 돌변했다.

‘천식 발작?’

스트레쳐 카가 드드드드 떨릴 정도로 발작이 심했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미처 투시력을 쓰진 못했지만 난민 중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천식이 심해진 환자를 수도 없이 봐왔던 그.

한눈에 환자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의 습관 때문일까?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도수는 스트레쳐 카에 이끌리듯 응급실로 따라 들어갔다.

“……!”

그는 발을 딱 멈췄다.

응급실 안은 환자들로 넘쳐났다.

천하대병원에서 몰래 탈출할 때도 응급실을 통해 나왔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몇 블록마다 큰 병원을 볼 수 있을 만큼 병원이 밀집된 서울의 대학병원과 달리 수원에 위치한 유일한 대학병원인 아로대학병원 응급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마치 전쟁터에 모습을 이곳에 옮겨놓은 듯한 광경에 도수는 충격을 받았다.

방금 들어온 환자 곁에 붙어선 젊은 의사가 물었다.

“어떤 환자예요?”

“35세 남자구요, 천식발작 환자입니다! 발견 당시까진 의식이 있었는데 이송 중 의식 수준 점점 낮아졌고요……! 현재는 혈압 이백에 구십이고 맥박 분당 백이십 회가 넘어요. 호흡은 삼십 회, 체온 37.5도고 의식 잃은 상태입니다!”

혈압이 엄청나게 올랐고 체온도 살짝 오른 정도.

젊은 의사는 환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환자분 눈 떠보세요! 환자분!”

귀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지만 반응이 없다.

허벅지살을 있는 힘껏 꼬집어서 비틀어도 마찬가지다.

동공반사는 아직 살아 있지만 느렸다.

“일단 여기 눕혀요! 하나, 둘!”

간호사들과 환자를 들어서 침대로 옮긴 젊은 의사가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벤토린(Ventolin: 기관확장제), 메틸프레드니솔론(Methylprednisolone: 정맥주사용 스테로이드 약물) 주세요.”

약물을 투여하고 시간이 지나도 환자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발작하고 있고 호흡이 원활하지 못했다.

약물이 듣지 않는다는 의미.

“에프네프린!”

간호사가 건넨 주사기를 받은 젊은 의사는 환자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제발……!”

그러나 이번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젊은 의사는 이제 자신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김지훈 선생님 호출해 주세요. 기관 삽관 준비해 주시고요.”

김지훈은 레지던트.

인턴인 그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그사이 간호사가 후두경이랑 기관 내 튜브, 앰부백을 준비했다.

이제 삽관만 남은 상황.

환자의 체형을 확인한 인턴의 볼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게 뭐야?’

한눈에 봐도 비만인 환자.

턱이 좁고 혀가 크고 목이 짧고 굵다.

기관 삽관을 하기에 최악의 체형인 것이다.

‘안 보여.’

어두운 입안.

두꺼운 혀와 후두덮개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턱이 좁으니 입안의 공간도 좁아서 후두경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후두가 잘 안 보이면 시간을 잡아먹기 마련. 그 시간 동안 환자는 점점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을 터였다.

“선생님! 환자가 숨을 못 쉬어요!”

환자 입에서 쇳소리가 난다.

“잠시만……!”

인턴은 피가 말랐다. 그렇게 1분여가 흐르고.

“찾았어요!”

그의 얼굴이 활짝 폈다.

마침내 후두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산을 하나 넘었을 뿐.

튜브가 후두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은 급하고 환자의 몸은 튜브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때, 힘을 들여서 간신히 고정하고 있던 후두경이 흔들리고 말았다.

“아……!”

후두경이 흔들렸으니.

이제 겨우겨우 찾아낸 후두를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

“젠장…….”

이러다간 한없이 지체될 수 있었다.

환자는 죽음의 강을 마저 건널 테고.

“선생님.”

간호사가 환자를 번갈아 보며 애타게 불렀다.

“선생님?”

“…….”

튜브와 후두경을 손에서 내려놓은 인턴이 물었다.

“김지훈 선생님은요? 아직이에요?”

“네, 환자 보고 계신지 아직……!”

“미치겠네……!”

인턴은 어쩔 줄 몰랐다.

기관 삽관이 힘든 경우 메스로 목을 째고 기관절제술을 시행해야 하는데 인턴에 불과한 그에게는 경험도, 판단력도 부족했던 것이다.

‘선배님이 오실 때까지 환자가 버틸 수 있을까?’

환자의 상태는 위태로웠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가 외쳤다.

“선생님! 혈압 떨어져요!”

“……!”

삐빅! 삐빅!

인턴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불쑥 끼어들었다. 기관 내 튜브와 후두경을 들고 있는 그.

그는 바로 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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