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비밀
그날 저녁.
김광석이 도수를 찾아왔다.
“날 보자고 했다고?”
“네.”
“몸은? 좀 어떠냐.”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낮에도 아팠을 텐데, 밤에는 얼마나 아플까.
김광석이 나지막이 말했다.
“패혈증이 의심된다. 혈액검사와 세균배양검사를 의뢰해 둔 상태야.”
“패혈증…….”
패혈증(敗血症).
심해지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그러나 김광석은 덤덤한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은 말고.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치료하면 괜찮을 거다. 문제는 지금 라크리마 전역에 손길이 필요한 환자가 너무 많아. 아마 한국으로 이송해서 치료하게 될 것 같구나.”
“왜 한국이죠?”
“네 국적이 한국이니까. 정부 차원에서 신경 쓰고 있다. 치료비도 정부에서 전액 부담할 거고. 네가 이민 절차를 밟지 않는 이상 다른 나라들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지. 명분은 타당하다.”
도수는 피식 웃었다.
7년 동안 그에게 관심도 없던 나라였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니 이제야 자국민이라며 정부에서 직접 나선다.
“태세 전환 한번 빠른데요.”
김광석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지금 상황이 못마땅한 것이다.
“일단은 천하대병원으로 이송될 것 같다.”
“왜 천하대병원이죠?”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이야.”
“그게 끝이에요?”
“나도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병원 측에서 손을 썼겠거니, 하고 추측할 뿐.”
고개를 끄덕인 도수가 말했다.
“저를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는 거군요.”
“그렇겠지.”
도수는 세상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불리고 있었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병원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를 천하대병원이 놓칠 리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말을 돌렸다.
“닥터는요?”
“나도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그의 눈동자가 아련하게 잠겼다. 도수는 그것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돌아갈 곳…….”
그에게는 그런 곳이 없었다.
씁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를 보던 김광석이 말했다.
“앞으로 천천히 치료받으면서 앞으로 뭘 할지 생각해 봐.”
“일단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해야 할 일?”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에요.”
일부러 잊고 지냈던 부모님이다.
하지만 이젠 케케묵은 판도라의 상자를 꺼낼 때가 됐다.
전쟁터에서 봐왔던 어떤 의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의사 부부가 왜 젊은 나이에 애까지 데리고 한국을 떠나 이런 오지를 전전하는 삶을 살았는지.
단순히 ‘해외의료봉사’라고 하기엔 의문점들이 많았다.
그 의문점을 해결하고, 부모님이 한국에 남겨둔 게 있다면 전부 되찾아야 했다. 하다못해 ‘흔적’이라도. 자신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건 도수만이 아니라 인류의 본질적인 궁금증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뭐가 남았을지 모르겠다만… 나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마. 그 전에, 나도 궁금한 게 있다.”
“말씀해 보세요.”
“네 비밀.”
“…….”
잠시 입을 닫고 있던 도수가 말했다.
“말씀드려도 못 믿으실 거예요.”
“믿고 말고는 내 몫이지.”
“그럴까요?”
“그래.”
한숨을 내쉰 도수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내전이 시작되고 저희 집에 폭탄이 떨어졌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 저도 큰 부상을 당했어요.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지만 머리에 파편이 박혔던 걸로 기억해요.”
“파편이……!”
김광석이 눈을 치떴다.
“천운이구나. 파편이, 그것도 머리에 박혔다면 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은 사망할 텐데.”
“저도 위험했겠죠.”
그 순간 김광석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널 구해준 의사가 있었던 거냐? 그가 네 스승…….”
“저 말하고 있는데요.”
“크흠! 그, 그래. 계속 들어보자.”
“말씀드렸던 대로 제 스승은 없고요. 의사셨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보던 것들이 전부예요.”
“그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걸 기억한다고?”
아니, 기억한다고 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만약 그런 식으로 의사가 될 수 있었다면 전국 병원의 간호사들이나 코디네이터들은 전부 의사로 직업을 바꾸어야 할 터였다.
“그것만으로 환자를 수술했다고?”
김광석이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자.
도수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얘기했잖아요. 못 믿으실 거라고.”
“…계속해라. 난 믿고 있다.”
전혀 못 믿겠다는 얼굴로 도수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그때 이후 감각이 비약적으로 발달했어요. 왜 그런 건지 이유는 몰라요. 설명을 들을 사람도,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거든요.”
‘투시력’을 ‘감각’ 정도로 포장했다. 어차피 이 얘기나 저 얘기나 못 믿을 내용임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감각이라고 둘러대는 편이 받아들이기 쉬울 터였다.
김광석이 물었다.
“검사는 해봤을 거 아니냐.”
“특별한 건 없었어요.”
김광석이 팔짱을 낀 채 턱을 만지작거렸다. 현대의학으로도 증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아직 남아 있었다. 특히 뇌를 다루는 신경외과 쪽은 미지의 영역이 넓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보기 드문 경우였다.
“나머지는 직접 경험하면서 터득했고?”
“네.”
“후…….”
한숨을 내쉰 김광석은 팔짱을 풀고 말했다.
“괜히 물어본 것 같구나.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궁금증만 더 늘었어.”
“그래서 말씀드렸잖아요. 별로 설득력 있는 이야긴 아니라고.”
“무슨 SF소설도 아니고… 전쟁에서 장르가 바뀌었군.”
“아직 장르를 속단하긴 이른데요.”
입꼬리를 말아 올린 도수는 침대 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팔락.
군데군데 구겨지고 찢어지고 때가 타 있었다.
“이게 뭐냐?”
“제 막사에서 매디가 가져다준 거예요. 한번 보세요. 이 영화의 진짜 장르는 반전 서스펜스가 될 테니까.”
“……!”
종이를 내려다본 김광석은 눈을 부릅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이 사람이?”
“네, 맞아요.”
“그래서 천하대병원이란 말이 나왔을 때……!”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기분이 묘했던 거예요.
“그럼 부모님에 대해 궁금했던 것도……?”
“닥터가 봐도 진짜 이상하죠?”
도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왜 천하대병원 이사장의 막내딸이 남편과 자식을 데리고 이런 오지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건지. 왜 내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셔야 했는지. 그리고…….”
그가 덧붙였다.
“할아버지란 분은 내 어머니의 행방과 내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광석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오래된 주민등록등본을 떨어뜨렸다.
***
천하대학병원 회의실에는 열두 명의 각 과 과장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상석에는 병원장과 부원장이 자리를 채웠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병원장이었다.
“이도수 환자는 언제 도착합니까?”
“일주일 안에 도착할 겁니다. 이번에 아로대학병원 응급외상센터장으로 부임하는 김광석 교수가 직접 이송할 테고요.”
외과과장 정창순이었다.
그러자 미간을 찌푸린 부원장이 말했다.
“그 꼴통이 말입니까? 환자 빼돌리는 거 아니에요?”
“그럴 사람은 아닙니다.”
마취과 한주원 교수가 토를 달자 부원장이 눈매를 좁혔다.
“두 분 대학 동기시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아니, 모교 사람이라고 말 나올 때마다 편을 드시니까…….”
그때 원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두 분 다 의미 없는 논쟁은 그쯤 하십시오. 환자가 원하지 않는 이상 트랜스퍼(Transfer: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인계하는 것)는 없습니다. 정부 쪽이랑 얘기 끝난 내용이에요. 그리고 의료비 지원 때문에라도 환자 쪽에서 트랜스퍼를 원할 리는 없습니다.”
“…….”
입을 닫는 부원장과 마취과 과장.
두 사람에게서 눈을 뗀 병원장이 과장들을 슥 훑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문제는 외국입니다. 국내야 우리 선에서 처리가 되지만 이도수란 아이가 수술하는 걸 본 많은 외과의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어요. 그 아이가 지니고 있는 야생적인 수술법들이 현대의학의 영역에서 풀지 못한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선 이 병원에 들어앉히는 수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이사장님이 원하는 겁니다.”
“……!”
과장들이 눈을 치켜떴다.
“대단한 아이긴 하지만… 그런 주먹구구식 수술법을 보고 무슨 해답을 생각하단 말입니까? 지금 우리가 쓰는 방법들이 어디 하루, 이틀 연구해서 나온 것들입니까? 오랜 시간과 사례로 증명한…….”
“그런 건 중요치 않습니다.”
병원장이 말을 잘랐다.
“지금 가져야 할 건 의문이 아니라, 그 아이를 우리 병원에서 품을 방법입니다.”
내과 과장이 손을 들고 물었다.
“아무런 학력도 자격도 없는 아이입니다. 검증도 안 된 사람을 의사로 쓸 수도 없지 않습니까? 밖에서 닥치는 대로 수술하던 아이가 병원에서 청소나 할 리는 없고요.”
“그 자격을 논하자는 겁니다.”
그때였다.
부원장이 입을 뗐다.
“엄연히 말하면 한국인이기도 하지만 외국인 아닙니까?”
“외국인이요?”
병원장이 되묻자 부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리마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시민권을 받기 충분한 조건일 겁니다. 그럼 천하대 의대 외국인 편입 쪽으로 밀어붙여 보죠.”
“편입이라.”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던 병원장이 물었다.
“괜찮겠어요? 정규교육과정을 전부 밟지 않고 의사가 돼서 환자라도 죽이면 문제가 커질 텐데. 우리 병원은 물론 학교 전체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받을 겁니다. 쉽게 논할 게 아니에요.”
그러나 부원장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수술시킬 것도 아니고 우리 소속으로 품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애가 전쟁터에서 뭘 보고 자랐겠어요? 여기서 의사란 명함 달고, 병원 광고도 찍고 방송도 타고… 그렇게 호의호식하며 지내다 보면 푹 눌러앉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