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9화 (19/152)

# 19

기도 삽관을 끝낸 김광석은 볼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끝이 없군…….’

환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시간도 없었다. 다음 환자, 해결하면 또 다음 환자. 김광석은 즉시 다른 환자를 보러 움직였다.

그 와중 복부 총상 환자를 보고 있는 도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보조해 주는 이근육이 정체불명의 장기를 들고 들이닥친 게 아닌가?

‘뭐지?’

우뚝.

걸음을 멈춘 김광석은 갈등했다.

“저쪽부터 가지.”

그는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도수가 환자를 보고 있는 근처에도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이 여럿 있었던 것이다.

도수에게 다가간 김광석은 다른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며 물었다.

“그레프트(Graft: 혈관을 대체하는 것)를 하려는… 아니, 인공 혈관인가?”

찢어진 대동맥을 복구할 땐 인공 혈관을 집어넣고 봉합을 한다. 그렇게 안쪽을 보강해야 다시 터질 확률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도수가 대답했다.

“염소 장입니다.”

“염소 장…….”

중얼거린 김광석이 물었다.

“대동맥의 압력을 버티기엔 좀 약한데?”

“네.”

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송한 뒤 2차 수술을 해야 합니다. 임시방편이에요. 고무호스나 코끼리 코 같은 게 있으면 더 좋겠지만.”

고무호스.

코끼리 코.

비상식적이어서 그렇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대동맥은 넓고 단단하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당장 그런 보강재를 구하긴 힘들었다. 동물 장기를 생각해 낸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 편이 더 좋긴 하겠군.”

볼수록 놀라운 녀석이라 이제 더 놀랄 것도 없다.

김광석은 간호사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메스.”

진단이 끝난 이상, 이쪽도 수술을 시작해야 한다.

***

도수는 염소 장을 필요한 만큼 잘라냈다.

“석션.”

슬슬 손에 익은 이근육이 재빨리 나섰다.

치이이이이익.

대동맥을 가린 피가 빨려 들어갔지만.

그새 출혈이 심해졌는지 금방 다시 핏물이 들어찼다.

‘최대한 체력을 아껴야 하는데…….’

도수는 주위를 둘러봤다.

위급한 환자가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른다.

즉, 지금 그가 쓰러지면 이 많은 환자들을 고스란히 김광석 혼자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살 사람도 죽을 수밖에 없다. 치료에 있어서 생과 사를 가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촌각을 다투는 환자에게 힘을 아낄 수도 없는 노릇.

도수는 입술을 깨물며 투시력을 썼다.

샤아아아아아아.

그의 두 눈이 밝게 빛나며 대동맥이 드러났다. 그득한 핏물 따위는 이제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걸 모르는 이근육이 물었다.

“어, 어떡합니까? 시야 확보가 전혀 안 되는데… 그새 상처가 더 벌어졌는지 출혈이 너무 심합니다.”

“석션은 그만.”

“네?”

“피만 짜세요.”

“……!”

눈을 동그랗게 뜬 이근육이 떨떠름하게 석션 튜브를 내려놓고 피를 짰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침착하게 핏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간단한 확인을 마치고, 짤막하게 뱉었다.

“타이.”

“예?”

도수는 말없이 이근육을 쳐다봤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이근육은 실과 바늘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다시.

쑥.

도수가 핏물 속으로 손을 넣는다.

“……!”

이근육은 눈앞의 어린 의사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마 수술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경악했을 터였다.

그러든 말든 도수는 대동맥을 노려보며 손을 놀렸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대동맥. 그 위로 난 상처를 지나다니는 실과 바늘.

스슥.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눈 깜짝할 새에 대동맥에 여러 가닥의 실을 매단 그는 실을 끄집어 올렸다.

“염소 장.”

“아!”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이근육이 헐레벌떡 염소 장을 집어 들었다.

“그대로 들고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

그렇게 말한 도수는 염소 장에 실을 잇기 시작했다.

이번엔 핏물로 가로막혀 있지 않았기에 손놀림이 고스란히 다 보였다.

슥, 슥.

빠르다.

이근육은 눈을 치떴다.

“군 병원에서 간호 보조를 할 때 의사들이 꿰매는 건 많이 봤었는데… 몇 배는 더 빠른 것 같습니다.”

도수는 짧게 눈길을 주었지만 뭐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염소 장에 실을 꿰매서 대동맥의 찢어진 부위와 이었다.

고개를 갸웃한 이근육이 다시 물었다.

“실이 많이 남는데요?”

“보강재로 쓸 염소 장을 대동맥 안에 집어넣을 겁니다. 이렇게.”

쑤욱.

염소 장을 들고 있는 손을 집어넣은 도수는 대동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잘 고정시킨 뒤, 밖으로 빠져 있는 실. 그 실들을 투시력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스슥……

남는 실들을 이용해 대동맥 바깥쪽을 꿰매기 시작했다.

“석션.”

이근육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치이이이이익!

안쪽이 드러난다.

“다시 출혈이 멎었습니다……!”

뛸 듯이 기뻐하는 이근육.

그러나 도수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담담하게 마무리에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같은 속도로 봉합을 끝낸다.

마치 손끝에 열정이 실리는 느낌. 의식의 흐름대로 춤을 추듯이 손을 놀린다. 그리고 홀린 듯이 뱉었다.

“컷.”

한쪽 손을 빼내 직접 가위로 실을 잘라내는 도수. 실밥이 전혀 보이지 않아 풀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깔끔한 솜씨였다.

“후……!”

가슴을 졸이고 있던 이근육이 자기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정말…….”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 전에 도수를 볼 때보다 훨씬 강렬하고 야릇한 감정이 담겨 있달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닥터.”

“그런 얘긴 끝나고 하죠.”

도수는 굳이 다리의 절개 부위를 닫지 않고 말했다.

“일단 거즈로 감아두세요.”

“거즈로요?”

“조심해서 단단히 감아야 합니다.”

“봉합은…….”

“그건 시간 있을 때.”

짧게 대답한 도수가 덧붙였다.

“믿습니다.”

그렇게 툭 던진 그가 턱과 목을 다친 환자에게로 몸을 틀었다.

그런데.

환자의 상태가 이상했다.

“커, 커어…….”

기도 삽관을 하고 옆으로 눕혀둬서 분명 한쪽 폐로만 피가 들어갔을 것이다. 나머지 한쪽 폐는 무사해야 정상이다. 즉, 당장 수술을 안 해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던 상황.

한데 지금.

삽관한 튜브 자체가 피로 막힐 정도의 출혈을 보이고 있었다.

“안 돼…….”

도수는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이미 김광석은 너무 먼 거리에 있는 환자의 옆구리를 연 채 수술을 하고 있었다.

당장 튜브를 빼고 기도 삽관을 할 수도 없는 상황.

도수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켜들었다.

‘어떡하지?’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출혈을 잡아야 한다.’

여는 수밖에 없었다.

도수가 즉시 입을 열었다.

“칼.”

턱.

이근육이 메스를 건넸다.

메스를 받은 도수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환자의 상처 부위를 절개했다. 그리고 동시에 투시력을 할 수 있는 한 극한까지 끌어 올렸다.

샤아아아아아.

복잡한 혈관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곳곳이 찢어진 혈관들.

‘젠장.’

대미지를 입은 혈관이 너무 많았다. 복부 총상 환자를 수술하는 게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의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서 환자를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오만가지 생각들이 도수의 머릿속을 누볐다.

“집게.”

도수의 말에.

이근육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 역시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도수의 표정과 환자 상태를 보면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턱.

투시력을 통해 찢어진 혀 동맥의 분지(分枝: 원 줄기에서 갈라져 나간 혈관)를 정확하게 파악한 도수는 클램프로 출혈점을 잡았다. 하나 잡고, 빠르게 다시 말한다.

“집게.”

턱.

또 다시.

“집게.”

턱!

얼굴 동맥의 분지(分枝)를 콱 집은 도수의 이마로 식은땀이 흘렀다. 체내에 흐르는 혈액이 부족했다. 투시력을 통해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굳이 검사하지 않아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초조한 표정의 도수.

“타이.”

그의 손짓이 빨라졌다.

출혈점을 하나씩 봉합했다.

더, 더 빨리.

슥. 스슥.

난시가 있는 이근육의 눈에는 도수의 손이 잔상을 남기는 것 같이 보였다. 그만큼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환자의 상태는 더 빠르게 악화됐다. 마치 가파른 경사에서 생명이 든 수레를 굴린 것처럼 급격히 떨어진다.

“안 돼……!”

안타까운 신음을 터뜨린 도수의 손이 멈칫했다. 심장이, 심장박동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시선을 돌렸을 땐, 이미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심정지!”

도수는 이미 환자한테 올라타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제세동기는?”

그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지만.

이근육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곳엔 없습니다. 닥터… 사망했습니다.”

“아니.”

도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살릴 겁니다.”

그는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전신이 땀으로 젖었을 때에서야, 도수에게 다가온 김광석이 손목을 잡아뗐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 환자를 봐야지.”

“이 환자는…….”

도수가 입을 뗐다.

“살릴 수 있었습니다… 가망이 있었어요.”

“아니.”

김광석은 단호하게 말했다.

“복부 총상 환자, 그리고 이 환자. 모두 살릴 순 없는 상황이었어. 기도 확보를 해둬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런 상황을 예측 못 한 건 내 실수야. 그렇다고 당장 수술해야 할 다른 위급한 환자가 있는데 멍하니 서서 이 환자만 관찰하고 있을 수도 없던 상황이고.”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출혈을 잡았다면…….”

“그것도 아니. 너처럼 손이 빠른 써전도 못 잡은 출혈이면 누가 와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환자가 더 버텨줬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야.”

김광석은 똑바로 눈을 맞춘 채 말을 이었다.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지. 충분히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됐던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회복이 힘들다고 생각했던 환자가 기적처럼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넌 네가 치료할 수 있는 다른 환자를 봐야 돼.”

“…….”

마침내.

도수가 손을 뗐다.

“…가시죠.”

그는 침상에서 내려왔다.

고개를 끄덕인 김광석이 말했다.

“이제 진짜 촌각을 다투는 환자는 대충 마무리된 듯하니 여기를 기준으로 왼편은 내가, 오른편은 네가 맡자.”

“네.”

도수는 군말 없이 오른편으로 향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가슴속에선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언젠간 살릴 수 있는 환자의 죽음과 마주하리란 것을 알았지만 오늘이 될지는 몰랐다. 투시력 덕분에 그동안 수술에서만큼은 실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설령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사망했다 하더라도 이처럼 허무하게 환자를 놓친 적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허망하다.

허무했다.

우뚝.

도수는 다시 환자 앞에 멈춰 섰다. 환자와 마주 섰다. 그가 멍하니 환자를 바라본 그 순간.

어깨에 총상을 입은 환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와 눈이 마주친 도수는 순간적으로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환자의 이불 속에서 이곳에 있으면 안 될 흉기 두 개가 솟구쳤다.

“죽어라.”

한 손엔 총.

다른 한 손엔 수류탄.

먼저 당겨진 건 방아쇠였다.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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