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샤아아아아아.
도수의 두 눈이 번뜩였다.
병실 안부터 복도까지 줄지어 누워 있는 환자들.
그들 몸속이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투영됐다.
도수는 그들을 휙휙 지나쳤다.
‘이 사람도 아니야.’
그는 위급한 환자를 찾았다.
‘이 사람도.’
슥.
정말 위급한 환자부터 수술을 해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
스윽.
다시 또 지나치자 뒤를 쫓던 간호사가 발목을 잡았다.
“닥터?”
도수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물었다.
“대체 어디 가시는 거예요? 방금 지나친 환자들은요?”
“…….”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도수가 말했다.
“상처 소독하고 압박붕대로 지혈해 주세요.”
“네?”
“그게 간호사님이 할 일입니다.”
“…….”
이게 끝?
그러나 도수는 부연하지 않고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간호사가 헐레벌떡 뒤따르며 물었다.
“닥터! 바로 치료하지 않으세요? 방금 그 환자는 배 안쪽이 다쳤을 수도 있잖아요!”
“누가 그래요?”
“네?”
“배 안쪽이 다쳤다고. 누가 그래요.”
“무슨…….”
도수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판단은 제가 합니다. 의문을 가지면 처치가 늦어져요. 처치가 늦어지면 환자를 잃게 될 거고.”
“아……! 죄,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간호사.
도수가 말을 이었다.
“방금 그 환자는 총알이 복부를 관통하긴 했지만 동맥이나 장기를 다치지 않았습니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뜻.
간호사는 도수의 뒤를 쫓으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역시 싸가지…….’
하지만 도수의 실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슥 훑어보는 것만으로 환자를 척척 분리해 내고 있는 것이다.
‘닥터 킴보다도 빠른 것 같아.’
간호사의 새삼스러운 눈길이 도수의 등을 좇았다.
***
그 후에도 여러 명의 환자들을 지나치던 도수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는 군인 둘을 보았다.
울컥, 울컥.
상처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한 사람은 목과 턱 부위에 총상을 입었고, 또 한 사람은 복부에 총을 맞았다.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가 말을 더듬었다.
“두, 둘 모두 의식불명이에요. 호흡도 불안정하고… 출혈도 심한데, 점점 더 상태가 악화되는 것 같아요. 이건… 누구부터 하시겠어요?”
그리고는 자신 없이 덧붙였다.
“역시 목과 턱을 다친 환자겠죠?”
“아뇨.”
그 순간에도 도수는 투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수술은 복부 총상 환자부터 합니다.”
“네? 왜요?”
복부에 총상을 입은 환자는 겉보기 양호해 보였다. 총알에 스쳐서 생긴 상처에 불과했으니까. 면적도 넓지 않아서 비교적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도수의 눈에만 보이는 장면이 있었으니.
“대동맥을 다쳤어요.”
“……!”
대동맥 안쪽은 압력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살짝만 상처가 나도 점점 벌어지면서 출혈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즉, 순식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간호사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거, 겉만 보고 그게 보이세요?”
“네. 서두르죠.”
간호사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설명이 일제 배제된 간결한 대답.
도수는 메스를 집어 들었다.
“일단 목과 턱을 다친 환자는 질식하지 않게 응급처치만 하고, 복부 총상 환자부터 수술하겠습니다.”
그 순간.
김광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대단해. 출혈량만 보고도 대동맥이 다쳤다고 확신하고 우선순위로 삼다니.”
“확신이 아니라 가정입니다.”
“말투나 행동은 확신인데?”
김광석의 말투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는 결국 도수가 포기했던 환자를 살려내지 못했던 것이다. 배를 연 순간 그가 본 것은 전부 썩어버린 장기들이었다.
“…….”
도수가 말이 없자 그가 덧붙였다.
“…지금은 급하니 이 얘긴 나중에 하지. 그건 내려놔.”
도수의 메스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를 저지한 김광석이 간호사에게 말했다.
“기도 삽관 준비해 줘.”
“아… 네!”
간호사가 후두경과 기관 내 튜브, 앰부백을 준비했다.
김광석은 도수의 표정을 유심히 훑으며 물었다.
“이 도구들도 처음 보는 눈친데. 메스를 든 걸 보면 기도절제술을 하려고 했나? 기도 삽관은?”
“전 칼을 써왔습니다.”
“기도절제술을 할 줄 알면서 기도 삽관은 모른다. 게다가 수많은 환자들의 상태를 겉만 보고 척척 파악한다…….”
김광석이 나지막이 되뇌며 기도확보를 하려던 찰나.
환자 목에서 피가 콸콸 쏟아졌다.
“……!”
출혈이 너무 심하다.
즉, 시야 확보가 잘 되질 않는다.
‘감으로 해야 하나?’
김광석은 잠시 고민했다.
기도 삽관은 그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대학병원에서도 기도 삽관에 어이없게 실패해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는 실력에 자신감을 가질만한 써전.
‘감으로 한다.’
결단을 내린 김광석이 막 손을 움직이려 했다.
그 순간.
도수가 불쑥 석션 튜브를 내밀었다.
“……?”
김광석이 눈을 크게 뜨자 도수가 말했다.
“피를 빨아들여야 제대로 보일 거 아니에요?”
“아!”
김광석, 간호사가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무슨 센스가……
“어시스트 서면 칭찬 좀 받겠어.”
김광석이 석션 튜브를 받아 간호사에게 건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응급처치를 할 준비를 마치자 도수도 복부 총상 환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후우.”
다시 칼을 들고 환자와 마주 선 도수.
그는 환자의 다리를 주욱 갈랐다.
그러자 찢어진 대동맥이 눈에 들어왔다.
콸콸콸.
극심한 출혈.
도수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리고 있는 이근육에게 외쳤다.
“석션!”
“전 경호를…….”
“간호 보조 해봤다면서요.”
“수술방에는 안 들어갔지만… 여기 있습니다.”
이근육이 석션 튜브를 내밀었지만 도수는 다르게 지시했다.
“간호사 하는 거 보고 해요, 빨리.”
이근육은 바로 옆 수술대에서 김광석의 어시스트를 하고 있는 간호사를 훔쳐보며 석션을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도수는 세척액과 거즈를 이용, 이리게이션을 실시한 뒤 포셉(Foceps: 의료용 겸자)을 집어 들었다.
샤아아아아아아.
피로 물든 시야.
그 속에 잠긴 대동맥의 위치가 선연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콰악!
단 한 번.
단숨에 대동맥을 집었다.
“한 번에……!”
이근육은 감탄했다. 그의 눈에는 대동맥의 위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감이 아닌 투시력으로 정확한 출혈점을 막아낸 도수. 지혈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그는 머릿속에 대피소로 들어올 때 보았던 식단 메뉴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출혈은 막아뒀습니다. 지금 바로 식당으로 가세요.”
“식… 당이요?”
식당은 바로 옆방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식당은 왜?
도수가 말했다.
“주방에 가서 냉동고를 열어보면 냉동돼 있는 염소 장이 있을 겁니다. 녹여서 가져오세요.”
“여, 염소 장이요?”
“염소 곱창이었거든요. 여기 어제 저녁 식사가.”
갑자기 이곳이 대피소로 바뀌었으니 식재료를 쓰지 못했을 터.
도수는 기지를 발휘했다.
“찢어진 혈관을 대체할 인공 혈관이 필요합니다. 그만 물어보고 빨리 가져오죠? 환자 죽일 거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