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소생
“환자 죽이려고 작정했어!?”
김광석이 소리쳤다.
안 그래도 위중한 환자의 몸에 절개 부위를 한 곳 더 늘린 셈이다.
하지만 도수에게는 그런 사실 따윈 중요치 않았다. 일단 목숨만 붙여두면 회복할 가능성이라도 있다.
“그냥 둬도 죽습니다.”
도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주변 반응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샤아아아아아아.
투시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
횐자의 몸이 반투명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스읍.”
숨을 들이쉰 그는 복장 뼈를 잘랐다. 뼈 아래 혈관들이 거미줄처럼 눈에 들어왔으나 일일이 피할 수는 없었다.
투둑, 툭……!
혈관들이 잘려 나가며 출혈이 발생했다.
“거즈…….”
오더를 내리던 도수의 음성이 멎었다.
이미 김광석이 거즈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해야 한다. 자칫 심장을 찌르지 않으려면.”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석, 서걱.
복장뼈가 완전히 잘렸다.
그러자 심막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군.’
김광석은 감탄을 속으로 삼켰다. 흉부외과와 일반외과, 양쪽 모두 능통한 그가 보기에도 눈부신 속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사이 도수가 심막을 열었다.
석, 서걱.
마침내 심장이 실물로 보였다. 뛰고 있어야 할 심장이 멈춰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도수는 망설이지 않고 맨손을 찔러 넣었다.
푹!
그는 눈을 감고 사람의 심장이 뛰던 장면을 기억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던 그 심장박동을.
‘하나, 둘, 셋, 넷…….’
도수는 숫자를 세며 템포를 맞췄다. 심장을 가볍게 감싸 쥔 그는 템포에 맞춰 손을 쥐락펴락 움직였다. 심장을 직접 마사지하는 것이다.
‘제발……!’
진땀이 흘렀다.
‘제발 다시 뛰어라……!’
도수는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환자를 믿었다. 소생할 거라고. 수술 때마다 예민한 청각을 이용해 들었던 심장박동대로, 투시력으로 보아왔던 건강한 심장의 움직임대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하나, 둘, 셋, 넷…….’
이 순간만은 도수의 돌발 행동에 경악했던 의료진들도 손에 땀을 쥔 채 환자의 생존을 염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도수의 이마로 땀방울이 주르륵 흐르고.
김광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군.’
바이탈은 수평을 유지한 채 돌아오지 않았다.
눈을 뜬 김광석이 도수를 지그시 보며 말했다.
“그만하지. 우린 최선을 다했어.”
“…….”
손을 멈춘 도수.
그가 입을 열었다.
“에피네프린(Epinephrine: 아드레날린으로도 불리며, 호르몬과 세포신호전달물질로 작용한다.)”
“지금 무슨……!”
도수는 시계를 봤다.
수술방에 다시 들어온 지 3분 27초.
“에프네프린!”
도수의 눈은 광기에 젖어 있었다.
이미 심연까지 끌려 들어간 환자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일념.
그것만이 그를 움직였다.
“여, 여기……!”
간호사가 건넨 주사기를 받은 도수는 거침없이 심장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푸욱!
“……!”
김광석은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기에 도수의 행동은 사체를 훼손하는 행위로밖에 비추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죽은 자라 해도, 지켜야 할 예의란 게 있다. 지켜야 할 절차란 게 있는 것이다.
“다 했나?”
그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방금 행동은…….”
그때.
삑- 삑- 삑- 삑-
바이탈사인이 변화를 일으켰다.
자리에 있던 의료진들의 눈이 커졌다.
“어……?”
“시, 심장이……!”
“심장이 뜁니다! 바이탈이 돌아왔어요!”
도수의 턱에 걸려 있던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육체를 떠났던 환자의 영.
그 영혼을 잡고 강제로 끌어다 들어앉힌 것이다.
그의 시야로, 다시 뛰는 심장이 들어왔다.
두근… 두근… 두근……
김광석은 심장과 도수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더듬었다. 그러더니, 이내 횡격막 바닥에서부터 끌어 올린 듯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후우… 진짜… 못 당하겠군. 수술 몇 번만 더 들어왔다간 내가 어레스트 나겠어.”
그러자 수술대에서 한 발 물러선 도수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자신 없었어요.”
“…이런 대담한 짓을 저지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숨을 돌린 도수가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환자는 사망할 테니까요.”
“미친 게 확실해.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야.”
고개를 젓는 김광석. 도수를 빤히 쳐다본 그가 덧붙였다.
“칭찬이야. 대부분의 의사들이 단념했을 상황이었으니까.”
“어떻게 포기하겠어요. 제가 밀리는 즉시 사람이 죽는데.”
“…….”
“전 죽음과 맞서야 돼요.”
그걸 위해 악착같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도수는 뒷말을 생략했지만,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김광석에게는 그 마음이 어렴풋이나마 전해졌다.
“…그런 것 같군.”
창백한 안색의 김광석. 그는 땀을 닦을 생각도 안 하고 말을 이었다.
“정말 딱 한 가지 생각뿐인 사람 같아. 그 외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칼을 들고 수술할 땐 그래요.”
“왜지?”
“세상과 철저히 차단되거든요. 오직 환자와 저만 있잖아요. 아무것도 개입할 수 없고… 어떤 잡념도 안 들고. 그래서 이 시간이 좋습니다.”
도수는 입을 닫았다.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여겼는지.
하지만 충분히 의미를 전달받은 김광석은 고개를 끄덕이곤 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4분 12초. 뇌사가 진행됐을 수도 있어.”
심정지 상태 4분째부터 뇌사가 진행된다고 보는 게 통상적인 상식.
김광석은 환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 뇌사라도 온다면… 라크리마 전역이 다시 피로 물들겠군. 이 환자도 그걸 알고 일어나야 할 텐데 말이야.”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철저히 환자의 생존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본인의 생존을 생각하는 의료진도 있었다.
“닥터. 문제 삼지 않겠어요?”
“문제?”
김광석이 묻자 의료진이 대답했다.
“보호자한테 다리 절단만 얘기했지, 어레스트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잖아요. 뇌사도 그렇고.”
“이런…….”
김광석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총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군. 멀리 있는 반군보다 가까운 우리한테 적개심을 보일 수도 있겠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죠.”
도수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환자가 살아야 저도 살고 환자가 죽으면 저도 죽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수술했고, 꼭 깨어날 겁니다.”
오소소.
김광석은 소름이 돋았다.
목숨을 건다고?
목숨 걸고 수술하는 의사가 몇이나 될까.
수 많은 의료인들과 친분이 있는 그조차 잊고 지냈던 마음가짐이었다.
사람을 고치다 보면 어느새 그 행위가 ‘일’이 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지만 거기까지.
모든 환자들에게 목숨을 걸었다간 의사가 못 버틴다.
하지만 아득히 먼 과거,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꿈꾸었던 의사란 이런 존재가 아니었나.
“부끄럽군.”
김광석은 얼굴을 붉혔다. 환자에게 친절과 배려를 다 하려고 늘 노력하지만 매 순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질 순 없는 것이다.
“나가서 얘기 좀 하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 도수는 한마디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이 환자, 한 번만 더 어레스트 나면 염라대왕 할아비가 와도 못 살려요. 당분간은 한 시간 간격으로 체크하면서 특별 관리 하죠.”
***
의무대를 나선 두 사람은 김광석이 지내는 막사로 갔다.
꼴꼴꼴꼴……
언더락 잔에 독한 위스키를 채운 김광석은 잔을 하나 더 꺼냈다.
꼴깍.
술이 당기는 도수.
아직 열아홉 살에 불과했지만, 이미 여러 번 마셔봤다. 전쟁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두 가지가 바로 술과 담배인 까닭이다. 군인들이 먹다 버린 술, 피우다 만 담배꽁초는 어디나 널브러져 있다.
도수는 흡연은 안 했지만 음주는 가끔씩 해왔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접한 술이, 이젠 술맛을 제법 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손에 돌아온 것은 우유가 가득 담긴 언더락 잔이었다.
“…….”
멈칫한 도수가 말했다.
“저도 술 마실 줄 아는데요.”
“한국에선 아니야.”
간단히 말을 자른 김광석이 위스키 향을 맡더니 잔을 내밀었다.
“딱 한 잔만.”
이후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곳.
언제든 수술할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해야 했다.
입을 삐죽 내민 도수는 잔을 한 번 부딪히고 단숨에 우유를 들이켰다.
꼴깍, 꼴깍, 꼴깍……
잔이 텅 빌 때까지.
원샷한 도수를 보며 김광석이 피식 웃었다. 수술방 안에선 한 마리 맹수 같은 기세를 내뿜으면서 이럴 때보면 영락없는 열아홉 살 어린애였다. 괜스레 한국에 있는 딸아이 생각이 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시위해 봐야 술 안 줘.”
“뭐… 이것도 나쁘진 않네요.”
도수는 입맛을 다셨다.
생수도 구하기 힘든 판국에 고소한 우유라니.
오늘 입이 호강한다.
“저는 왜 부르셨죠?”
이제 본론.
웃음을 머금고 지켜보던 김광석이 입을 뗐다.
“왜긴. 지난 며칠, 그런 장면들을 보여줘 놓고…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을 거라 생각했나?”
“글쎄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별로 말씀드릴 게 없는데요. 이미 취조할 때 다 이야기했고.”
“그러니까…….”
김광석이 빈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그 정도 수준의 의술을 혼자 독학해서 터득했다?”
“네.”
“솔직히 못 믿겠군.”
“상관없어요.”
“…….”
피식 웃은 김광석이 바꿔 물었다.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듯하니 달리 묻지. 내 추측은 누군가 굉장한 실력을 가진 써전한테 실전으로 배웠다는 거야.”
“아닌데…….”
“계속 듣지. 어쨌든, 책을 안 보고 현장 경험부터 하는 바람에 용어나 이론은 잘 몰라. 하지만 감각만은 칼을 갈아놓은 것처럼 뛰어나지.”
“뭐, 재밌는 추측이긴 하네요.”
묘한 미소를 짓는 도수.
김광석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었다.
“내 추측의 근거를 말해주마. 의학 지식과 술기는 오랜 시간 동안 도제식으로 배워서 익힐 수밖에 없어. 그런데 넌 그런 것 없이 척척 진단을 내리고 수술을 해내. 훌륭한 스승과 현장 경험의 만남.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결론을 내려놓고 왜 계속 물으시죠?”
“그래도 납득하기에 부족하니까. 내 추리에는 빈틈이 너무 많거든. 누구지? 널 가르친 사람이.”
도수는 우유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침묵할 권리는 있겠죠?”
“…하아. 다시 원점이군.”
고개를 저은 김광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고 말고는 네 자유지. 그런데 궁금해서 살 수가 있나. 한 가지 얘기해 주자면 매디 보웬 기자가 네 존재를 보도하는 즉시 세계의료업계에 대파란이 일어날 거야. 매일같이 이런 질문들을 받겠지.”
“그럴지도요.”
“그래. 그럼 기왕이면 내게 먼저 이야기해 주는 편이 낫지 않겠나?”
거기까지 대화가 진행됐을 때.
“저도 궁금한데요?”
불쑥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매디 보웬이 천막을 들추며 들어온 것이다.
“두 분 대화 나누시는데 실례할게요.”
“알면 좀 나가주겠…….”
“지금 막 수술 영상 녹화 떠서 오는 길이에요.”
김광석의 말을 자른 그녀가 덧붙였다.
“…후속 기사 내려고요. 잘 모르시겠지만, 그 전에 보도했던 내용 때문에 지금 여기저기 난리가 났다고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
김광석은 궁금했기에, 생각을 바꾸었다.
“일단 들어오게. 위스키 한잔 들겠나?”
“스트레이트로요.”
“역시 독종답군.”
쪼르르르륵.
술잔을 채우는 사이.
매디 보웬이 도수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속삭였다.
“곤란했지? 그런 표정이던데.”
“기자님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에이, 그건 좀 서운하고.”
“제 기사 내신 줄도 몰랐어요.”
“낼 거라고 했잖아? 언제라고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그녀는 팔로 감싸 안고 있던 태블릿 PC를 켰다.
“자, 다들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여긴…….”
신음처럼 흘린 김광석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