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환상의 호흡
잠시 후.
김광석과 도수는 수술대를 사이에 두고 다시 마주 섰다.
도수를 빤히 쳐다보던 김광석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자신하는 건가?’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망설이는 즉시 칼자루는 김광석에게 넘어갈 터.
그러나 혈전을 찾아내 제거하는 수술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괴사된 조직, 혈전이 박혀있는 혈관을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수술. 환자 몸속을 지도를 보듯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물 흐르듯 수술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아니, 백보 양보해 지도처럼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누군가 네비게이션처럼 안내해주지 않는 이상 잠시도 망설이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어쩔 생각이지?’
그런 김광석의 복잡한 머릿속을 아랑곳하지 않고.
도수는 평소처럼 수술을 준비했다.
“혈액은 얼마나 준비됐죠?”
“A형 피 한 팩, O형 피 한 팩 준비되어 있습니다.”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혈구 수혈 한 팩 용량은 150㏄.
수술에 들어가면 최소 한 팩은 필요하고 많으면 세 팩까지도 필요하다.
계획대로 간단한 수술로 끝난다면 두 팩이면 충분하겠지만, 만약 절단하게 될 경우 수술 후에도 손실되는 혈액량이 많기 때문에 두 팩으론 부족할 수 있는 것이다.
김광석은 그 점에 집중했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끝내야겠군.”
근래 연달아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의무대에서 확보하고 있는 혈액을 많이 소모한 상태. 아프리카 라크리마 자체가 헌혈 문화가 발달한 나라가 아닌 탓에 추가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경로도 많지 않았다.
그는 간호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웬만한 건 내가 직접 할 테니 혈액 더 확보할 수 있는지랑, 절단 준비 좀 부탁하지.”
“절단이요?”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술실에 들어오기 전 들었던 바로 오늘 진행할 수술은 절단 수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김광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황에 따라 절단하게 될 수도 있어. 거기 자넨 보호자한테 수술 진행 도중 절단할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보호자 동의 받아 오도록 해. 만약 상태가 안 좋은 경우 지금 절단하지 않으면 절단 부위가 더 늘어날 테고, 목숨까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고 설명하고.”
“알겠습니다.”
간호사 둘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한 명은 다른 한쪽에 절단 기구를 준비하고, 나머지 한 명은 수술실을 나간 것이다.
분주한 움직임에도 도수는 개의치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동시에 김광석이 메스를 내밀었다.
턱.
칼을 받은 도수가 마스크 위로 눈을 치켜떴다.
“이런 것까지 직접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
간결한 대답.
그리고 강렬한 눈빛.
김광석이 무언의 압박을 해왔지만 도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메스를 받아 들었다.
스으으윽.
거침없이 다리를 파고드는 메스날.
동시에 출혈이 발생하며 근육과 혈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수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광석이 세척액을 준비해 놨다.
“이리게이션.”
“…이리게이션.”
도수는 세척액을 붓고 석션을 병행했다. 어느 정도 안쪽이 깨끗해진 그때.
메스가 돌아왔다.
“솜씨 좀 보자고.”
한발 앞서서 손을 맞추는 김광석.
잠시 그를 응시하던 도수는 칼을 받아 근육을 절제했다.
석, 서걱.
근육의 결을 따라 칼끝이 움직인다. 마치 생선 살을 바르듯이.
곁에서 이 모습을 보던 김광석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정교해.”
새카맣게 괴사 된 조직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떨어져 나갔다.
떨어져 나간 조직에 멀쩡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봐도 놀랍도록 예리하고 깔끔한 솜씨.
툭.
괴사된 조직을 여러 차례 떼어낸 도수는 고개를 들었다.
“거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광석이 거즈로 절개 부위를 닦았다.
“육안으로 보기엔 대충 다 제거된 것 같지만…….”
그는 말끝을 흐렸다. 혹시라도 괴사된 조직이 남았다면 다리 전체가 다시금 썩어 들어갈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대략적인 절제를 하기 마련인데 도수는 딱 필요한 부분만 잘라냈다.
“다 된 것 맞나?”
도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빛을 머금은 그의 눈에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괴사됐는지, 또 얼마나 괴사됐는지 모든 게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혈전을 제거하죠.”
선홍빛 생기를 띠고 있는 조직들.
더 이상 거무죽죽한 조직이 보이지 않는 다리의 각도를 틀은 도수가 손을 쑥 집어넣었다.
“음……!”
김광석이 신음을 흘렸다.
조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도수의 움직임을 볼 때마다 심장이 제멋대로 울렁대기 때문이다. 철렁 내려앉았다가도 미친 듯이 뛴다. 불안감 반, 기대감 반이 공존하는 감정.
도수는 그사이 혈관을 낚아챘다.
슥!
미끄러운 혈관이 단번에 잡혔다.
“클램프(Clamp: 혈관 집게.)”
도수의 오더가 더 빨라졌다. 미리미리 수술 도구를 준비해 주던 김광석의 템포를 앞질러서 한발 빠르게 속력을 내고 있는 것이다.
‘빠르다.’
김광석의 호흡도 덩달아 가빠졌다.
“클램프.”
턱.
클램프를 손에 넣은 도수는 혈전이 틀어막고 있는 혈관의 한 부분을 콱 집었다.
“혈압은요?”
“아직 괜찮아.”
김광석이 대답했다. 환자의 맥박이 조금 빨라지고 혈압도 떨어졌지만 수술에 동반된 출혈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일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김광석은 가위를 내밀었다. 가위를 잡은 손이 잘게 떨렸다.
“혹시라도 혈전이 막고 있는 위치를 잘못 파악해서 혈전이 부서지기라도 하면…….”
“알고 있습니다.”
도수는 가위 손잡이를 잡고 말했다.
“혈전이 전신으로 퍼져서 돌이킬 수 없게 되겠죠.”
“그래. 그렇게 되면 정말 손 쓸 수 없게 될 거야.”
“…….”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결국, 가위를 손에서 놓은 건 김광석이었다.
“누군가를 믿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군.”
“사람 목숨이 걸렸으니까. 이해합니다.”
도수는 가위를 혈관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서걱.
혈관이 잘려 나갔다.
흔들림 없는 손동작.
뭐라 말릴 새도 없었을 뿐더러 이미 수술 방향을 돌리기엔 늦었다.
“네가 맞았으면 좋겠다.”
김광석의 한마디.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혈전이 막은 부분만 절제했어요.”
누구라도 믿기 힘든 이야기.
하지만 도수니까 가능했다. 혈전이 막고 있는 부분, 혈관 속까지 투시할 수 있는 도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타이.”
김광석이 실과 바늘을 건넸다.
이어지는 봉합.
‘수술을 운동화 끈 묶는 것에 비유했었지.’
김광석은 도수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의사로서의 지식이나 이론에는 인턴에도 비할 바가 못 됐지만 진단과 수술에 있어서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하는지 짐작도 안 갈 정도로.
“정말… 잠시도 망설이지 않는군.”
어쩌면.
진단과 수술에 있어선 김광석 자신보다 뛰어나다.
그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수술은 잘된 건가?”
그 역시 외과의란 사람이, 어시스턴트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으면서도 그것조차 알 수 없지 않은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어요. 다리는 절단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진짜로?”
“네.”
김광석은 쉬이 믿기지 않았다.
절단이 확실해 보였던 환자 다리를, 이런 간단한 수술만으로 살릴 수 있다고?
‘이론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괴사된 조직과 혈전만 정확히 제거할 수 있는 외과의가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잠시의 망설임 없이.
“진짜 잘됐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끝나면 검사를 의뢰해 보자고.”
그 전까진 환자 상태 자체가 시간 싸움이었다. 그래서 응급 수술이 필요했던 것.
하지만 이젠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어쩌면, 도수가 장담한 대로 완전히 회복할 길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수고 많았다. 지쳐 보이는데 마무리는 내가 하지.”
실제가 그랬다.
도수는 안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차피 큰 고비는 넘긴 상황.
도수가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그러시죠.”
비 오듯 흘린 땀으로 푹 절은 수술복. 수술 내내, 한순간도 투시력을 늦출 수 없었다.
“후우.”
매번 투시력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쉽지 않았다. 어릴 적에 비해 몸과 체력이 모두 성장해서 더 긴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됐지만 체력 관리에 조금만 소홀하면 또 사용 시간이 절감된다.
‘다시… 운동 좀 해야겠어.’
그가 바톤을 넘기고 물러서자, 그 자리를 차지한 김광석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타이.”
***
‘완벽해.’
수술실 안의 상황을 모두 모니터로 지켜본 매디 보웬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수가 입을 떼기도 전에 김광석은 척척 필요한 수술 도구들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수술 도구를 받은 도수는 순식간에 수술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딱 맞는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이 되어 움직였다.
큰 강줄기처럼 수술이 막힘없이 흘러갔던 것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경험이 쌓이면 저렇게 할 수 있는 걸까?’
그녀는 얼마 전 어시스트를 해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던 그녀는 카메라 모니터로 시선을 내렸다.
‘지난 몇 번의 수술… 세상이 발칵 뒤집힐 거야.’
모니터 안.
그곳에선 김광석과 도수가 손발을 맞추는 장면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수술방을 나선 도수.
그는 즉시 막사를 나서지 않고 간이용 침대에 누웠다.
‘말할 필요가 없었어.’
김광석과의 호흡.
그건 다른 의료진과 손발을 맞출 때완 차원이 다른 쾌감이었다.
입을 열기도 전에 수술 도구가 준비되어 있고,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대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어시스트를 해준 사람이 김광석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물 흐르듯 수술을 진행하진 못했을 것이다.
도수는 피로한 눈을 감고 손을 마사지했다.
‘누가 보조해 주냐에 따라…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 순간.
뇌리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폭음과 총성이 잇따랐다.
부모님 죽음 이후 매일 같이 꾸는 꿈.
도수는 다시 그 현장에 서 있었다.
‘꿈… 이건 꿈이야.’
그는 자각하고 있었다.
‘이런 꿈 따위……!’
두렵지 않다.
도수는 무의식중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이 땅에선 하루하루가 목숨 건 사투다.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느끼는 희망이라곤 누군가의 ‘생명을 회생시킬 수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그렇게 사람을 살리고 나면 화재가 진화되듯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머릿속에 지옥 같은 기억을 품고도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건지도.
바로 그때.
어렴풋이 방송이 들려왔다.
-닥터 리… 응급 상황……
안개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침대에서 덩굴이 솟아올라 그를 옭아매고 잡아끄는 것처럼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분명 의식은 깨어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으아아아아!’
그렇게 소리 지른 것 같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몸을 들썩이며 스르륵 눈을 떴을 뿐이다.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살아 있나?’
이럴 때면, 죽음이 코앞까지 찾아왔다가 떠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리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살아 있다!’
도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흐릿하던 방송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닥터 리, 닥터 킴 다시 수술실로 와주세요! 응급 상황입니다!
“응급 상황?”
그럴 리가.
수술은 잘 끝났다.
김광석이 간단한 마무리를 실수할 리도 없다.
그럼 왜……!
도수는 부리나케 수술실로 달려갔다.
“젠장……!”
이미 김광석은 수술방 안에 있었다. 다급한 몸짓.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때마침 일직선을 그리는 바이탈사인(Vital Sign: 활력 징후).
“어레스트(Arrest: 심정지)!”
외침과 함께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의료진.
그리고.
“150줄 차지!”
김광석은 제세동기를 환자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샷!”
쾅!
환자의 가슴이 들썩였다.
고개를 돌려 바이탈 사인을 체크하는 김광석.
그러나 바이탈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래선 안 돼.’
충격을 올린다고 해서 환자의 심장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이 이상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환자가 사망할 게 불 보듯 빤했다.
“200줄!”
김광석이 외치는 순간, 도수가 확 끼어들었다.
“칼!”
“뭐?”
김광석은 눈을 부릅떴다.
“뭐 하는 건가? 나와!”
“칼!”
도수가 버럭 외쳤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
간호사는 화들짝 놀라며 엉겁결에 메스를 건넸다.
그러자 김광석 교수가 외쳤다.
“지금 뭣들 하는……!”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좌악!
가슴을 죽 가른 도수.
그는 다시 개흉(開胸)을 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