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저렉션-12화 (12/152)

# 12

충돌, 충돌, 충돌

“뭐?”

또다.

김광석은 눈을 치떴다.

혈전이 생기고 괴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상 다리 절단은 불가피한 선택.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보편적인 상식은 그런데… 이 소년은 또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다리를 살릴 수 있다고?”

“네.”

도수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괴사된 조직을 남김없이 도려냅니다. 그다음 혈전이 생긴 혈관 부위를 잘라내면 돼요.”

“말이 쉽지.”

김광석은 허탈하게 웃었다. 더는 도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두 가지만 묻지.”

“네.”

“어떻게 정상 조직은 내버려 두고 괴사 된 조직만 구분해서 제거하겠다는 거지? 그리고 혈전 위치는? 변변한 혈관조영술 장비도 없이 혈관 안에 틀어박힌 혈전을 무슨 수로 찾느냔 말이야.”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대부분 여기서 논쟁인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도수는 다시 한번 상식을 뒤엎었다.

“두 가지 모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뭐?”

김광석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떻게? 내 판단으론 불가능한데.”

“글쎄요.”

도수는 잠깐 고민했다.

투시력을 설명할 길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최대한 뭉뚱그려 대답했다.

“감?”

“…뭐? 감?”

김광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현대 의학은 경우에 따라 아직 감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상식으론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다.

“환자가 카데바(Cadava: 해부 실습용 시체)라도 되나?”

“카데바요?”

도수가 알아듣지 못하자 그가 정정했다.

“해부용 시체 말이야. 카데바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수술을 하겠다고?”

“…이렇게 되네요. 데자뷔 현상도 아니고.”

“똑같은 레퍼토리 같아도 어쩔 수 없어. 감 타령을 하며 근본도 없는 수술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그래, 하자’고 할 수 있겠나?”

“근본…….”

중얼거린 도수가 말을 이었다.

“전 전쟁터에서 이와 비슷한 케이스를 많이 접했습니다. 괴사가 진행되고 절단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하지만 저는 매번 절단 없이 수술을 끝냈습니다.”

김광석은 도수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했다. 몇 차례 수술 사례를 통해 무턱대고 달려드는 녀석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허언증 환자가 아니라는 것도.

그렇다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믿고 받아들이기에는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의학의 깊이가 너무 깊었다.

“그때도 혈전이 문제였어?”

“몇 번은요.”

도수는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닥터는 계속 안 된다고 했어요. 전 원래 말을 안 듣는 체질이니 말을 안 들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런 식상한 전개는 이쯤 하죠?”

도수 역시 답답한 마음에 한 말이겠지만, 그 말이 김광석의 심기를 건드렸다.

“무례하군.”

눈가를 찌푸린 그가 덧붙였다.

“그래, 한두 번? 기적 같은 결과를 이뤄냈어. 그건 인정하지. 네 공을 깎아 먹을 생각 없다. 하지만 의사의 판단 한 번, 손짓 한 번에 환자의 생사가 갈려. 그에 비해 네 근거는 항상 너무 빈약하다. 내가 매번 막아서는 이유를 알겠나?”

“그럼 제가 물러서지 못하는 이유도 아실 텐데요.”

도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환자의 다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닥터는 절단하려고 하죠. 어떻게 물러서겠어요?”

“…….”

“…….”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마치 불꽃이 튈 듯한 기 싸움.

누구 한 명 틀린 사람이 없었다.

환자를 위한 선의(善意)도 똑같았다.

다만 좁힐 수 없는 의견 차가 있을 뿐이다.

“…어렵구나.”

중얼거린 김광석이 입을 열었다.

“타협하자.”

“타협?”

“그래, 타협. 네가 살려낸 환자이니 수술을 감행하는 것까진 관여하지 않겠다.”

“그럼요?”

“내가 어시스트를 서지.”

“수술에 반대하는 분을 데리고 들어가라고요?”

“여기 수술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되물은 김광석이 다른 의료진들을 턱짓했다. 도수가 시선을 좇자 의료진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 서린 불신만은 지울 수 없었다.

김광석이 말을 이었다.

“내가 어시스트로 들어가는 이유는 간단해.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는 즉시 난 수술을 중단시키고 무릎 아래를 절단한다. 그럼 적어도 환자 목숨이 위협받을 일은 없겠지.”

자신의 수술에 확신이 없다면 잠시도 망설이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확신이 있더라도 힘든 일. 하지만 이렇게라도 모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면……

도수는 담담하게 승낙했다.

“좋습니다.”

어차피 김광석이 마음먹고 막으려 든다면 애초에 시도도 못 할 수술이었다.

그나마 그가 수술을 허락한 것은, 그동안 도수가 보여준 사례들. 그리고 환자의 다리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 때문이다.

김광석의 제안 덕분인지 의료진들도 어느 정도 안도한 표정이었다.

그들을 보던 도수가 김광석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번에도 성공한다면 앞으론 제 의견을 막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매번 이러는 거, 진이 다 빠져서요.”

“최대한 노력해 보지.”

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수술방 잡아주세요.”

틀린 판단이 아니란 걸 보여 드리죠.

그는 뒷말을 생략했다.

***

김광석이라는 산을 수술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광석은 만에 하나라도 환자의 다리를 살릴 수 있다면 지금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도수가 제시한 해결책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상식으론 곧장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보호자랑은 연락됐나?”

김광석이 물었지만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입원한 후 계속 신원 파악을 하고 있는데… 파악이 안 되고 있어요.”

“어쩔 수 없군.”

이런 전쟁통에는 일일이 신원 확인을 하기 힘들다.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직계가족은커녕 연고자를 찾기도 힘든 것이다.

중환자실에 비상이 걸린 건 그때였다.

막사 문을 확 열어젖힌 병사가 외쳤다.

“파편 박힌 환자 수술 들어갔습니까?”

안에 있던 의료진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가장 먼저 물은 건 김광석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게… 보, 보호자가 왔습니다.”

“왜 그렇게 말을 더듬어?”

“그, 그게, 그 환자가 라크리마 총리님의 장남인 것 같습니다.”

“뭐?”

“지금 총리님이 방문하셨습니다.”

김광석은 환자의 신원 파악이 안 됐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랬군. 거기까진 알아보지 않았겠지… 어쩌다 총리 아들이 그런 테러에 휘말릴 수가 있는 건지.”

뜻밖에, 도수가 대답했다.

“그를 노렸을 수도 있죠.”

“뭐?”

“총리 아들이니까. 반군이 비난을 감수하기에 충분한 이유잖아요.”

“아……!”

모두가 탄성을 흘렸다.

왜 아무도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대통령이 공석인 지금 라크리마의 전권은 총리한테 있었기에, 그의 아들을 건드리는 것은 정부군을 도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근래 반군의 공습이 잦아진 걸 감안했을 때 어느 정도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그 말이 맞다면… 이 환자가 라크리마 전체의 국운을 결정할 핵심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김광석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도수를 바라보는 그때.

정신을 차린 병사가 말했다.

“아……! 그보다 총리님께서 곧 이쪽으로 오실 겁니다. 환자 상태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보여주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병사의 시선이 향한 곳.

아직 수술 부위를 닫지도 않고 거즈로 감아둔 환자가 보였다. 거즈에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슴, 배, 다리 세 곳을 같이 수술했기 때문에 수술 부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인공호흡기나 소변 주머니는 물론 그 외에도 각종 장치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보면 총리께서 기절하실 테니까요.”

그때 도수가 끼어들었다.

“별수 없어요. 줄 하나라도 떼어내면 환자는 사망합니다. 전혀 긍정적인지 않은데 어떻게 긍정적으로 말해요?”

“넌 자꾸 누군데 끼어들……!”

발끈한 병사가 추궁하는 찰나.

김광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니. 그 친구 말이 맞아.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네. 환자 상태는 죽은 자를 살려낸 수준이야.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고.”

그 순간.

막사 문이 열리며 할리 무어 장군의 공석을 대신하고 있는 맷 에버스만 소령이 들어왔다. 정장을 정갈하게 갖춰 입은 아프리카계 흑인 남자를 대동한 상태로.

“이쪽은 리에크 가이 총리님이네.”

라크리마 총리, 리에크 가이가 내부를 훑었다.

“내 아들 제임스는 어디 있습니까?”

초조한 눈빛.

도수가 비켜섰다.

그러자 눈가를 일그러트린 리에크 가이 총리가 덜덜 떨면서 다가왔다.

“내 아들… 내 아들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김광석이 대답했다.

맷 에버스만 소령은 눈을 질끈 감았다.

리에크 가이 총리가 환자를 만지려는 순간 도수가 말했다.

“감염될 수도 있어요.”

그는 소독약을 내밀었다.

리에크 가이 총리는 손을 소독하며 물었다.

“어느 분이 담당 의사 선생님이십니까?”

자연스럽게 김광석을 보는 그.

그러나 김광석이 대답했다.

“현재 주치의는 이쪽입니다. 수술도 이분이 하셨고요.”

도수를 본 리에크 가이 총리의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이렇게 젊은 분이… 수술을 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번에 대답한 건 도수였다.

“그리고 막 다른 수술을 들어가려던 참이었죠.”

“다른 수술이요?”

“다리에 혈전이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리를 절단하거나 수술을 해야만 해요.”

“뭐요? 절단이라고 했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수술을 하려는 겁니다.”

리에크 가이 총리는 소독약을 내려두며 아들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뭔가 결심한 듯, 의료진과 맷 에버스만 소령을 둘러봤다.

“내 아들을 옮기겠습니다. 우리 라크리마에서 가장 유능한 의사가 있는 곳으로.”

“아뇨.”

도수는 칼같이 말했다.

“이송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커요. 만약 살아서 도착한다고 해도, 혈전 때문에 괴사 중인 다리를 절단해야 할 겁니다.”

“말을 쉽게 하는군!”

리에크 가이 총리가 눈을 부라렸다.

“내 아들은 그리 약하지 않소.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겠소!”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죠. 아드님이 사망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지옥에서 끌어 올려 간신히 숨만 붙여둔 상태예요.”

“뭐… 뭐?”

리에크 가이 총리가 도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워낙 거구인 데다 힘도 세서 도수쯤은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이를 지켜보고 있는 김광석은 눈앞이 깜깜했다. 도수는 의사 면허도 없는 인물.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뼈도 못 추릴 터였다.

“진정하십시오!”

리에크 가이 총리의 팔에 매달린 그가 말했다.

“이 친구는 아드님을 살린 의사입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아드님을 살려낼 순 없었습니다! 그만큼 위중한 상태였어요……!”

설명을 들은 리에크 가이 총리의 몸짓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게 사실이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포기한 환자였습니다. 아니, 저 아니라 어떤 의사라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럼에도 이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의료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결국 아드님께서도 회생할 기회를 얻으셨고요. 수술 성공률이 1퍼센트도 되지 않는, 전례 없는 수술을 성공시킨 겁니다.”

그제야 리에크 가이 총리는 손을 놓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여기 이 젊은 의사 양반만이 내 아들을 살릴 재주가 있단 말이오?”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렇습니다.”

김광석은 침을 튀겨가며 도수를 변호했다.

“현재로선 이 친구만이 아드님을 회복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다리도 살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 어떤 의사도 못하는 수술을 척척 해내는 친구니 믿고 맡겨주십시오.”

리에크 가이 총리가 맷 에버스만 소령을 보았다.

“사실입니까?”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저희 장군님을 살려낸 것도 바로 그 젊은 의사양반이니까요.”

그는 환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토록 뛰어난 의사가 이런 오지에 있다는 건 축복 같은 일입니다. 총리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좀 누그러뜨리고 최선을 생각하십시오.”

“…….”

리에크 가이 총리는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은 후에야 이성을 되찾았다. 멱살을 잡을 때가 아니라 통사정을 해도 모자랄 판인 것이다.

“미안하군.”

도수에게 사과한 총리가 말을 이었다.

“내 아들 일이라 너무 과했소. 용서하시오.”

앞섶을 툭툭 턴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그는 리에크 가이 총리를 똑바로 직시했다.

“시간이 없어요.”

전혀 위축되지 않은 강렬한 눈빛.

방금까지 멱살을 잡힌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부탁합니다.”

마침내 리에크 가이 총리의 사과 겸 동의가 떨어졌다.

그러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도수는 일전 총리 소식을 알리러 왔던 병사의 가슴팍을 툭툭 두드렸다.

“닥터.”

“예… 옛?”

병사가 당황하자.

그가 덧붙였다.

“아까, 나보고 누군데 자꾸 끼어드냐고 묻길래.”

“……!”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병사가 크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어려 보이셔서 몰라 뵀습니다!”

“됐고. 조심하세요.”

나지막이 경고하는 도수.

그를 보던 김광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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