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쉴 틈이 없다
“이럴 수가…….”
김광석은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살려냈다고?”
대량출혈로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던 부상자. 전신에 수십 개의 파편이 박혔던 흑인 남자가 생존한 채 의무대까지 옮겨진 것이다.
도수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버티더라구요.”
그 역시 수술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할리 무어 장군과 경우가 다르고, 생존율이 극히 희박하단 사실을. 하지만 사람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부정적인 예측을 하는 순간 환자가 떠나 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순간과 같은 상황에 놓였던 도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이런 속사정까진 모르는 김광석. 그의 고개가 천천히 숙여졌다.
“……!”
눈이 커진 도수에게 그가 말했다.
“미안하다.”
“…….”
“환자를 죽일 뻔한 건 네가 아닌 나였다.”
“아뇨.”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는 법.
“환자 상태는 최악이 맞았습니다. 그 상황에선 닥터의 판단이 맞았을지도 몰라요. 가망 없는 환자를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환자들의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넌 환자를 살렸어.”
“환자가 버텨준 겁니다.”
도수가 말을 이었다.
“할리 무어 장군 때보다 훨씬 출혈이 심했어요. 혈압이 떨어지는 걸 체크할 틈도 없이 수술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었을 거예요. 기적처럼 살아난 건 이 분 생존력 덕분이에요.”
“네 실력이 아니라?”
“그건 기본이고요.”
뻔뻔한 대답을 들은 김광석은 피식 웃었다. 정말이지 자신감이 넘치는 녀석이다. 물론 웃을 수 있는 건 모두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지만.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그래서 제가 찍어뒀죠.”
매디 보웬이 끼어들었다. 그녀 역시 옷이 피투성이었다. 얼굴도 못 본 새 핼쑥해져 있었다.
그녀를 일별한 도수가 덧붙였다.
“기자님 아니었으면 환자는 사망했을 겁니다.”
“진짜?”
매디 보웬이 눈을 반짝였고.
김광석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설마… 미스 보웬이 자넬 어시스트한 건 아니겠지?”
“정답.”
도수의 간결한 대답.
그와 매디 보웬을 번갈아 쳐다본 김광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미치겠군.”
“훗.”
매디 보웬은 피 묻은 옷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수술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손발이 찌릿찌릿했다.
“아무래도 저, 적성인가 봐요.”
모든 건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겠지만.
도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도요.”
“허. 이 사람들이…….”
기가 막힌 지 너털웃음을 터뜨린 김광석은 환자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환자에게는 몇 번의 고비가 더 남았어.”
“네.”
도수의 눈길도 환자에 머물렀다.
살아주길.
두 사람이 진지해지자 매디 보웬이 손가락을 퉁기며 화제를 돌렸다.
“아! 여기 찍은 거.”
카메라 모니터.
그 안에는 수술 장면이 담겨 있었다. 각도상 도수의 손기술이나 환자의 몸속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대화하는 목소리, 의료 도구들의 전환만 봐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는지 짐작이 갔다.
환자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김광석의 머릿속에 있었고.
그 모든 것들을 접목시킨 김광석은 손발을 접었다 폈다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절로 긴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후우. 골든아워가 무의미한 환자를… 30분도 버티기 힘들었던 사람을 이렇게 빨리 수술하다니.”
직접 보지 않아도 도수의 손이 얼마나 빨랐는지 짐작이 갔다.
매디 보웬의 서포터도 한몫 단단히 했을 테고.
“이 자료가 공개되면 학계가 들썩이겠군…….”
중얼거리던 그는 도수를 보며 물었다.
“환자 케어도 자네가 직접 할 건가?”
담당의가 되겠냐는 뜻.
도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닥터가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전 약품에 대해선 잘 몰라요.”
김광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최고의 수술 실력을 가진 반쪽짜리 의사라.’
어느새 그는 도수를 한 명의 의료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교육기관에서 배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어려운 수술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세계 7 대 불가사의’에 당당히 포함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힘써보마.”
김광석은 기꺼이 환자를 맡았다. 이제 책임소지는 그에게로 넘어간 셈이다. 지금부터 환자가 사망할 경우 모든 책임은 전담의에게 있었다.
도수가 한마디 더했다.
“감염이 심할 겁니다.”
“그렇겠지.”
“잘…….”
“응?”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뭐라 말했던 도수는 잠시 텀을 두고 볼륨을 약간 올렸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하.”
김광석은 웃음이 터졌다.
자존심이 쇠심줄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 최선을 다해보마. 힘든 수술도 버텼는데, 잘 버텨주겠지.”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수술이 잘 끝났는데 회복 과정에서 급격히 나빠져서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
의사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허무함과 절망감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기가 책임 못 질 일은 자청하지 않는군.’
김광석은 한편 안도했다.
도수가 무턱대고 들이대는 부류는 아니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도수는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환자를 빤히 내려다보던 김광석이 고개를 들고 도수와 매디 보웬을 바라봤다. 매디 보웬이야 도수 눈치를 봐서 서 있는 거고. 도수는 그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 해? 가서 쉬지 않고.”
“할 일 하세요.”
잠시 침묵했던 도수가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보고 배우려고요.”
“흐하하하… 크흠!”
김광석은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삼켰다. 그 자신만만하던 도수가 자신을 보고 배운다. 이 사실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들었던 것이다.
‘배우려고 한다’는 말이 이렇게 안 어울리는 녀석이 있다니.
“세상 의사는 저밖에 없는 것처럼 굴더니… 좋을 대로 해. 후후.”
김광석은 도수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환자를 체크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감염 여부를 확실히 파악하려면 세균배양검사를 해야 돼. 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환자 상태는 지금보다 악화되겠지. 여기서 더 악화되면 환자는 버티지 못할 거고. 그래서 감염확률이 높은 환자에게는 예방 차원의 항생제 투입을 하곤 하지.”
도수의 눈이 번뜩였다.
언뜻 혼잣말 같지만, 김광석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투시력을 써서 환자의 감염 여부를 확실히 알아보고 싶었지만 오늘 또 다시 능력을 썼다간 환자를 살리기도 전에 그가 먼저 황천길을 건널 수 있었다.
해서 그는 듣는 대로 외우기만 했다.
뚜벅, 뚜벅.
움직이는 김광석.
그가 환자들을 보자, 도수의 시선도 따라온다.
마치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도수에게 고개를 돌린 김광석이 물었다.
“다른 환자들 볼 때도 계속 따라다닐 건가?”
“네. 여기 있는 환자들 다 보실 때까진.”
“피곤할 텐데?”
“듣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하군. 피도 안 닦고…….”
그의 말처럼 아직 도수는 수술할 때 튄 피가 여기저기 엉겨 있었다.
“뭐… 늘상 있는 일인데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김광석은 내심 혀를 찼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딸내미뻘밖에 안 되는 소년. 그런 소년이 피를 뒤집어쓰고 환자 혈관과 장기를 만지는 것에 더 익숙한 것이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생각인가? 자네만 원한다면 장군이든 나든, 얼마든 여기서 내보내 줄 텐데.”
“지금은 계획 없습니다.”
도수는 환자들을 둘러보며 덧붙였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니까요.”
라크리마는 매일같이 발생하는 외상 환자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도수는 외상을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손 하나가 간절한 이 땅에서, 도수는 누구보다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
그 후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김광석은 환자별로 적절한 처방을 하고, 도수는 그저 듣기만 했다.
그렇게 모든 환자들을 다 둘러봤을 무렵.
언제 와서 기다리고 있던 매디 보웬이 도수에게 다가섰다.
“저랑 얘기 좀 해요.”
그녀를 빤히 응시하던 도수가 김광석에게 말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걸 끝으로 도수는 매디 보웬과 함께 의무대를 나섰다.
밖은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로 붉게 물든 모르스 마을은 치열한 내전 지역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워 보였다.
가만히 서서 황홀한 광경에 넋을 놨던 매디 보웬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진도 몇 장 찍었어.”
“풍경 사진이요?”
“안 어울리게 농담은…….”
고개를 저은 그녀가 말했다.
“환자, 그리고… 환자를 치료하는 닥터 리.”
닥터 리.
도수에게 면허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디 보웬은 ‘닥터’라고 칭해주었다.
도수는 피식 웃었다.
“그렇군요.”
매디 보웬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내가 본 수술 장면들도 전부 이 머릿속에 있고. 글발 좀 받겠다. 그치?”
“아마도. 그건 그렇고.”
도수가 물었다.
“저한텐 무슨 볼일이시죠?”
“얘, 전우끼리 왜 그러니? 일 얘기야.”
“일?”
“응. 원래부터 널 일종의 마스코트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어. 너에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부분에서 동의를 얻어야 하거든. 그다음 환자 동의도 얻어야겠지만, 일단 너부터.”
“저는 뭐. 이미 각오했던 건데요.”
“각오씩이나?”
“얼굴 팔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하하하하하!”
매디 보웬은 시원한 웃음이 터졌다.
이 말이 이렇게 웃긴 말이었나? 싶을 정도로.
“너답다. 잘 어울려.”
“그래요? 그건 그렇고.”
도수가 뜸을 들이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다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듣기 힘든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감사했어요.”
“…….”
잠시 침묵했던 매디 보웬이 물었다.
“어쩐지 불안한데. 너 사과나 감사 인사 같은 거 잘 안하잖아.”
“할 건 해야죠. 아까 수술, 할 만했어요?”
난데없는 질문.
매디 보웬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글쎄. 너무 무리해서 눈이 먼 거 아니야? 내 꼴을 좀 봐. 할 만했겠나.”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녀 역시 여기저기 피가 튄 행색.
도수는 마주 웃었다.
“훌륭한 어시스트였습니다.”
“…영 불안하긴 하지만 기분은 좋네.”
놓칠 새라, 도수가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야 당연히… 엉? 뭐라고?”
매디 보웬이 안색을 바꿨다.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그럴 리가요.”
“앞으로도 나한테 어시스트를 서라고?”
“잘 들으셨네요.”
빙그레 웃은 도수가 되물었다.
“어차피 저를 취재하시려면 같이 다니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서서 사진만 찍을 거예요?”
“그, 그건 아니겠지만…….”
“그럼 앞으로도 저랑 같이 사람 살리시면 됩니다.”
“…….”
매디 보웬은 뭔가 낚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왜인지.
‘앞으로도 사람 살리면 된다’는 말이 가슴에 콱 박혔다.
“내가… 사람을 살린 건가?”
“살렸죠. 그것도 생존 확률이 극히 낮았던 환자를.”
도수는 의무대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환자가 저기서 회복할 수 있었던 건 모두 기자님이, 그리고 제가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탁.
긴장이 풀린 매디 보웬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도수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
“어…….”
매디 보웬의 얼굴이 노을처럼 붉어졌다. 그리고 아무 말이나 뱉었다.
“위, 위급한 상황에 날 조수로 부려먹는 건 좋지만… 소장인지 대장인지, 그런 건 또 만지게 하지 마.”
“노력해 보죠.”
도수는 아무렇지 않은지 씨익 웃으며 그녀를 놔주었다. 그의 뇌리에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들어차 있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
다음 날도 도수는 의무대를 찾았다.
아예 여기서 밤을 샜는지 면도도 안한 김광석이 그를 맞아주었다.
“아. 왔나?”
“환자 상태는요?”
“…….”
김광석은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아.”
“세균배양검사는요?”
“아직.”
“…문제를 찾기가 어렵겠네요.”
“맞아. 문제는 찾기 힘든데, 미세하게 계속 혈압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지. 그렇다고 이렇게 부상 범위가 큰 환자를 큰 병원까지 이송해서 샅샅이 검사할 수도 없고.”
제한되는 점이 많았다.
바이탈이나 소변,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환자 상태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는 법.
그러나 도수에게는 이러한 제한점도, 한계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샤아아아아.
다시 한번.
도수의 투시력이 발현됐다.
자고 일어나 체력이 회복된 그는 환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훑었다.
“이건…….”
“왜?”
김광석이 묻자 도수가 파편에 다친 왼쪽 다리의 반대, 오른쪽 다리를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그러자.
“이게 무슨……!”
김광석은 눈을 부릅떴다.
환자의 오른쪽 종아리 아래가 괴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혈전?”
최악의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왼쪽 다리가 얼마나 회복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에서, 나머지 오른쪽 다리까지 혈전이 생기다니.
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냥 혈전이 아닙니다. 감염된 혈전이죠.”
“뭐?”
김광석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셉틱 쓰롬부스(Septic Thrombus: 세균에 감염된 혈전)라도 된단 말인가?”
맥락상 뜻을 파악한 도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을 겁니다.”
“혈전이 생긴 지는 어떻게 알았나? 아니, 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혈전의 종류까지 말할 수 있는 거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자네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야 신뢰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혈전이 생긴 거야 우연히 발견할 수도 있는 거니까…….”
“어젯밤에 한시도 환자에게서 떨어지신 적 없죠?”
“…그렇지.”
“전 방금 막 왔고요.”
“…….”
“그런데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도수는 환자의 종아리를 통해 반투명하게 보이는 혈전을 노려봤다. 혈관을 막고 응고된 피에 푸르스름한 세균이 맺혀 있었다. 마치 꽉 막힌 수도관 안에 녹이 슨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죠.”
“뭘……?”
“혈전이 머리로 안 가서 다행이라고.”
“다행이라…….”
김광석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이 맞다면 다리를 절단해야 돼. 하지만 어떤 의학적 근거도 없이 환자의 다리를 절단할 순 없네.”
다리 절단.
일반적인 의학 상식으로 결국 해야 될 처치는 그 방법이 맞다.
하지만 투시력을 겸비한 도수의 눈에는 다른 해결책이 보였다.
“절단 없이 다리를 살릴 방법이 있습니다.”